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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재주를 타고나지 못했다.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30년 넘게 글 써서 밥 먹고 살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방법 열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나는 ‘듣기’로 쓴다. 인터뷰와 취재다. 가장 생생한 내용은 사람들 머릿속에 있다고 믿는다. 특히 그 분야 전문가의 머릿속에 있다. 그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취재하면 된다. 기자들은 이 방법으로 글을 쓴다. 미리 질문지를 작성하는 건 기본이다. 중요한 것은 꼬리를 물고 묻는 것이다. 준비해 간 질문만으로는 깊이 있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호기심을 가지고 파고들며 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공부해서 기본 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아울러 듣기 실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중요한 말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구분하고 요약하는 수준, 나아가 말의 맥락을 파악하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와 배경을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둘째, ‘자료’로 쓴다. 자료는 다양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도 중요한 자료다. 자료 찾기로 글을 써오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게 있다. 검색 능력이 글쓰기 실력이라는 사실이다. 자료를 찾는 데서만 찾아선 안 된다. 자료는 또한 공감각적으로 찾아야 한다.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보고 듣기까지 해야 한다. 자료를 완벽하게 찾아놓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이건 효율적이지 않다. 불필요한 자료를 많이 찾게 된다. 나는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한 후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 아울러 자료 찾기는 양보다 질로 승부해야 한다. 내가 자료에서 얻는 것은 인용 거리가 아니다. 내가 자료를 읽는 목적은 내 안에 있는 생각을 불러내기 위해서다. 자료를 보다 보면 내 생각이 난다. 이런 생각은 자료를 절박하게 볼 때 길어 올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자료의 양을 제한한다. 이것만 보고 내 생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뚫어져라 본다.
셋째, ‘요약’으로 쓴다. 요약은 어릴 적부터 배웠다. 일기는 하루의 요약이고, 독후감은 책의 요약이며, 기행문도 여행의 요약이다. 무엇보다 공부와 독서 모두 요약하는 행위다. 그런 경험과 역량으로 요약하면 된다. 절차는 3단계다. 우선 나는 생각나는 대로 쓴다. 다음으로 내가 쓴 것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서 붙인다. 이때 최대한 양을 불린다. 양을 늘리는 건 어렵지 않다. 인터넷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로 이를 다시 줄인다. 어릴 적부터 익혀둔 요약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우선 불필요하거나 덜 중요한 걸 버린다. 중복되는 것도 없앤다.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도 삭제한다. 그런 후 남은 내용을 비슷한 것끼리 뭉친다. 끝으로 뭉친 덩어리를 배열한다.
주제와 문단, 생각으로 쓴다
넷째, ‘주제’로 쓴다. 노무현 대통령은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할까?’ 이는 주제문을 무엇으로 할까에 관해 스스로 묻는 말이었다. 나는 답할 필요가 없었다. 대통령이 답했다. 이것으로 하자. 그것은 세 가지 중 하나였다. 사실을 가지고 결론 내리는 경우엔 사실 명제, 의견이 이렇다고 말할 때는 가치 명제, 이런 것을 해보자고 제안할 때는 정책 명제가 주제문이 됐다. 주제문은 2형식의 문장이었다. 이 문장이 생각나면 그는 ‘이제 됐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어떤 말을 독자의 머리와 가슴에 남길 것인지 결정하면 글의 절반은 완성된 셈이다. 나머지는 후속 작업에 불과하다. 사실 명제라면 그것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가치 명제는 사리에 맞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정책 명제는 그것을 하는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했을 때 이익과 혜택이 분명해야 한다.
