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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창간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00주년을 맞았다.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 유력지로 긴 역사를 이어온 가디언. 창간에서 현재까지의 발행 내력과 철학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올해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이 창간 200주년을 맞았다. 1821년 5월 5일, 맨체스터의 지역 주간지로 출범한 이래 오늘날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지로 거듭나기까지 그 긴 시간 동안,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권의 압력과 한때 극심했던 경영난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20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장들과 언론학자, 전문가들이 내놓은 평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지역 주간지가 진보 정론지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가디언의 전신은 맨체스터 지역 주간지로 출발한 맨체스터가디언이다.1) 창업주 존 에드워드 테일러(John Edward Taylor)는 면직물 상인이었는데 노동 계급을 돕는 시민 지도자로도 활동해 지역에서는 이미 저명인사였다. 그가 신문 창간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1819년, 세인트 피터(St. Peter) 광장에서 세제 개혁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빈민을 군대가 잔인하게 학살하는 사건을 목격하면서다. 런던 신문사들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테일러는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18개월 동안 400건 이상의 목격자 증언을 모아 창간과 함께 공개한다. 자유주의의 가치와 사회적 정의를 옹호하는 가디언의 이미지는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1855년, 인지세 철폐를 기회로 삼아 맨체스터가디언은 일간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경영 면에서는 호재였지만, 이 과정에서 독자층 확대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계급의 시각을 반영하려다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했다. 현재처럼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정론지로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은 1872년, 테일러의 사촌인 찰스 프레스트위치 스콧(Charles Prestwich Scott)이 편집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진보주의자였던 스콧은 이후 57년 동안 편집장직을 유지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저널리즘 원칙을 완성했다. 어떠한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추구할 것. 단, 단순히 견해를 내놓기보다는 엄격하게 사실에 기초해 말할 것.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직접 쓴 사설에 나오는 “의견은 자유, 팩트는 신성하다(Comment is free, but facts are sacred)”라는 문구 역시 이를 반영한다.
스콧이 재임하는 동안 가디언은 이러한 원칙을 실천으로 옮겼다. 정부, 의회와 갈등을 불사하고라도 정치·사회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목소리를 두려움 없이 내왔다. 노동, 여성 참정권, 아일랜드 자치 운동을 지지했고, 영국 제국주의 침략에 반대했다. 남아프리카의 보어족을 상대로 영국 정부가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제2차 중동전쟁을 벌일 때는 영국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폭로하는 특파원 기사를 내놓아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었고, 그 여파로 구독자 수가 급감해 신문의 존폐를 걱정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자신의 원칙을 고수했다.
이러한 가디언의 거침없는 행보는 지식인층의 관심을 끌었고, 결국에는 비판적인 대중의 지지를 얻으며 주류에서도 입지를 다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디언을 읽는 독자들은 노동당에 투표하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경향을 보인다며 이들을 부르는 ‘가디어니스타(Guardianista)’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다.2)
현재의 이름인 가디언으로 명칭이 바뀐 시점은 1959년이다. 전국지로 거듭나기 위해 1964년에는 런던의 패링던(Farringdon) 지역으로 사옥을 옮겼다. 1993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요신문인 옵서버(1971년 창간)를 인수해 몸체를 불렸고, 이후로 2000년대 초반, 지역 라디오 방송 채널들을 인수하며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거듭난다.
가디언을 특별하게 만든 소유 구조
물론 가디언 외에도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매체는 많다. 하지만 가디언처럼 200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 생존한 매체는 손에 꼽는다. 후대 편집장들을 비롯해 가디언의 역사를 연구한 미디어 연구자들은 그 비결이 가디언의 특별한 소유 구조에 있다고 지적한다.
가디언은 스콧 사후에 설립된 비영리 공익 법인인 스콧트러스트(The Scott Trust)가 독점 소유하고 있다. 스콧은 가디언 창사 100주년을 맞이해 1921년에 쓴 에세이에서 가디언의 가치는 “정직, 청렴, 용기, 공정성, 독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책무(honesty, cleanness(integrity), courage, fairness, a sense of duty to the reader and the community)”라고 밝히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디언은 어디까지나 “편집부가 주도해야 하며, 기자들은 어떠한 상업적 혹은 정치적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콧트러스트는 그 뜻대로 실제 편집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신문의 ‘수호자’로만 남았다. 실제 가장 최근인 2015년에 선출된 캐서린 바이너(Katharine Viner) 편집장은 200주년 기념 에세이에서 스콧트러스트가 자신에게 준 ‘유일한 지시’는 “이전처럼 할 것(As heretofore)”이었다며 편집 면에서 여전히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밝혔다.
