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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되짚기 03 원칙
기획연재 | 등록일 : 2023-05-26

한국 신문 기사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이상한 관행이 발견된다. 그것은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이라는 표현과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전자는 기자들이 정보 출처를 적시(attribution)할 때 사용하고, 후자는 이해당사자의 반론을 듣고자 했으나 듣지 못했을 때 주로 사용한다. 

 

먼저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이라는 정보 출처 적시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정보 출처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취재했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자사 기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수집한 정보를 뉴스룸에서 재정리하는 것이 믿을 만한 정보 출처가 될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출처 불명 뉴스를 공표하고 믿으라는 것이다.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했지만 닿지 않았다”나 “배경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는 반론권에 대한 표현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기자가 이해당사자의 말을 듣기 위해 어떤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것이 실현되지 않아 다른 어떤 조치와 대안을 강구했는지 알 수 없다. 기자가 입장을 듣기 위해 당사자에게 연락했다는 행위만으로 사실 확인 규율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기자는 나름대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히고 싶겠지만, 그것은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은 기자가 의견을 듣기 위해 단지 연락을 취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이해당사자의 의견과 그 의견의 사실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어떤 구체적 노력을 기울였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기자가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어떤 절차와 방법을 사용했는지,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별도의 수단을 동원했는지, 그리고 왜 이 뉴스를 보도하기로 결정했는지 드러내야 한다.


기자의 첫 번째 임무는 진실 전달

 

시민에 대한 기자의 첫 번째 임무는 진실(truth)을 전달하는 데 있다. 진실은 사실(fact) 전달을 넘어 어떤 사건에 대해 검증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을 통해 달성된다.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뉴스를 과연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적어도 뉴스가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진실되고, 정직하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자가 정보를 누구로부터,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얻었는가를 상세히 밝혀야 한다. 

 

한국 기자들이 뉴스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객관성, 공정성, 균형성, 중립성과 같은 저널리즘 규범에 관한 것이다. 이들 저널리즘 규범은 뉴스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기자들이 한 가지 간과해 온 점이 바로 취재 절차와 과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투명성(transparency)’에 관한 문제다. 기사가 객관적인가, 공정한가, 균형적인가 하는 문제는 뉴스의 결과에 관한 것이지, 그것들이 어떤 절차와 방법을 거쳐 작성됐는가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사를 믿기 위해서는 ‘결과의 완결성’보다 ‘과정의 투명성’이 훨씬 중요하다. 그 기사가 객관적이거나 공정하다고 해서 더 신뢰할 수 있거나, 진실에 가까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기사가 어떤 절차와 방법을 거쳐 취재가 이뤄졌는가 하는 ‘과정의 투명성’을 확인했을 때 더 믿음이 가고, 더 진실에 가깝다고 느낀다. 미국 언론비평가인 댄 길모어(D. Gilmore)가 “기자들은 객관성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투명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Kovach & Rosenstiel, 2021).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도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취재 방법에 대해 투명하게 설명하는 일이 저널리즘 객관성의 본래 의미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보가 폭주하는 디지털 시대 뉴스는 이제 ‘나를 믿어라(Trust me)’가 아니라 ‘나에게 보여 달라(Show me)’가 중요하다(Kovach & Rosenstiel, 2021). “내가 왜 당신 기사를 믿어야 하나”, “내가 그 기사를 믿을 수 있는 근거를 보여달라”는 뉴스 소비자의 요구에 기자들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취재 투명성은 구체적이고 정직해야

 

기사의 진실은 취재의 투명성에서 시작한다.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누구고, 그들이 전하는 뉴스 내용을 어떻게 취재해 얻었는지 자세하게 알려야 한다(Kovach & Rosenstiel, 2021). 그것이 투명성 실천의 첫걸음이다. 취재의 투명성은 단순히 취재원 이름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기자들은 오랫동안 실명 취재원 공개를 기사 투명성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왔다. 그것은 ‘형식적 투명성’에 지나지 않는다. 실명 취재원을 통해 그 정보 제공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정보원이 믿을 만한지, 그로부터 어떤 절차와 방법을 거쳐 관련 정보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코바치와 로젠스틸의 말대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밝히는 것에서 나아가 “당신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당신의 취재원은 믿을 만한가?”, “취재원은 그 사실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를 주저없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뉴스 생산 과정에 어떤 근거가 활용됐고, 어떤 선택이 있었는지 해당 기사에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취재의 투명성은 무엇보다 구체적이어야 하고, 정직해야 한다. 뉴스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소식통들이 말했다”고 모호하게 밝히거나(Kovach & Rosenstiel, 2021), “A 씨에 따르면”, “김모 씨, 또는 김 아무개 씨에 따르면”과 같은 무책임한 익명성은 모두 보도의 투명성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이재경, 2021). 저널리즘의 궁극적 가치인 진실을 보여줄 수 없음은 물론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과 같은 정보 출처에 대한 모호한 적시로 독자의 믿음을 얻기는 어렵다. 누가, 어떤 위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근거가 불충분한 기사를 읽고 이를 믿을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는 면피성에 가까운 기사 역시 ‘형식적 투명성’이라는 의심을 벗기 어렵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라는 독자의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내용은 기자가 어떤 시도를 했다는 행위가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난 구체적 정황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파성으로 불신을 사고 있는 한국 기자들이 출처가 모호한 기사로 독자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의 검증(verification)도 결국은 취재 과정의 투명성을 통해 실현된다. 취재 과정의 투명한 공개가 곧 사실의 검증 과정인 셈이다. 취재 투명성은 그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이러한 방식으로 보도하게 됐는가에 대한 신뢰를 보증하는 수단이다(Kovach & Rosenstiel, 2021).


사회과학적 절차와 방법 필요

 

마감 시간에 쫓기고, 지면에 제한을 받는 한국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한계가 있었으며, 무엇이 미흡했는지, 그리고 어떤 대안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투명하게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이재경, 2021). 그럼에도 정보를 얻게 된 과정과 뉴스를 결정하게 된 윤리와 동기, 그리고 기자들이 밝혀내지 못한 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밝히기 위해서는 치열한 취재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다. 필자는 취재 과정의 투명한 공개야말로 신뢰를 잃어가는 지금의 한국 저널리즘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사회과학자들의 과학적 절차와 방법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과학자들은 데이터 수집 단계에서부터 분석에 이르기까지 그 절차와 방법을 자세하게 기술한다. 관련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했으며, 수집된 데이터는 신뢰할 수 있는지, 그리고 분석 과정과 절차가 타당한지 자세히 밝힌다. 분석 절차와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가 무엇인지도 함께 투명하게 공개한다. 기자들도 이처럼 사회과학자들의 객관적 절차와 방법을 기사에 자세하게 담았으면 한다. 정보를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 수집했으며, 사실 검증 과정에서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이 확인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코바치와 로젠스틸도 “취재의 투명성은 방법의 객관성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취재 절차와 방법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만으로도 뉴스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도는 높아진다. 투명성은 취재원의 실수나 속임수에 대한 최선의 방어막이자, 뉴스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유용한 도구다(Kovach & Rosenstiel, 2021). 거짓 정보가 넘치는 오늘날 취재 투명성이 진실 추구라는 저널리즘 가치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한국 기자들은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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