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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이용자의 권리를 보호·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자위원회와 시청자위원회. 그러나 제 역할을 해내기보다 관행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권으로서의 미디어 이용자의 권리를 지키고 산업과 시장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각종 이용자 위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관행적 제도는 시장의 이익에 복무
시청자위원회와 독자위원회 등 미디어 이용자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제도는 대표성, 직무와 권한, 그리고 실제 역할 등에 있어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언론사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시청자와 독자의 실질적인 참여를 통해 시민을 위한 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미디어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미디어 조직의 재량에 따라 실행 원칙과 방식 및 그 효과를 ‘예외적’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제도가 실효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형식화된 제도 실행을 우리는 여러 유형의 규칙 중에서 ‘관행’적 제도라고 일컫는다. 관행의 목적은 그 실행 주체의 이익을 고려해 시류에 편승하고 책임을 시류에 위임하는 것이다.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는 관행에 대해 도덕과 법에서 규범 위반에 대한 의식 결여로 인해 면책 작용을 갖는 규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관행은 불법은 아니지만 면책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디어 이용자 권리의 상태가 그러하다. 현행 시청자위원회와 독자위원회 제도의 근본적 역할은 이용자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있지 않고 그러한 책임의 ‘면책 사유’로서 기능하기 위해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이용자 권리를 위한 대표적 제도인 이 두 제도의 상태가 이러하기에 현재의 미디어 이용자 권리 상태는 훼손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정책은 사회·문화적 ‘규제’ 그리고 산업적 ‘진흥’ 가치를 국가가 모두의 책무로 명시화한 것이며 이는 각각 사회와 시장의 권위를 국가가 유지하고 강화할 것을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용자 권익이라는 사회·문화적 가치가 한낱 면책 사유로 전락했다는 것은 미디어의 사회적 권위-즉, 시민의 정치와 문화적 자유를 향유할 권리-가 형해화됐음을 의미한다. 제도적 관행화의 본질적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가 제도화한 이용자 권리가 관행화됐기에 시장의 자율적 제도도 이를 모방해 스스로 면책 조건을 세우고 이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다. 제도의 관행이 문화화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네이버와 카카오의 언론 자율기구인 제휴평가위원회의 제휴 언론사 심사 요건 중 미디어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윤리적 실천 의지’는 단순히 언론윤리강령을 제정하고 준수할 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제휴 신청을 한 언론사는 이용자 권익을 ‘면책’ 받는 대신, 기본점수 ‘5점’을 획득하게 된다. 실제 이 제도로 실현되는 것은 이용자 권익이 아니라 제휴심사를 통과해 정치·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언론사의 이익임을 보여준다. 편집과 독자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여부가 정부 광고 지표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정확히 관행적 제도의 역할-언론 시장의 안정과 유지-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줄 뿐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Ferdinand T nnies)는 관행이 이익사회(Gesellschaft)의 주요 관심사라고 했다. 공동사회는 관습을 통해 공동체의 이익을 영속화하려 하고 이익사회는 관행을 통해 그러하다. 오늘날 이용자 권익은 이익을 추구하는 언론 시장을 위한 면책 조항의 성격을 갖는다.
결국 국가가 제도화하고 시장이 자율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현행 이용자 권익 제도는 제도적 목적뿐만 아니라 그것의 실현 방식마저 시장을 위해 타락시킴으로써 이용자 권익이 사회·문화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타락까지 부추긴다.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근본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 이는 분명 단순히 시청자위원회와 독자위원회 제도의 가이드라인을 현실화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통제적 조치의 부가로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오늘날 미디어 사회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용자 권익의 내용과 가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청자와 독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들이 시장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관행화됐다는 문제에 더해, 그 제도 자체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미디어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없는 불능 상태에 놓여 있다.