다섯째, ‘문단’으로 쓴다. 글쓰기 교육에 열심인 미국 유명 대학은 어떻게 글쓰기를 가르칠까. 네 단계로 할 것을 주문한다고 한다. 첫 단계는 쓰고 싶은 내용을 나열하는 것이다. 브레인스토밍이건 마인드맵이나 로직트리건, 자유 연상이건 모두 좋다. 거침없이 글의 소재를 열거해본다. 두 번째 단계는 취사선택이다. 나열해 놓은 소재 가운데 글에 쓸 제재를 선택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선택한 제재로 짧은 글을 쓴다. 이렇게 쓴 글이 문단이고 단락이다. 끝으로, 이 단락들로 글을 구성한다. 두 가지 점만 유의하면 된다. 단락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완결된 글이어야 하고, 단락 간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여섯째, ‘독자’로 쓴다. 글은 읽히기 위해 쓴다. 다시 말해 독자를 위해 쓴다. 내가 김우중 회장의 글을 쓸 때, 독자는 세 사람이었다. 나의 부서장, 담당 임원, 비서실장. 이들을 통과해야 내 글이 회장 자리에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글이 됐다. 여러 군데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다. 그것을 안 후부터는 독자를 한 사람으로 정했다. 그 독자는 글의 내용에 따라 달라졌지만, 회장을 포함해 넷 중 하나였다. 그렇게 독자가 정해지면 그가 내 글에서 원하는 것을 찾았다. 그러면 쓸 게 생각났다. 생각난 것을 쓸 때는 그가 내 글에 보일 반응을 들으려 노력했다. 한 문장을 쓰고 나서는 이에 대해 그가 무슨 말을 할까 귀 기울였다. 그러면 그의 소리가 들렸다. 사람마다 취향과 성향이 있다. 두괄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미괄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나는 독자의 소리를 들어 그것을 글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글의 통과 확률이 높아졌다.
일곱째, ‘생각’으로 쓴다. 글은 응당 생각으로 쓰고, 생각을 담는다. 생각에도 틀이 있다. 내가 모신 분들은 자기만의 생각 틀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석적 사고 틀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여러 방면에서 보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과관계를 따져 논리적으로 사고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 일이 일어난 이유나 원인을 파헤치고, 그 일이 미칠 영향과 파장을 생각해봤다. 김우중 회장은 구조적 사고를 강조했다.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상호보완적이라며 통합적 사고를 주문했다. KG그룹 곽재선 회장은 창의적 사고를 강조했다. 진부하고 식상한 생각,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은 모두 제거하라 했다. 글을 쓰는 데 이 네 가지 생각이 모두 필요하다. 분석적, 논리적, 통합적,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면 어떤 글도 자신 있게 써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쓸 때 네 가지 체에 내 생각을 거른다. 다각도로 생각해봤는가, 인과관계를 따져봤는가, 종합적으로 고찰해봤는가, 남과 다른 나만의 생각인가.
글을 지속적으로 쓰게 만드는 환경도 중요하다
여덟째, ‘구성’으로 쓴다. 모든 글에는 구성요소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토우피(topoi)라고 했다. 육하원칙이나 과거-현재-미래가 대표적인 토우피다. 가장 간단한 구성은 이항식이다. 먼저, ‘주장과 이유’로 쓸 수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고,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다. ‘사실과 느낌’도 있다. 현황이나 실태를 언급하고, 그것에 관한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은, ‘정의와 설명’이다. 어떤 사건 등에 관해 내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그 배경을 부연 설명한다. ‘문제점과 해법’으로 쓸 수도 있다.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런 것이라고 말이다. ‘현상과 진단’도 가능하다. 일어난 현상을 얘기하고,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질문과 답변’도 흔히 쓰는 방법이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이다. ‘현상과 해석’도 있다. 이슈나 트렌드에 관해 언급한 후, 자신의 시각이나 해석을 말하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로도 쓸 수 있다. 비슷한 방법으로, ‘발단과 결말’도 있다. 일이 어떤 계기로 일어나 마무리는 어찌 됐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내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을 소개한 후 반박하는 방법도 있다. ‘소개와 반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소개와 해설’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론이나 원리 같은 걸 소개하고 그걸 해설하는 것이다. ‘예상과 근거’도 가능하다. 무언가를 예상, 예측, 전망한 후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대는 것이다.
아홉째, ‘퇴고’로 쓴다. 내가 모신 분들은 고치기의 명수다. 무엇보다 고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연설 하루 전날 다시 쓰는 경우도 적잖았다. 그뿐만 아니라 단상에 올라서도 청중 반응에 따라 준비한 연설문을 고쳐 읽었다. 사람들은 이를 애드리브라고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다. 글을 잘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여러 번 고쳐야 한다. 또한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글을 볼 때 눈여겨보는 항목, 자기만의 체크리스트가 있어야 한다. 잘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게 하나 더 있다. 자기만의 정오표다. 나는 저렇게 쓰지 않고 이렇게 쓴다는 자신의 기준이 서 있어야 한다.
끝으로, 글을 지속적으로 쓰게 만드는 환경도 중요하다. 방이 됐든, 온라인상의 블로그가 됐든 자기만의 글쓰기 공간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 이 밖에도 자기 글을 읽어줄 사람, 나만의 관심 주제, 글쓰기 책이나 강의를 들으며 동기 부여하기, 본받고 싶은 모델 등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