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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정책] 닛케이의 디지털 혁신
산업정책 | 등록일 : 2020-03-02

일본 최대 경제지 닛케이의 파이낸셜타임스 인수는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지금 추세로 보면 기타 쓰네오(喜多恒雄) 닛케이 회장의 선택은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의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언론의 현실에서, 닛케이의 혁신이 시사하는 바는 곱씹어 볼 만하다. 편집자 주

 

 

20157월 일본 최대 경제지 닛케이가 세계 미디어 업계를 경악시키는 뉴스를 발표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세계 최고 경제지로 꼽히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Financial Times)를 인수한다는 발표였다. 미디어 업계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시장가치보다 훨씬 높게 쳐주고 또 현금(84,400만 파운드·13,0441,000만 원)으로 지분 100%를 인수한다는 계약 내용이었다. 닛케이는 201511월 인수 작업을 마치고 FT를 닛케이미디어그룹에 편입시켰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시점인 20191. 나는 닛케이 종이신문을 사무실에서 받아보고, PC와 스마트폰으로 닛케이 웹과 앱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해외 경제지 중에서 FT와 월스트리트저널을 구독했다. 지난 1년 동안 온·오프 닛케이를 체험하면서 닛케이의 변신을 꼼꼼히 살폈다. 특히 FT를 인수한 이후 닛케이가 어떻게 변했고,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를집중적으로 살폈다.

지난 4년여 동안 국내 언론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가 주도하는 디지털 혁신을 주로 다뤘다. 나 역시 두 언론사의 디지털 전환 흐름을 좇느라 닛케이를 주목하지 못했다. 하지만 닛케이 구독 경험을 통해 닛케이의 변신을 생생하게 실감했다. 닛케이는 FT로부터 콘텐츠(저널리즘)와 디지털 기술 노하우를 전수받아 4년 전과 전혀 다른 미디어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또 새로운 미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연구 개발과 취재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투자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조 원 넘는 투자에서 본전을 뽑고도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1년 동안 온·오프 닛케이를 꼼꼼히 살피면서 FT 인수 이후 닛케이의 변신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조용한 혁신의 성과, 디지털 구독자 두 배 증가

 

2019년 말 기준으로 닛케이의 온·오프 구독자는 303만 명이며, 이중 전자판(디지털 또는 온라인을 뜻함) 구독자는 723,000명이다. 2015년 온·오프 구독자와 비교하면 오프라인은 10만 명 감소했고, 전자판 구독자는 363,000명에서 723,000명으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출처 - 니먼랩 www.niemanlab.org>

 

닛케이의 온·오프 구독자 내용만 보더라도 닛케이는FT 인수 이후 오프라인 하락세를 막으면서, 디지털 구독자를 새로 창출하는 일거양득의 성과를 얻었다. 4년에 걸친 닛케이의 디지털 혁신은 조용했지만, 내용은 속이 꽉 차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전자판 구독자 구성에서도 내용이 알차다. 닛케이 전자판의 전통적인 구독자는 기업의 임원과 30~40대 중간관리자다. 닛케이는 기업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전자판 프로라는 B2B 상품을 만들어 임원과 관리자가 닛케이 콘텐츠를 모니터링하면서 직원과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4년 만에 두 배로 증가한 동력은 스마트폰에 익숙한 20~30대 대학생과 여성의 꾸준한 가입이었다. 닛케이는 2018년 전자판 실적을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20181~4월 신규 유료 회원 중 20대가 41%, 여성이 26%를 차지해, 5년 전 같은 기간 각각 23%, 16%에 비해 20대와 여성 비중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닛케이 전자판 구독료는 월 4,000(43,000)으로 세계 유수 매체 중에서 FT와 더불어 가장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디지털 구독료만 해도 경영에 큰 보탬이 된다. 종이신문을 볼 경우 1,000(1850)을 추가하면 되는데, 병행 구독이 50여만 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해도 높은 가격대의 구독료는 뉴스 경영에 아주 매력적이다.

 

FT 없이 디지털 혁신은 불가능

 

닛케이는 201711월 닛케이 웹사이트와 앱을 전면 개편했다. 당시 닛케이는 프로그레시브 웹앱(PWA, Progressive Web App)이라는 첨단 기술을 도입해, 반응속도와 디바이스별 대응 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웹사이트와 앱 시스템을 가동했다.

