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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 리뷰: 《좁은 회랑》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1-10-29

《좁은 회랑》 Ⓒ시공사 

 

 

왜 역사가 중요한가

 

역사적 조건은 왜 중요한가? 코스타리카와 과테말라를 비교해 보자. 이 두 나라는 1821년까지 스페인 식민지였고, 비슷한 지리와 문화유산을 가졌다. 그러나 19세기 말 세계 커피 시장이 커지고 두 나라의 간극은 점점 벌어져서 이제 코스타리카는 평화로운 선거를 치르는 개발도상국에 속하지만, 과테말라는 과두 체제를 유지하는 엘리트가 원주민 노동자를 착취하는 빈곤한 국가로 남았다.

 

《좁은 회랑》에서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와 로빈슨(James A. Robinson)은 국가와 사회 간의 긴장이 만들어 내는 균형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한다. 코스타리카와 과테말라처럼 유사한 식민지 경험과 세계 커피 시장 확대와 같은 구조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나라들도 그 균형 조건이 달라지면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 간의 균형이 유지되느냐 아니면 한쪽으로 허물어지느냐에 따라 민주적 발전의 좁은 회랑을 걷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회랑 밖으로 미끄러져 억압적인 저개발 국가로 남을 수도 있다.

 

과테말라에서 지배층을 라디노(ladino)라 부른다. 인류학자 최진숙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에서 메스티소(mestizo)라 불리는 종족 집단은 일반적으로 스페인 사람과의 혼혈 집단을 의미하는데, 과테말라에서 라디노는 철저하게 ‘인디언 피가 섞여 있음을 부정함’으로써 성립하는 집단이다. 인종적 집단이라기보다 사회문화적 지배 집단이란 뜻이다. 세계 커피 시장이 커질 때, 과테말라 라디노는 농산물 수출 정책을 채택해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유지했다. 이를 위해 원주민을 토지로부터 내몰아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했다. 원주민은 커피 농장에서 강요된 노동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투표할 권리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선출하는 대통령은 라디노의 대통령이었을 뿐이다. 과테말라 통치 세력은 원주민 농업 노동자를 착취해서 약탈적으로 국가로 만든 독재적 리바이어던(leviathan)1)을 유지했다.

 

반면 코스타리카는 국제 커피 시장의 활황에 힘입어 자작농 기반 커피 경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1828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이뤄진 자작농에게 토지 소유권을 주는 입법과 부의 집중을 막는 입법이 크게 기여했다. 코스타리카에는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지주계급이 성장할 수 없었고, 따라서 이들이 국가권력과 결탁해 식민지 시대에서 유래한 집단 강제노동을 제도화하지도 못했다. 코스타리카 엘리트는 가문과 당파, 커피 자본가와 군인 등으로 서로 나뉘어 경쟁했지만, 내전을 벌이지 않았고, 토지 재산권을 유지했다. 군대를 작은 규모로 통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결국 1948년 이후 엘리트는 군대를 폐지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만들어 낸다. 코스타리카는 국가권력의 평화적 통치와 자작농 기반 커피 경제가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민주주의 공고화라는 좁은 길을 걷고 있다.

 

사회과학자의 발전론

 

일급 사회과학자가 제언하는 국가 발전을 위한 정책적 제안이 도대체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다면 《좁은 회랑》을 읽어 보면 된다. 경제학자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다루고, 역사학자라고 하기엔 이론적 모형화가 너무 강하다. 또한 정책학자라고 하기엔 무엇을 해야 할지 전략적 지침이 없다. 그러나 같은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가진 사회가 어떻게 서로 다른 국가로 발전하는지, 같은 제도를 도입한 나라가 어떻게 다른 성과를 내는지, 그저 저자의 의견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 이유를 들어서 설명하는 방식이 일급 사회과학자의 수법이다. 이미 검토한 조건에 더해서 다른 요인들의 작용이 유사하다면 대체로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지, 자료에 근거해 논변을 전개하는 방식이 정연하고 설득력 있다. 그저 그런 정세 분석, 경기 전망, 경영 지침, 정책 평가 등과 결이 다르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전작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제도가 역사적 분기를 만들어 내는 방식에 대해 논의했다. 같은 식민지 착취에 시달린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이지만, 콩고민주공화국과 보츠와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국가로 발전했다. 전자는 분열적 정치와 착취적 제도를 이용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엘리트가 약탈을 지속하기 좋은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했다. 엘리트가 약탈하기 좋을 정도로 나라를 운영하는 조건에서 누구도 창의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런 약탈적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망해간다. 반면 보츠와나는 포용적 정치 제도를 기반으로 과도한 불평등을 막고 창의적 경제 발전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혹시 포용적 제도가 만들어 내는 차이라는 게 그저 무수한 역사적 갈래 중 저자들이 입맛에 맞는 사례만을 골라낸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다. 저자들이 2001년 《미국경제검토》에 출판한 <비교경제발전의 식민지 기원(The Colonial Origins of Comparative Development An Empirical Investigation)>이란 제목의 논문을 찾아보면, 의심보다는 안심에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애쓰모글루와 동료들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제도화돼 현재의 경제 발전 정도에 미치는 효과가 우연이 아니라는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사회과학자들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이들은 민주화니 산업화니 하는 그저 하기 좋은 말을 떠벌리다 난데없이 이렇게 하자고 외치는 평론가가 아닌 것이다.

