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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올 2월 아마존 CEO를 앤디 재시(Andy Jassy) AWS 대표에게 물려주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함께 스티브 잡스 이후 시대를 이끄는 테크 리더로 활동했던 베조스의 선언 앞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1964년생인 베조스는 아직도 현역에서 한창 할 나이인 데다, 늘 새로운 일을 찾아서 미친 듯이 일하는 일 중독자기 때문이다.
베조스는 성공 신화는 1994년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 창업부터 시작된다. 그의 온라인 서점 플랫폼은 보더스(Borders), 반스앤노블(Barnes & Noble’s) 등 미국 최대 오프라인 서점 유통업계를 초토화했다.
베조스는 아마존을 책과 음반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유통하는 온라인 스토어로 확대해, 월마트, 시어스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의 거인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여기까지는 유통 산업계에 한정된 혁신 스토리다.
베조스가 본격적으로 테크 산업에 돌풍을 일으킨 혁신은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전자상거래 인프라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노하우를 상품으로 만든 아마존 웹 서비스를 통해 세계 컴퓨팅 시장의 질서를 엎어버렸다. 서버 컴퓨터 제조회사(IBM, 델),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MS, 오라클), 스토리지 업체 등 기존 컴퓨팅 시장에서 잘 먹고 살던 업체들의 자리를 확 빼앗아 버린 것이다.
현재 아마존은 유통업체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구글, MS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울트라 슈퍼 테크 기업 위치를 확고하게 차지했다. 이와 같은 아마존의 놀라운 변신과 도약의 중심에는 늘 베조스가 있었다. 그동안 베조스의 경영과 리더십을 분석하는 기사와 책이 많이 나왔다. 《원클릭》,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베조스 레터》 등이 대표적인 베조스 관련 책이다. 하지만 베조스는 저자의 이메일 질문이나 인터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하는 이유
2020년 11월에 출간된 《제프 베조스, 발명과 방황》(원제 《Invent & Wander》)은 베조스가 가족 관계, 성장 과정, 창업과 확장 과정 등 인생의 여정과 미래 계획을 본인이 직접 쓴 책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베조스의 삶과 경영을 다룬 책과 차별된다. 이 책은 베조스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왜 고객에 집착하는지, 데이원(Day One)이란 개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베조스가 직접 설명한다. 《제프 베조스, 발명과 방황》이 지닌 진짜 독서거리는 많은 사람이 궁금하게 여기는 두 개의 투자 건에 대한 베조스의 육성이다.
첫 번째 투자 건은 베조스가 2000년 비밀리에 창업한 블루오리진(Blue Origin)이다.
“블루오리진이 제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 기반에는 ‘지구는 최고 행성’이라는 논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베조스는 ‘우주로 가는 목적’편에서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계기와 실제 우주개발을 실행하기까지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또 블루오리진에서 개발하고 있는 기술과 향후 도전과제까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베조스의 우주개발의 핵심은 지구 보호론이다. 그는 태양계에서 최고의 행성인 지구가 인구 및 에너지 수요 증가로 인해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어 후손이 결국 배급제의 고통을 겪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베조스는 지구를 지켜 미래 세대에게 넘겨주기 위해 결국 우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베조스는 중공업과 오염을 유발하는 모든 산업, 지구에 손상을 입히는 모든 일은 지구 밖에서 처리하고, 지구에는 경공업과 대학 등 지구에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을 구상한다. 베조스는 지구 환경이 파괴되니 화성 등 다른 행성을 테라포밍(Teraforming, 지구와 같은 조건을 다른 행성에 조성하는 것)해서 지구인을 이주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농담조로 “화성에 이주하겠다는 친구가 있으면, ‘에베레스트에서 가서 1년만 살아보라. 화성에 비하면 거기는 낙원이니까’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화성 개발론의 대표적인 주자인 일론 머스크를 겨냥한 것이다.
