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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몇 가지 당혹스런 사실들을 배우게 된다. 이스라엘 국가의 모든 시민은 어떤 민족에 속하는지 밝혀야 하는데, 그중 이스라엘 민족이란 없다. 이스라엘 시민은 신분증에 종교를 기재해야 하는데, 종교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에서는 종교혼만 법적으로 인정받는데, 그에 따르면 어머니가 유대인이거나 스스로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은 한 공식적으로 유대인이라 할 수 없다. 이스라엘 시민은 스스로 어떤 민족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 없으며, 유대교 교리를 따르는 국가권력이 인정한 조건에서만 민족을 결정할 수 있다.
텔아비브대 역사학 교수인 슐로모 산드(Shlomo Sand)는 사정이 이렇게 어렵고도 복잡하게 된 까닭을 한마디로 설명한다. 이스라엘 국가의 목적 자체가 이스라엘 시민이 아닌 유대 인민, 즉 유대 사람들을 섬기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유대 사람들이라 부르지만, 실은 그들을 유대 국민, 인종, 민족, 종족, 혹은 다른 어떤 집합적 주체를 뜻하는 용어를 사용해서 부르더라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자국 내에 살면서 세금을 내는 아랍 민족에 속한 이스라엘 시민보다도 나라 밖에 거주하는 유대 종족(ethnos)의 후손을 더 우대한다. 이스라엘은 특유의 민족 관념 위에 세워진 일종의 ‘종족정(ethnocracy)’을 실현한 나라인 것이다.
세계 어디에 살고 있든 유대인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 당신은 이스라엘 정부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해서 정착 지원을 받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현재 이스라엘 국적을 갖고 텔아비브에 살고 있더라도 유대인이 아닌 다른 민족에 속한다면 어쩐지 스스로 주권자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에서는 당신이 공식적으로 유대인인지 아닌지 여부가 중요하다.
모든 현실이 그렇듯이 이런 이스라엘의 현실도 역사적 경로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현대 이스라엘 거주자의 국적, 민족, 종교를 구분하는 그 복잡한 제도적 현실은 유대인이란 특별한 인민의 역사 인식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또한 특수하다. 산드는 바로 그 인민의 역사 인식이란 것이 과연 온당하게 확인되고 서술된 역사라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종족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떠받드는 유대인의 운명적인 역사가 실은 유대인이든 아니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가졌던 이념, 종교, 신조, 그리고 그에 대한 정념에 싸인 서사와 전략적 침묵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임을 밝힌다.
기억되고 망각된 서사들
지금 아라비아반도 남쪽 끝 예멘에 해당하는 지역에 유대 국가가 있었다. 고고학과 금석학 사료들은 4세기 말부터 6세기 초까지 이 지역에 힘야르(imyar)라는 유대교를 믿는 왕국이 존재했다고 말해 준다. 19세기의 열렬한 유대주의자이자 구약성서 연구자인 하인리히 그레츠(Heinrich Graetz)도 이 왕국에 대해서 《유대인의 역사》 제3권에 자세히 기록했다. 이후 1950년대 이전까지 역사가들은 이 유대 왕국의 존재를 의심한 적이 없다.
힘야르 왕국에 대한 기록을 남긴 그레츠는 누구인가? 19세기 말 독일 학계를 휩쓸었던 반유대주의 논문 <우리 유대인에 대한 한 마디>의 저자인 하인리히 트라이치케(Heinrich von Treitschke)는 이렇게 썼다.
“그레츠의 《유대인의 역사》를 읽어보라. 오랜 숙적 기독교에 대해 얼마나 분노에 휩싸여 있고, 게르만 민족의 대변자들에 대해 얼마나 지독한 증오를 갖고 있는지.”