 

족쇄를 찬 리바이어던

 

《좁은 회랑》에서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말했던 포용적 제도의 효과라는 것이 일종의 좁은 통로를 지나는 과정임을 밝히고 있다. 제도의 효과를 보장하기 위해 정치적 행위자들은 단순히 정기적으로 평화적 선거를 하고, 재산권을 보호하며, 권력 독점을 막는 견제 장치를 도입하는 것 이상의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저자들은 이 과정과 노력을 묘사하기 위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의 조언을 소개한다. 국가권력의 폭주와 사회규범의 억압을 견제하기 위해 어느 한 편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있는 힘껏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유치한 부분이 바로 이 붉은 여왕의 비유다.

 

비유가 어떻든 요점은 명확하다. 지배층이 국가권력을 동원해 사회 구성원을 착취하는 나라는 일시적으로 번영하는 듯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약탈 이외에 다른 동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탈적 리바이어던에 족쇄를 채우지 못하면 위험하다. 반면 사회 쪽이 너무 강해서 억압적 전통이나 규범이 끈끈하게 작용하고 정당한 통치 권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런 사회의 삶은 ‘끔찍하고, 잔인하고, 짧은’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권력 의지를 담은 리바이어던 자체를 형성하지 못한 사회는 분열과 무질서 속에서 아무것도 이룩할 수 없다.

 

[그림] 족쇄 찬 리바이어던의 진화


[그림]에서 가로축은 리바이어던에 저항하는 사회의 힘을 나타내고, 세로축은 국가의 리바이어던의 세기를 나타낸다. 전자가 너무 강하면 권력의 부재로 인해 무질서한 폭력이 난무하고, 후자가 너무 강하면 통치자들이 폭력을 동원해서 사회집단을 착취하게 된다. 두 극단을 피해서 가운데 길처럼 난 회랑을 걸어야 하는데, 이 회랑은 붉은 여왕의 효과에 따라서, 즉 어느 한 편으로 떨어지지 않게 견제하고 노력한 결과에 따라서 좁아질 수도 있고 넓어질 수도 있다.

 

강력한 독재 권력이 국가주도형 발전 국가를 추구하는 경우 사회를 압박해 일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도 있는데, 이런 성과에 홀리면 곤란하다. 나치당 정권하에서 독일의 관료 조직이 결행했던 사회통제나 중국 공산당이 추구한 대약진 운동도 성과를 낼 수 있다. 좁은 영역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가 총동원을 내려 답변을 구하려고 하면 일시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발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발전의 과실을 통치자들이 나누고 나면, 그 나머지는 항상 부족하기 마련인데, 누구도 발전의 과실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생산에 기여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적 리바이어던은 통제와 강요된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일시적으로 그리고 제한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리바이어던인가?