전임인 앨런 러스브리저(Alan Rusbridger) 편집장 역시 전해지는 사명이 있다면 스콧이 남긴 “편집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리면 그것이 초래할 결과가 무엇이더라도 권력자에게 도전한다”는 것이었다고 밝힌다. 지속적으로 종이신문이 적자를 겪었음에도 편집장들은 대중의 이익을 위해 ‘큰 이야기’를 다루는 탐사보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수많은 특종을 내놓았다. 일부만 언급해도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광범위한 도감청 프로그램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 사건이나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오브더월드(The News of the World)의 전화 해킹 스캔들,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프로필을 동의 없이 수집해 정치적 캠페인에 이용한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CA, Cambridge Analytica)에 대한 내부 고발 건 등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보도들이다.
러스브리저 전 편집장은 이번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뉴욕리뷰(The New York Review)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스콧트러스트가 편집부의 자율성을 어떻게 존중하는지 자신의 예를 들기도 했다. 2013년 스노든의 문건을 세계 최초로 지면에 실으려던 당시, 정치권은 신문의 운영을 맡은 가디언미디어그룹의 이사회와 소유주인 스콧트러스트와 접촉해 그 보도를 막으려 했다.3) 상당수의 정치권 인사들이 두 기관을 압박했지만, 이들 모두 “우리는 편집부에 개입할 힘이 없다”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혀 편집장인 자신의 결정대로 보도를 내보낼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4)
디지털 시대, 신문의 ‘가디언’은 독자
얼핏 이러한 가디언의 탐사보도에 대한 투자는 비용도 그렇지만 법적 투쟁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회사의 경영에는 위험 요소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러스브리저 편집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가디언의 이러한 ‘도전’들이 오히려 현재 신문이 가진 비즈니스 모델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디지털화로 뉴스 유통의 구조 변동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면서, 가디언 역시 2000년대 들어 편집 비용의 절감을 위해 구조 조정을 통해 기존의 다양한 직책들을 통합하는 한편 인원 감축을 해야 했다. 광고비가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로 이탈하면서, 다른 신문사와 마찬가지로 광고 수익의 급감으로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가디언은 이러한 위기를 ‘탐사보도에 대한 독자의 후원’을 유도하는 것으로 결국 돌파했다. 2012년, 러스브리저 편집장 재직 당시 가디언 내부에서 독자들에게 신문의 공적 가치에 대한 후원을 유도하는 것은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내가 읽을 수 있게 돈을 내는” 기존의 가입제에서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돈을 내는” 후원제로 독자 기반 재원 조달 방식을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이후 가디언은 홈페이지의 기사마다 “독립적이며 심층적인 탐사보도의 재원을 조달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넣어 후원을 독려해왔다. 이미 100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후원에 참여, 광고 수익보다 더 중요한 재원 조달 창구가 됐다. 2020~2021년 후원액만 6,900만 파운드(약 1,086억 6,120만 원)에 달한다.
가디언은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온라인 서비스에 어떠한 ‘지불 장벽(Pay wall)’도 세우지 않고 있다. 웹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세계 어디에서나, 누구나 가디언의 뉴스에 접근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만큼 가디언 기사의 구독률도 급증했다. 1999년에 웹사이트에서 첫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월평균 100만에 불과했던 사이트 방문자 수는 지난 2020년, 그 238배에 달하는 2억 3,800만을 기록했다.5)
가디언의 비평가들
이처럼 가디언은 심층적인 탐사보도를 자신의 브랜드 정체성으로 만들어 정론지로서 명성뿐 아니라 수익 면에서도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디언에도 적은 있다. 보수와 진보 모든 진영에 가디언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이 있다.
