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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고정됐던 생산자와 수용자의 위치가 달라졌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얻기만 하던 수용자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큰 힘을 행사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온라인 문화 현상인 ‘캔슬 컬처’는 이 같은 흐름의 대표적 예다. 캔슬 컬처의 의미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 주
누가 범인일까?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자, 러시아 대표 문학인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원작으로 한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카라마조프가의 아버지인 표도르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과거의 일들을 반추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표도르와 여자 문제로 크게 대립각을 세우던 첫째 아들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이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법리적인 증거’다. 피 묻은 쇠공이와 피투성이가 된 옷이 증거물로 나왔다며 둘째 아들 이반은 자신의 형인 드미트리에게 자백을 종용한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 모두 드미트리가 죽인 것이 확실하다고 의심한다. 단 한 사람, 진짜 범인을 제외하면 말이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어쩌면 중요한 것은 ‘누가 진짜 범인인가’가 아니라 ‘그가 왜 범인으로 몰리게 됐는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실제로 우리는 가치판단을 하기 전 근거와 논리를 통해 사실로 이뤄진 증거를 수집하고, ‘논리적인 과정’을 거쳐 사고한 뒤 행동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의 미디어 환경은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내 주장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판단’하게 만드는 정보가 다각도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수용자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과거의 잘못된(것이라고 판단되는) 언사와 행동을 근거로 삼아 공인 혹은 브랜드, 콘텐츠 등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강력하게 비판하며 보이콧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 현상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취소문화? 아니, 캔슬 컬처
캔슬이라는 용어는 사전적으로 ‘취소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내가 무언가를 실행하고자 계획했던 것을 없던 일로 되돌리는 것을 뜻한다. 약속을 취소할 때, 우리는 외래어인 ‘캔슬(취소하다)’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캔슬 컬처라는 용어가 수사하고 있는 사회현상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재 캔슬 컬처에서의 ‘캔슬(cancel), 캔슬링(canceling)’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공인들의 행동이나 의견에 관해 반대하거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이러한 반대 의사를 표면화하고, 그들의 지지를 가시적으로 철회, 즉 취소하는 온라인 문화 현상’을 뜻하게 됐다(서경주, 2020). 이러한 캔슬 컬처는 인종, 종교 혹은 성 소수자들을 차별, 혐오하는 발언을 한 공인들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 해시태그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이를 가시화하는 운동에서 시작된 역사를 갖는다.
한국 또한 이러한 문화적 현상을 캔슬 컬처라는 용어를 통해 이해하고 있진 않지만, 온라인상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아이돌 멤버들의 학교폭력 사태가 온라인에서 다양한 증거를 통해 드러나자 그들의 지지를 철회하겠다(보이콧)는 팬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기획사들은 일제히 입장문과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광고주들은 그들을 광고계에서 재빠르게 삭제(cancel)하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SBS의 과도한 역사 왜곡에 대한 수용자들의 강력한 비판과 이로 인한 <조선구마사> 드라마의 편성 취소는 바로 캔슬 컬처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수용자들의 강력한 저항과 판결이 대중적인 낙인효과를 갖게 됐고, 이로 인한 대중적 인식의 변화가 실질적인 행동까지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강력한 수용자 저항의 탄생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영상, 문자, 오디오 등의 텍스트 확산이 생산자·수용자의 위치를 유동적으로 만들며 진행되는 특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고정된 ‘생산자’의 위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와 2차 생산, 재의미화 등이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수행하는 다면적 주체를 통해 텍스트의 생산과 유통, 배급 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초연결사회에서의 미디어 이용자는 간단한 조작(예를 들어 클릭)을 통해 텍스트를 공유하고 순식간에 이것들이 전 세계로 노출되며 확산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의 저서인 《스프레더블 미디어(Spreadable Media)》(2013)에서 알 수 있듯이, 입소문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순식간에 확산되는 과정은 이용자의 행위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이용자의 행위성이 확산성의 관건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부터 이미 이용자는 더 이상 기존의 수용 행태를 반복하는 수용자의 위치를 점유하지 않게 된다. 수용자들은 이용을 거부하거나,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자신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캔슬은 ‘하지 않음’을 뜻하지만,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 또한 적극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배달의민족에 입점한 식당들이 소비자들의 평점과 리뷰를 왜 관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배달의민족을 이용하는 구매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음식을 소비하는 위치만을 점유하진 않는다. 식당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리뷰와 높은 별점을 얻기 위해 이용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이용자들은 리뷰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그리고 그 의견들은 아카이빙돼 다방면으로 노출된다. 배달의민족이라는 애플리케이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이슈가 된 현상들이 또 다른 사이트들로 옮겨가며 계속 공유되고, 확산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 현상은 사회적으로 캔슬 컬처라 명명되지만 않았지 네트워크 사회의 출현, 가상공간에서의 이용자 제작 콘텐츠의 유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온라인 공간의 탄생과 그 결을 함께 한다. 한 예로, 2009년 박재범의 마이스페이스(myspace)1)의 포스팅으로 인한 2PM 탈퇴 사건은 단순한 소비자로 위치됐던 팬덤이 이에 반박하며 그가 속해 있었던 2PM의 모든 활동을 불매하고 보이콧 하겠다는 대규모 시위로 확장되면서 주목받았다. 이 또한 대대적인 캔슬 컬처인 것이다.