특히 PWA 도입을 바탕으로 모바일에서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아울러 지면에 앞서 온라인에 뉴스를 전달하는 디지털 퍼스트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하면서 스마트폰 시대 젊은 뉴스 이용자 층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닛케이의 웹과 앱은 일본 미디어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닛케이가 수준 높은 디지털 기술을 구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FT였다. 기타 쓰네오(喜多恒雄) 닛케이회장은 2019년 말 켄 닥터(Ken Doctor, 뉴소노믹스(Newsonomics)저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FT 인수첫해에 FT의 전문가를 초빙해 닛케이 웹사이트를 새로 창조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닛케이가 웹과 앱 기술 혁신과 더불어 가장 주력한 분야는 전자판 구독자 증대 전략이다. 닛케이가 이른바 데이터 기반 구독 전략(Data Driven Subscription Strategy)의 정수를 FT로부터 배워 전자판 구독자 증대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닛케이의 디지털 퍼스트 사례: 스마트폰 닛케이 앱으로 본 2020년 2월 소프트뱅크G의 결산 실시간 중계 뉴스 <출처 - 닛케이 앱>

 

  

 

실제 디지털 유료 구독을 이끄는 방식도 FT와 유사하다. 제한된 개수를 무료로 풀어주고, 수시로 1개월 무료 프로모션을 하면서 유료 구독을 권유한다. 또 무료 또는 유료 독자의 구독 행위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정밀하게 분석해 유료 구독으로 전환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기타 회장은 2015FT 인수를 결정했을 때, 사양 산업인 뉴스 산업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지불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는 4년 뒤, “FT를 인수하지 않았으면 닛케이의 디지털 혁신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닛케이의 혁신 키워드, 글로벌·테크·아시아

 

닛케이는 202011일 신년 특집물로 <역경의 자본주의>1면에 보도했다. 이어 8회에 걸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현재 자본주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고, 그 파장이 어떻게 미치고 있는가를 거시적으로 분석했다. 이 시리즈는 현장 취재 등을 통해 성장, 분배, 노동 등

자본주의 근간 시스템이 바뀌고 있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고 또 미국, 일본 등 저명한 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각종 이슈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시리즈를 접하고 FT2009년 세계금융위기 때 보도했던 자본주의의 미래(The Future of Capitalism)’ 특집 시리즈를 연상했다. FT는 리먼 사태로 인해 드러난 당시 자본주의 시스템의 민낯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심층 기사를 보도해 역시 FT”라는 평가를 받았다. <역경의 자본주의> 시리즈도 일본을 넘어, 글로벌 시각에서 기획된 콘텐츠로서 FT에 명성에 다가가려는 닛케이의 글로벌 전략을 담고 있다. 닛케이 저널리즘의 또 다른 지향점은 최고의 테크 콘텐츠다. 닛케이는 온·오프에서 디지털 플랫폼 패권 경쟁,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반도체 등 디지털테크 뉴스를 비중 있게 다룬다. 팀 쿡(Timothy D. Cook,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 등 테크 분야 거물 인터뷰와 같은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또 라인과 야후 합병과 같은 대형 소재에 대해 분석기사를 발 빠르게 여러 차례 보도하면서, 플랫폼 전쟁의 이면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 테크 트렌드를 포착하는 능력도 크게 향상됐다. 닛케이는 올 1‘CES 2020’이 끝날 무렵에 인공육 식품 트렌드를 특집으로 비중 있게 다뤘다. 다른 매체는 CES 2020에서 임파서블푸드(Impossible Foods)사의 임파서블 햄버거(Impossible Burger)가 인기를 끌었다는 화제성 기사를 보도하는 데 그쳤다.

닛케이의 테크 콘텐츠가 세계적 수준을 갖추게 된 것은 실리콘밸리에 다섯 명의 기자를 파견할 정도로 테크 보도 역량을 강화한 덕분이다. 여기에 FT의 테크 취재 역량까지 보태 월스트리트저널과 경쟁할 힘을 축적하고 있다.닛케이의 이런 테크 콘텐츠 역량은 독자뿐만 아니라 미디어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 4월에 다뤘던 <데이터의 세기> 시리즈가 2019년 일본신문협회 상을 받은 것이다.

닛케이 콘텐츠 혁신의 세 번째 키워드는 아시아다. 닛케이는 2013년 닛케이아시안리뷰(Nikkei Asian Review)라는 영자지를 창간해 영문 뉴스 역량을 꾸준히 키웠다. 특히 FT로부터 에디터급을 파견받아 영문 뉴스 제작 수준을 높여 영미권 독자의 신뢰를 확보해가고 있다.

