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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앵커의 퇴장과 유튜브 앵커의 등장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0-03-02

TV 뉴스를 신뢰하지 않는 시대,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입지 또한 줄어들고 있다. 공정한 뉴스보다 듣고 싶은뉴스를 선호하는 뉴스 이용자의 문제 또한 적지 않다. 정파적 언론만 소비하는 사회에서 레거시 미디어가 풀 숙제는 어렵기만 하다. 편집자 주

 

20186월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ABC의 조지 스테퍼노펄로스(George Stephanopoulos), NBC의 레스터 홀트(Lester Don Holt Jr.), CNN의 앤더슨 쿠퍼(Anderson Hays Cooper) 같은 세계적인 앵커들이 속속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JTBC의 손석희 앵커도 거기 있었다. 앵커는 방송에서 해설과 논평을 곁들여 메인 뉴스를 진행하는 인물로, 손석희는 대한민국 앵커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런 그가 지난 12<뉴스룸>을 끝으로 앵커직에서 물러났다. 64 개월 만이었다. “오랜 레거시 미디어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저는 이제 카메라 앞에서는 물러설 때가 되었습니다라며 손석희는 후배들에게 TV 앵커의 퇴장을 알렸다.

앵커는 20세기 방송 뉴스의 아이콘이었다. 국내에선 1961KBS TV가 개국하며 방송 뉴스의 시대가 열렸다. MBC <뉴스데스크>1970105일 국내 방송 사상 처음으로 앵커 시스템을 도입했다. 앵커 시스템은 1952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중계 보도에서 등장했다. 앵커는 뉴스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며 각주를 달고, 현장 기자에게 궁금한 것을 직접 묻고 해설했다. 국내에서도 지상파 3사를 중심으로 앵커들이 속속 등장했다. 누군가는 방송사 사장이 됐고, 누군가는 국회의원이 됐고 누군가는 대기업 홍보책임자가 됐다. 손석희는 끝까지 스테이션을 지켜냈다.

손석희는 JTBC 보도 담당 대표이사이자 메인뉴스 앵커로서 사실·공정·균형·품위를 내걸었다. 기자들에게 취재를 지시했다. 메인 뉴스 시간을 오히려 늘렸다. 백화점 나열식 뉴스 시대의 종언을 선언했다. 팩트체크 코너를 도입했다. 생방송 뉴스에서 기자들을 다그쳤다. 손석희 앵커 체제는 라이브에서 탁월함을 보였고, ‘한 걸음 더 들어가는뉴스로 전문성을 더했으며, ‘앵커브리핑으로 뉴스에 감성을 덧붙였고, 뉴스가 끝난 뒤에는 소셜라이브를 통해 뉴스 와 기자들의 스토리를 추가했다. 그 결과 JTBC는 수년 간 독보적인 신뢰도 1위 언론사로 자리매김했다. JTBC의 뉴스 브랜드는 곧 손석희 브랜드였다.

 

 

 

1. <유시민의 알릴레오> 유튜브 메인 화면 <출처 - <유시민의 알릴레오> 유튜브 갈무리>

2. <홍카콜라> 유튜브 메인 화면 <출처 - <홍카콜라> 유튜브 갈무리>

 

 

 

하지만 손석희의 퇴장은 그가 수십 년간 이뤄낸 업적에 비해 씁쓸했으며, 다소 비극적이었다. 단순히 신뢰도 1위 언론인을 화면에서 볼 수 없다는 차원이 아니다. 손석희의 퇴장은 그의 말대로 레거시 미디어의 퇴장이면서, 그가 지켜왔던 저널리즘적 가치의 퇴장을 의미했다. 손석희는 공평하게 공격적인 질문’, ‘대가를 바라지 않는 뉴스를 통해 자신의 저널리즘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는 뉴스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수용자들에 의해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는 신뢰도와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의 퇴장을 재촉했던 이들 중에는, 한 때 촛불을 들 고 손석희에 환호하던 시민들도 있었다.

 

모멘텀은 조국 사태였다. 2016, 그 역사적인 태블릿PCJTBC 기자에게 넘겨주었던 과거 더블루K’ 건물관리인 노광일 씨는 지난해 나와 통화에서 “828일부터 JTBC를 안 본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유시민의 알릴레오><김어준의 다스 뵈이다>를 빼놓지 않고 시청한다고 밝혔다. 닐슨코리아 수도권 전 연령대 기준 평일 시청자 수 집계에 따르면 JTBC8월 평균 57만 명에서 9463,000명으로 10만 명가량 급감했고 10월에도 442,000명으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MBC8397,000명에서 942만 명으로 증가한 뒤 10월 평균 485,000명의 시청자 수로 JTBC를 앞섰다.