유대주의자 그레츠는 트라이치케의 반유대주의 탄핵에 맞서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에게 소멸되거나 파괴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되받아쳤다고 한다. 그리고는 “트라이치케야말로 슬라브 이름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문헌과 유적으로 역사에 분명히 자취를 남긴 아라비아반도의 힘야르 왕조는 그러나 현대 이스라엘 공식 유대인의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산드는 1950년대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 교과서에서 이 유대 왕국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공식 서사에서 이 왕국의 지배자와 신민의 종족적 기원과 그로 인한 역사적 함의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산드는 아라비아반도에 유대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기독교인들의 유대인 박해로 인한 유대인 추방과 방랑의 서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유대인의 선교에 따른 아랍 민족의 개종 가능성을 말해주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대인 상에 걸맞지 않아 공식 역사가 이 왕국에 대해 침묵한다고 해석한다.
중세 동유럽에 존재했던 하자르(Khazar) 왕국에 대한 역사도 마찬가지다. 북쪽으로는 오늘날의 키이우에서 남쪽으로는 크림반도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했던 이 반유목민들은 주로 중세 튀르크 말을 사용했지만 역시 다종족적이며 다언어 종족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을 통치한 왕조가 일정 기간 유대 일신교를 믿었다는 증거가 엄연하다는 사실이다. 이 왕조의 유대교적 속성 역시 현대 유대 종족주의자들에게 골칫거리가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정녕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진 어떤 핏줄이라고 믿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정복에 의해서든 자발적으로든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로서 결국 아시케나지(Ashkenazi), 즉 근대 동유럽 유대인들의 선조가 된다는 가설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산드는 근대 유대 종족주의자들이 하자르인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근대 시온주의자들은 동유럽에 살았던 이들이 실로 ‘이스라엘의 자식들’이 아니라 개종한 정착민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그들이 추진했던 시온주의 사업에 타격이 될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면서 이스라엘의 종족 정체성 정치가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스라엘은 종족 정체성 정치가 강해지는 만큼 도저히 같은 종족이라고 믿기 어려운 유대교 개종자들의 후손이 근대 동유럽 유대인의 선조라고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파르디(Sephardi), 즉 스페인 유대인의 기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억과 망각은 더욱 미묘하다. 역사가들은 아직도 이들의 기원과 전개를 놓고 갑론을박 중인데, 논점은 결국 이들이 누구의 후손이며 어쩌다가 이베리아반도에 거주하게 됐느냐에 맞춰진다. 이들이 로마 제국시대에 유다 지역에서 추방되거나 망명해 온 유대인들의 후손인지,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했던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가운데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과 그와 함께 살았던 유럽인 후손들인지, 아니면 특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화적 종족집단인지 말이다. 아시케나지, 즉 동유럽 유대인의 기원에서 하자르인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세파르디의 역사로부터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의 연관성을 모호하게 하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정체성 정치의 방식과 기원
역사는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민족주의자과 종족주의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에티엔 발리바르(tienne Balibar)는 종족성(ethnicity)이 20세기 말에 다시 유행이라고 지적하면서, 종족이 민족의 원천으로 작동하기보다 근대 민족주의 운동가들이 종족성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근대 민족주의 세력이 자신을 과거부터 존재했던 자연 공동체라고 포장하기 위해 종족 개념을 동원해서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이다.
과연 인종 개념이 식민지 시대의 차별과 착취에 얽힌 기억으로 체계적으로 지워지면서 새로운 민족주의, 즉 역사문화적 종족주의가 대안적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대인은 이제 인종이 아닌 종족이기에 정당한 민족주의 운동의 주체가 된다. 흔히 무해하게 사용되는 ‘사람들’ 또는 ‘인민’이란 단어 앞에 수식어로 등장하는 바로 그 용어가 종족적 정체성의 원천으로 작동한다.
현대 정치에서 정체성 정치는 어디에나 있다. 인종과 언어, 종교와 문화, 그리고 지역과 계층 등 무엇이라도 정체성 정치의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근대 민족주의 운동에서 종족의 기원과 역사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민족주의 운동이 민족의 독립과 주권국가의 확립으로 이어지든 아니면 착취와 차별, 그리고 내전으로 귀결하든, 민족의 종족적 기원에 대한 서사는 민족주의 운동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격렬한 형태의 인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동력이 된다. 일찍이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갈파했듯이 민족주의란 죽음이라는 최종 사태에 맞서는 신앙의 한 유형이기도 한데, 문제는 어떤 민족주의 운동이 문화적 포용성을 갖춘 민주적 정체를 갖춰 시민적 민족주의로 발전하느냐 아니면 종교적 이념이나 속류 종족생물학이 결합한 배타적인 정치체제가 되느냐다.