또한, 지난해 싱가포르의 금융 전문 매체 딜스트리트(Deal Street)를 인수하고 인도 금융 매체에 투자하는 등 아시아 지역 취재 네트워크를 착실하게 구축하고 있다. 중국어 서비스인 중문망의 경우 일찌감치 2012년에 구축했다. 닛케이의 이런 투자는 테크 및 금융산업 중심축이 미국에서 아시아로 이동할 때를 대비한 것이다. 아시아금융 정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촘촘한 네트워크는 닛케이의 미래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혁신연구소 통해 첨단 기술 개발까지

 

닛케이는 201811월 신문 지면 사진에 태블릿을 비추면 3D 화면을 띄워, 사용자가 손으로 만지면서 소리 등 관련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증강현실(AR) 서비스를 시작했다. 닛케이는 이 서비스를 관광 콘텐츠와 광고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에 앞서 20189월 카약사와 공동으로 화가의 시각을 가상현실(VR)로 재현하는 기술 AIT(ArtImmersion Technology)를 개발해 서비스하고 있다.

닛케이가 숨 가쁘게 선보이고 있는 첨단 미디어 기술의 산실은 20174월 사장 직속으로 설립한 닛케이혁신연구소다. 혁신연구소는 지금까지 인공지능을 비롯해 VR, AR, 사물인터넷(IoT), 영상 및 음성처리 등 첨단 분야에서 연구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혁신연구소가 가장 투자를 많이 하는 분야는 인공지능이다. 연구소는 지금까지 기업 결산 자료를 인공지능으로 요약하는 서비스, 일문 기사를 영문으로 자동 번역하는 번역 기능 등 인공지능 응용 기술을 잇달아선보였다. 또 인공지능 기반 자동 교정 알고리즘을 발표하는 등 학계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닛케이의 기술 연구개발 전략은 또 FT와 닛케이에 다른 미션을 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FT는 웹 관련 기술에, 닛케이는 AI 연구에 집중하도록 하고, 성과를 공유하려고 한다. 기타 회장은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닛케이가 FT보다 앞서 있다. 도쿄에서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 성과를 FT와 나눌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피력했다.

 

한국 언론, 탈 네이버 결단해야

 

기타 회장은 2016FT를 턱없이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적어도 10~20년 후에 FT인수 성공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면서 비난에 맞섰다. 현재 추세로 보아 닛케이가 10년 후 본전을 뽑고도 크게 남는 장사를 했다는 평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닛케이의 FT 인수와 같은 투자는 특수한 사례다. 또 경제 전문지의 디지털 전략을 종합지가 따라 하기 어렵다. 한국 언론계가 닛케이에서 참조할 점은 기타 회장의 단호하고 과감한 리더십이다. 특히 야후재팬에 기사를 공급하지 않고 독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조 단위 투자를 결행했던 기타 회장의 결단력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 언론계의 지난 15년 동안 최대 이슈는 네이버 종속이었다. 앞으로 10년 이상 그 이슈가 여전히 언론계 발목을 잡고 미래까지 위협할 것이다. 네이버 종속 체제에서 독립하지 않으면 언론사는 콘텐츠 공급자로 기자는 네이버를 위해 각자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네이버 종속 문제를 풀려면 언론사의 최고 경영자가 결단할 수밖에 없다. 2년 남짓 뉴스룸을 지휘하는 데스크들은 탈 네이버 종속을 꾀할 수 없다. 누가 트래픽과 협찬이 주는 달콤함을 버리자고 말하겠는가. 개별 기자 역시 자기 기사가 큰 매장에서 고객들의 눈에 띄기를 바랄 뿐, 조직의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네이버가 올해부터 전재료 지급을 중단하고 광고 수입을 배분하겠다는 것은 새로운 분할 지배 기법일 뿐이다. 네이버 광고를 더 따내기 위해 언론사들끼리 네이버의 링 위에서 피 터지게 싸우라는 것이다. 뉴스캐스트(2009)에 당하고, 뉴스스탠드(2012)에 의해 좌절되고, 이제 광고 분배에 의해 독립 기회를 날릴 판이다.

지금이라도 언론계 최고 리더는 탈 네이버를 결단해야 한다. 뉴스의 유료 구독은 이제 더 이상 옵션도 아니고, 뉴욕타임스나 닛케이만의 특수한 전략도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언론사가 저널리즘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사활을 건, 마지막 카드일 뿐이다. 저널리즘 가치의 회복을 위해서도, 기자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언론의 미래에 희망을 품지 못하고 언론계를 떠나는 기자 행렬을 보면서 더욱 그런 마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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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우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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