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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2019년 영화 <기생충>에 대한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한 줄 평에 이어 최근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다시 한번 문해력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많은 매체가 한자 교육 필요성과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논쟁에 뛰어들어 원인과 대책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쏟아냈다. 권력을 지닌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표현과 소통 방식을 고수하거나 강요하려는 현상과 그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발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풍경이다.
최근 문해력 논쟁에서 새로운 점은 디지털 환경에서 움트고 있는 반지성주의다. 미심쩍은 정보나 의미에 대해서 검색을 통해 손쉽게 확인해 볼 수 있는 모바일 인터넷 환경이지만 자신이 모르는 정보나 표현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근거 없는 비난과 적대적 동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톰 니콜스(Tom Nichols) 미국 해군참모대 교수가 펴낸 《전문가와 강적들》에 잘 나타나 있다. 니콜스는 온라인에서 사람들은 “지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지적 수준이 동등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확산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고 설명한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손쉽게 정보를 만날 수 있는 환경에서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값싼 공유물로 여기는 현상이 생겨났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많은 언론이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문제를 다루고 EBS가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를 방영하면서 문해력이 화두로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언론이 빠뜨린 내용은 문해력 문제를 제기한 언론 종사자들 또한 문해력 논란의 주요한 비판 대상이라는 점이다. 한국 언론의 문해력 수준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2021년 11월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게 “무운을 빈다”고 말하자, 한 방송사 중견 기자가 ‘운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거침없이 해석해 보도했다. 상당수 언론이 이 황당한 보도를 그대로 ‘복붙’하면서, 언론 내부의 문해력 실상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댓글에서 기사의 황당한 오류와 실수가 지적당하는 보도 사례는 널렸다. 기사 내용이나 논조와 별개로 오자와 비문투성이 문장이 버젓이 발행되고 유통되는 언론 현실에서 ‘기레기’라는 모멸적 호칭은 기자들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기자는 말과 글을 연장으로 일하는 직업
산업안전 영역에서는 ‘하인리히 법칙’이 통용된다.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인한 경상자가 29명 발생했고, 가까스로 재해를 모면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다는 통계를 일컫는 말이다. 하인리히 법칙을 언론 보도에 적용해 볼 수 있다. 명백한 오보는 물론이고 기사에 드러난 하나의 오탈자와 비문은 유사한 오류와 실수가 사실상 수백 건 발생했음을 알려주는 표지일 수 있다. 촌각을 다투는 속보 제작 환경에서 피하기 어려운 실수가 아니라, 언론 종사자와 취재 보도 시스템의 근본적 결함을 드러내는 징표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겨나는 것일까? 인터넷에서 확인 없이 쏟아내는 함량 미달의 불량 기사, 상업주의 소규모 매체들의 증가, 지나친 속보 경쟁, 기자 교육과 데스킹의 부재, 한자어 지식이 부족한 젊은 기자들 등 원인은 다양하다. 문해력은 디지털 환경에서 갈수록 그 가치와 중요성이 커지는 개인적 능력이자 사회적 역량이다. 그런데 읽기와 쓰기, 말하기 위주의 전통적 텍스트 기반의 문해력 교육은 디지털 정보사회에서 여러 형태로 충돌하고 있으며 이는 최근의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정보 환경에서 다양한 멀티미디어와 기술 리터러시를 포함한 새롭고 포괄적인 리터러시 교육 필요성이 강조되는 배경이다.
기자는 말과 글을 연장으로 일하는 직업이다. 필요한 연장을 갖추지 않거나 도구의 날을 벼리지 않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술자는 없다. 문해력 논쟁은 말과 글을 도구로 삼는 기자들에게 직업윤리와 일상의 업무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언론인이 깔끔하면서 정확하고 풍부한 표현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요구되는 것은 말과 글에 대한 조심스럽고 겸허한 태도와 말과 글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배우려는 마음가짐이다.
말과 글을 직업의 도구로 삼으며 말과 글이 만들어낸 세계의 신비로움과 힘을 믿는 직업이 언론인이라면 최근의 문해력 논쟁은 흥미로우면서 유용한 주제다. 텍스트 기반의 전통적 문해력이 디지털 환경에서 어떠한 문제에 부닥치고 있으며, 앞으로 문해력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다. 이 주제와 관련해 오랜 연구를 해온 전문가들이 최근 3년 새 발간한 책 세 권이 유용하다. 저명한 뇌과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인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가 펴낸 《다시, 책으로》(전병근 옮김, 어크로스, 2019), 문화연구자 엄기호와 응용언어학자 김성우가 함께 펴낸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따비, 2020), 미국에서 문해교육을 연구해온 조병영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교수가 발간한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쌤앤파커스, 2021)다. 세 권은 “문해력의 본질이 무엇이며 디지털 환경에서 텍스트 위주의 문해력은 어떠한 유용성과 한계가 있는가”라는 동일한 주제를 탐구하며 각각 고유의 성찰과 답변을 제시한다.
