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언론인들이 가장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취재원의 신뢰도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라고 했다.1) 언론인은 취재원을 통해 정보를 얻고, 그 취재원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뉴스 정보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를 입증한다. ‘투명성의 규칙(Rule of Transparency)’이 언론인의 중요한 직업윤리가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누구나’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가짜뉴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혼란한 시기일수록, 정보의 신뢰성 확보는 저널리즘의 존재의 이유를 더욱 확고하게 한다. 정보를 투명하게 제시하려는 언론의 노력이 ‘진짜’ 뉴스를 걸러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원 보호와 같은 부득이한 사유로 투명하게 취재원을 드러낼 수 없는 경우, 즉, 익명의 취재원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취재원의 신뢰도에 대한 판단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영상으로 말하는’ 방송 뉴스, 영상 익명 처리 문제 심각
방송 뉴스는 취재한 정보를 언어와 영상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전달한다. 취재원의 인격권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요즘, 방송 뉴스 기자들은 언어 정보와 영상 정보 모두를 대상으로 취재원의 익명 처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특히 방송 뉴스에서는 정보의 취재원뿐만 아니라 취재원 접촉 장소, 그 배경이 되는 건물, 간판, 사회의 모습 등이 영상 정보에 담겨 정보 이해의 맥락을 제공한다. 이른바 ‘영상으로 말하는’ 방송 뉴스가 ‘영상의 투명성의 규칙’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요즘의 방송 뉴스에서는 너무 많은 영상 정보가 모자이크·블러(blur) 처리를 통해 ‘익명화’돼 있다. [그림 1]
[표 1]은 좋은저널리즘연구회가 국내 방송사(지 상파 3사, 종편 4사)와 해외 주요 매체를 대상으로 뉴스 리포트 영상의 모자이크·블러 처리(이후 모자이크로 용어 통일) 여부를 비교 분석한 결과다. 국내 방송사의 경우 뉴스 리포트의 50% 이상에서 모자이크를 사용했지만, 미국, 영국, 일본의 뉴스 리포트에서는 모자이크 영상을 극히 일부에서만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χ2 = 100.76, p <.001).[표 1]
[표 1] 국내와 해외 방송사의 모자이크 유무 (단위: %)
영상의 익명 처리는 뉴스 리포트의 첫 화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림 1] 방송 뉴스 영상의 첫 화면 모자이크 예시 영상의 익명 처리는 뉴스 리포트의 첫 화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2018년 8월 14일 KBS 뉴스9 영상 <안희정 1심서 무죄...“위력 증거 없다”>(왼쪽)와
2018년 4월 12일 MBC 뉴스데스크 뉴스 영상 <연금까지 빼돌렸다. 시청은 “모르는 일”>(오른쪽)
<출처 – 각 뉴스 화면 갈무리>
언론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여론의 감시· 비판이라는 책무를 지니기에, 많은 경우 누군가의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게 되는 태생적 속성을 지닌다. 공익성이 인격권의 위법성 조각 사유가 되지만, 이 두 가지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취재원의 신뢰성에 대한 판단의 책임일 것이다. 언론인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검증된 취재원이고, 그 신뢰성을 언론인이 보장할 수 있다면, 취재원 영상의 익명 처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타당한 ‘직업적 판단’이 된다. 그러나 좋은저널리즘연구회가 방송 뉴스 리포트에서 모자이크된 대상을 분석한 결과는 그러한 판단과 고민의 결과물이 얼마나 처참한 수준인가를 보여준다. 해외 방송사와 달리, 국내 방송사에서는 뉴스 영상에서 등장인물을 모두 모자이크하거나, 특정 시설 및 장소, 때로는 화면 전체를 모자이크 처리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 것이다.[표 2]
[표 2] 국내와 해외 방송사 리포트의 모자이크 대상 (단위: %)
뉴스 화면 전체를 모자이크 처리한다면, 실제로 시청자가 마주하게 되는 뉴스 영상은 [그림 2]와 같다.
[그림 2] 뉴스 영상의 모자이크·블러 처리 화면 예시 2018년 MBN 뉴스8 영상 <돈 받고 사건 눈감아>(왼쪽)와,
2018년 2월 6일 JTBC 뉴스룸 <특활비 동원 여론조사 무기로...> 뉴스 영상(오른쪽) <출처 – 각 뉴스 화면 갈무리>
모자이크 영상, 저널리즘의 ‘배려’인가, ‘게으른 저널리즘’의 현실인가?
좋은저널리즘연구회의 방송 뉴스 영상 분석 결과를 보면 너무 많은 합리적 의문이 생긴다. 영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 뉴스가 모자이크로 뒤범벅이 된 화면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을 위한 것이고, 어디부터가 인격권 보호를 위한 것인가? 방송 저널리즘은 취재원을 투명하기 드러내기 위한 ‘최선’을 고민하고 있는가? 혹시 모를 법적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가리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 궁극적으로 뉴스 영상의 모자이크 처리는 인격권 보호를 위한 저널리즘의 ‘배려’인가, ‘게으른 저널리즘’의 실상인가?
과도하게 모자이크 처리된 뉴스 영상의 문제는 이것이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영상 전체를 모자이크로 뒤범벅이 되도록 검열·편집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저널리즘이 원칙이 없고, 불성실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저널리즘의 신뢰도를 스스로 손상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인격권 보호’라는 허울 좋은 이유와 ‘모자이크’라는 그늘막에서 벗어나길
기자의 직업윤리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사안의 맥락, 공익성, 국민의 알 권리, 인격권 보호, 언론의 역할 등을 고려해 영상의 익명적 사용 여부를 고민하다 보면, 언론인의 직업적 판단, 그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쉽지 않다. 쉽지 않은 판단은 ‘명확한 기준’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좀 더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한국기자협회의 <인권보도준칙>과, 개별 방송사별로 저널리즘적 영상 편집수칙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뉴스 영상의 익명 처리에 대한 언론계 내부 준칙 등 구체적인 기준을 찾기는 어렵다.
취재원의 익명처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상의 모자이크 처리가 불가하다면, “‘애매하면’ 모자이크나 블러”가 아니라, 모자이크 사용의 타당한 기준이 필요하다. 미국의 한 신문사 편집인은 익명 취재원 사용과 관련, ‘기사 속의 첫 번째 인용으로 익명의 취재원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익명의 취재원을 사용하지 않는다’와 같은 규칙을 갖고 있다고 한다. 국내 주요 신문사들도 ‘익명 취재원’의 사용 준칙을 마련하고 있다.2) 정보와 취재원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익명적 영상 처리 문제를 개선해가는 것은 복잡한 뉴스 미디어 환경 속에서 방송 뉴스의 신뢰도를 확보해가는 가장 중요한 단계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확고한 기준이 다른 분야와 저널리즘을 구별하며 방송 저널리즘의 존속을 위한 근간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진짜 뉴스’를 원하는 시민들로 하여금 기꺼이 뉴스를 소 비하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영상으로 말하는 방송 뉴스가 ‘모자이크’라는 그늘막 속에서서 편히 쉬면서 ‘뉴스’라는 상품을 찍어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해볼 일이다.
1) Walter Lippmann, 《Public Opinion》, New York: The Free Press, p.226, 1965.
2) 이재경, <익명 취재원 문제-저널리즘 좀먹는 만악의 뿌리>, 월간 《신문과방송》, 2020 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