이용자 권리 체계의 전면적 재고 필요
최근 김은규 등의 연구에 의하면1), 규제 관련 이슈에서 이용자 권익과 관련한 이슈 범주의 출현 빈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그림 1] 특히 2020년 이후 이와 관련한 이슈들의 빈도가 급증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수신료 문제, 가짜뉴스 및 혐오 표현, 음란물을 포함한 유튜브와 구글 등 OTT 및 플랫폼 관련 이용자 권익 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연구에서 이용자 권익 및 보호 이슈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그림 2] 이용자보호법령 관련해 구체적인 키워드 발생량 추이를 살펴보면 개인정보 보호, 위치 정보 등 데이터 산업 관련 이슈들이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시청자 권익 보호 및 증진 대상에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관련한 이용자 권익 내용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위치 정보 등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규제의 사각지대를 부실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보도가 자주 발견된다. 이용자 권익 및 보호 이슈 관련 키워드 분석 발생량의 추이도 이러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데, 개인정보 보호, 사이버 보안, 음란물·성착취물, 이용자 보호와 같은 이슈들이 언론의 주요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었다. 또한 ‘이루다’와 같이 AI의 편향성과 관련해서도 이용자 권익의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었으며 허위 조작 정보·가짜뉴스, 그리고 혐오 표현과 같은 언론 미디어와 관련해서도 이용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보도가 증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에서 드러나듯이, 언론 관련 이슈들과 미디어 관련 이슈에 대한 구분은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이용자 권익의 보호를 위해 방통위와 같은 미디어 정책 기구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과 일반 미디어 간 구분을 통한 규제보다 체계화된 통합적 이용자 권익 제도 거버넌스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그림 2] 이용자 권익 및 보호 이슈 관련 키워드 발생량 추이 (단위: 기사 건수(건))
최근 들어 틱톡(TikTok)과 같은 SNS 서비스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하거나 AI의 차별과 편향성 등에 따른 이용자의 권익 침해 사례와 이슈도 증가하는 등 데이터 기본권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방통위가 크리에이터와 이용자 보호를 위해 마련한 ‘온라인 플랫폼-크리에이터 상생 및 이용자 보호 가이드라인’은 카카오·네이버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이용자 권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자극하기도 해, 방통위의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이용자 권익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언론이 정책적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연구에서 방통위의 규제와 관련한 학술 연구 논문에 대한 분석도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었는데, 특히 이용자 보호를 위한 키워드들의 발생량이 두드러지게 높게 나타났으며, 이에 반해 산업 활성화는 상대적으로 낮은 관여도를 보여줬다. 이러한 자료들은, 언론과 학계 등 미디어 정책의 담론을 형성하는 주요 구성 주체들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용자 권익 이슈와 규제 체계 마련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무부처가 특정되지 않거나 방통위와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으로 분산된 미디어 규제 제도로 인한 정책 조율의 어려움 등이 산재한 현실에서 이용자 권익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제도적 환경은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한국 사회뿐만 아니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국가의 미디어 규제 기구는 미디어 산업 독점 규제와 이용자 권익 보호를 광범위하게 재구조화하고 있다. 미디어가 단순히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삶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디어 이용자 권리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본권적 요소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문제의 본질은 시청자위원회와 독자위원회와 같은 특정 매체 중심의 관행적 제도의 실효성을 회복하는 것에 있지 않다. 이용자 권리의 가치와 내용 및 실현 체계의 전면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소통권적 기본권으로서의 미디어 이용자 권익
