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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 리뷰: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0-07-31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표지 ©커넥팅

혼돈의 시대다. 코로나 사태는 인류가 이전에 전혀 겪지 못한 새로운 혼돈을 만들었다. 이런 시대에는 개인, 당파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지혜를 짜내고 초당적 통합을 이끌어내는 리더가 필요하다. 사욕이나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학자 도리스 키언스 굿윈(Doris Kearns Goodwin) 교수의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Leadership: In Turbulent Times)》은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이 어떤 것인가를 잘 담고 있다. 굿윈은 콜비대학(Colby College)에서 인문학사(Bachelor of Arts) 학위를 받았고, 1968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다. 

하버드대에서 미국 대통령학을 가르치며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린든 존슨(Lyndon Baines Johnson) 등 미국 대통령 평전을 출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5년에 출간한 《권력의 조건 (Team of Rivals)》은 링컨의 초당적 리더십을 생생하게 복원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개성이 판이한 네 명의 미 대통령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은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린든 존슨 등 미국 대통령 네 명의 리더십을 다뤘다. 크게 성장 과정, 위기와 극복 과정, 대통령 재직 시 리더십 등 세 개 항목에 따라 네 명을 비교 분석했다. 

이들은 기질, 외모, 신체, 언어적 능력, 사람을 다루는 기술 등이 모두 달랐다. 링컨과 존슨은 농촌 출신이고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도시 뉴욕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또 두 명의 루스벨트는 하버드대를 졸업했으나 링컨은 독학 했고 존슨은 사우스웨스트주립사범대(현 텍사스주립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네 명 모두 커다란 정치적 야망을 갖고 꾸준히 지적 능력, 공감 능력, 신체적 능력 등 리더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을 키웠다는 점만큼은 같았다.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무너지며 좌절에 빠진 시기를 겪은 점도 같았다. 예를 들어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40대에 소아마비에 걸렸고, 존슨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지원을 받으며 상원의원에 도전했다 낙선한 뒤 실의에 빠졌다. 정치적 배신을 당하거나, 가족을 잃고 삶 자체에 회의를 품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굿윈은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네 명이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렸다. 

이들이 대통령을 맡은 시기는 공통적으로 극도의 혼란기였다. 이 책의 제목이 바로 네 명의 통치 시절의 특징을 압축하고 있다. 링컨은 노예제도 폐지를 추진하면서 남과 북이 갈라졌고, 급기야 남북간 내전을 치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재임 시기는 네 명 중 한 명이 일자리를 잃고 은행이 문을 닫는 초유의 경제 위기, 대공황 직후였다. 또한 역사상 최대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을 치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린든 존슨 역시 혼돈의 한가운데서 대통령직에 올랐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제25대 대통령이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하면서, 존슨은 인기 절정의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이 리 하비 오즈월드(Lee Harvey Oswald)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네 인물은 미국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지점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들은 반대파거나 적대적 인물이라도 대화하면서 포용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명분 자체보다, 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통합의 힘을 활용한 것이다. 역경 속에서 발휘된 그들의 리더십은 결국 전 세계 각지 이민자로 구성된 이질적 공동체를 세계 최강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특정인의 권력 독점을 강력하게 막는 미국 공화주의 전통을 확실하게 정립했다.

차별 철폐라는 개혁을 이끈 린든 존슨

나는 특히 린든 존슨편을 주목했다.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위인전이나 영화를 통해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존슨은 이들에 비하면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베트남 전쟁 책임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업적이나 리더십은 거의 안개에 가려져 있다. 

그런데 굿윈은 왜 린든 존슨을 혼돈의 시대를 이끈 리더로 선정했을까. 굿윈은 흑인 투표권을 보장하는 민권법, 감세, 메디케어 등 미국의 핵심 개혁 정책을 입법한 존슨의 리더십을 주목했다. 특히 정치 일생을 의회에서 보냈던 배경을 활용해 국회라는 제도 안에서 반대파와 대화하면서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 낸 존슨의 입법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그는 미국 정치사에서 ‘입법 절차의 달인’으로 평가를 받는다. 

물론 굿윈이 존슨을 혼돈의 시대를 이끈 리더로 꼽은 데는 존슨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경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굿윈은 하버드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존슨의 백악관에 지원해 보좌관을 지냈다. 그 인연으로 존슨이 퇴임한 후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며 그의 회고록 작성을 돕기도 했다.

