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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
기획연재 | 등록일 : 2020-07-03

한국 언론의 심각한 병증 가운데 하나가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이다. ‘그는 말했다. 그녀는 말했다 저널리즘’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저널리즘 관행은 미국에서 10여 년 전부터 쟁점이 됐다. 2009년 무렵, 제이 로젠(Jay Rosen) 뉴욕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이후 미국 언론계에서 여러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은 간단히 말해, 기사를 쓸 때 누군가의 말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보도 관행을 지칭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이 방위비를 큰 폭으로 올려 주기로 했다고 트윗했다”고 보도하거나, 이 메시지에 대해 한국 외교부가 “아직 합의된 사항이 아니라고 부인했다”는 내용을 기사화하는 보도 방식이 이러한 저널리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요즘 한국 매체들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설, 칼럼이나 탐사적 성격의 기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보도는 지극히 단순한 누군가의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 등만 가지고 기사의 모든 내용을 구성한다. 다음 사례는 지난 6월 5일과 6일 사이 주요 신문이 온라인과 지면에 게재한 기사의 일부다.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팔아먹은 윤미향 벌 받아야 한다”> 

<이탄희 “사법농단 때 겪은 공황장애 재발… 국회 잠시 떠나기로”> 

<북한 “남측, 버러지 같은 자들 방치… 대북전단 조치 취해야”> 

<日외상 “기업 자산 매각前 한국과 협의해 해결 원해”> 

<뒤늦게 입장 바꾼 WHO “일반인도 마스크 착용 권장”> 

<장제원 “김종인의 일주일, 화려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 

<김병수 강원FC 감독 “축구의 첫 번째는 결과”> 

매체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특정 매체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위 사례들은 모두 주요 일간지 홈페이지에 실제로 게재된 기사의 제목들이다. 분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위 사례를 보면, 정치·사회·국제·스포츠 등 모든 취재 영역에서 이러한 기사 쓰기가 광범위하게 실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예 기사 경우는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SNS 확성기 노릇 하는 주류 언론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사례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 SNS를 취재원으로 하는 기사들에서다. 진중권 씨는 조국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메시지 발신자로 등장했다. 그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대부분의 언론사는 즉시 그의 글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해 게재한다. 지난 6월 4일쯤 최강욱 의원이 법정에서 조국 교수 가족 상황에 대한 증언을 바꾸자, 진중권 씨는 곧바로 페이스북에 최 의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올렸다. 다음 제목은 한 신문이 진 씨의 페이스북 글을 바탕으로 출고한 기사에 붙였던 내용이다. 

 

<진중권 “최강욱, 야쿠자 의리만도 못해”> 

포털사이트에서 같은 기사를 검색해보니 줄잡아 20여 개의 기사가 올라온다. 주요 일간지, 경제지와 여러 인터넷 매체가 포함됐다. 

 

당연히 뉴스 가치가 있기 때문에 기사화 됐다고 짐작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 미디어와 기자들이 너무 속보 경쟁에만 매몰돼, 자극적인 정치 언어를 아무런 자체 검증과 판단이 없이 상품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떨구기 어렵다. 과거 조국 교수가 SNS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포스팅할 때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됐었다. 주류 매체가 소수의 SNS 스타들을 위한 확성기 노릇을 해온 셈이다. 그리고 그러한 추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현상을 디지털 생태계가 만들어 내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러한 현상이 만들어 내는 부작용이 매우 광범위하다. 또 기자라는 직업과 저널리즘이라는 사회제도의 가치가 너무 심각하게 훼손되는 현실도 걱정이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

 

미국 언론계에서 처음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 제이 로젠 교수의 주장을 보면,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의 문제는 객관적 보도에 대한 철저히 왜곡된 이해가 그 출발점이다. 객관적 보도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기자들은 누군가 어떤 주장을 펴면, 그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후 반대편 주장을 같은 방식으로 기사화하면 그 일에 관한 한 기자는 책임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그것이 객관적인 자세라고 믿는다. 기자가 어느 편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젠 교수는 이러한 생각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한 편이 고약한 거짓말을 했고, 다른 한 편은 진실을 말했을 경우, 양 측을 공평하게 전달하면, 기자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결과가 된다. 로젠 교수에 따르면, 저널리즘은 거짓과 진실을 가려서 독자가 최대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따라서 극단적인 양자의 주장을 전하고 객관적 보도를 했다고 생각하는 기자는 대단히 잘못된 직업의식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로젠 교수의 생각이다. 