보수 진영의 고전적인 비판은 주로 가디언의 엘리트주의를 겨냥한다. 일례로 최근 영국의 방송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의 새로운 회장으로 초빙 논의가 있었던 데일리메일(The Daily Mail)의 전 편집장, 폴 데이커(Paul Dacre)는 2007년 강연에서 가디언과 BBC를 묶어 ‘엘리트주의’ 매체라 규정하고 “다수에게 소수의 가치를 강요한다”고 비난한 바 있다.6)
영국 좌파에서도 가디언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만 하지는 않는다. 가디언의 200주년 기념일과 맞물려 출판된 에세이집인 《자본주의의 가책(Capitalism’s Conscience)》은 영국 정치, 사회, 문화 분야에서 가디언의 공헌을 전·현직 가디언의 기자들,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던 언론학 교수들이 모여 심도 있게 평가했다.7) 눈여겨볼 점은 이 책의 저자 상당수가 “가디언이 좌파의 믿음직한 동맹”이라는 통념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편집을 맡은 데스 프리드먼(Des Freedman) 영국 골드스미스런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문화연구학과 교수는 “가디언은 사회주의자 또는 반제국주의 목소리들을 일관되게 지지하지 않았다”며 보수 성향의 정론지인 데일리메일이나 텔레그래프(Telegraph)가 “보수당의 선거구를 위해 한 것”처럼 노동당에 하는데 “실패했다”고 단언한다. 이어 가디언의 창업주인 존 에드워드 테일러의 재산이 노예무역과 밀접하게 결부된 면직물 산업으로부터 축적됐다는 불편한 진실을 언급하며 가디언의 신화 역시 수정될 필요가 됐다고 지적했다. 테일러는 책 제목 ‘자본주의의 가책’처럼 시대적 진실들에 대한 규명을 원한 것이지 신문 창간을 통해 진보를 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미디어 행동가인 저스틴 슐로스버그(Justin Schlosberg)는 가디언에 대한 가장 최근의 비판이었던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 전 노동당 당수에 대한 ‘가디언의 비판적 보도와 적대감’을 분석하며, 그 배경에 브렉시트 맥락에서 부자 증세·최저임금 인상 등을 정책으로 내세운 코빈의 대응이 ‘포퓰리즘 좌파’라는 비난을 낳았던 것을 든다. 출범 이래 ‘자유주의의 가치’를 옹호해 온 가디언은 코빈이라는 “포퓰리즘의 발현에 맞서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맨체스터 사회학과 교수이자 최근까지도 가디언에서 활동한 저명한 칼럼니스트 게리 영(Gary Younge) 역시 가디언은 “좌파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8)
하지만 이러한 가디언의 비판들은 역설적으로 가디언이 좌파와 우파, 그 어떤 조직이나 권력과도 무관하게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가책》의 저자들 역시 영국 정치의 맥락에서 가디언이 ‘노동당’과 맺은 관계를 비판적으로 논의하지만, 정론지로서 가디언이 보인 성과나 함의는 인정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가디언의 다음 행보는 어떠할까. 200주년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바이너 편집장은 “시대가 바뀌어도 가디언의 가치는 (…)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며 종전처럼 가디언이 저널리즘에 있어 고수해 온 원칙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을 이익보다 우선시할 것이라며 에세이를 끝맺었다.
“200주년,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1) <History of the Guardian>, The Guardian, 2017.12.11, https://www.theguardian.com/gnm-archive/2002/jun/06/1
2) https://www.collinsdictionary.com/dictionary/english/guardianista
3) Rusbridger, A., <Two Centuries of ‘The Guardian’>, The New York Review, 2021.5.27, https://www.nybooks.com/articles/2021/05/27/two-centuries-of-the-guardian/
4) 이후 러스브리저 편집장은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9시간 동안 구금됐고, 이후에는 하원 특별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스노든에게 자료를 넘겨받아 기사를 작성한 글렌 그린왈드(Glenn Greenwald) 기자의 경우, 연인이 공항에서 구금됐다 풀려나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이들은 이후 가디언에 이어 스노든 폭로를 실은 워싱턴포스트와 함께 퓰리처상으로 보상을 받게 된다.
5) Elliott, L., <How did the Guardian survive 200 years?>, 2021.5.7, https://www.theguardian.com/media/2021/may/07/guardian-200-how-survive-two-hundred-years
6) Gibson, O., <Dacre attacks BBC 'cultural Marxism’>, The Guardian, 2007.1.23, https://www.theguardian.com/media/2007/jan/23/dailymail.bbc
7) Freedman, D. D., 《Capitalism's Conscience: 200 Years of the Guardian》, 2021.
8) 지면에서 언급하지 못한 가디언에 대한 또 다른 비판으로는 여성주의 운동 보도의 한계다. 마릴 판베커(Mareile Pfannebecker)와 질리 보이체 케이(Jilly Boyce Kay)는 가디언이 트랜스젠더의 권리에 반대하는 점을 들어 ‘중도주의적 페미니즘’ 논조를 보인다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