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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느린 대처로 유럽 내 최대 피해국이 됐다. 5월 초에는 유럽 최초로 사망자 수 3만 명을 기록했을 정도다. 늦게나마 다른 유럽 국가들을 따라 전국에 이동제한령(lockdown)을 내렸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제 그 여파는 사회 전반을 관통해 방송 업계에까지 미치고 있다. BBC와 ITV 등 주요 방송사들은 ‘비대면 제작’이 가능한 새로운 포맷을 찾고 있다.
영국이 이동제한령을 발동한 것은 지난 3월 23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슈퍼마켓이나 약국과 같은 필수 업종을 제외한 상점들이 문을 닫자 국민 대다수는 그야말로 집안에 갇혔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미디어 이용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보건 정보를 전달하는 뉴스나 팩추얼(factual) 등의 저널리즘 콘텐츠 소비가 급증했다. 가장 공신력이 있다고 평가되는 BBC의 경우, 지난 3월 한 달 동안 저녁 뉴스 방송시간인 6시부터 10시 사이에 평균 2,000만 명 이상의 주간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최대 상업방송사인 ITV의 저녁 뉴스 역시 같은 기간 일일 평균 420만 명의 시청자를 모았다. 지난해 전체 시청자의 20%에 해당하는 놀라운 성적이다.1)
광고 수입 줄자 ‘예산 삭감, 일시 해고’ 구조조정안
얼핏 들으면 방송 산업의 호재인 것 같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광고 없이 세금처럼 국민이 납부하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BBC가 당장 재정적으로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하지만 물가인상률을 반영하는 미래의 수신료 협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상업방송사들의 경우, 이동제한령으로 인한 영국의 내수경제 침체가 광고 수입의 급감으로 이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
BBC처럼 그 설립에 공적 자금이 투입됐지만 콘텐츠 제작 비용 대부분을 TV와 디지털 서비스의 광고 수익으로 조달해 온 채널4가 그 한 예다. 업계에 의하면 영국 내에서 이동제한령이 유지된 4월과 5월에 TV 광고 시장의 규모는 5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의식을 갖게 된 채널4는 지난 4월 9일부터 일련의 구조조정안을 공개했다.2) 콘텐츠 제작 예산을 1,500만 파운드(약 224억 6,000만 원)가량 삭감하고 직원의 10%를 일시 해고(furlough)할 계획 등이다. 채널4는 이동제한령이 나온 3월부터 스튜디오 운영 인력을 최소화하고 제작 대부분을 중단, 상당수의 스태프가 재택근무를 하거나 대기 중인 상태였다.
이는 사실 일반적인 영국의 기업 대부분이 취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유럽 내에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 2월부터 경제 불황이 예고되자 영국의 상당수 대기업들은 인력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해고하고 이들에게 영국 재정부가 지원하는 공적 자금으로 월급의 80%를 주는 ‘일시 해고제’를 도입했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의 최대 상업방송사인 ITV 역시 스태프와 출연진의 대면 접촉이 불가피한 프로그램의 제작을 중단하는 한편 800여 명의 스태프들을 일시 해고 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러한 조치가 지난 4월, ITV의 광고 수입이 42%가량 줄어든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보도했다.3) 같은 조사에 따르면 ITV가 외부로의 콘텐츠 판매를 통해 얻는 ‘외부 수익’ 역시 2020년 1분기 기준, 전년 대비 7%가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ITV 측은 촬영 중단으로 납품에 차질이 있었던 것이 수익 감소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본다.
캐롤린 맥콜(Carolyn McCall) ITV 최고경영자는 이번 결정이 “코로나19가 방송사 재정과 인력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며 채널4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현재 광고주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과 안전한 제작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후속 조치로 1억 파운드(약 1,497억 6,000만 원)에 달하는 콘텐츠 제작 예산 삭감안을 논의 중이다. 임원진들의 급여도 이와 함께 삭감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사에서 금융권 소식통으로 등장한 씨티은행 전문가는 ITV의 올해 광고 수익이 19% 감소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대면 제작’ 불가능하다면 돌파구는?
