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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리뷰 《나 자신을 알라》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2-06-24

 

《나 자신을 알라: 뇌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소크라테스의 지혜》Ⓒ 바다출판사

 

 

기자가 직업 수행을 통해 경험하고 익히게 되는 직무 스킬 중에서 ‘질문하는 능력’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도 드물다. 저널리즘은 뉴스, 즉 새로운 사실을 알리는 행위인데 이 과정에는 질문이 핵심이다. 언론인으로 활동한 《1984》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저널리즘이란 누군가가 활자화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실을 활자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는 모두 선전 행위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거나 누군가 감추려 하는 것들을 보도하려면 질문이 최선의 방법이다. 뛰어난 언론인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이고 취재 대상으로 하여금 말문을 열게 하는 질문 능력이다.

 

기자 직무를 수행하면서 자연히 갖추게 되는 질문 능력은 언론 이외의 영역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적절한 질문은 현상의 핵심을 파악하고 정리할 수 있게 해주며, 차별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언론인 교육과 훈련에서 호기심과 질문 능력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주로 관행적·도제적 방식을 통해 취재·보도 실무를 위한 기술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이뤄지는 교육 현실이 변하지 않고 있다. 기자 직무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호환성과 가치가 높은 질문 능력은 본질과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인데, 이는 기술적 요령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더 나은 질문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

 

기자의 직무는 질문에서 시작해 질문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이다. “왜 이 사건은 발생한 것일까? 이런 현상은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결과로 이어질까? 이번 사건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사실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이 사건에서 무엇을 궁금해할까? 앞서 보도된 기사로 인해 무엇이 다음 단계에서 궁금해질까? 이 보도는 어떠한 공공성을 지니는가? 기사가 나가게 되면 누구에게 어떤 일이 생겨날 수 있을까?” 등 끝없이 질문하는 과정이 취재 행위다.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 전에 알지 못했던 관점과 정보를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만큼, 새로운 사실을 전달하는 게 임무인 기자는 질문하는 존재다.

 

좀 더 나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질문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위다. 기자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 그리고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사회를 대신해 질문하는 역할을 맡은 직군이다. 이러한 역할을 위해서는 준비와 책임이 요구된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무턱대고 질문하는 게 아니라 핵심 깊숙이 들어가 중요한 생각과 새로운 사실을 끌어내는 질문은 어떻게 가능할까? 팩트를 밝혀내는 취재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기존 보도와 자료 조사를 통해 어디까지가 이미 공개되고 확인된 정보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는 현재 시점에서 기자 본인과 우리 사회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취재의 출발점인 질문은 다양한 정보가 복잡하게 뒤섞인 상황을 기자의 호기심을 축으로 해서 새롭게 정리해내는 일이다. 어떤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이미 훌륭한 지침이 있다. 진실에 접근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목숨을 걸고 알려줬다.

 

하지만 “너의 무지함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인지적 도구지만, 너무 오래되고 상투화한 탓에 오히려 소홀히 취급받는 처지다. 고전이 항상 현재의 맥락에 맞춰 새롭게 해석돼야 하듯,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도 늘 현재 상황과 언어로 다시 해석돼야 그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

 

인간 지적 능력의 핵심, 메타인지

 

최근 관련한 책이 나왔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실험심리학 교수 스티븐 M. 플레밍(Stephen M Fleming)이 쓴 《너 자신을 알라: 자기 인식의 과학(Know Thyself: The Science of Self-Awareness)》이다. 국내에선 《나 자신을 알라: 뇌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소크라테스의 지혜》1)로 출간됐다(이하 《나 자신을 알라》).

 

《나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선구적으로 제시한 자기 인식의 개념을 현대 과학을 통해 새롭게 접근하는 책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메타인지가 왜 출현했는지, 자기 인식이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현대 과학의 실험과 발견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과 토론하고 제자들을 가르친 문답법의 핵심인 “너의 무지함을 알라”라는 가르침은 플라톤과 크세노폰(Xenophon) 등의 저작을 통해 전달돼 인류의 지혜가 됐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연구 진전과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인간 지적 능력의 핵심으로 메타인지가 부상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을 개척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연구를 일반인을 위해 풀어낸 책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도 메타인지를 대중화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카너먼의 연구는 인간의 사고가 본능과 이성이라는 구별되는 두 시스템에 의해 작동한다는 오랜 통념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고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인간의 사고는 장구한 진화 과정에서 자동화하고 내면화해 제1시스템으로 부르는 ‘빠르게 생각하기’,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중에 발달시킨 의도적이고 성찰적인 제2시스템 ‘느리게 생각하기’라는 두 가지 시스템이 상호작용한다는 게 카너먼의 핵심 주장이다.