 

《좁은 회랑》에서 가장 흥미로운 서술은 제9장 ‘세부적인 것들 안의 악마’에 담겨 있다. 제9장은 글머리에 소개한 세계 커피 경제의 확장에 따른 과테말라와 코스타리카의 분기에 대한 고찰도 담고 있다. 전쟁 위협에 맞서 국가가 동원 체계를 만들어 내면서 발전의 회랑 안에 있다가 독재적 리바이어던으로 나간 프로이센, 회랑 안으로 들어서는 데 성공한 스위스, 그리고 국가의 통제권에 대한 종족의 자율성을 포기하지 못해 결국 회랑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몬테네그로의 서로 다른 사정이 흥미롭다. 애쓰모글루가 주장하는 ‘제도의 조건적 효과’에 대한 이론화를 돕는 관찰들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보고는 폭력을 독점하는 국가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아니 그런 국가 형성을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수많은 리바이어던 부재 사회들에 대한 것이다. 예컨대, 나이지리아 베누에강 유역에 거주하는 티브(Tiv)족을 보자. 이 종족은 어디에나 있는 추장과 같은 지위마저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종족은 ‘니암부아’라는 종교의식을 갖고 있는데, 이 의식은 차브(tsav)라는 신비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 즉 ‘음바차브’가 주술을 행사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짓 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티브족은 공동체에서 누구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그를 음바차브라고 규정해서 그의 힘을 빼앗으려 한다. 일단 주술사로 몰리면 공동체에서 소외되므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티브족은 초보적인 정치권력, 행정권력, 경제적 동원력 등 어떤 형식의 권력도 만들어지는 일 자체를 거부하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리바이어던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 사회와 달리, 형식적으로 존재할 뿐 사실상 사회 규범을 규율하는 정당하고도 실체적인 권력으로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훨씬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국가는 있지만 위생, 안전, 전력과 같은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레바논이 대표 사례다. 이런 국가는 사회를 장악하기 위해서 인구, 사회집단, 인종 구성 등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아니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국가는 고전적인 관료적 통제, 즉 합리적-법적 권위에 의한 통치를 할 수 없고, 결국 무질서로 미끄러져 나간다.

 

국가 관료제의 통제가 너무 강력해서 일종의 ‘철장 효과’를 만들어 내면, 그것은 독재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예 관료제 자체가 작동하지 않거나, 아니면 아르헨티나와 같이 정치적 연줄에 의해서 특혜를 누리는 ‘종이 리바이어던’에 불과하면 시민들은 이중의 고통을 받게 된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특히 국가의 통치가 약해진다고 해서 저절로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종이 리바이어던이라고 해도 약탈적으로 힘을 행사하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권위를 갖고 있으며, 다만 시민사회의 갈등을 중재하지도 못하고, 필수 공공역무를 제공하지도 못하고,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할 가능성만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종이 리바이어던은 독재와 부재의 리바이어던 의 나쁜 점만 모두 갖추게 된다.

 

붉은 여왕의 제도

 

나는 《좁은 회랑》을 읽으며 국가와 사회 간의 힘을 중재하는 제도 중에 언론이 있다고 깨달았다. 비록 이 책에 별도로 언급된 바가 없지만, 언론이 곧 붉은 여왕의 효과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국가가 사회를 통제하는 선전과 동원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사회가 국가를 감시하는 탐사와 비판의 기능을 담당한다.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판독 가능성(legibility)을 실현해야 한다. 이는 원래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제임스 스콧(James C. Scott)이 《통치를 피하는 기술(The Art of Not Being Governed: An Anarchist History of Upland Southeast Asia)》에서 소개한 개념인데,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국가가 조세, 징병, 노역 등 동원을 위해서 사회를 판독하는 역량을 갖지 못하면 무력한 리바이어던으로 전락한다고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다. 국가는 사회의 생산과 재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가구 조사, 자산 등록, 생산 관리 등 사회를 판독하는 일을 수행하는데, 스콧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의 산악민은 국가의 판독 가능성을 피해서 산악으로 이주해 살게 됐다고 한다.

 

나는 국가의 사회에 대한 판독 가능성만큼이나 사회의 국가에 대한 판독 능력, 그리고 사회의 하위 체계 간의 상호 판독이 중요하다고 본다. 언론이 수행하는 역할이란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와 검열을 조직하는 일이다. 통치자가 적절하게 설명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의 통치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서술해서 사회 구성원에게 공개해 알리는 일도 언론의 역할이다. 특히 사회집단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국가의 합리적-법적 권위가 고르고 투명하게 행사될 수 있도록 사회적 소통의 경로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하는 일도 담당한다. 언론은 회랑을 유지하고, 확장하고, 관리하는 붉은 여왕의 효과를 내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다.

 

 

 

 

 

 

1) ‘리바이어던’이란 <욥기>에 등장하는 괴물의 이름이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동명의 저서에서 자연 상태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을 만들어 절대 권력을 양도함으로써 자연 상태를 극복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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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이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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