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커버스토리]어떻게 질문해야 하나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5-07-25

질문은 기자의 특권이다. 시민들의 궁금증을 대신 묻고 해결해 주기 위해 기자는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기자의 질문은 권력 앞에서도 꿋꿋해야 한다. 우리 언론이 권력을 감시·통제하기 위해 제대로 질문하고 있는지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질문은 기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권한이다. 기자는 질문을 통해 권력을 감시·통제한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30일 기자회견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라는 거창한 취지와는 달리 기자들의 질문은 무기력하고, 무뎠다. 대통령이 답하기 좋은 질문은 했지만, 난감하거나 불편한 질문은 없었다. 국가적으로 중요하거나 국민의 삶에 중요한 질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저널리즘과 정치권력 간의 상징적 대결장이다. 기자들은 불편하거나 껄끄러운 질문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답변이 부실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으면 거듭 질문하고, 따져 물어야 한다. 애매하거나 모호하면 질문을 통해 명확한 답변을 이끌어 내야 한다. 하지만 2시간을 넘긴 이날 기자회견은 그렇지 못했다. 질문 의제는 산만했고, 후속 질문도 없었다. 대통령에게 말하는 기회는 주었지만, 대통령의 답변에 반박하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답변조차 그냥 넘어갔다. 

 

저널리즘의 권력은 질문에서 나온다. 질문이 부실한 저널리즘으로는 권력을 감시할 수 없다. 저널리즘은 권력에 질문하고,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권력자의 허위와 잘못을 감시하는 데 있어서 기자의 질문이 중요하다. 기자는 질문을 통해 권력자를 심문하고, 진실을 드러낸다(이완수, 2021). 저널리즘이 권력에 대해 공격적인 질문을 멈추면 안 되는 이유다. 영국 BBC의 언론인 제러미 팍스만(Jeremy Paxman)과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 내무장관 간에 벌인 인터뷰 논쟁은 정치권력에 대한 기자의 질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김사승, 2023). 팍스만은 하워드에게 무려 12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다. 납득할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시답지 않은 답변은 그만하고, 제대로 된 답변을 하라고 끝까지 몰아세웠다. 기자회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짐 아코스타(Jim Acosta) CNN 기자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아코스타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욕적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민자 입국 문제와 트럼프가 연루된 러시아 스캔들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박수현, 2018). 권력 앞에 늘 공손하고 예의 바른 한국 기자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는 이유

 

한국 기자들이 권력자에게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다. 우선 기자 개인의 취재 관행 문제다. 요즘 젊은 기자들은 취재원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지 않는다. 대신 속기사(速記士)처럼 받아쓰기에 더 익숙하다(이완수, 2021). 취재원의 일방적 주장이나 의견을 전달하기에 바쁘다. 그나마 예전 기자들은 질문을 많이 한 편이었다. 질문한 내용을 펜으로 기록하고, 수첩에 담는 취재 관행을 당연하게 여겼다.

 

둘째는 출입처 제도다. 출입처 제도는 모든 정보와 취재원을 출입처에 의존하는 구조다. 취재원이 정보를 지배하면서 기자의 질문은 사라졌다. 취재를 위해서는 출입처와의 우호적 관계를 무시하기 어렵다. 자연히 불편하거나 민감한 질문은 피하게 된다. 기자와 출입처가 서로 결탁하고 협조하는 담합 결사체가 남아 있는 한 ‘질문의 위기’는 피할 수 없다(김사승, 2023; 이완수, 2021).

 

셋째는 온라인을 통한 뉴스 생산 환경의 문제다. 뉴스의 디지털화로 ‘속성 정보’의 속보 전달이 중요해졌다. 사실을 확인하는 질문 과정을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알려진 사실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면서 후속 질문은 생략된다.

 

넷째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정파성도 문제다. 자신들과 이념이 다른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공격하지만, 같은 정치 세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결국 권력에 대한 ‘질문 부재’로 나타난다.

 

다섯째는 언론의 상업성 문제다. 기자들이 자본 권력에 질문하고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는 데는 광고라는 상업적 이유를 무시하기 어렵다. 한국 언론은 이제 광고 수익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 언론의 상업주의는 기자의 ‘질문 의지’를 꺾고, ‘질문 주도권’을 빼앗아 갔다.

