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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조선일보 '부적절한 일러스트' 게재 논란 토론회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1-09-03

조선닷컴은 지난 6월 21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딸 조민 씨와 전혀 상관없는 기사에 두 사람을 연상시키는 삽화를 삽입해 물의를 빚었다. 조선일보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라고 변명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 언론의 허술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건 뒤에 숨겨진 한국 언론의 본질적 문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 6월 21일 자 조선일보 기사(왼쪽)는 조국 전 장관 부녀 삽화를 넣었다. 오른쪽 사진은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가 지난 2월 27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로, 이 기사에 실린 삽화가 지난 6월 21일 자 성매매 유인 강도 사건 관련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기사에 쓰여 논란이 됐다. <출처 - 조선일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정치적 음란함에 내재된 한국 언론의 문제

 

언론 현실은 우리의 윤리적 상상을 이미 초월한 상태다. “먼저 씻으세요” 믿기지 않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신문인 조선일보, 정확히는 조선닷컴의 기사 제목에 들어 있는 표현이다. 성매매로 유인해 지갑털이를 한 범죄 보도에 삼류 음란 영화 포스터에나 나올 법한 글이 붙은 것이다. 한때 언론학자들은 언론의 선정성을 분석하고 비판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규범적 비판이 무척이나 부질없어 보인다. 이 보도는 한국기자협회의 10대 윤리 강령도 굳이 규정하지 않고 있는 질 낮은 반윤리적 ‘저널리즘’이다. 비록 조선일보의 윤리 규정 제9장 제2조 4항은 “음란하거나 잔혹한 내용으로 선정적인 편집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금지하고 있지만 타락한 언론 현실 앞에서는 자체 윤리 강령이나 준칙은 무용하고 기자들의 취재와 보도 현실 앞에서 무기력해 보인다.

 

그런데 더 심각하게도, 이 기사는 언론 윤리를 넘어서 증오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범죄에 가까운 ‘실수’를 범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 조국 전 장관 부녀 삽화를 이 음란한 기사에 끼워 넣은 기자의 행위를 말한다. 이 삽화는 해당 기자가 ‘의도하지 않은’ 악의 없는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인정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이 기사는 성적 음란함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언론과 사회를 모두 타락시켰다. 즉, 이 삽화는 자체 윤리 규정으로도 포착하기도 애매한 천박한 ‘정치적 음란함’을 드러냄으로써 사회와 언론을 증오와 혐오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본래 인간은 명확한 의도마저 모호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러한 언어의 반어적이고 은유적 기교 속에서 정치의 언어는 음란하게 우리 의식을 침잠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다. 정치 언어는 자주 불명확성 속에서 명징하게 확정하는 증오에 기생한다. 진실로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악의와 실수 사이에 갇힌 상태인가? 이로써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윤리적 규범이 요구되는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인가? 경솔한 실수와 의도적 불순함 사이 어딘가에서 독자들까지 조롱하는 이 삽화가 전달하려고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 기사 아닌 배설물은 한국 언론의 어떤 상태를 상징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를 중단시킬 수 있을까? 지난 7월 22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악의적 보도와 실수 사이: 언론 윤리 회복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통해 이 음란함으로 가득 찬 기사에 내재된 한국 언론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보자.

 

 

2021년 7월 22일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악의적 보도와 실수 사이: 언론 윤리 회복을 위한 긴급 토론회’ Ⓒ한국언론진흥재단

 

 

적대 문화의 산업화

 

문제가 된 삽화는 해당 기자가 해명한 대로 조선일보 디지털 미디어 운영 시스템에서 가져다 쓴 것이다. 이 삽화가 처음 등장한 기사는 조선일보의 <문파타파>라는 기명 정기 칼럼이다. ‘문파’라고 하는 어떤 정치 세력을 ‘타파’하고자 하는 적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적대는 친문이라고 하는 모호한 정치 세력 전체를 향하고 있으며 문파에 속한다고 보이는 이들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윤리적 성찰도 유보할 것을 명령한다. <조민 추적은 스토킹이 아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제하에서 서민은 이렇게 주장한다.

 

“조민을 옹호했던 수많은 친문 중 그 누구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조민의 의사 생활을 계속 추적하되, 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심지어 그는 조국 전 장관의 아들 조원 씨의 입대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암시적으로 요청하기도 한다. 이 증오와 적대, 반지성적 언어가 한국의 보수 주류 언론이라는 지적 공론장에서 정상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악의적 보도와 실수 사이: 언론 윤리 회복을 위한 긴급 토론회’에서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이것이 한국 보수 언론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보수 언론의 적대 문화와 격분 산업>이라는 발제문에서 송현주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기 노골화된, 변화된 질서에 대한 부정과 상대에 대한 혐오와 증오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적대 문화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을 지배하고 있으며, 민주화 이후 35년에 걸친 취재와 보도의 바탕에 자리 잡은 정서”라고 평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화하는데, 주류 언론에 의해 20년 가까운 적대의 언어에 노출된 젊은 세대에게 반윤리적 언어가 지극히도 정상적인 언어로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는 이들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와 함께 오늘날 문화 산업의 주류적 가치로 발전해 왔다. 보수 일간지와 방송에서 기원한 적대 문화가 포털의 관문을 거치고 웹진, 팟캐스트, 유튜브로 확산한 후 다시 신문,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라디오로 회귀하는 증오와 적대의 무한 밸류 체인(value chain)이 구축돼 가고 있다. 우리는 증오와 적대의 뫼비우스 띠라는 언론 생태계에 갇힌 것일까? 마찬가지로 송현주 교수는 이것이 한국판 “격분 산업(The outrage industry)”1)이 완성돼 가는 과정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윤리 강령과 준칙은 적대와 격분이 돈이 되는 ‘장사’라는 논리 앞에서 형해화 된다. 어쩌면 윤리적 보도와 기사는 증오와 적대를 정상적(legitimate) 언론을 통해 체험한 젊은 기자들에게 오히려 위선적인 거짓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의 성적 음란함과 정치적 음란함이 중첩돼 나타난 해당기사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자 사고가 아닌 증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선일보 성매매 삽화 사고 경과 <출처 - 필자 제공>