한편 이동제한령으로 BBC, ITV, 채널4 등의 주요 방송사들의 TV 프로그램 제작이 3월 말부터 대다수 중단됨에 따라 영국 TV의 전체 편성표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됐다. 일반적으로 대규모의 인력을 투입하는 엔터테인먼트나 드라마 같은 장르의 제작 촬영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방영이 연기되거나 아예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ITV2 채널에서 방영돼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러브 아일랜드(Love Island)>의 경우 올여름에 예정됐던 새 시즌의 방영이 무산됐다. BBC의 <이스트엔더스’(EastEnders)>는 사전 촬영분으로 버티고 있다. 일일연속극임에도 일주일에 몇 차례만 방송을 내보내며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지난 4월 27일에는 8월에 예정된 에든버러TV페스티벌(Edinburgh television festival)은 사전 행사로, 영국 주요 방송사들의 편성 책임자들(program controllers)의 인터뷰를 실시간 온라인으로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4) 이때 샬롯 무어(Charlotte Moore) BBC 콘텐츠 국장은 “시청자들은 줌(Zoom, 화상회의 소프트웨어)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그리 열망하지 않는다”, “지금에야 사람들이 ‘우리 모두가 그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다른 이들의 집을 구경하는 것을 즐기지만 한편으로는 대규모의 호화로운 쇼에 대한 욕구도 갖고 있다”라며 인기 프로그램의 제작을 더는 지연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 이번 행사에서 전해진 바에 따르면 방송사들은 일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촬영 재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5) 특히 BBC는 정부 차원에서 이동제한령의 부분 해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4월 말부터 출연진과 제작진 사이의 제한적 접촉을 전제로 한 촬영 재개의 구체적인 방안들을 모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여름에 방영될 춤 경연 대회를 담는 <스트릭틀리 컴 댄싱(Strictly Come Dancing)>의 경우, 이전에는 대규모 관중이 관객석에서 응원을 하는 모습으로 촬영 과정에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출연진 무대 위주로만 꾸밀 예정이다. 보통 몇 달에 걸쳐 경연이 진행되는 만큼 안전을 위해 제작하는 동안 제한된 수의 출연진을 단체로 한 곳에 격리해 촬영 현장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법도 고려되고 있다.
출연진 격리는 제작비 상승 불러와
하지만 이 경우, 드라마 제작비가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에든버러TV 페스티벌에서 BBC 드라마 커미셔닝의 총책임자인 피어 벵거(Piers Wenger)는 이처럼 “배우들을 격리해 같은 공간에서 교류하게 하는 제작 방식”의 경우, 유명 스타들을 비롯한 출연진들에게 늘어난 촬영 시간만큼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프로그램 제작비가 상승할 수 있다고 그 단점을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올해 남은 기간 유지된다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될 것”이라며 BBC가 실제로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드러냈다. 이러한 ‘출연진 격리’ 촬영이 현실화되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명 배우나 감독들은 몇 년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일정을 잡기 힘들다. 이동제한령이 내려지기 전에 촬영이 절반 이상 끝난 <라인 오브 듀티(Line of Duty)>와 같은 작품은 이전 촬영분을 포기하고 새로운 배우를 찾기도 힘든 상황이다.
미러는 이와 같은 이유로 <라인 오브 듀티>의 제작자인 제드 머큐리오(Jed Mercurio)가 BBC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촬영 재개는 올해 안에 불가능할 수 있다고 ‘의문’을 표시했다며 촬영이 재개되는 것은 내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6) 업계에서는 <탑기어(Top Gear)>, <어프렌티(Apprentice)> 등 BBC가 자랑하는 다른 인기 프로그램들 역시 방영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무어 콘텐츠 국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방송 제작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BBC는 앞으로 영국 내에서 제작되는 프로그램들의 커미셔닝(Commissioning, 외주제작)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전역에서 해외에 가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영국의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이에 우리는 영국 각지의 이야기들을 찾고자 한다. 앞으로 우리가 현실적으로 쇼를 만들 수 있는 주제가 될 것이다.”
‘비대면 제작’ 시도하는 채널4
한편, 채널4 역시 물리적 거리 규칙을 준수하면서 촬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7) 이안카츠(Ian Katz) 채널4 프로그램 국장은 “새롭게 준비되던 쇼 전체가 연기되거나 취소될 위기”라며 이러한 사태에 “창의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널4는 코로나19 범유행의 영향을 포착하는 새로운 프로그램 제작에 1,000만 파운드(약 149억 7,500만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영국 방송 산업의 침체를 막기 위해 이 지출의 50% 이상은 영국에 기반을 둔 작은 규모의 제작사들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BBC와 마찬가지로 ‘국산’ 프로그램의 제작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채널4는 영국에 코로나19가 미친 영향을 조사하는 팩추얼 및 시사 프로그램들의 제작을 의뢰할 계획이다. ‘비대면 제작’ 방식을 도입한 엔터테인먼트 쇼의 제작은 이미 시작한 상태다.
북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스텔라이파이(Stellify) 미디어가 제작을 맡은 <스눕독스’(Snoop Dogs)>는 현재 채널4에서 4회분 방영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셀러브리티들의 ‘락다운’ 하우스 내부를 제작진 대신 반려견이 촬영해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제작이 결정됐다. 시청자들은 강아지들의 ‘펍파라찌(pup-arazzi)’ 영상에 있는 가구나 장식물들을 보며 이들의 주인이 누군지를 추측하게 된다. 셀러브리티의 신원이 비밀에 부쳐지다 프로그램 말미에 밝혀진다.
이처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제작 환경의 변화에 영국 방송사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는 대규모의 대면 접촉을 피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영국의 경우, 이동제한령이 실시됐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다르지만 ‘비대면’이 코로나19 이후 방송가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시도를 눈여겨볼 만하다.
1) Freddy Mayhew,
2) Freddy Mayhew,
3) Paul Sandle,
4) Jillian Morgan,
5) Jim Waterson,
6) Sam Elliott,
7) Jim Water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