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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컸던 걸까. ‘5G가 코로나를 확산시킨다’는 음모론이 영국 사회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정부가 과학적 근거가 없는 헛소문이라고 즉각 대응했지만, 버밍엄, 리버풀 등 대도시의 통신장비들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길거리에 노출된 통신탑을 방화한 사례만 60건 이상 조사됐다. 일부 음모론 지지자들은 5G 서비스를 판매하는 통신회사에 협박 전화를 걸고 거리의 통신 기술자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걸까?
발단은 소셜미디어
차세대 통신기술인 5G가 코로나19 유행에 일조한다는 음모론이 영국 사회에서 논란이 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5G를 사용하면 면역 체계가 약해지고 급기야 폐 기능이 저하된다는 주장부터 코로나19가 5G 전파에서 생성된다든지, 전파를 타고 이동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틱톡 등 젊은 층에 인기 있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코로나19의 집단 감염이 시작된 중국 우한에서 5G 서비스의 이른 개통이 있었던 사실이 이러한 주장의 한 근거로 제기되기도 했다.1)
페이스북의 경우, 이러한 음모론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만드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3월 31일 페이스북에 개설된 ‘5G에 대항하는 직접 행동(Direct Action Against 5G)’은 일주일 만에 1,400명의 회원을 모았고 그 뒤를 따라 4월 6일에 생긴 ‘스톱 5G UK(Stop 5G UK)’는 하루 만에 3,000명이 가입하면서 음모론 확산의 요충지로 기능했다.
영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러한 커뮤니티들에서 단순히 건강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가 퍼져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로부터 최근에 논란이 된 5G 통신 시설에 대한 공격 행위의 주도나 선동이 이뤄진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본다. 실제 '스톱 5G UK(Stop 5G UK)’의 일부 회원들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런던 서부 지역의 통신 시설 사진을 게재한 후 다른 이용자들에게 “그것을 태우자”고 선동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허무맹랑한 주장과 반사회적 메시지에 노출되는 영국인의 수가 적지 않아 앞으로 문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방송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은 영국인이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관련 정보를 어떻게 얻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매주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27~29일 진행된 첫 번째 설문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영국이 이동제한령(lock down)을 시작한 첫 주 동안 코로나19에 대한 가짜뉴스 혹은 허위 정보를 접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응답자 중 60%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봤다”고 밝혀 영국 사회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가짜뉴스 문제가 사회 깊숙이 들어왔음을 보여줬다.
다른 여론조사기관인 포칼다타(Focaldata)가 이번에는 ‘5G 음모론’에 대한 영국인의 인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놀랍게도 거의 30%에 달하는 응답자들이 코로나19와 5G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성인 2,0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8%의 응답자가 5G가 ‘코로나19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고 답했고, 19%는 ‘(5G가 관련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5G 음모론에 동조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시민들의 여론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일부 유명인사들 역시 여론에 동참해 사태가 커지는 데 한몫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인 우디 해럴슨(Woody Harrelson)과 가수 MIA가 5G 음모론의 허위 주장을 담은 포스트들을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해 논란이 됐다. 영국의 인기 TV 프로그램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아만다 홀든(Amanda Holden) 역시 음모론을 소개하는 링크를 트위터에 올렸다가 대변인을 통해 실수였다고 해명하는 촌극이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영국 옥스퍼드대의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코로나19 관련 허위 정보 확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화제를 모았다. 연구 결과, 소셜미디어에서 유명인들이 가짜뉴스와 같은 허위 정보의 확산에 미친 영향은 20%에 달했다.2)
전문가들의 반박
이러한 음모론의 확산에 대해 의료 및 과학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이론’이라고 일축한다.3) 잇따라 공격받고 있는 통신탑의 생산에 대한 국제 지침을 만든 국제비전리방사보호위원회(ICNIRP, International Commission on Non-Ionizing Radiation Protection)는 직접 나서서 “5G의 통신장비로 야기된다는 건강 문제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위원회 의장인 에릭 반 론겐(Eric van Rongen) 박사는 “(영국의) 일부 지역사회에서 5G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여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 우려와 달리 실제 5G 통신장비들은 “과학 문헌과 워크숍 및 공공협의 과정을 통해 개발된 지침을 통해 안전하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 관계자들과 보건당국 역시 5G 음모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통신 시설 방화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리버풀의 조 앤더슨(Joe Anderson) 시장은 “기이한 주장”이라며 비판했고, 마이클 고브(Michael Gove) 전 환경부 장관도 “위험한 헛소리”라고 거들었다.

