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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내 공간, 혹은 온라인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한 가상적 공간을 일컫는 ‘메타버스’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자신의 아바타로 가상 세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 ‘거울 세계’라고도 불리는 메타버스. 우리 일상에 바싹 다가서고 있는 이 새로운 문화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메타버스와 거울 세계
2017년 에픽게임즈(Epic Games)가 제작한 삼인칭 슈팅 게임인 ‘포트나이트(Fortnite)’는 트위치 시청자 수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글로벌 게임 중 하나다. 캐릭터를 만들어 가상의 공간에서 플레이하는 포트나이트는 2018년 닌자(Ninja)라는 게임 스트리머가 유명 래퍼 드레이크(Drake)와 함께 플레이하는 모습을 방송하는 등, 유명 연예인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고 스트리밍하는 확장된 게이밍의 모습을 다각도로 보여줬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대면 공연이 불가능해진 2020년 4월, 이 게임의 가상공간에 또 다른 미국 래퍼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1)이 게임 플레이도 아닌, 자신의 단독 콘서트를 진행(playing)했다. 트래비스 스콧의 아바타가 공연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1,200만 명이상의 포트나이트 플레이어 아바타들이 하늘을 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현재 유튜브에서도 트래비스 스콧이 진행한 포트나이트 가상 콘서트를 시청할 수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변화하는 공연 상황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의 가상공간이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공연도 즐기고, 축구도 할 수 있으며, 춤도 출 수 있는 등 현실의 ‘거울 세계’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게임 내 공간, 혹은 온라인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한 가상적 공간을 메타버스(Metaverse)라고 명명한다. 최근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상호작용에 주목하면서 부상하긴 했지만 메타버스는 지금 막 생겨난 새로운 단어는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2)의 SF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아바타’라는 용어를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의 ‘세계(Universe)’에 부합하는 ‘인터넷 기반의 3D 가상세계’를 메타버스라고 정의했다(한혜원, 2008). 간단히 말하자면 메타버스란 세계를 나타내는 용어인 ‘유니버스’에 ‘초월한’, ‘더 높은’ 이라는 뜻을 가진 ‘메타’라는 접두어를 결합한 용어다. 이를 우리말로는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지만 이를 초월해 만들어진 또 다른 세계’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메타버스는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진 그래픽 맵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경제적이나 사회적 활동이 현실 세계와 유사한 가상 세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거울 세계(Mirror world)라 불리기도 한다. 미국의 비영리 기술 연구 단체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에서 2006년 발표한 ‘메타버스 로드맵’에는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는 “가상적으로 확장된 물리적 현실과 물리적으로 영구화된 가상공간의 융합(ASF, 2006; 한혜원, 2008, 319쪽 재인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분석하고 이에 관한 유형화를 시도한 한혜원(2008, 320쪽)은 메타버스가 “다수의 사용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접속할 수 있으며 아바타를 통해 사용자의 페르소나를 작동시킬 수 있어야 하는” 인터넷 기반의 공간이라고 분석한다.
트래비스 스콧이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실시간 온라인 공연을 진행한 것은 메타버스의 가상 세계와 행위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러나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와 유사할 뿐 실재를 그대로 반영하진 않는다. 트래비스 스콧의 아바타는 현실의 그를 반영한 것일 뿐 온라인 공간 속 하나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 존재한다. 다만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은 이것이 닫혀있는 ‘완성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메타버스는 그곳을 이용하는 유저와 플레이어들의 행위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인 세계다.
우리는 왜 지금, 메타버스를 기다리는가
트래비스 스콧의 포트나이트 공연이 주목을 받기 전, 메타버스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는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2003)에서부터 시작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소셜미디어가 나타나기 전 메타버스의 세계를 현실화한 최초의 가상 세계로 평가받는다. 소셜 게임이자 온라인 커뮤니티인 세컨드 라이프는 이를 제작한 린든랩(Linden Lab)의 대표인 필립 로즈데일(Philip Rosedale)이 《스노 크래시》에 묘사된 가상 세계를 컴퓨터 그래픽 환경으로 구현하려는 계획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세컨드 라이프는 2003년 출시돼 3년 동안 100만 유저를 확보하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제2의 삶’에서 유저들은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는 가상 코인을 벌어들이거나, 개인적 네트워크의 확보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에 사업까지 수행할 수 있다.
실제로 플레이어들은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다양한 일상 활동을 지속한다. 세컨드 라이프는 당시 다른 소셜 게임보다 자유도가 굉장히 높은 편3)에 속했는데, 이는 반대급부적으로 유저들의 창조성을 발휘하게 했다. 유저들은 아이템을 제작해 돈을 벌거나, 여행하거나, 인맥을 넓히거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아바타의 스킨을 추출해 포토샵에서 맞춤 제작 또한 가능해 자신만의 독특한 아바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한동안 미국에서는 세컨드 라이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연구가 계속됐는데, 가상과 현실 세계에서의 관계가 서로 영향을 주며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가 지속됐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메타버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한한 자유’라고 하는 것은 실제 현실과 닮아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그 자유는 현실임과 동시에 현실화할 있는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해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소구로 이어졌다.