산드는 이스라엘에서 정체성 정치가 특유의 종교에 기초한 종족적 성격을 갖게 된 이유를 제시한다. 유대교는 그 자체로 종족의 역사성과 고유한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따라서 민족주의 운동의 한 세력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그런데 실은 불안정한 정치적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민족주의 운동의 관점에서는 종교든 무엇이든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해 주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이스라엘에서 정치가 난맥에 빠질수록 정치 세력들은 정체성 정치의 응집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종교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정치를 들지 않더라도, 정체성 정치의 비극성은 결국 정치적 무대의 전면이 아닌 배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가 된다. 전면에서는 정치적 갈등을 포용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세력들이 전쟁을 감행하거나 그와 다름없는 상징적 선전·선동에 나선다. 그러나 정치의 배후에서는 주의 깊게 선택되고 망각된 역사적 서술, 엄격하게 수행되는 종교적 의식, 그리고 과학의 이름으로 동원되는 각종 분석들이 작동한다. 무심하게 불리는 유대인,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에 포함된 ‘사람들’ 또는 ‘인민’이란 실은 이런 배후의 역사적 서술, 종교 의식,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그 의미를 갖추게 된다.
‘피플’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 한 마디. 이 책은 ‘피플’을 요령 있게 번역하지 못한다. 그저 일괄적으로 ‘민중’이라 옮긴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산드가 애써 지적한 논점, 즉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시민의 국가’가 되지 못하고 ‘유대 사람들의 소유물’처럼 남아있기에 문제라는 논점을 명료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이 번역서가 ‘유대 민중’이라고 뭉개고 넘어간 용어는 이스라엘 공식 문서가 사용하는 ‘유대인들’ 또는 일상적인 용법의 ‘유대 사람들’인데, 이 무해한 듯 보이는 ‘사람들’이란 용어가 실은 종족 또는 민족을 주의 깊게 지칭하고 있다는 요점을 놓친다. 이렇다 보니 저자가 애써 후기에서 골라서 사용한 ‘땅 없는 사람들’이란 표현의 전달력도 떨어진다. 결정적으로 이 무심한 번역은 유대인들이 종족 중심주의를 유지하는 한 근대 민족주의 운동에 내재한 인민주권의 원리와 모순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핵심 논지를 흐린다.
아자 가트(Azar Gat)의 《민족들》을 번역한 이는 ‘피플’을 ‘인족’으로 옮겼다. ‘피플’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없다는 듯 아예 새 단어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 번역은 주권국가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민족주의 운동에 동원된 사람들을 ‘국민’이라고 부르면서 모순을 깨닫지 못하는 둔한 경우보다는 낫다. 최악의 번역은 문맥과 상관없이 번역자의 기분에 따라 어떻게 해도 좋다는 듯 ‘민중’, ‘대중’, ‘인민’, ‘국민’, ‘사람들’ 등으로 뒤섞어 아무렇게나 옮기는 경우다. 심지어, 한 책에서 ‘인민’과 ‘국민’을 헷갈리면서 동시에 ‘민족’과 ‘국민’을 섞어 쓰는 무신경한 번역도 있다.
모범적인 번역 사례로 베네딕트의 《상상된 공동체》 우리말본을 들 수 있다. 복수의 사람들을 지칭할 경우에는 그저 ‘사람들’이라 평이하게 옮기고, 근대 민족주의 운동이나 인민주권 사상과 관련해서 등장하는 ‘피플’은 ‘인민’이라고 적절하게 번역했다. 사실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다룬 저서에서 ‘피플’은 맥락에 따라 인민주권의 주창자, 평등한 시민권의 청구자, 또는 근대 민족주의 운동의 동원 대상을 두루 지칭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 ‘인민’이라는 기성 용어를 번역어로 쓰면 맞춤하다. 고대의 ‘피플’이란 ‘귀족이 아닌 평민’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근대의 ‘피플’은 귀천을 구분하고자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저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 데 주의한 섬세한 번역들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