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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지낼 때, 일요일 저녁이면 CBS에 채널을 맞추고 <60분(60 Minutes)>을 시청했다. 1968년 돈 휴잇(Don Hewitt) PD가 만들어 시사매거진의 원조로 자리 잡은 이 프로그램은 지난 50여 년 동안 시청률이나 다루는 주제의 무게감, 등장하는 인터뷰 대상자들의 명망 등에서 미국 방송 저널리즘의 최고봉으로 군림해왔다. 더 감탄스러웠던 점은 15분 정도 되는 각 리포트가 드러내는 흠잡을 곳 없는 영상미였다.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다 집중해 살펴봤지만, 한 장면이라도 화면에 특수효과를 시도하거나 음성을 변조하는 경우는 찾을 수가 없었다. 연기자를 동원한 상황의 재연 역시 한 차례도 본 기억이 없다. 한국의 시사 프로그램을 보며, 자주 등장하는 화면과 음성 변조에 익숙했기에 이러한 <60분>의 제작 방식은 경이로운 신세계였다.
미국의 저녁 종합뉴스도 같은 관점에서 챙겨봤다. 결과는 같았다. 전혀 화면 변조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빈도는 지극히 낮았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방송되는 영상에 조금이라도 무언가 새로운 요소를 덧붙인 사례는 찾기가 어려웠다.
해외 방송사와 비교해보니
좋은저널리즘연구회는 지난해, 텔레비전 뉴스의 품질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2018년 뉴욕타임스 등 해외 선진 언론의 기사와 비교하는 관점에서 신문 기사의 품질을 살펴봤던 연구의 후속작업이었다(김경모 등, 2020).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의 리포트가 분석의 대상이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작업 가운데 시청각 매체로써 텔레비전 매체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영상과 소리 요소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TV리포트에 사용되는 영상과 소리 요소 가운데 특히 화면 모자이크, 연기자를 사용한 상황의 재연, 그리고 인터뷰 대상자나 현장 목격자의 육성을 기계를 사용해 바꾸는 음성 변조 문제를 미국의 NBC, 영국 BBC, 일본 NHK 등 해외 유수 방송사의 관행과 비교해 봤다.
[표 1]은 국내 방송과 해외 방송 리포트 가운데 화면 모자이크 사례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를 조사한 결과다.

분석 대상 한국 TV 리포트는 7개 방송사에서 표집한 457개였다. 이들 가운데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화면을 모자이크 처리한 요소를 포함하는 리포트는 전체의 53%인 243개였다. 우리가 시청하는 두 개 리포트 가운데 하나에 모자이크 화면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자료에서 보듯이 NBC나 BBC 뉴스 가운데는 열 개 리포트에 하나 정도 모자이크 처리화면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NHK 뉴스에서는 그 빈도가 거의 100개 리포트에 하나꼴이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매일 접하는 텔레비전 뉴스의 현실과 전혀 다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해외 유수 방송사는 대단히 모자이크 처리를 절제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우리 뉴스에는 왜 이렇게 모자이크 처리가 일상화돼있는가? 한국 시청자들이 모자이크화면을 더 좋아해서는 아닐 것이다. 이번 연구 자료를 보고 의견을 줬던 방송 기자들은 초상권의 보호, 방송통신위원회나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통해 가해지는 제도적 규제의 문제 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모두 현장 기자와 영상 편집자를 압박하는 원인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남는 질문은 그러면 미국이나 영국,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인권을 소홀히 대하고, 초상권을 가볍게 생각하는 나라들인가 하는 것이다.
[표 2]는 한국의 개별 방송사 뉴스에서 나타나는 모자이크 처리 상황을 정리한 내용이다. 대체로 비슷한 경향을 드러내지만 KBS 뉴스가 상대적으로 모자이크 화면 사용 빈도가 미세하게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기자를 동원해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재연하는 경우는 사용 사례가 모자이크만큼 자주 발견되지는 않았다. 국내 방송 뉴스의 경우 조사대상인 457개 리포트 가운데 11개 리포트에서 재연 화면이 발견됐다. 이는 대체로 100개 리포트 가운데 두 개 남짓한 빈도다. 근본적으로 사실을 전해야 하는 뉴스라는 제품에 인위적으로 제작된 영상을 만들어 사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경우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로 판단된다. 해외 유수 방송의 상황을 보면, BBC와 NHK에서는 재연 화면이 사용된 경우를 찾을 수 없었다. NBC에서만 62개 리포트 가운데 한 개에서 재연 화면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표 3] 역시 우리 방송과는 매우 다른 제작 현실임을 느낄 수 있다.

[표 4]는 한국의 개별 방송사별 재연 화면 사용 빈도를 정리한 내용이다. KBS와 JTBC, 채널A의 경우 재연 화면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MBN, TV조선 등은 상대적으로 재연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얼굴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감추는 음성 변조의 경우는 해외와 한국 방송의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표 5]는 해외 TV 뉴스와 한국 뉴스에 나타난 음성 변조 현황을 정리한 내용이다. 이 자료를 보면 NBC와 BBC 뉴스에는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가공해 신원을 짐작할 수 없게 하는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 NBC 62개, BBC 31개, 모두 합해 93개의 리포트에서 인터뷰이의 목소리는 모두 본인의 목소리가 사용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국 방송의 현실은 크게 달랐다. 전체 리포트의 거의 20%에서 육성이 변조된 소리가 방송된 사실이 확인됐다.

개별 방송사별 육성 변조 사용 현황은 아래 [표 6]에 정리돼있다. MBC와 SBS가 25% 내외로 거의 네 개 가운데 한 리포트에 변조된 육성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KBS(13.6%), JTBC(13.8%) 등은 상대적으로 변조된 육성의 사용을 절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진실을 재구성하지 말라”
미국의 라디오텔레비전디지털뉴스협회(Radio Television Digital News Association)는 자체 윤리준칙을 통해 “시청자는 방송사에서 소리나 영상을 어떻게 편집하는가에 의해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과 오디오 편집자들은 “기자나 PD가 기사에 사용할 단어나 사실, 현장 증인의 육성 등을 선택할 때 거쳐야 하는 철저한 검증과정을 똑같이 체질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이 협회 윤리준칙의 첫 번째 원칙은 “진실을 재구성하지 말라(Do not reconstitute the truth)”이다. 영상 윤리를 연구하는 빌 니콜스(Bill Nichols) 교수는 2006년 논문에서 이와 관련해 두 가지 근본적인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는 취재 대상이 되는 인물의 인격(humanity)에 해가 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두 번째 원칙은 시청자의 신뢰를 손상시키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Do nothing that would violate the humanity of your subject and nothing that would compromise the trust of your audience)는 내용이다(Nichols, 2016).
우리 방송 뉴스에서 화면 변조와 음성 변조가 자주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취재원 보호다. 이는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고려사항이다. 그러나 방송은 모든 시민이 시청하는 공적 텍스트이기도 하다. 니콜스 교수가 제시하는 두 번째 원칙, 시청자의 신뢰를 손상시키는 요소들에 대한 성찰도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방송 뉴스의 선진화는 기사뿐 아니라 영상과 음성요소의 진실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심의나 법률적 규제가 문제가 되면, 시청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제도를 바꿔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방송 뉴스들에서 자주 사용되는 화면 변조와 재연 그리고 음성 변조 테크닉은 저널리즘의 신뢰를 끌어내리는 잘못 일상화된 편법들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