베조스가 구상하는 우주 식민지는 행성이 아니고, 제라드 오닐(Gerard O'Neill) 프린스턴대 교수가 고안한 우주 가공계(Manufactured World)다. 우주 가공계는 원심력으로 회전하면서 인공중력을 만들고 표면에 도시, 공장, 농장을 건설하는 인공물을 뜻한다. 베조스는 여러 우주 식민지를 만들고 또 각각 다른 테마를 적용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베조스 우주개발론의 두 번째 핵심은 미래 세대가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선행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의 성공은 페덱스(Fedex)와 같은 물류망, 신용카드와 같은 결제 시스템 등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한 인프라가 아마존 창업 이전에 구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조스가 생각하는 우주개발 시대에 필요한 사전 인프라는 우주선을 싸고, 안전하게, 정시에 운행할 수 있는 생태계다. 그는 이 생태계 조성을 위해 재활용 로켓 시스템을 개발하고 또 로켓에 필요한 에너지를 지구 밖에서 조달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재활용 로켓 시스템과 우주 자원 조달이 만나는 지점에 달 개발 계획이 놓여 있다. 블루오리진은 저렴한 비용으로 달을 수시로 오갈 수 있도록 하고 또 달에서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해 로켓 추진체 연료로 사용하는 방안을 개발하고 있다. 베조스는 “다시 달로 향할 때가 됐습니다. 그곳에 머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자손이 정체와 배급제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세대가 인프라를 마련하면 우리의 후손이 놀라운 일을 펼칠 것입니다. 영감을 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아마존 CEO 자리에서 물러난 베조스의 다음 행보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는 우주 식민지 개발에 대해, “지금 학교에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수천 개의 미래 기업을 세울 것”이라면서 자신은 미래 세대가 우주개발 혁신에 도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 인수와 경영
미디어 산업계 종사자로서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와 경영에 대한 생각도 자못 궁금하다.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 인수’ 편에서 인수 과정, 인수 후 경영 방침, 언론과 민주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세계적인 언론사로 도약시켰던 캐서린 그레이엄(Katharine Graham)의 아들, 도널드 그레이엄(Donald Graham)이 워싱턴포스트 인수를 제안했을 때, 몹시 당황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테크 지향적인 베조스는 신문과 같은 올드 미디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 친분을 고려해 마지못해 워싱턴포스트 재정 자료를 보고 더 놀랐던 것 같다. 2013년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재정적 상황은 대단히 좋지 않았고, 하락세가 일시적 흐름이 아닌 영속적 현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가 어려움에 부닥친 과자 회사였다면 ‘이건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그 대목에서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가 정말로 중요한 기관인가”라고 자문하고, 세계 최강 국가의 수도에 자리 잡은 권위지로서 워싱턴포스트의 역할과 가치에 주목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 특종’,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 특종을 통해 권력의 부패와 비윤리적 행위를 폭로함으로써, 미국 민주주의 가치를 지킨 언론사라는 점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베조스 역시 그 점을 인정하고 인수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베조스는 투자 대비 이익을 철저히 계산하는 비즈니스맨으로서 냉철함을 절대 잃지 않았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워싱턴포스트의 성공을 낙관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런 고심 속에서 인터넷이 신문 산업을 망쳤지만, 인터넷이 신문 산업에 딱 하나 좋은 점을 선사했다고 봤다. 즉, 인터넷이 뉴스 유통력을 빼앗고 그와 연관된 광고 모델마저 파괴했지만, 뉴스 콘텐츠를 무료로 전 세계에 배포할 수 있는 길을 줬다고 본 것이다.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뒤 세계 최고 기업 경영자다운 조치를 몇 가지 취했다. 첫째 최고의 인재를 외부에서 영입했다.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편집 최고 책임자로 마틴 배런(Martin Baron) 전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을 영입했다. 기술 최고 책임자 자리엔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샤일리시 프라카시(Shailesh Prakash)를 스카우트했다.
베조스는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워싱턴포스트의 수익 모델을 확 바꿨다. 첫째, 트래픽을 높여 광고 수익을 올리는 온라인 광고 중심에서, 유료 구독자를 전 세계에서 확보하는 구독 모델 중심으로 바꿨다. 둘째, 프라카시에게 워싱턴포스트에서 사용하는 CMS인 아크(Arc)를 다른 언론사에 판매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발하라고 요청해 기술 서비스 수익 모델을 개척했다.
베조스는 “여든 살 혹은 아흔 살쯤 인생을 되돌아볼 때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고 대단히 힘겨운 이행을 거치도록 도운 것은 제가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라며 워싱턴포스트 인수에 깊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베조스에게 워싱턴포스트 인수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자신의 비리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를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또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뉴욕타임스와 함께 워싱턴포스트를 가짜뉴스 진원지라고 깎아내렸다. 심지어 트럼프는 연방정부와 AWS 간 계약에 압력을 행사할 정도로 베조스를 싫어했다. 베조스는 이 책에서 “미디어를 악마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미디어를 저질이라고, 국민의 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완곡하게 트럼프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 책의 또 다른 읽을거리는 스티브 잡스 전기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서문이다. 타임지 편집장을 역임했던 아이작슨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등 역사 속 천재의 삶을 담은 전기를 쓴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현존하는 인물 중 누가 다빈치, 아인슈타인, 잡스와 같은 급이냐는 질문을 받는데, 내 대답은 ‘제프 베조스’”라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자신의 전기에 등장하는 천재는 호기심이 많고 예술과 과학을 사랑하며, 나아가 그 둘을 연결하려고 한다. 또 천재는 현실 왜곡장을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고,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경외감을 간직하고 있어 어떤 일에도 흥미와 열정을 잃지 않는다. 아이작슨은 베조스 역시 뛰어난 천재의 다섯 가지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고 봤다.
어떤 사람이라도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외도와 이혼, 노동자 감시설 등 갖은 추문에 자유롭지 않은 베조스 역시 그러하다. 다만 그의 철저한 프라이버시 보안책으로 인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베조스의 이면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것은 역시 저널리즘의 몫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