JTBC는 조국 사태 국면에서 검찰발 기사를 비롯해 조국 관련 아이템에 대해 철저하게 보수적으로 데스킹하고 확인된 것만 중립적으로 보도했다. 스모킹건이 될만한 아이템이 아닌 이상 신중하게 게이트키핑했다. 물론 조국 전 장관의 입장을 옹호하지도 않았다. 신중함이 거듭됐다. JTBC검찰개혁이슈를 앞서서 끌지도 못했고,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주도적으로 보도하지도 못했다. 시청자들은 <뉴스룸>에 사실상의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그러나 손석희 앵커에게 그것은 저널리즘이 아니었다. 결국 JTBC()조국시청자와 ()조국시청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미디어오늘·리서치뷰가 지난해 10월 말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국 이슈를 가장 공정하게 보도했다는 방송사는 MBC(19%), TV조선(17%), JTBC(14%) 순이었다. 당시 지표를 두고 MBC의 한 기자는 내게 지난 16개월간 정말 많은 노력을 해도 (시청률) 회복이 안 되던 상황을 돌이켜보면 지금 상황이 무섭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며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TV조선의 한 기자는 내게 정부 비판 시청자가 TV조선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정부 지지자는 MBC를 중심으로 결집한 것 같다유튜브에 익숙해진 시청자들 시청 행태가 TV 뉴스 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국 사태이후 어느 언론학 박사는 내게 윤리적 인 뉴스 소비가 이뤄져야, 윤리적인 뉴스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국 사태에서의 보도 문제는 JTBC를 비롯한 모든 뉴스룸의 역량 문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뉴스 수용자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어느샌가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불편부당한 뉴스보다, 선명하게 편 들어주는 뉴스를 원했다. 지난 9월 시사IN의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를 두 곳 답해달라는 질문에 JTBC19.9%1, 유튜브가 16.4%2위를 나타냈다. 지난해 32.2%였던 JTBC에겐 눈에 띄는 하락이었고, ‘플랫폼에 불과한 유튜브로서는 굉장한 성장세였다.

 


TV 앵커는 지고, 유튜브 앵커 떠오르다

 

우리는 오늘날 유튜브 저널리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레거시 미디어에 실망한 이들이 시사를 다루는 유튜브를 찾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유시민의 알릴레오> 등을 구독하고, 미래통합당(과거 자유한국당) 지지층은 <신의한수><펜앤드마이크TV> 등을 구독하는 식이다. 이들은 사건의 피아(彼我)’를 빠르게 구분하려는 뉴스 이용자들에게 최적화됐다. 이제 방송사 앵커들은 기억되기 어렵다. 이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을 준수하는 가운데 내놓는 코멘트는 정규재·진성호·유시민·김어준 등 이른바 유튜브 앵커들에 비해 효능감을 줄 수 없다.

TV 앵커의 영향력 쇠퇴는 플랫폼의 변화에 따른 고정형 TV 중심의 뉴스 소비 시대의 종말과도 관련 있다. TV는 이제 뉴스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할 수 없다. 포털은 뉴스의 유통을 분화시켰지만, 유튜브는 뉴스의 유통과 생산을 분화시켰다. 2009년 등장한 스마트폰 이후 국내의 빠른 인터넷 속도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최고의 접근성을 갖게 된 유튜브는 영상 콘텐츠 생산 비용의 급격한 감소와 고정형 TV 실시간 시청 습관의 약화로 이제 TV의 영향력마저 넘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부터 미디어 업계는 유튜브 저널리즘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유튜브는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명확한 인지도를 심어주기 유리한데, 그렇게 뉴스 이용자들은 각자의 앵커를 갖게 됐다. 일부 유튜버들은 취재로 무장하며 앵커로 성장 중이다. 일례로 진용진채널에선 독자들의 궁금증을 취재로 풀어준다. “지하철 잡상인이 궁금하다고 하자 직접 잡상인을 만나 묻고 노인 일자리 현실을 이야기한다. “버스 기사들이 화장실 가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도 직접 취재를 거친 뒤 아예 물을 안 마시는 기사도 있다며 버스 노동자들의 고충을 설명하는 식이다.

