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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리뷰 《디지털 미니멀리즘》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3-02-24

 

2023년 벽두부터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 충격이 휩쓸고 있다. 그림 그리기, 보고서 쓰기, 코드 리뷰, 법안 작성, 수학 문제 풀이, 외국어 번역, 대학 입학시험 등 날마다 새로운 영역에서 챗GPT,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뛰어넘었다는 보고가 쏟아지고 있다.

 

정신없는 수준을 넘어 불안할 지경이다. 모바일 단말기로 쉴새 없이 쏟아지는 뉴스와 정보는 눈과 귀를 액정 화면에 더 머무르게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더 오래 보고, 관련 정보를 더 빠르게 만나는 게 인공지능 시대의 현명한 대응법이 되진 못한다. 미국 MIT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 교수로 있는 알고리즘 전문가 칼 뉴포트(Cal Newport)의 제언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디지털 세상에서의 삶의 원칙

 

칼 뉴포트는 2016년 펴낸 베스트셀러 《딥 워크(Deep Work)》를 통해, 거대한 변화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어떻게 직업과 일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통찰했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은 기술을 겁내지 말고 활용해 과거보다 깊이 있게 일하는 것이다. 뉴포트는 3년 뒤인 2019년 《딥 워크》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주제를 다룬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펴냈다. 책은 자동화 시대에 일터에서 통용될 직무 경쟁력이 아니라, 디지털 세상에서의 핵심적 태도와 삶의 원칙을 다룬다. 디지털 기술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최고의 컴퓨터공학 전문가는 ‘미니멀리즘’을 주장한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디지털 사용 최소주의’라고 말할 수 있지만, 뉴포트가 책에서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디지털 기술 사용의 최소화라기보다 ‘현명한 사용을 위한 최적화’라는 의미에 가깝다. 디지털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는지 여부는 이용 시간이 아니라 이용 목적과 태도를 통해 드러나는 문제다.

 

21세기의 컴퓨터공학 교수는 현대의 고전인 《월든》의 작가이자 19세기 미국의 자연주의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개척한 길을 따라간다. 소로는 산업화로 급속하게 팽창하는 도시를 떠나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 숲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여간 자립적 생활을 했다. 소로는 자신이 호숫가 오두막 살이에 나선 이유에 대해 “삶을 나의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마주하면서 삶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일기에 썼다. 소로가 도끼를 빌려 호숫가에 직접 통나무집을 지은 까닭은 문명과 단절하고 자연 속의 삶과 고독을 선택한 게 아니라, ‘삶의 본질’을 직면하기 위해서였다. 소로는 숲속 삶에서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날마다 4시간씩 산책하며 그만의 생각을 길어 올렸다. 《월든》의 구절마다 빛나는 성찰이 그 결과물이다.

 

그런데 소로가 오두막을 짓고 산 월든 호숫가는 실제로 고립된 곳이거나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었다. 역사학자 바스크데일 메이너드(W. Barksdale Maynard)의 2005년 발표에 따르면, 소로의 오두막은 숲속이 아니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도로에서 보이는 공터에 있었고 30분만 걸으면 콩코드 번화가로 나갈 수 있었다. 소로는 정기적으로 읍내로 나가 식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났으며, 가족과 친구들이 소로의 오두막을 자주 방문했다. 소로는 도시의 활기와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멀어질 생각이 없었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추구한 것은 고독과 교류를 오가는 능력이었다는 게 뉴포트의 주장이다.

 

소로는 당시 득세하기 시작한 물질 중심 소비주의 문화를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통해 다른 각도로 바라봤다. 특정한 효용을 지닌 어떤 대상을 얻기 위한 비용은 그를 위해 맞바꿔야 하는 삶의 양이라고 본 것이다. 사람들은 본질적이고 소중한 것을 내주고 비본질적인 싸구려를 장만하기 위해 기를 쓴다. 소로의 눈에 많은 사람은 부등가 교환을 하며 스스로를 불행하고 만들고 있었다. 소로는 “내가 보기에 우리 읍에 사는 젊은이들이 농장, 집, 헛간, 소, 농기구를 물려받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런 것들은 얻기보다 버리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월든》에서 말했다. 법정 스님이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무소유》에서 말한 것과 통하는 얘기다.

 

디지털 기술이 이용자와 관계 맺는 방식은 중독적 몰입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는 현대 문명을 멀리하고 18세기 방식대로의 삶을 고수하는 개신교의 재침례교 일파인 아미시(Amish) 신자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전화 등 통신기기는 물론 전기, 자동차, 엔진, 모터 등과 같은 기본적인 문명의 도구들도 거부하고 말과 소가 끄는 마차와 쟁기를 이용해 농사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대착오적 근본주의 종교 공동체로 알려져 있지만, 아미시 공동체의 실상은 알려진 것과는 차이가 있다.