영국의 질병 관리를 맡는 국립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의 스티븐 포이스(Stephen Powis) 국장은 “(코로나19 위기 사태에서 접하는) 최악의 가짜뉴스”라며 5G와 같은 통신기술은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모두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반박했다. 이동제한령 상태에서 시민들이 집에서 방송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때 필요할 뿐 아니라, 긴급한 의료 상황에 없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포이스 국장은 “기지국들이 제공하는 통신 서비스는 NHS 의료진들도 사용한다”며 “이런 긴급 상황에 사람들이 통신 시설을 고의로 훼손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통신 시설을 공격한 음모론 지지자들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문제는 음모론을 믿기 시작한 이들의 태도가 전문가들의 해명이나 정부의 입장 발표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팩트체크 전문기자인 톰 필립스(Tom Phillips)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이론을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 수밖에 없다”며 “나쁜 품질의 정보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새로운 ‘좋은 정보’를 그 자리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문가들이 코로나19가 퍼지기 전부터 통신 시설의 건축이 지역사회 거주민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소문이 종종 돌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에 대해 정부나 통신회사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것이 화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07년, 영국에서는 노스요크셔(North Yorkshire) 지역의 통신탑 건축에 반발해 누군가 콘크리트를 쏟아부은 사건이 있었다. 가디언의 같은 기사에서 한 통신회사의 관계자는 “업계가 5G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5G는 4G와 같은 방식으로 통신 주파수를 사용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리지 않은 점이 음모론 확산에 도움이 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일례로, 스리(Three), EE와 같은 통신회사들은 5G 광고에서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Three), “생생한 증강현실(AR)이 가능해진다”(EE)라며 이전 통신기술과의 차이만 강조했다.
음모론 진화에 직접 나선 영국 정부
문제가 심각해지자 영국 정부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정부 대변인은 “온라인에 떠도는 기이한 음모론으로 인해 통신 기술자들과 통신 설비에 대한 수많은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범죄 행위들은 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프콤은 방송사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지역 방송사로부터 전국구 방송사에 이르기까지, 음모론을 여과 없이 방송하는 일이 이어져서다.4) 최근 지역 라디오 방송사인 어크필드FM(Uckfield FM)은 코로나19 대유행의 최전선에서 고투하고 있는 NHS의 의료전문가들을 공격하는 시민의 발언을 20분에 걸쳐 방송해 첫 번째 제재 사례가 됐다.
이 방송사는 자신을 “(국가에) 등록된 간호사”라고 소개하는 시민을 인터뷰했는데, 이 시민은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중국 우한의 5G 기술이 공개된 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청취자들의 불만이 제기돼 오프콤이 조사한 결과, 인터뷰한 시민은 대체의학 종사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런던에 기반을 둔 지역 방송사인 런던라이브(London Live) 역시 유사한 문제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음모론자인 데이비드 아이크(David Icke)를 초대해 코로나19 대유행이 대중 감시와 경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정부의 계획이었다는 음모론을 여과 없이 소개해 논란이 됐다.
ITV와 같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주류 매체도 조사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ITV의 아침 프로그램인 <디스모닝(This Morning)>의 진행자인 이먼 홈스(Eamonn Holmes)가 “5G와 코로나19와 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 논리에 맞춘, 매우 쉬운 일”이라며 기존 방송사들의 주류 시각을 비꽜기 때문이다. 방송이 나간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자 출신인 유명 방송인이 “무책임하게 근거 없는 이야기를 정당화했다”며 성토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현재 오프콤은 이처럼 코로나19에 대한 주류 정보원들에 대한 신뢰를 약화할 가능성이 있는 출처를 언급했거나, 잠재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견해들을 여과 없이 방송한 사례들을 조사하고 있다.
남은 것은 음모론의 진원지가 된 소셜미디어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5G와 코로나19 관련 음모론을 심각하게 비난하자 소셜미디어 기업들도 진화를 돕기 시작했다. 5G 음모론 커뮤니티의 개설과 관련해 통신탑 방화사건에 대해 조사받고 있는 페이스북은 지난 4월 12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논란이 된 ‘스톱 5G UK’과 같은 커뮤니티들이 페이스북의 자체 커뮤니티 정책 중 “범죄를 조장하거나 홍보하는 행위의 금지”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폐쇄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또한 5G가 코로나19를 촉발한다는 허위 주장을 담은 포스트 역시 삭제했다고 밝혔다.5)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특성상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거짓 정보와 음모론 포스트들을 완벽하게 검열하기는 쉽지 않다. 그에 대한 플랫폼의 책임을 묻기도 현행법상 쉽지 않다. 지난 2월 12일, 오프콤이 소셜미디어에 대한 법적 제재와 행정적으로 규제를 가하는 새로운 권한을 부여받을 것이라는 영국 정부의 공식적인 언급이 있었다.6)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벌금액이나 행정적 제재 형태가 확정되지 않아 이번 코로나19와 관련된 음모론 사례에는 적용될 수 없다. 소셜미디어에서 음모론 확산을 막으려는 시민사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한 상태다.
1) Ben Quinn,
2) Jim Waterson,
3) Harriet Sherwood,
4) Gregory Robinson,
5) Ben Quinn,
6) 당시에 공개한 계획안에 따르면 오프콤은 향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가 테러리스트나 아동 학대와 같은 유해 및 불법 콘텐츠를 신속하게 제거하지 않을 때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반복적인 위반이 확인될 때는 플랫폼 운영 중단 조처를 내릴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