린든 존슨은 텍사스 스톤월 출신으로 주의회, 연방 하원의원, 상원의원을 거쳐 케네디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다. 케네디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이어 대선에서 승리해 1969년까지 미국을 이끌었다.

존슨은 미국 남부 출신이지만 인종주의와 계급적 차별을 없애는 개혁에 정치 인생을 모두 바쳤다. 특히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을 제정하는 데 자신의 모든 정치적 자산과 능력을 활용했다. 그가 입법한 민권법은 인종, 민족, 출신 국가 그리고 소수 종교와 여성의 차별을 불법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미국 민권 법제화의 기념비적 법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구체적으로 이 법은 불평등한 투표자 등록 요구, 학교와 직장 그리고 편의시설에서 인종 분리를 금지시켰다. 

굿윈은 의회 리더로서 잔뼈가 굵었던 존슨이 아니었다면 민권법의 법제화가 불가능했거나 더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라고 봤다. 서부와 동부, 자유주의적인 민주당과 보수적인 공화당의 있을 법하지 않은 연합을 이뤄 남부 인종차별주의자의 반발을 무력화시킨 주역이 바로 존슨이었기 때문이다. 

존슨은 국회와의 대화, 소통을 매우 중요시했다. 존슨은 대통령에 취임하고 10개월 동안 모든 의원을 적어도 한 번씩 백악관에 초대했다. 부부 30여 명을 만찬에 초대했고 모든 비용은 존슨이 부담했다. 만찬이 끝나면 남자들은 대통령과 버번 위스키를 마시며 시가를 피웠다. 

존슨은 또 남부 인종차별주의자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남부와 영원히 결별해야 할 운명이었다. 의회에서 오랫동안 충실한 친구였던 남부 의원들과도 멀어질 가능성이 컸다”라며 민권법 제정 당시 심경을 털어 놓기도 했다. 

존슨의 최대 정치적 자산은 의회를 속속들이 알고, 의회 주요 리더들의 속마음과 장단점을 꿰뚫어 보는 눈이었다. 감세 법안을 통과시킬 때 반대파 리더에게는 예산 절감 카드로 협상했고, 민권법 상정 자체를 미뤘던 하원의장에 대해선 의회법으로 압박해 결국 법안을 상정시키도록 한 것이 그 예다. 

존슨의 이런 정치력은 메디케어법 등 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했던 진보적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도 훌륭하게 작동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의 자세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대내 문제에 달려들었던 존슨이지만, 대외 문제는 가급적 피하려고 했다. 그런 태도로 인해 베트남 문제를 제한된 전문가에게 맡기는 등 내부 혁신을 꾀할 때와 전혀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다 결국 수렁에 빠졌다. 

또 존슨이 혁신 정책을 입법하는 데 사용했던 기법들은 베트남 전쟁의 내용과 성격을 미국인에게 감추는 데도 사용해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어 더 많은 병력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걸 피하기 위해 예비군을 동원하지 않고, 징집영장 발급을 늘렸고 모병을 확대했다. 베트남 전쟁은 존슨의 아킬레스건이었고, 결국 그는 1970년 대선 불참을 선언하면서 베트남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외 정책의 무능함이 드러났지만, 존슨의 민권법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백인만의 민주주의를, 흑인, 여성, 유색 이민자 등 소외층으로 확대시킨 주인공이 바로 존슨이기 때문이다. 존슨은 1972년 12월 11일 텍사스 오스틴에 소재한 LBJ 도서관에서 개최된 시민권 심포지엄에서 민권법에 대한 그의 애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시민권이 늘 우선순위는 아니란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본질’은 피부색과 신념, 조상, 성별,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개개인에게 품위 있고 온전한 삶을 보장하는 데 있다고 믿게 됐습니다.”

혼돈의 시기가 당파와 모든 계층을 초월하는 통합 리더십을 불러온걸까? 아니면 네 명은 미리 준비된 혼돈의 시대 리더였을까?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진영을 떠나 혼돈의 시대를 이끌었던 네 명의 리더십을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동체 전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굴도 마주치기 싫은 정적이라도 무릎을 맞대고 소통하고 협상하려고 했던 초당적 리더십을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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