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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리뷰: 《지능의 함정》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2-02-25

 


 

《지능의 함정》 Ⓒ김영사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헤엄치다 나이 든 물고기 한 마리와 마주쳤다. 그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잘 있었지, 얘들아? 물이 괜찮아?’라고 물었다. 어린 물고기 두 마리는 말없이 한참을 헤엄치다 결국 한 마리가 옆 물고기에게 물었다. ‘도대체 물이라는 게 뭐야?’”

 

미국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avid Foster Wallace)가 2005년 오하이오주 케니언대(Kenyon College) 졸업식 연설에서 든 예화다. 월리스는 지극히 당연하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중요한 현실이 사실은 가장 보기 힘들고 다루기 어렵다는 점을 물고기 예화로 설명했다. 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가 발표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 연구도 유명하다. 이와 관련된 논문은 2004년 기발한 연구에 주어지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을 받았는데, 이후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한 반복된 연구에서 항상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눈앞을 지나가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인간 지각의 불완전성과 그에 대한 무지를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개선되지 않는 탈진실 현상

 

오늘날 우리는 일찍이 없던 지식의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1970년대에 예견한 대로, 정보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최고 권력인 사회다. 누구나 정보의 편의를 누릴 수 있게 됐지만, 허위 정보가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도 전례 없이 커졌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탈진실(Post Truth)’을 그해의 단어로 선정했지만, 이후 탈진실 현상은 더 광범위해지고 있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 가트너(Gartner)가 2017년 10월 미래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며 “2022년이 되면 선진국 대부분의 시민은 진짜 정보보다 거짓 정보를 더 많이 이용하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는데 그 시점이 됐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사실과 거짓을 판별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언론은 팩트체크 보도를 통해 사실 감별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탈진실 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식사회의 아이러니다. 정보 접근이 편리해지고 영향력이 커진 지식사회에서 무지의 힘과 맹신이 커지고 있다.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과 기자가 수행하는 직무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상황이다. 뉴스를 보도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자는 정보사회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탈진실 현상의 심판 무대에 가장 먼저 소환되는 대상은 인터넷이다. 뉴욕대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사실이 자신의 가치와 충돌할 때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말했다.

 

2021년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을 펴낸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레나타 살레츨(Renata Salecl)은 “무제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이용하는 시대에서 지식의 부족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검색엔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어떤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핑계 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살레츨은 디지털 환경이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도록(DIY) 요구하는 ‘사회의 이케아(IKEA)화’를 가져왔는데, 이는 자신의 지식 부족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사회의 이케아화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개자 없이 모든 정보에 무한접근할 수 있는 정보사회는 동시에 이용자 스스로 모든 것을 찾아내고 구성해야 하는 환경이다. 안내자 없이 정보의 신뢰성과 유용성을 ‘스스로’ 판별해 활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문제는 정보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과 책임은 정보화의 편리함에 가려져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사회의 편리함이 달콤한 디저트라면 정보 주체의 비판적 능력과 책임은 다이어트나 체력 훈련과 비슷하다.

 

2016년 숨진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일찍이 “(인터넷은) 사회에 그 어떤 영향력도 주지 못하는, 술집에서나 떠들던 사람들에게 오늘날 노벨상 수상자가 가질법한 발언권을 주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1) 에코의 사후 유튜브 세상에서 그의 말은 더 실감 난다.

 

‘아는 게 병’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스스로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해졌다. 지식사회에는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데,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위험하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 데이비드 롭슨(David Robson)의 《지능의 함정(The Intelligence Trap)》이다.

 

머리 좋을수록 자기 논리의 허점 인지 못 해

 

데이비드 롭슨은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영국의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를 거쳐 BBC에서 심리학, 과학, 의학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언론인이다. 인간의 두뇌와 신체, 행동 간의 관계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저자는 탈진실 시대에 어떠한 태도와 능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2020년 펴낸 《지능의 함정》에서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인지심리학적 실험과 사례를 통해 인간 인지가 오류에 취약한 다양한 이유를 설명하는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능이 높고 지식이 많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지능의 함정에 쉽게 빠지는 이유다. 책에서는 노벨상을 받은 석학들이 황당한 속임수나 거짓에 속고 엉터리 이론을 주창하는 ‘노벨병’ 사례도 언급되지만, 에코의 말처럼 누구나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발언권을 지니게 된 오늘날 만인이 유의해야 하는 내용이 됐다.