 

<진성호방송> 메인 화면 <출처 - <진성호방송> 유튜브  갈무리>

 

TV 앵커들의 전반적인 영향력 약화는 저널리즘의 퇴보를 의미하는 걸까. 과거 CBS <이브닝 뉴스>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 또는 JTBC <뉴스룸> 손석희와 같은 사례는 사실 신화에 가깝다. 손에 꼽을 만한 몇몇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앵커들은 폴리널리스트의 길을 택했다. 스타 앵커가 가득했던 MBC를 돌이켜보면 엄기영·정동영·박영선부터 배현진까지 있다. KBS는 이계진·민경욱, SBS는 홍지만이 있었다. 메인 뉴스라는 스테이션을 지켜내지 못한 선배들이 늘어갔다. ‘잿밥에만 눈이 멀어 앵커가 아닌 뉴스캐스터에 머물렀던 TV 앵커들의 영향력 하락은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유튜브의 등장은 전통적인 저널리스트와 앵커의 개념도 확장했다. 지상파 3사나 종합편성채널의 메인 뉴스 앵커를 몰라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늘날 뉴스 이용자들은 전직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진성호 씨가 앵커로 등장하는 <진성호방송>, 전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인 정봉주 씨가 앵커로 등장하는 를 보며 뉴스를 이해한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언론이며, 언론인이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TV 앵커들은 유튜브 앵커들에게 상당 부분 저널리즘의 자리를 내줬다. TV 앵커들은 기계적 중립’, 또는 중립을 가장한 불공정이란 비판을 받았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유튜브에서 모두 앵커가 될 수 있고, 앵커를 자처하고 있다. 유튜브 앵커의 전면화는 TV 앵커에 비해 당사자 입장을 전달하거나 사건의 구체적 맥락을 시공간 제약 없이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내 입맛에 맞는 정파적 소비가 강화돼 사회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이다. 이들에게는 레거시 미디어의 앵커들이 직업적 훈련으로 체화한 공정성 불편부당성 객관성과 같은 규범적 가치들이 중요하지 않다. 대신 이들은 유튜브 저널리즘이란 공간에서 진실 정의 대의와 같은 대안적 규범을 형성하는 식으로 자신들의 뉴스-행위를 정당화한다.

유튜브 앵커들은 동시에 플레이어다.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며 선동에 가까운 단어를 사용해 사건을 정의하고 분석한다. 본질적으로 주목 산업인 유튜브의 성격이 더해지면 이들은 구독과 조회 수를 위해 더욱 일방적인 콘텐츠로 관심을 호소한다. 이런 상황이 일반화되면 저널리스트의 브랜드라는 것은 불편부당성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특정 진영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포장하고 프레이밍 할 수 있는 수사(修辭)의 능력을 지칭하게 된다. 더욱이 브랜드를 가졌던 것으로 인식되던 저널리스트들이 계속 청와대로 가고 국회의원이 될수록 이 같은 인식은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

 

낮은 뉴스 신뢰도가 키워낸 유튜브 앵커

 

유튜브 앵커들이 등장하며 레거시 미디어는 유튜브식 저널리즘을 요구받는다. 미국에 폭스뉴스와 MSNBC가 있듯이, 한국에는 TV조선과 MBC가 있는 식이다.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국가에선 유튜브 앵커들이 주목받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처럼 유튜브로 시사이슈를 적극 소비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이는 한국의 유튜브 앵커들이 낮은 뉴스 신뢰도에 기반해 성장했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9에 따르면 조사 대상 38개국 중 한국은 유튜브로 뉴스를 본다는 응답률이 40%로 터키(57%), 대만(47%), 멕시코(41%)에 이어 전체 4위였다.

오늘날 TV 앵커의 퇴장과 유튜브 앵커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 한국언론정보학회 정기학술대회 키노트 발언에서 뉴스 수용자들이 모든 기자와 언론을 기레기라고 하진 않는다. 그들이 인정하는 논객과 선동가의 주장이 노출되는 매체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누가 나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가, 이 기준에 따라 의인과 참 언론인이 결정된다수용자들은 해장국 언론을 갈망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파적 언론만 소비하는 사회에서 줄곧 정파적 보도를 거부해온 손석희 앵커의 퇴장은 필연적인 셈이다.

지난해 10월 서초동 집회현장에서 돌아오라 손석희라는 팻말이 JTBC 뉴스 생중계 화면에 잡혔던 그 무렵, JTBC 기자들이 손석희에게 받았던 문자의 한 대목은 이러했다. “언론은 늘 야단을 맞는 대상입니다. 어느 한쪽으로부터, 혹은 양쪽으로부터 모두 말입니다. 가끔 억울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완벽한 저널리즘은 없으며,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니까요. (중략) 현장에서 혹 격한 비난이 있다 해도 묵묵히 견뎌냅시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저널리즘의 정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공유합시다.” 레거시 미디어에게 남겨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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