캔슬 컬처는 우리에게 단순히 수용자가 수용에 대해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대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며 대규모의 집단 행위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이전까지의 소극적인 수용 거부와는 다른 행태를 보인다. 이 때문에 이전까지 생산-수용 위계에서 하부에 위치하고 있던 수용자의 권력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이러한 위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 잠재성을 갖게 된다.
앞서 최근 캔슬 컬처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던 <조선구마사>의 경우 방영 2회 만에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폐지됐다. 특히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게 중국풍 소품과 의상을 등장시켜 이를 발견한 시청자들의 폐지 운동이 급격하게 일어났다. 이 드라마는 방영권료 대부분을 선지급했으며, 80% 정도 사전 제작된 상태였다. 2회 방영 이후 시청자들의 집단 반발 및 폐지 운동이 급속하게 온라인으로 확산됐고 이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은 다수의 대중 또한 이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빠르게 폐지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주요 광고주들의 광고 철회가 진행됐고, 초반 폐지가 아닌 재편집을 통한 ‘방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드라마는 결국 성명 이틀 만에 폐지를 결정했다.
이러한 상황은 이전까지 생산된 콘텐츠나 상품에 대해 불만을 소극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던 수용자가 대대적으로 자신의 힘을 강하게 발휘하고 집단적으로 저항해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수용자의 저항’이 힘을 발휘했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현재의 미디어 생태계에서 수용자의 위치가 생산자적 입장을 함께 점유하고 있으며 그들의 비판이나 저항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생성됐음을 뜻한다.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침묵하고는 넘어갈 수 없는 형태가 됐다. 이는 수용자 저항의 움직임이 사회문화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실제로 권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열린 공론장 vs. 마녀사냥
하나의 미디어 시스템은 단순히 그것을 지탱하는 기술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문화는 이들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지금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현실은 이런 관점을 가진 누구나가 인정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다. 네트워크화된 커뮤니케이션의 증가는 특히 참여 문화의 관습과 결부됐을 때 다양한 새로운 자원을 공급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투쟁해온 다양한 집단들을 위한 새로운 개입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플랫폼은 사회적·문화적·경제적·법적·정치적 변화를 위한 공간을 창출하고 우리가 쟁취해야 하는 다양성과 민주화를 위한 기회를 만들어낸다.
캔슬 컬처는 이런 지점에서 이전까지 소수의 위치, 혹은 다수이지만 약자로 표방됐던 수용자들의 의견이 가시화되고 이를 통해 당사자와 해당 콘텐츠, 브랜드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민주적일 수 있다. 특히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없거나 적었던 위치의 대중들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한 의견 표명, 그리고 이것의 가시화와 이를 통한 대중들의 판단 개입은 기존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위치의 사람들에게 공적 감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인종, 젠더, 지역과 계층과 같은 차별의 요소가 확실하지만 차별 당사자의 발언권이 가시화되지 않거나 무력화되기 쉬운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매쿼리사전(Macquarie Dictionary) 편집장인 빅토리아 모건(Victoria Morgan)이 지적했듯 캔슬 컬처는 “하나의 처벌로써 해당자를 각성시키려는 시도”(Cowie, 2019)이며, 동시에 이것이 나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캔슬 컬처에 대한 많은 논란 중 하나가 바로 낙인효과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하나의 텍스트가 공유되기 시작하면 굉장히 빠르게 확산되고 광범위하게 이슈화된다는 특성이 있다. 초반의 문제화 됐던 발언이나 행동 등은 삭제되고 당사자에 대한 ‘비난’에만 경도되는 경향 또한 심각하다. 그리고 이를 재단하려는 자신들만의 판단 근거들이 난립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지속되면 ‘온라인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앞서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언급했던 그것,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그 비난하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캔슬 컬처 시대에 사는 법
분명 캔슬 컬처는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위축”(서경주, 2020)시킬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단순히 의혹으로 시작했던 수용자의 발언이 삽시간에 퍼져 한 사람의 업적과 다양한 기회를 삭제시켜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캔슬 컬처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소통의 방식이자 참여 문화의 일환이다. 온라인 공론장에서 우리는 토론하고 비판하고 문제점을 가시화시키며 공적 감시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자신의 주장을 확장하고, 다른 이들에게 의견을 공유하고, 이러한 생각들을 대화를 통해 진화시킬 수 있다. 침묵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다각적인 시각이 공존할 수 있고 자신의 관점을 발언할 수 있는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다만 우리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에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는 데 있어 곳곳에 산재한 다양한 정보를 살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앞서 밝혔듯 현재의 미디어 환경의 문제점은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이를 전부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순적으로 편파적인 시각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데 있다. 우리는 언제든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는 것. 그것이 현 캔슬 컬처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일지도 모른다.
1) 우리나라의 네이버 블로그, 싸이월드와 유사한 포스팅이 가능한 온라인 가상공간. 현재는 없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