 

롭슨은 “머리가 좋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실수에서 교훈을 얻거나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성향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한다. 실수해도 그럴듯한 논쟁으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자신의 견해에 의심을 품지 않는 교조적 태도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을수록 기발한 논리를 동원해 변명하고 자기합리화에 뛰어난 성향을 지닌다는 것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다. 의도적인 합리화만이 아니라, 머리가 좋을수록 자기 논리의 허점을 인지하는 능력도 낮다는 게 롭슨의 주장이다. 그는 이를 ‘지능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뛰어난 두뇌와 정교한 논리가 오류를 판별하고 진리를 발견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궤변을 정당화하고 진실을 덮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황은 여론과 정치에서 이미 현실이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똑똑한 두뇌를 안 좋은 데 쓰는 쪽으로 진화했는가”라는 물음이다. 머리가 좋으면서 비합리적인 경우는 대체 인류에게 어떠한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일까? 여기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특성이 있다. 인간 지능은 좀 더 복잡한 사회를 관리할 인지적 필요성에 따라 진화했다는 게 진화생물학의 정설이다. 옥스퍼드대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영장류에 대한 실험 관찰을 통해 영장류가 유지하는 집단의 크기와 해당 종의 대뇌 신피질 크기가 비례관계에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가장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사는 사람도 ‘진짜 친구’의 규모가 150명을 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법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인간은 큰 집단을 이루고 살게 되면서 누구의 비위를 맞춰야 할지,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등의 사회적 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언어가 발달하면서 집단 안에서 지지를 끌어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설득하려면 말을 잘해야 했는데 그때 필요한 게 설득력이다. 저자는 이것이 지능과 비합리성이 함께 나타나는 배경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큰 이론이다.


지능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팩트체크 필요


예일대 법학대학원 댄 코헨(Dan Cohen)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똑똑한 사람은 좋은 두뇌를 올바르게 쓰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 정체성의 중요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사용한다. 지능이 진실 추구가 아닌 선전과 사욕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날수록 지능의 함정에 빠져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자동차의 사례를 든다. 차량의 엔진 성능이 뛰어날수록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엔진의 마력이 높다고 해서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다. 브레이크와 운전대 등 적절한 도구와 운전 기술이 없다면 엔진이 높은 속도를 낼수록 위험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지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정보사회를 탐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다양한 실질적 방안이 사례와 함께 제시된다. 지적인 겸손함,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사고, 호기심,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확한 인지, 결과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사고방식 등이 기본적인 자세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젊어서 논쟁을 좋아했지만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이끈 재판에 관한 글에 감동 받고 자신의 판단에 늘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를 갖게 됐다고 한다. 프랭클린은 이를 계기로 “틀림없이”, “의심할 바 없이”와 같은 확신하는 투의 말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이후 50년간 철저하게 이를 지켰다고 한다.

 

팩트체크는 과거에 주로 언론의 역할이었지만, 오늘날은 언론만이 아니라 만인의 일이 됐다. 언론이 제대로 팩트체크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권위와 신뢰는 추락한다. 또한 사회의 이케아화라는 말처럼, 무한 정보 세상에서는 누구나 스스로 사실 검증 능력을 갖추고 가동시켜야 한다. 정보사회는 지능의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능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추천하는 방법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낸 증거 기반의 팩트체크 기법이다. 프랭클린에게 깨달음을 준 기원전 399년 고대 아테네에서 열린 소크라테스 재판이다. 롭슨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결정적 계기가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향한 끝없는 추구라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델포이의 신탁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스스로 팩트체크에 나섰다. 절대로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가장 지혜롭다고 존경받는 이들을 찾아나섰다. 그들의 지혜가 소크라테스 자신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신탁이 잘못됐음을 입증하려 했다. 그 방법은 오늘날 ‘소크라테스 문답법’으로 알려진, 제한 없는 질문과 답변의 연속이다.

 

가장 지혜로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크라테스의 팩트체크의 결과는 뜻밖이었다. 이들과 문답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이른바 지혜로운 이들도, 소크라테스 자신도 똑같이 해당 문제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차이는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기 지식의 한계와 무지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세상 누구와도 달랐다. 신탁의 진실이 입증된 것이다. 기존 지식과 권위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근본적 물음은 아테네 사회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젊은이들을 미혹한다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가 고발되고, 진실의 법정에서 순교한 철학자가 된 배경이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위해 순교한 불멸의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금기 없는 질문으로 팩트체크의 길을 보여준 언론인의 스승이라는 것을 《지능의 함정》은 알려준다.

 

 

 

 

 

 

1) 알베르 무케베르, 《오늘도 뇌는 거짓말을 한다》, 한빛비즈,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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