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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 방송 산업은 급증하는 수용자 불만 처리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인종차별, 군주제, 젠더 등 민감한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이 폭주해 그에 대한 대응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역대 최고의 접수 건수를 기록한 사례를 중심으로 관련 이슈들을 살펴본다.
역사상 가장 많은 불만이 제기된 BBC의 필립공 추모
영국 방송사들은 지난 4월 9일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인 필립 마운트배튼(Philip Mountbatten)에 대한 추모 프로그램을 대규모 편성했다가 곤경에 처했다. 필립공은 현재까지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에서 여왕의 부군으로서 왕실 최고 어른으로 대접받는다. 자발적 연합으로 이뤄진 영 연맹국만 전 세계적으로 54개나 된다는 점에서 그 사별 소식은 충분한 보도 가치가 있었다. 영국 방송사들은 곧바로 필립공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는 추모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국민이 내는 세금인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적서비스인 BBC의 경우, ITV와 같은 상업방송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제는 그에 대한 수용자 반응이었다. 원래 시간대 방영 예정이었던 프로그램들이 하필 BBC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작품이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예능 프로그램인 <가드너스 월드(Gardener's World)>, <마스터셰프(MasterChef)> 등의 편성이 취소된 것에 대해 수용자 불만이 폭주했다. ‘국민 예능’이라 불리는 <마스터셰프>의 경우, 우승자가 결정되는 최종회의 방영이 연기돼 팬들의 원성이 특히 컸다.
BBC의 수용자 불만을 투고하는 ‘불만(Complaint)’ 웹페이지에 지나치게 많은 트래픽이 몰려 필립공 관련 불만을 적는 임시 별도 공간이 개설됐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사망 보도가 최초로 이뤄진 후 나흘 만인 4월 12일까지 약 11만 건 이상의 불만이 접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영국 방송 산업 역사상 최고 수치다. BBC의 프로그램 중 이전에 가장 많은 불만이 접수된 건은 2005년 <제리 스트링거: 오페라> 편으로 무용단들이 KKK단처럼 분장한 장면과 사탄과 예수의 대립을 묘사한 장면이 ‘불쾌감’을 자아낸다는 비판이 6만 3,000건 이상 제기됐었다.
이번 일과 관련, BBC는 홈페이지를 통해 “필립공의 사망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많은 관심을 집중시킨 중요한 사건이지만 ‘보도량’에 대해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며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이어 이번 결정은 “국가적 중대사에 대해 공영방송으로서 BBC의 역할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1)
데이비드 실리토(David Sillito) BBC 미디어아트부 기자는 이번 일이 “BBC를 진퇴양난에 빠지게 했다”고 분석한다. 그 해명처럼 국영방송사로서 BBC는 국가의 중대사를 다루는 보도 및 편성에서 타 상업방송과 다르게 공적으로 책무를 수행한다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public)에 의해 소유되는 방송 서비스인만큼 ‘시대에 따라(in tune with the times)’ 달라지는 ‘국가 정서(national mood)’에 맞춰 유연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2)
예를 들어, 1997년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장례식이 있기까지 모든 과정이 24시간 중계되다시피 했지만 이를 비판하는 여론은 없었다. 하지만 2002년 여왕의 어머니가 별세했을 때, BBC는 이번처럼 추모 방송으로 편성을 바꿨다는 이유로 2,000여 건의 수용자 불만을 우편으로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애도의 표시가 미흡했다며 신문사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 상반된 반응에 당황한 BBC는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시장조사회사인 입소스모리(Ipsos-Mori)에 그 보도량의 적절성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BBC의 보도가 적절했다고 답했다. 이는 수용자 불만이 반드시 ‘국가 정서’를 반영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용자 불만 늘어난 사회
그런데 이번 필립공 사망 보도에 대한 불만 접수 건은 여왕의 모친 사례와 비교해 무려 55배 이상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디언의 한 기사 헤드라인이 지적한 것처럼, “왜 영국인들은 TV에 무엇이 나오냐에 대해 불만이 많아진 걸까?”
데이비드 실리토 기자는 그 원인을 몇 가지로 추측한다. 첫째, 코로나19 사태로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수개월 동안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전반적으로 영상 콘텐츠 수용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OTT 플랫폼의 가입자 수가 기록적으로 증가했지만, 동시에 전통매체인 유선(linear) TV 시청도 증가, 저녁 시간 프라임 타임의 BBC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자 수는 2,000만 명에 달했다. 보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수용자 불만이 더 많이 제기됐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로는 수용자 불만이 접수되는 방식의 기술적 변화다. 이전과 달리 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통해 온라인 포스트로 쉽게 작성될 수 있어 그에 대한 접근이 쉬워졌다.