이는 메타버스와 공연 업계의 협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코로나19로 인해 크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공연 업계는 이를 타파할 방안으로 메타버스의 활용을 주된 전략으로 삼았다. 2020년 11월에 데뷔한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aespa)는 기존에 공통된 세계관을 통해 앨범을 시리즈로 묶고, 이를 곡으로 풀어낸 엑소-NCT를 잇는 또 다른 세계관, 즉 A/U(Another Universe or Alternative Universe)의 탄생을 또 한 번 보여준다. 여기서 에스파 멤버들은 가상공간의 또 다른 ‘나’가 존재하고 이들과 연결돼 있다고 (잠재적) 팬들에게 소개한다. (기획된 세계관임이 틀림없긴 하지만) 아바타로 표현된 가상공간 속 멤버들은 현실세계의 에스파에게 정신적으로 지지를 보내며, 함께 라이브 방송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거라는 콘셉트를 사전 영상을 통해 보여줬다. 게임 플랫폼에서 시작된 메타버스가 이제 그 모습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일상에 접속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얼굴 인식과 증강현실, 3D 기술을 이용해 아바타를 만들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페토(ZEPETO)’(2018)의 부상은 메타버스의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 이용자 가운데 80% 이상이 10대며, 2020년 10월 기준 글로벌 누적 가입자가 1억 9,000만 명을 돌파한 제페토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및 JYP엔터테인먼트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팬 사인회를 대면으로 개최할 수 없게 되자 YG엔터테인먼트는 제페토의 가상공간 내에서 블랙핑크 팬 사인회를 개최해 4,600만 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AR 기능을 통해 만든 팬들의 아바타와 블랙핑크의 아바타는 제페토에서 만나 ‘셀카’를 찍고 인증을 남길 수도 있다. 블랙핑크는 이에 그치지 않고 피처링을 담당한 설리나 고메즈(Selena Gomez)의 아바타와 함께 제작한 안무 영상도 공개했는데 공식 유튜브에서 2021년 1월 현재 9,600만 회 이상이 조회된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버스야, 안녕?
코로나19가 공연 업계에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직접적으로 멀티버스를 탄생시키게끔 연계한 것은 아니다. 멀티버스는 가상공간에서의 ‘또 다른 나’의 탄생과 더불어 끊임없는 상호작용성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사라졌지만 곧 부활할)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일상에서의 인간이 끊임없이 말하고 누군가의 반응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는 형태만 변화했을 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중 하나다.
인터넷이 탄생하던 그 순간부터 이용자들은 세상과 주체(나)의 연결로 인한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상호작용성’에 주목해왔다. 사람들은 게임에서, 소셜미디어에서, 혹은 포털사이트에서 다양하게 자신의 페르소나를 변형시키며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특히나 일대일 대면이 불가능하거나, 물리적 거리 혹은 공간의 문제로 만날 수 없는 방식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소구를 가능하게 했다. 공연 업계가 미디어를 통한 가상의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에 유독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이전부터 홀로그램 공연이나 버블 서비스와 같은 프라이빗 메시지를 활용해 팬들과의 상호작용성과 이를 통한 가상의 친밀성(intimacy)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왔었다. 실제로 이러한 아바타의 등장과 멀티버스의 활용이 공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아직 그 향방은 알 수 없지만, 분명 이러한 공연 형태가 새로운 ‘매개성’과 ‘관계성’ 그리고 팬과 스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가상밴드 고릴라즈(Gorillaz)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한 사례다. 고릴라즈는 1998년 영국에서 결성된 가상 밴드로, 카툰으로 캐릭터화된 멤버들은 다들 개인의 역사성을 가진 채 뮤직비디오, 소셜미디어, 다큐멘터리 영화 등으로 팬과 소통을 지속한다. 팬들은 일방적으로 음악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릴라즈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작용한다. 이것이 만들어내는 친밀감은 팬들의 몰입을 훨씬 더 증가시킨다. 물론 고릴라즈는 메타버스가 아닌 현실에서 활동하는 가상적 아바타일 뿐이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메타버스가 지향하는 세계의 단면을 읽어낼 수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현실과 같지 않고,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상호작용은 현실의 상호작용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는다. 메타버스에선 현실 세계와의 다른 형태의 상호작용성을 만들어낼 뿐이다. 메타버스가 존재한다고 해서 현실 세계로 나오지 않는 유저들은 없을 것이며, 가상 세계에서의 만남이 전면적인 인간관계를 대체해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인간은 또 다른 세계인 메타버스에서 접속을 통해 꾸준히 친밀감을 형성해나갈 것은 확실하다. 다시 말해 미래의 메타버스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진화된 버전으로 존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린 메타버스라는 용어에 친숙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이미 익숙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라이브 공연을 하지 못하자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진행했던 ‘#투게더앳홈(#togetherathome)’과 같은 공연 방식은 트래비스 스콧의 포트나이트 공연과 유사한 방식을 띠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아바타가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나의 페르소나가 ‘바로 그곳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이 아마도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좀 더 진화된 방식일 것이다.
1) 미국 휴스턴 출신의 래퍼. 1992년생으로 칸예 웨스트(Kanye West) 등 유명한 가수들과 작업하며 대중적 인기를 구가했다.
2) 1959년생 미국 작가. 1992년 가상의 분신 아바타와 가상 세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예언한 내용의 《스노 크래시》를 집필했다.
3) 이로 인해 세컨드 라이프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는 목적성이 강한 타 게임보다 자유도가 현저히 높고 명확한 목표를 주지 않아 유저들의 초반 적응이 어렵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