 

 

의미화될 수 없는 보도의 체계적 생산

 

그럴 수도 있다. 정파적으로 대립하는 언론은 이념과 가치의 격돌을 미디어 공론장에서 전개할 수 있다. 이 적대와 격분을 정치적 공방의 한 방식으로 순화해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언론 상태는 그러한 반론으로도 가릴수 없는 체계화된 비정상적 언론 생산 공정을 이미 구축하고 문제들을 오랫동안 방치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합리화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조선일보의 성매매 삽화 사고 경과를 봐도 기사 생산 및 편집, 그리고 데스킹 과정이 전문직 주류 언론사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이 토론회 발제에서 기존의 정파적 대립은 말할 수 있는 영역(Domain of speakable)과 말할 수 없는 영역(Domain of unspeakable) 간의 대결 구도였다면 오늘날 타락한 언론 보도는 “의미화될 수 없는 영역(Domain of Unsignifiable) - 소위 ‘실수’의 영역”이 디지털 뉴스 생산 시스템에 의해서 정식화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즉, 이 사고는 조선일보만의 실수도 아니고 이러한 “‘실수’가 담론의 도메인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우연도 아니며 일시적 사고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영역’의 성격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징후적 ‘사건’”들의 일부라는 것이다.2) 

 

토론회 참여자들 모두가 이번 삽화 사건과 유사한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제시하고 있다.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일반 시민의 사진을 ‘마트에 뜬 조두순’으로 줄줄이 보도한 언론사들의 사례, n번방 사건을 다룬 온라인 기사에서 세계일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진을 사용한 사례, 조선일보의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보도에서 다섯 차례나 보도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문재인 대통령 삽화를 사용한 사례, 그리고 최근에는 도쿄 올림픽 기간 MBC의 그래픽과 자막 실수들과 연합뉴스TV의 재벌 3세 마약 실태 보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반신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그래픽 사용 사례들은 한국 언론이 이제 전통적 생산 시스템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그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믿게 한다. 파이낸셜뉴스가 인사평가체계에 기사 개수와 조회수 중심으로 정량적 평가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타 언론사들은 새롭지 않다는 시선이다. 이 토론회의 토론자로 참석한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조선일보의 이번 삽화 사고는 공적 이슈의 프레임과 의제를 설정하는 언론의 기능보다 기자 자신의 기사 “주목도와 노출”에 민감한 현 언론 생산 시스템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격분 산업화된 언론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일반 시민의 명예를 훼손하고 적대하는 진영을 조롱하며 편견과 증오와 혐오를 자유롭게 확산시키고 있다는 비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곤경에 빠진 표현의 자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토론회의 또 다른 토론자인 김지미 법무법인 정도 변호사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실수가 특정인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우리는 그것을 ‘악의’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실수와 악의는 명확하게 경계를 드러내지 않는다. 악의는 모호함 속에서 잔인한 악의를 최종적으로 실현하곤 한다. 그 모호한 의도성의 경계 속에서 누군가는 명징한 권리와 자유의 침해를 경험하며 개인을 파산 상태로, 가족의 해체로,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 번째 발제자인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이러한 모호한 ‘실수’의 해법을 자율규제의 강화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같은 타율적 규제에서 찾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사의 사회적 책무와 철학적 비전이 불투명한 포털의 언론 시장 잠식에 따른 악의적 보도의 지속적 생산과 확산, 그리고 홍보대행사로부터 소액결제 ‘깡’을 하면서 기사를 송고하는 언론사의 타락에서 자율심의와 규제의 정당성은 그 진실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같은 언론에 대한 제도적 규제 법안이 논란적인 법리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이유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명확성 원칙과 과잉 금지의 원칙으로 반대하는 논리는 그 진정성과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악의의 본질을 외면하고 반복되며 과잉되는 ‘실수’로 인해 그 정당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진정 시민들의 언(言)과 론(論), 그리고 표현의 자유는 이러한 모호한 실수와 악의의 어느 중간에 갇혀 있다. 곤경에 빠진 시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시민이나 국가가 아닌 언론 기업에 우선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만은 이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부정할 수 없다.

 

 

 

 

 

 

 

 

1) Berry, J. & Sobieraj, S., «The Outrage Industry»,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2) 송현주 교수는 발제문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제재에 나타난 종편 시사·보도 방송언어 문제점 분석>을 인용하면서 정신질환, 노예, 썩은 고기, 하이에나, 새정치 오물, 탈레반, 닭, 얼굴마담, 불임대표, 흉악한 지역주의자, 불륜, 천 년 묵은 구렁이, 도깨비 형상, 사이코패스, 마약 중독자, 섹스 중독자, 잡놈 새끼 등등 한때는 의미화될 수 없던 이른바 ‘일베’ 언어가 말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이미 들어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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