종이책과 디지털… 양손잡이로 살아야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는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해력 논란의 뿌리가 2500년 전 고민의 재연임을 상기시킨다. 플라톤이 저술한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그 당시 그리스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던 문자라는 신기술의 무분별한 수용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기억을 내부보다 외부 기호에 의존하게 되면 사람들은 적절한 가르침 없이도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것이며 실제론 무지하다 해도 지식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들은 지혜 대신 자만심으로 가득 차 사회에 짐만 될 것이다”라고 소크라테스는 경고했다. 매리언 울프는 소크라테스의 우려가 문자 언어의 능력을 전부 다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소크라테스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젊은이들이 진실을 찾는 고된 훈련에 나서기도 전에 이미 진실을 안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소크라테스가 2500년 뒤의 탈진실 시대를 예견한 느낌이다. 매리언 울프는 전작 《책 읽는 뇌》(살림, 2009)에서 “독서하는 뇌의 설계의 핵심은 사고할 수 있는 시간”으로, 기존의 생각보다 더 심오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뇌를 해방시키는 시간을 제공하는 게 독서의 최대 비밀이라고 말했다
《다시, 책으로》 Ⓒ어크로스
미디어마다 고유의 장점과 단점이 있으며 각 미디어는 특정한 인지적 기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다른 것을 희생시킨다. 인터넷은 시각적 지능을 발달시키는 대신 심층 처리 능력과 비판적 사고 기능을 저해한다는 게 매리언 울프가 소개하는 뇌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다. 더욱이 점점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지는 정보화사회에서는 갈수록 정보를 주체적으로 처리하고 정리할 시간과 여유가 요구된다. 단순히 정보를 수용하는 것보다 정보의 배경과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는 능력이 핵심이 되는 게 정보화사회다. 이는 주의력을 쏟아 깊게 생각하는 행위이고, 구체적으로는 깊이 읽기를 통해 가능하다는 게 매리언 울프의 견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방대한 정보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경으로 인해 우리의 주의는 소비되고 분산되고 있으며 소중한 인간의 주의 자원은 상시적 결핍 상태에 빠진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로 인지적 과부하 현상에 처할 때 우리가 대응하는 방식은 세 가지다. 하나는 정보를 단순화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최대한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아웃소싱을 하거나 도구를 활용해 선별하는 방식이다.
매리언 울프는 정보 이용 주체의 주도적인 ‘깊이 읽기’와 자신만의 속도로 ‘다시 읽기’가 가진 힘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디지털 형태가 콘텐츠의 기본으로 통용되는 환경을 수용한다. 우리는 종이책과 스크린 미디어 환경에서 어느 하나를 배격해서는 안 되는, 양손잡이로 살아야 한다는 게 매리언 울프의 주장이다.
리터러시는 인간의 핵심 능력이자 권력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엄기호와 김성우의 대담으로 구성한 책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는 매리언 울프의 문제의식을 이어가되, 리터러시(문해력)의 의미를 확장해 기능적으로 접근한 삶의 문제로 다룬다. “리터러시는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삶의 리터러시인데, 삶을 읽어내는 삶의 리터러시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고 엄기호는 말한다. 의미는 사전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맥락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고 어떻게 맥락을 파악하느냐의 문제인데 이는 읽어내는 사람이 구성하는 것이다. 읽기는 스스로 하는 행위이고 시간과 지적 자본이 많이 투여되는 시간의 노동이자 예술이다. 두 저자는 읽기와 쓰기가 키워주는 가장 큰 힘은 추상화, 즉 사유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읽기는 정보 이용 주체가 스스로 맥락과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다. 읽는 행위는 문자를 통해 정보를 전달받는 게 아니라 사실은 전달받은 정보를 갖고 자신의 인생과 지식, 경험을 모두 투입해 스스로 의도와 맥락을 포함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이는 매우 주도적이고 적극적이고 혁명적인 행위이지만, 그만큼 읽기 행위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엘리트주의적 영역에 머무르게 하는 요소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따비
디지털 환경에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소비하고 있지만, 문해력 논쟁이 드러내듯 삶에 필요한 리터러시 능력은 더욱 희소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각각 사회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저자들의 대담은 리터러시가 정보를 효과적으로 읽어내는 단순한 기예가 아니라, 무엇보다 핵심적인 인간 능력이자 권력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삶을 위한 수단이자 권력으로서의 리터러시가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는 상황을 지적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리터러시의 조건을 탐색하는 책이다.
정보 홍수가 아닌 정보 결핍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조병영의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는 디지털 환경에서 왜 이용자들이 길을 잃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저자는 문해력이 문제되는 배경에 디지털 환경과 동영상 위주의 정보 수용 문화가 있다고 본다. 대다수 이용자는 영상 형태로 돌아다니는 정보를 즐기는데 이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정보가 나한테 이전되는 경험이다. 손쉽게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지식과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기술은 가장 자연스럽고 쉬운 방향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가장 쉽게 정보를 취득하는 방식인 이미지와 음성을 더 많이 보고 듣는 방향으로 간다.
정보의 맥락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데 인터넷에서는 정보가 개별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인터넷은 배경과 맥락을 찾아보기도 편리하지만, 실제로 적극적 정보 이용은 많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찾아보고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스스로 구성해내는 일이 중요하다.
저자는 우리가 정보 홍수가 아닌 정보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고 본다. 그는 “디지털 이전에 필요한 정보는 생존과 성공에 중요한 정보였다. 디지털에서는 생존과 관련 없는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지금은 즐거움과 웰빙을 위한 정보를 찾는 경향이 있다”며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라는 측면에서는 정보 결핍이다. 그런데 대부분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넘쳐나게 들어오는 정보의 유해성, 유익성을 판별하기 어렵다. 있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고, 자신의 일은 그걸 찾아내는 것이라고 여긴다”고 말한다.
문해력에 대한 책 세 권은 디지털 환경에서 리터러시 능력이 더욱 핵심적인 인간 인지능력과 권력이 되고 있으며 희소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디지털 기술은 과거보다 훨씬 더 높은 리터러시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