기존의 시청자와 독자의 권익은 20년 전 방송과 신문 중심 매체 환경과 1990년대의 정치를 반영한 규제 체계 속에서 시청자와 독자 주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기획됐다. 그러나 현재의 시청자 권익은 방송법상 그 실질적 개념도 명확하지 않은데다가, 앞서 제기한 매체 환경 변화에 따른 미디어 이용자 권익의 내용과 방식을 방송법에 담아내는 것은 어렵다. 적어도 공론장의 참여와 담론 형성 과정이 변화했다. 미디어 융합 환경에서 미디어 이용자의 역량과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력, 데이터와 이용자의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 네트워크 기반 서비스에서의 다양한 문제, 미디어 생산자뿐만 아니라 미디어 소비자에 의한 이용자 권익의 침해, 인격권적 차원에서의 무차별적 데이터 수집과 가공 등 미디어 이용자들을 위해 새로운 권익의 가치와 개념이 요구된다. 하지만, 시청자·독자 권익에서 이용자 권익으로의 개념적 변화는 단순히 미디어에 의한 이용자의 권리 침해 요소를 방지하고 구제하고 보상하는 시혜적이고 통제적 방식을 매체 환경에 적용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오늘날 개인의 일상과 관계는 모든 측면에서 미디어를 통한 소통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이러한 미디어 소통 환경이 우리 삶에 전면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개인의 기본적 권리 역시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적 가치와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의 매체와 정보에 대한 접근권과 피해 구제권을 넘어서 개인과 공동체가 그들을 위한, 그들이 원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회적 소통 결정권을 갖게 하며, 미디어를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소통 역량을 강화하고, 다른 이와 분리된 자신만을 위한 권익이 아닌 다른 개인과 공동체의 소통 권익도 고려하고 책임지는 책무적 권리 등 소통 권익의 가치와 지향점을 담은 개념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용자 권익에 있어서 이러한 상호의존적인 가치가 중요한 이유는 네트워크 플랫폼 기반 정보와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및 서비스 이용 환경이 과거와 같이 분절된 개인이나 파편화된 공동체적 환경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고 의존적이며, 기술의 개발과 서비스의 형태와 방식이 이용자의 삶의 모든 측면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있고, 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와 관계 맺음의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이용자 권익은 매체로부터의 권익의 보호와 증진이 아니라 이용자 소통 환경으로부터의 삶의 보호와 행복의 추구라는 기본권의 차원에서 개념화가 될 필요가 있다.
미디어 이용자 권익 거버넌스
정권 교체기다. 차기 윤석열 정부 미디어 정책의 주요 내용과 그것을 실현할 거버넌스 체계 등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하지만 보수 정권 교체 시기는 규제보다 진흥이, 사회문화적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가,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보다 산업 효율과 혁신이 우선되곤 했다. 정책 수단의 성격에서도 거버넌스 지원보다 권위적 평가와 통제의 경향을 보여왔다. 지난 2008년 이후에는 시민 참여에 의한 미디어 권익 강화를 위한 정책적 논의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미디어 거버넌스 차원에서도 산업과 정치적 논리를 벗어나는 데 한계를 보여 왔다. 보수 정권하에서 발생했던 미디어 산업 내 정치적 갈등을 기억한다면, 차기 정부에서 이용자 권익을 보호하고 진흥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오히려 기존의 시청자·독자 권익마저도 이전보다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원칙적이면서 그간 사회적으로 논의가 진행돼온 이용자 권익을 위한 미디어 권익 보호 전담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필요성을 요구해야 한다. 관행화된 제도를 통해 이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언론과 미디어에 그러한 요구를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미디어 권익 보호를 위한 거버넌스 설치는 보다 근본적인 미디어 규제 체계의 재편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이견은 있으나 합의가 가능한 수평적 규제 체계를 바탕으로 보다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평적 규제 체계와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권역별 지역 미디어 권리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 이용자 권익에 관한 제도는 지역에 맞게 마련돼야 한다.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을 고려해 위원의 구성과 선임 그리고 운영 방식이 결정돼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용자 권익이 시장과 산업의 진흥을 보조하거나 기존의 시청자·독자 권익 수준으로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산업 진흥과 거래 공정, 그리고 공공성과 시민권익 보호는 경쟁 가치가 아니라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공통 가치다. 시장과 사회의 분리가 아니라 공존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제라도 국회에서는 소통 기본권으로서 이용자 권익을 제도화하고 미디어 생태계의 공진에 부합하는 산업 진흥을 위해 시민사회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미디어개혁위원회 구성을 한시적으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1) 김은규·채영길·이정훈·정미정, <빅데이터를 활용한 방송통신 주요 이슈 분석 및 제도개선방안 연구>, 방송통신위원회,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