 

《와이어드》 초대 편집장을 지낸 기술전문가 케빈 켈리(Kevin Kelly)는 그 자신이 아미시 마을에서 오랜 기간을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아미시식 생활은 전혀 반기술적이지 않다. 아미시들은 창의적인 해커이자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궁극적인 제조자다”라고 말한다. 켈리가 쓴 《기술의 충격》을 보면, 아미시 마을에 휴대전화는 금지돼 있지만 공용 전화기를 쓰는 곳이 많으며 트랙터를 사용하지만 도로를 달리지 못하도록 쇠바퀴를 달아 농업용으로만 쓴다. 전력망 연결을 거부하지만 태양전지판과 디젤 발전기를 통해 필수적 전기를 생산해 쓰는 경우도 많다. 아미시들은 무조건 기술을 배격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관점에서 “이 기술은 아미시 공동체에 도움이 될까, 해를 끼칠까”를 묻고 제대로 된 사용법과 통제 방법을 숙고한 뒤에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특징이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저자가 소로와 아미시 공동체를 소환한 까닭은 무엇일까? 기술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본보기를 디지털 환경에 도입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 디지털 세상은 서비스 기업과 이용자가 끝 모를 무한을 향해 질주하는 게 기본 속성이다. 저자는 스마트폰 확산 이후 지난 10년 동안 이뤄진 급격한 진전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따져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말한다.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직면하기 위해” 숲으로 간 소로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오늘날 디지털과 인공지능 광풍은 19세기 미국 곳곳을 휩쓸던 산업혁명의 물결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영역을 식민지화하고 있으며, 그 거주민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게 뉴포트의 주장이다. 디지털 기술이 이용자와 관계 맺는 방식은 중독적 몰입이다. 10대와 20대 등 신기술을 선호하는 세대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스마트폰 보급과 중독적 이용은 일부의 사례가 아니라 어린이집과 양로원까지 확산된 현상이다. 이제 지하철 승객은 물론이고 보행자들 중에서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이들이 더 많은 상황이 됐다. 이용자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그 내용이 그만큼 다급하고 중요해서는 아니다.

 

저자는 “신기술의 중독적 속성이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행동 중독을 초래하기 위해 신경 써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고발한다. 그는 “사람들이 게을러서 화면에 굴복하는 게 아니다. 기업들이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해 그런 결과가 불가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엉겁결에 디지털 세상에 빠진 게 아니라 고가의 디지털 기기 회사와 주의 경제의 대기업들에게 떠밀린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세상에서 저자가 반기술적이거나 독특한 취향의 소유자는 아니다. 거대 디지털 기업 내부에서 서비스 설계와 운영을 담당해온 전문가들 중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내부고발자의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정보사회에서 ‘희소자원’은 이용자의 관심과 주의력

 

행동경제학·심리학을 연구하고 구글에서 디자인 윤리학자로 일해온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이용자 주의력을 붙잡기 위한 인터넷 서비스의 비윤리적 디자인을 지적해왔다. 그는 구글을 떠나 2018년 비영리단체 ‘인도적기술센터(Center for Humane Technology)’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해리스는 뉴스 피드·이메일 등의 서비스 설계가 카지노 슬롯머신 사용자 환경(UI)처럼 디자인됐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메일이나 콘텐츠를 확인하기 위해 조작 버튼 없이 화면을 아래로 밀어서 갱신하는 기능과 무한 스크롤 기능은 슬롯머신의 레버 당김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감나무에서 감이 모두 떨어지고 술병이 바닥나면 상황이 끝나는 것처럼 우리는 자연에서 직관적인 정지신호가 명확하게 주어지는 활동을 통해 세계에 대한 감각과 인지를 발달시켜왔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세상은 직관과 다르다.

 

스콧 갤러웨이(Scott Galloway)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도 《거대한 가속》에서 무한 스크롤의 인터넷 서비스가 중단없는 이용을 요구하는 카지노 설계를 닮았다고 지적했다. 갤러웨이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은 정지신호를 없애버렸다. 카지노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다음 도박 테이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실내에 각진 부분을 만들지 않고 전체가 하나의 연속적인 공간으로 설계된다”고 했다. 페이스북의 초대 대표를 지낸 숀 파커(Sean Parker)도 2017년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을 제작할 때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시간과 주의를 최대한 많이 소비하도록 만들까를 주로 고려했다. 자신이 올린 사진이나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설계 의도를 밝혔다. 그는 페이스북이 “인간 심리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알고리즘 산업이 획득하고자 경쟁하는 것은 우리들의 깨어있는 시간, 즉 주의력이다. 정보는 이용자의 주의력을 소비하는데, 정보가 늘어날수록 할당 가능한 이용자 주의력은 줄어드는 구조다.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이용자의 주의력과 할당 시간은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정보사회에서 이용자의 관심과 주의력이 가장 가치 높은 ‘희소자원’인 배경이다. 인지심리학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Alexander Simon)은 일찍이 1970년대에 ‘주의력 산업’의 출현을 예고했다. 사이먼은 “정보가 소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바로 정보 수용자의 주의력이다. 따라서 정보가 풍부해질수록 주의력은 결핍된다”고 말했다.

 

일부 플랫폼 기업은 노골적으로 이용자의 수면 시간을 빼앗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공언할 정도다. 넷플릭스를 창업한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넷플릭스는 이용자의 시간을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스냅챗, 유튜브, 수면 등이 최고의 경쟁 상대”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업의 욕망은 이용자 주의력을 붙잡기 위한 설계로 구현됐다.

 

기술 전문가들과 내부자들이 알려주는 디지털 기술의 속성과 현실을 고려하면 뉴포트의 주장은 한결 무겁게 다가온다. 이 책은 디지털 기술의 속성을 알고 ‘최적화’해야 하는 필요성을 알려주는 것과 함께 생활에서의 ‘디지털 미니멀리즘’ 실천을 위한 실제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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