 

행동경제학자인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 사회심리학적 연구와 실험을 통한 설명에 집중한다면 플레밍의 《나 자신을 알라》는 뇌과학 연구를 기반으로 한 자기 인식 능력과 메타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의 장점은 최신 뇌과학적 연구와 실험을 기반으로 메타인지의 역할과 중요성을 설명하되, 이를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자기 인식과 연결해내는 능력이다. 과학적 연구와 분석을 기반으로 한 설명력에 철학자의 성찰을 연결해 융합하는 서술은 흥미로우면서 섬세하다.

 

메타인지와 자기 인식의 핵심은 지각과 앎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다.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마음과 행동을 바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알려준 지혜의 핵심은 자신의 지각 상태에 대한 인지 즉 메타인지인데, 이는 곧 무지의 자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이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앎으로 연결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자기 인식의 의미와 가치를 알려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 그리고 그에 대한 지난 수천 년간의 숭배와 전승에도 불구하고 왜 자기 인식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극도로 단단한 세 가지가 있다. 강철, 다이아몬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1750년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에 필명으로 연재한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에서 말한 대로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인식이 극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은 알지 못할뿐더러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짐작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로남불’ 오류에 빠지지 쉬운 배경이다. 다른 사람이 어떠한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우리는 드러난 결과에 기반해 비난하고 지적하기 마련이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한 실수나 잘못을 자신이 저지른 경우엔 결코 가혹하거나 냉정하지 않다. 자신이 그렇게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정과 이유를 우리 각자는 넘치도록 상세하게 알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의 잘못은 어쩔 수 없었거나 피하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였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한다. 지지 세력의 잘못에 관대한 ‘팬덤정치’ 현실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핵심 역량

 

메타인지는 자기 인식과 한 몸을 이루는 인간 고유의 인지능력이지만, 일반적인 지각과 인식에 비해 착각과 왜곡에 매우 취약하다. 일반적인 지각은 환경으로부터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우리 감각은 현실과 접촉을 유지하며 오류를 쉽게 감지할 수 있지만, 메타인지는 지각 대상으로부터 직접적 자극과 피드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타인지는 인간 고유의 탁월한 인지적 역량이지만 착각과 오해, 오용으로 빠지기도 쉽다. 그릇된 자의식과 자신만의 의식에 갇히는 경우도 이러한 인간 고유의 자기 인식 능력과 관련이 깊다.

 

저자는 “우리는 왜 의식적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플레밍이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메타인지 능력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다. 자기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도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만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마음 이론은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지만, 학술적 개념으로 정립된 것은 심리학이 정립된 이후인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마음 이론이 인류에게 등장한 시점은 5만~7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의 이유는 인류 역사에서 이 시기에 발견된 유물에서 보이는 특징을 마음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유물에서는 팔찌나 구슬과 같은 장신구가 등장한다. 실용성이 있는 게 아닌 장신구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신경 쓰고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시기는 프랑스 쇼베(Chauvet)를 비롯해 전 세계 각지에서 동굴벽화가 일제히 등장하는 무렵이기도 하다. 왜 구석기 시대의 예술가들은 들소와 사슴, 사람 등 다양한 존재를 동굴의 벽에 그렸을까? 다양한 추측과 설명이 가능하지만 모든 동굴벽화와 상징적 조형물들에는 공통된 배경과 이유가 하나 있다. ‘인류 최초의 화가’들은 그 그림들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끼칠 영향을 어떻게든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인지하는 능력을 통해 인간은 ‘사회적 존재’가 돼, 정교한 의사소통과 협력을 할 수 있게 됐다.

 

저자는 자기 인식과 타인에 대한 인식(마음 이론)이 깊이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길버트 라일(Gilbert Ryle) 옥스퍼드대 교수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자기성찰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 자신을 알라》는 기자의 직업적 역할을 다시 보게 한다. 질문하는 게 직업인 기자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와 사회가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묻게 된다. 메타인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게 해주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핵심 역량이다. 직무 수행을 위해 질문 능력을 연마하다 보면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과 이해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다.

 

 

 

 

 

1) 스티븐 M. 플레밍, 배명복 옮김, 《나 자신을 알라: 뇌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소크라테스의 지혜》, 바다출판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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