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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되짚기 01 더 늦기 전에 원칙 지키는 저널리즘 바로 세워야
기획연재 | 등록일 : 2023-03-31

2023년 4월호부터 《신문과방송》이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저널리즘클럽Q와 공동 기획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되짚기>를 새롭게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국 언론은 한국 민주주의의 선도자였다. 1980년대 이후 두 차례나 정권을 민주적으로 교체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아시아에서는 전례가 없는 성취다. 1987년 박종철 사건 보도를 통해 민주화의 물꼬를 텄고, 2016년에는 최순실 씨 보도로 시작해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식민지 시대 엄혹한 통제를 겪어야 했고, 1960년대 이후에는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적 규제와 투쟁해야 했던 역사를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의 저널리즘 현실을 보면 신문과 방송, 디지털 매체, 어느 곳을 보더라도 세계 10위권에 도달한 한국의 국격에 맞는 수준의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사를 찾기가 어렵다. 세월호 사건 이후 기자들은 기레기로 불리는 게 일상이 됐다. 디지털 시대 가장 많은 사람이 소비하는 온라인 기사들은 조회수를 높이는 데 매몰돼 극단적인 선정성을 추구한다. 게다가 민주주의의 바탕이어야 할 정치 기사는 신문이건 방송이건 정파 대변인들의 말싸움 격투장으로 고정됐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위세 등등한 권력을 무너트렸던 잠재력을 가진 언론이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퀄리티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공부 모임인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와 《신문과방송》은 앞으로 2년 동안 이 문제를 함께 탐구해 보기로 했다. 젊은 기자들의 공부 모임인 ‘저널리즘클럽Q’는 현장 기자의 관점에서 이 토론에 신선한 시각을 보태기로 했다. 논의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토론의 구조는 《신문과방송》 매호에 두 개의 글을 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연구회 학자들이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책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제시하는 주요 원칙들에 비추어 본 한국 언론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글을 완성한다. 그러면 현장 기자는 그 글을 읽고 현장인으로서 제기할 수 있는 반론과 해당 주제에 대해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소회를 써서, 같은 호 지면에서 한국 저널리즘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현실적이면서도 건설적인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갖자는 것이 이 기획의 목적이다.


저널리즘 원칙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

 

한국 저널리즘은 서양에서 도입한, 이식된 문화양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식에 걸린 지난 120여 년의 세월이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와 남북한 전쟁, 비민주적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 등 대단히 어려운 과정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지난한 역사를 지나며 오늘날 우리가 유지하는 이 정도의 언론 체제를 갖출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유지하는 저널리즘 생태계는 지난 100여 년을 지나온 질곡의 과정으로 인해 적어도 세 가지 커다란 결함을 갖게 됐다.

 

첫째 결함은 한국의 정치 지도자와 기자 그리고 시민들이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러한 한국식 인식을 도구적 저널리즘 철학, 또는 도구적 언론관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결함은 저널리즘 교육 그리고 기자 교육을 책임져줄 교육기관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널리즘 업무를 뉴스에 대한 그리고 취재와 보도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기자들이 수행함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된 파수꾼을 가지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세 번째 결함은 이상적 법률 제도와 지독하게 정파적인 제도 운용 현실의 부조화 문제다. 우리나라의 신문과 방송 관련 법률은 어느 선진국 틀에 뒤지지 않을 만큼 이상적인 조항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제도의 운용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상은 제도로만 존재할 뿐이다. 모양은 자유 언론을 표방하지만, 언론에 대한 일상적 관리는 철저하게 집권 세력의 이익을 관철하는 방향에서 이뤄져 왔다는 의미다. 이번 《신문과방송》 기획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기사와 기자의 차원에서 먼저 탐색해 보려는 의지에서 시작됐다.


관습화된 도구적 언론관

 

한국에서 독립신문이 창간된 1896년, 지역신문을 운영하던 아돌프 옥스(Adolph Ochs)는 뉴욕타임스를 인수하고 미국의 엘리트 신문 시장에 진출한다. 그러면서 그가 내건 슬로건이 “두려움과 호의도 없이(without fear or favor)” 뉴스를 전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인쇄할 수 있는 모든 뉴스(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를 보도한다는 표어도 내걸었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는 이 두 가지 슬로건이 모두 소개돼 있다. 지난 130여 년 동안 이 두 가지 슬로건은 미국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저널리즘의 기본적 가치관으로 단단히 자리잡았다. 뉴욕타임스뿐 아니라 어느 매체에서 일하더라도 기자라면 이러한 저널리즘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지식인과 정치 지도자들 역시 기자들의 이러한 가치관에 대해 명료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도록 이러한 철학적 가치들은 범사회적으로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구한말에는 청나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이, 또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계몽하는 일이 더 시급한 언론의 사명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 상태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데 진력해야 했고, 개발 독재 시대에는 낙후된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에 모든 언론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후반 시작된 민주화 이후에는 지독한 정파주의가 언론의 도구화를 더 고착시켰다. 거기에 기자직을 개인의 출세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언론사를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관행이 일상화하며, 디지털 시대 한국 저널리즘은 시민의 신뢰를 요구하기 어려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졌다.