 

여섯째는 저널리즘의 한국적 가치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조직의 질서와 위계를 강조하는 문화다. 질서와 조화와 순응을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살아온 한국 기자들이 권력자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하기는 쉽지 않다(Heo & Lee, 2023). 풀어줘야 한다. 질문은 권력자가 말한 사실을 믿을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진실 확인의 수단이자 장치다(이완수, 2021). 저널리즘 권력과 정치권력 간의 대결은 질문에 의해 판가름난다. 기자는 권력자의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권력자를 몰아세우는 사람이다. 권력의 독주를 막고, 사실에 진실의 날개를 달기 위해서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권력에 대한 기자의 가장 큰 역량은 공격적인 질문이다(김사승, 2023). 기자는 권력에 대해 직설적인 질문, 특정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 일방적 주장에 대한 반박성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Clayman & Heritage, 2002). 기자의 질문은 권력자를 몰아세우는 ‘푸시 저널리즘(push journalism)’을 실천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Blumler & Esser, 2019).

 

정치권력에 대해 공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는 기자들에게 주어진 ‘질문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기자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저널리즘의 개입 없이 권력자들이 순진한 보통 시민들을 직접 상대하도록 내버려두는 일이다(Eide, 2007). 질문을 통한 저널리즘의 개입은 정치권력에 대해 저항하고, 견제하는 수단의 하나다. 질문은 정치인의 선택을 줄이고, 대신 기자의 선택권을 넓혀준다(Snow & Altheide, 1979). 기자가 어떻게 질문하는가에 따라 권력자의 태도, 인식, 행동이 바뀐다. 질문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정치권력의 독주와 지배는 막을 수 없다. 결국에 정치 논리가 저널리즘 논리를 이기게 된다.

 

질문 없으면 저널리즘도 없다

 

저널리즘 논리가 정치 논리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질문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Blumler & Esser, 2019). 첫째는 단정적인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 방식이다. 단정적인 질문은 기자가 질문을 주도하고, 의제를 통제할 수 있게 한다. 한국 기자들은 권력자, 특히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 단정적인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은 모호하고 무뎠다.

 

둘째는 공격적인 질문이다. 권력자가 답하기 곤란하고, 불편한 내용을 서슴없이 하는 질문 방식이다. 개인 정치인의 태도와 행동, 정책의 편향과 오류,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한계를 용감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책임을 추궁하는 질문이다. 권력자의 특정한 행동이나 정책에 대해 “왜 당신은 그런 결정을 내렸는가”와 같은 입장을 캐묻는 질문 방식이다. 책임을 추궁하는 질문은 권력자의 잘못된 판단이나 의사결정의 부당성을 드러낸다.

 

넷째는 공적 이미지에 흠을 내는 질문이다. 권력자가 제시한 정책, 진술, 행동, 목표, 원칙 등의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질문 방식이다(김사승, 2023). 정치인, 정당, 정부의 명성에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질문을 거침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민생회복 지원금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는 권력자의 상징적 이미지를 공박하는 질문의 예다.

 

다섯째는 대답에 대한 반박성 질문이다. 정치인이 대답한 정보의 정확성, 정직성, 타당성을 따져 다시 문제 제기하는 질문 방식이다. 기자들은 반론과 연속적인 질문을 통해 답변의 허점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기자 역시 변호사나 검사가 피고인의 주장에 담긴 모순을 드러내 논박하듯이 ‘교차 질문’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김사승, 2023). 기자는 정치인이 내놓은 입장의 비일관성을 따져 묻고, 정치 집단 안에서 합의되지 않은 의제의 실현 가능성을 캐물어야 한다.

 

기자의 사명은 권력에 대한 비판에 있고, 이 비판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권력에 대한 기자의 질문은 날카롭고, 공격적이고, 때로는 무례할 정도로 용감해야 한다. 정치인이나 대통령은 정치적 권력자이지만, 기자는 질문의 권력자다. 질문자인 기자는 응답자인 권력자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갖는다. 기자는 지배적 질문을 통해 정치적 권력을 통제한다. 이제 한국 기자들도 권력에 대해 제대로 질문하고, 보도해야 한다. 그것이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질문이 없으면 저널리즘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다.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이완수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5-07-25
  • 조회수 : 5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