 

물론 적어도 양자의 주장을 균형감 있게 다루는 보도 자세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일방적인 주장만이 진실로 전달되는 위험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 이후 뉴욕타임스나 미국 공영라디오(NPR, National Public Radio) 같은 매체들은 공식적으로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을 실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로젠 교수의 문제 제기를 수용하고,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서 빌 코바치(Bill Kovach)와 톰 로젠스틸(Tom Rosenstiel)이 주장한 ‘진실 우선 원칙’을 적극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계의 상황은 이러한 미국 언론의 성찰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다. 앞에 소개한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한국에서는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이 오늘날도 거의 모든 매체들에 의해 매일 모든 지면에서 광범위하게 실천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왜 문제인가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과 관련해서 한국 언론 현장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문제는 한국 언론계의 현실은 기본적으로 양자의 주장을 반드시 취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언론계에서는 적어도 두 개의 대치적 주장은 같은 기사에서 함께 다룬다. 로젠 교수는 그러한 형식적 균형주의 뒤에 숨어있는 잘못된 객관 보도를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앞에서 예시한 사례들에서 보듯, 한국 언론계는 반대편 주장은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렇듯 일방적 언술의 전달을 객관적 보도라고 인식하고 실천하는 현실이 일반화돼 있다. 누군가가 무엇이라고 말을 했다는 근거만 있으면,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 말을 보도해도 된다는 생각이 언론계에 널리 퍼져있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 관행은 직업적으로는 대단히 저급하고 선정적이며, 사회적으로는 지극히 갈등 조장적이고 무책임한 커뮤니케이션 행태다. 이러한 보도는 정파적 의식 구도를 강화해줄 뿐 건강한 여론 지형을 형성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관행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러한 기사 쓰기 틀에 의해 고착되는 기자직의 왜소화다. 일상적으로 누가 어떠한 말을 했는지 받아쓰는 일이 기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이 정착돼 버리면, 기자는 지극히 단순한 메신저, 기계적 중계자의 처지를 벗어나기 어렵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회견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한국 기자가 질문자로 나서지 않았던 상황은 안타깝지만, 이렇게 굳어진 한국 현장 기자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청와대나 검찰청 기자실에서 고개를 묻고 발표자의 말을 받아치기에만 몰두하는 기자들의 모습도 수동적 기자상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고정된 지 오래다. 

 

코바치와 로젠스틸은 그들의 저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서 “기자는 이제 진실 확인자(authenticator)여야 하고, 의미 부여자(sense maker)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건의 진실을 검증하고 판단해야 하는 일이 디지털 시대, 기자가 수행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뜻이다. 뉴욕타임스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기사의 주인이 발화자가 아니라 기자이고 언론사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기사가 전달하는 사안에 대한 기자의 판단과 그 판단에 기초한 제목과 리드, 너트 그래프(nut graph)1) 등이 분명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 기사는 온통 따옴표 제목으로 기자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도록 포장돼 있다.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을 빨리 탈피해야 기자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세 번째 문제는 이렇게 고착된 기사 틀이 독자와 시청자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세월호 사태를 거치며 한국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치욕적인 별칭을 얻었다.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은 이러한 추세를 지속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SNS 메시지를 발신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검증 없이 중계만 하는 기자들에 의해 대중의 영웅으로 등장하게 되고, 기자는 그들의 뒤를 따르며, 그들이 생산하는 메시지를 받아 나르는 단순 노동자로 인식되게 된다. 언론에 대한 존경심을 기대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미디어 환경을 기자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언론이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대부분 상실할 수도 있다.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관행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 관행이 갖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경각 은 한시가 급하다. 

 

 

 

 

 

 

1) 뉴스의 주제를 요약한 하나의 단락.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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