 

이러한 한국적 현실을 극복하려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저널리즘은 시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고, 시민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원칙이 모든 기자와 발행인 그리고 일반 지식인과 정치인을 포함한 시민 모두에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알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언론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도구적 언론관은 저널리즘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선진화에 골치 아픈 장애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교육 부재와 낙후된 채용 방식의 문제

 

한국의 기자 채용 방식은 일제 강점기 시작된 일본식 공채 제도가 주류를 이룬다. 자기소개서와 필기시험, 면접이 채용의 기본적 골격이다. 여기에 최근 들어 회사에 따라 추가되는 과정이 인턴이나 실무평가 과정이다. 상식과 논술 쓰기가 핵심적 시험이어서 준비생들은 길게는 2~3년을 이러한 시험을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문제는 이렇게 투자한 시간이 정작 기자가 되면 별 효용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선진화한 한국 사회는 이렇게 공급되는 인력보다는 훨씬 더 전문적 지식 기반을 갖춘 기자를 필요로 한다. 특히 정책이나 금융, 산업기술, 국제문제 등에 대해서는 더욱 심층적인 지적 훈련이 필요하다.

 

기사 쓰기의 전문적 능력도 현재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생산되는 기사들은 대부분 출입처에서 내어주는 보도자료에 의지하는 발표 기사들이다. 온라인으로 뉴스가 소비되는 디지털 시대에 데드라인 압박이 강화되며 이러한 흐름은 더욱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이러한 시스템은 선진 한국과는 함께 가기 어려운 체제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는 디지털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자들이 어떠한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제시한다.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는 다양한 스토리텔링 기법들과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시민 참여적 취재방식의 사례들 그리고 더 정교해지는 데이터 저널리즘 기법들이 중요한 요소들이다. 여기에 투명성 개념이 중심이 되는 윤리적 취재의 원칙들과 수용자의 신뢰를 얻는 데 필요한 정직한 기사 쓰기의 기준 등이 보태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자라는 직업은 이제 매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기본적인 저널리즘 소양을 체득한 사람들이 맡아서 해야 하는 전문직으로 진화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기자들은 대다수가 오래전부터 저널리즘스쿨에서 전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맹목적으로 따라 했던 일본식 공채 제도를 버리고 기자 교육 체제의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많은 이가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윤리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드물다. 법률가나 의사 등 모든 전문직은 때로 윤리적 실수를 하지만, 오직 언론인만이 불행하게도, 또는 용기가 많아서, 그러한 실수를 공중들에게 드러내야 한다. 그러한 윤리적 실수가 노출될 경우 공중의 반응은 매우 신속하고, 또 혹독하다.”

 

필립 패터슨(Philip Patterson)과 리 윌킨스(Lee Wilkins) 교수가 쓴 《미디어 윤리: 쟁점과 사례들》(1991)이란 책 첫 장에 나오는 단락이다. 기자 직업이 어떻게 다른 전문직들에 비해 더 윤리 문제를 날카롭게 인식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왜 기자의 전문직으로서의 교육이 중요한지를 다시 일깨워주는 문장이다.


권력 중심 운용의 문제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관변 매체들과 공영방송, 그리고 미디어 관련 행정기관, 부속기관들은 인력 교체의 홍역을 치른다. 방송통신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공적 행정기관이 그러한 과정을 겪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가능하지만, KBS나 MBC, 연합뉴스 등 언론사까지 그러한 파도에 휘둘리는 현실은 정치, 경제 등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핵심 가치여야 하는 저널리즘 원칙에서 보면 대단히 안타까운, 역시 후진적인 한국적 현실이다. 이 문제는 일선의 기자나 편집국, 보도국 기자들이 해결의 주체가 되기는 어려운 과제다. 그렇다고 생각조차해서는 안 되는 주제는 물론 아니다. 어려운 과제기는 해도 뉴스룸의 독립 차원에서는 대안을 고려해나가야 한다. 경영진이 정치적으로 임명되거나 가문에서 운영하는 기업인 신문사의 경우, 최고 경영자는 소유주가 임명한다 해도 그렇게 임명된 사람과 뉴스룸의 의사결정 구조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보장되는 것이 선진적 언론의 오래된 규범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언론계에서는 이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는 공기업이나 사기업을 막론하고 상황이 비슷하다. 역시 새로운 경영규범의 수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원칙을 지키는 저널리즘을 위한 기획

 

퓰리처는 “나라와 언론은 함께 일어서고, 함께 무너진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에 저널리즘스쿨을 세우며 한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저널리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말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의 문턱을 두드리는 수준까지는 왔다. 그 과정에 한국 언론이 중요한 기여를 해온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부터 저널리즘의 역할이, 기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다. 선진국 문턱에서 민주 체제가 무너져 다시 후진적 국가가 된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이제라도 한국 언론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제대로 된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는 선진적 저널리즘 원칙들의 적극적인 수용과 일상화가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문과방송》의 이번 기획이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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