가디언 역시 방송사들의 수용자 불만을 수렴하는 정부기관인 오프콤(Ofcom)의 전담 부서와의 인터뷰를 통해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3) 애덤 백스터(Adam Baxter) 오프콤 국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1년 동안 수용자 불만 접수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9~20 회계연도에 3만 4,545건 접수된 것에 비해, 2020~21 회계연도에는 약 네 배에 달하는 14만 5,000건 이상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현재 오프콤의 전담 부서에는 40명의 인원이 배치돼 있다. 이들은 2003년 제정된 통신법(Communication Act)과 1996년 제정된 방송법(Broadcasting Act)에 따라 만들어진 방송규정(Broadcasting Code)에 입각해 수용자 불만을 처리한다. 오프콤에 의해 방송 라이센스를 부여받은 방송 사업자들은 공적 여부를 불문하고 그 허가 조건에 명시돼 있듯, 기준규정(Standards Code)과 공정성규정(Fairness Code)을 준수해야 한다. 수용자가 제기한 불만이 접수되면 이러한 규정을 어겼는지 여부를 오프콤이 판단, 그 처리 과정과 결과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의 논리는 소비자만족모델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이해가 갈리는 주제를 다룬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고려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프로그램이 방송 규정에 맞게 제작됐는지만이 중요하며, 정치적 문제를 다룰 경우에도 방송 규정에서 밝힌 ‘불편부당성 요건’을 충족했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아무리 많더라도 오프콤이 제재를 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프콤의 ‘불편부당성 요건’은 “서비스를 공급하는 어떠한 자도 정치적 또는 산업적 논쟁이 되는 문제와 현행 공공정책에 관련한 문제들에 대한 불편부당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만큼, 대안적 입장이 프로그램에서 적절히 표현된다는 조건 아래, 뉴스 프로그램의 뉴스 진행자와 리포터 등의 출연진이 정치적 논쟁이 되는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혹은 ‘인증된(authored)’ 견해를 표현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4)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최근 늘어난 수용자 불만의 상당수는 방송 프로그램이 불편부당성을 확보했는지 여부보다, 그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정치적으로 예민한 주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치가 수용자 불만에 미치는 영향
실제로 영국 사회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다룬 프로그램들은 장르와 무관하게 높은 수용자 불만 건수를 기록한다. 일례로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이 촉발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영국 사회에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모았다. 이에 지난 해 9월 5일, ITV 오락 프로그램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에 참여한 댄스팀인 ‘다이버시티(Diversity)’는 이 사건을 주제로 한 공연을 선보였다.
그러자 방영 직후 그 주제의 적절성을 두고 약 2만 4,500건의 수용자 불만이 쏟아졌다. 불만의 대부분은 특정 정치적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이 공연이 “가족 시청자들에게 부적합”할 뿐 아니라 백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백인 경찰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5)
이에 대해 오프콤은 약 2주 만에 입장을 밝혔다. 이 공연은 어떤 방송 규정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장문의 입장문을 통해 왜 인종차별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인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인종차별이 수용자 불만의 주제가 되는 것은 메건 마클(Meghan Markle) 인터뷰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여왕의 손주인 해리 왕자와 배우자인 메건 마클은 지난 3월 9일, 오프라 윈프리의 진행으로 이뤄진 CBS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왕실의 마클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폭로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영국 ITV는 700만 파운드(약 110억 6,000만 원)라는 거금을 지불해 편집 없이 인터뷰 전체를 방송했는데 평균 1,110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송 이후, 인터뷰 중 마클이 왕실의 일원이 아이의 피부색을 언급했다고 밝히면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으로 인종차별 문제에 예민해진 영국 사회에서 그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다. 야권에서는 왕실의 인종차별 혐의는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6)
하지만 동시에 일부 언론에서는 그러한 왕자 부부의 주장을 비판했는데, 대표적으로 왕자 부부의 인터뷰를 방영한 ITV의 아침 프로그램 <굿모닝 브리튼(Good Morning Britain)>의 진행자 피어스 모건(Pierce Morgan)이 있다. 그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는 마클의 발언과 관련, “(그녀가 말한 것 중) 한 단어도 못 믿겠다”고 코멘트를 했다가 후폭풍에 휘말렸다. 단 하루 만에 4만 1,000여 건의 수용자 불만이 오프콤에 접수돼 필립공 보도 전까진 역대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7)
이상의 사례들은 영국 사회의 사회정치적 맥락이 수용자 불만의 폭증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로나19 사태를 심각하게 앓은 영국 사회에서 TV 이용이 확대되고, 그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방식이 디지털화 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짚인다. 동시에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왕실에 대한 국민 정서나 인종차별 문제처럼 뿌리 깊은 정치적 문제가 화두로 재차 등장하면서 수용자 불만 폭증의 배경이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영국 사회에서 수용자 불만 제도가 단순히 수용자 만족이나 프로그램의 불편부당성을 가늠하기 위한 잣대가 아닌, 영국 사회의 정치적 여론이 반영되는 창구로서도 기능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1) <Coverage of the passing of HRH The 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April 2021>, BBC, 2021.4.15, https://www.bbc.co.uk/contact/complaint/hrhtheprincephilipdukeofedinburghcoverage
2) Sillito, D., <Prince Philip: Coverage of royal death poses quandary for BBC>, BBC, 2021.4.15, https://www.bbc.co.uk/news/entertainment-arts-56746250
3) Waterson, J., <Why are Britons complaining more about what’s on TV?>, The Guardian, 2021.4.16, https://www.theguardian.com/media/2021/apr/16/bbc-employee-says-incredible-amounts-of-complaints-have-racial-bias
4) <Section five: Due impartiality and due accuracy>, Ofcom, 2021.1.5, https://www.ofcom.org.uk/tv-radio-and-on-demand/broadcast-codes/broadcast-code/section-five-due-impartiality-accuracy
5) Waterson, J., <Ofcom dismisses complaints over BLM dance on Britain's Got Talent>, The Guardian, 2020.9.17, https://www.theguardian.com/tv-and-radio/2020/sep/17/ofcom-dismisses-complaints-over-blm-dance-on-britains-got-talent#:~:text=Britain%20Got%20Talent%20has%20been,programme%20on%20Saturday%205%20September.
6) <Meghan and Harry: 'Allegations of racism must be taken seriously'- Starmer>, BBC, 2021.3.8, https://www.bbc.co.uk/news/av/uk-56319188
7) <Piers Morgan's Harry and Meghan remarks: Ofcom launches investigation after 41,000 complain about presenter>, Skynews, 2021.3.9, https://news.sky.com/story/ofcom-launches-investigation-after-41-000-complain-about-piers-morgan-remarks-on-harry-and-meghan-122410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