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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6개의 시선 17 - SNS라는 가상의 베르사유
기획연재 | 등록일 : 2022-07-29

손기정이 아니라 기테이 손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해야 했지만, 그는 2시간 29분 19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에게 부상으로 건네지지 않은 채 독일의 한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가, 1986년에서야 베를린 올림픽 50주년 기념으로 반환된 그리스 투구가 전시돼 있다. 그리스 투구를 구경하던 나는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그의 마라톤 경기 모습을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고 그의 경기 모습을 찾기 위해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1936년에 제작된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가 있음을 알게 됐다.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감독한 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Olympia)>에는 손기정의 마라톤 경기 장면이 짧지 않은 분량으로 담겨 있다. <올림피아> 속 마라톤 장면은 1936년으로부터 한참 후인 2020년대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여전히 감동을 자아내는 미학적 완성도 높은 영상미를 보여준다. 레니 리펜슈탈은 후에 인터뷰에서 자신은 <올림피아>에서 “마라톤 주자의 내면적인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레니 르펜슈탈은 정식 경기가 끝난 후 다큐멘터리에 담기 위해 선수들에게 경기 장면 재연을 요청했고, 재연된 장면과 실제의 장면을 편집해 영화를 완성했다. 마라톤 경기 장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촬영·편집됐다. 감독의 의도는 완성된 영화에서 충분히 감지된다.

 

영화 속에서 손기정이 뛰고 있다. 뛰고 있는 손기정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구경하던 카메라는 감독의 의도처럼 마라토너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지독한 피로에 지친 마라토너가 경기가 끝나기를 갈망하는 감정을 표현하려는 듯 카메라가 흔들린다. 카메라는 한낮의 아스팔트 위에 드리워진, 뛰고 있는 마라톤 선수들의 다리 그림자를 선수의 시선에서 포착한다. 마라토너의 시선으로 포착된 그 장면을 통해 관객은 지친 다리가 아스팔트에 들러붙는, 무너지기 직전의 마라토너의 피로감을 따라 느낀다. 영화의 카메라는 달리는 선수의 관점에서 마라톤 선수가 달리는 주변의 풍경을 담는다. 달리는 도로 옆의 잔디가 흔들린다. 얼굴 위로 도로변의 나뭇가지로 인한 그늘이 드리운다. 관객의 환호 소리도 어렴풋이 들린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도달한 걸까? 손기정의 발걸음이 다시 활발해지고 그즈음 도착지, 히틀러의 건축가로 불린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가 설계한 메인 스타디움이 보인다. 스타디움에 손기정이 도착하자, 손기정의 내면으로 들어갔던 카메라는 스타디움에 등장한 마라톤 우승자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일방향적 소통이 지배적이면 공론장은 존재할 수 없다

 

레니 리펜슈탈이 연출한 다른 영화를 찾아보다가 그가 나치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기록영화인 <의지의 승리> 또한 연출했음을 알게 됐다.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전당대회가 열린다. 베를린 올림픽처럼 레니 리펜슈탈과 알베르트 슈페어가 각자의 방식으로 나치 전당대회에 기여했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나치 전당대회 행사장의 개조 총책임을 맡았다. 전당대회가 열린 곳은 한때 독일의 자랑이었던 비행선 체펠린 비행장에 있던 경기장이다. 그는 히틀러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효과를 내기 위해 섬세하게 무대 장치를 설계했다. 길이가 400m에 달하고 높이가 24m인 웅장한 계단으로 이어진 플랫폼을 만들었고 플랫폼 뒤엔 페르가몬 제단에서 힌트를 얻은 긴 열주로 위쪽을 마무리했다. 히틀러는 그 플랫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서 연설할 예정이었다. 밤에 열리는 전당대회의 극적 효과를 위해 슈페어는 심지어 플랫폼을 환하게 비출 130개의 탐조등까지 설치했다. 전당대회장 주변에 12m 간격으로 설치된 130개의 탐조등은 날카롭고 선명한 빛을 전당대회 장소뿐만 아니라 무려 6,500~7,000m 상공까지 비췄다. 이 모든 것이 히틀러라는 단 한 명을 위해 준비됐고 전당대회의 과정을 리펜슈탈은 기록영화로 담아냈다.

 

 

레니 리펜슈탈이 감독한 기록영화 <의지의 승리>의 한 장면 <출처 - 영화 <의지의 승리> 스틸컷>

 

 

히틀러가 나치 병사들의 사열을 받으며 연설을 마치고 걸어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혀온다. 비교할 수 없는 스케일로 다가오는 스펙터클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스케일을 벗어난 거대한 스케일을 맞이했을 때 순간 사고가 정지되는 숭고라는 미학적 순간이 감상자에게 다가온다. 이 장면은 전광판이 아닌 사람이 카드섹션으로 거대한 시각적 스펙터클을 연출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접해 보지 못한 스케일로 인해 입을 벌리게 만드는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연상시킨다.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 Ⓒ연합뉴스

 

 

히틀러가 연단에 선다. 카메라는 연단에 서 있는 히틀러를 우러러본다. 카메라는 다시 히틀러의 관점에서 전당대회장을 꽉 채우고 있는 나치 병사들을 보여준다. 수만 명의 사람이 전당대회에 모였는데 얼굴을 확인할 수 있도록 카메라가 포착하는 사람은 오직 히틀러뿐이다. 그를 제외한 수만 명의 사람은 카메라가 얼굴을 식별할 수 있도록 근접 촬영되지 않았다. 수만 명의 사람이 뉘른베르크에 모였고,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담긴 그 뉘른베르크를 또한 수만 명의 사람이 영상으로 봤다. 수만 명이 참여한 공개된 행사였지만 그 행사는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한 사람만의 영광을 위해, 한 사람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진행됐고, 그 공개 행사가 끝났을 때 오로지 한 명만 기억되는 행사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공간에서 우리는 공론장이 사라진 독재라는 위험을 감지한다. 일방향적인 소통이 지배적이면 공론장은 존재할 수 없다. 

 

시선은 양가적이다. 연인은 수평적인 시선을 교환하지만, 시선 교환의 수평성이 붕괴되면 시선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권력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타인을 일방적인 시선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감시다. 감시가 효과적으로 이뤄지려면 감시하는 자는 보이지 않아야 한다. 감시하는 사람이 베일에 가려져 있을수록 감시받는 사람은 그 크기만큼 무력해진다.

 

구경거리의 메커니즘은 진화한다

 

권력은 시선의 주체를 숨김으로써 작동되기도 하지만, 필요하다면 권력자는 자신을 시선의 대상으로 만든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라는 ‘궁정사회’에서 자신을 기꺼이 스펙터클의 대상으로 만들어 자신을 예외적인 존재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성공했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자체를 자신을 전시하는 극장으로 만들었다. 귀족은 관객이고, 베르사유라는 궁전에서 유일한 구경의 대상은 루이 14세다. 귀족은 비용 지불 없이 베르사유에 머물 수 있다. 모든 비용은 왕이 부담한다. 베르사유에서 귀족이 해야 할 일은 없다. 유일한 즐거움은 루이 14세 구경이다. 루이 14세는 기꺼이 자신의 식사 장면을 귀족들이 관람하도록 허락한다. 식사 장면을 구경하는 귀족의 숫자가 늘어나고, 왕이 무엇을 어떤 그릇에 어떤 방법으로 먹는지 궁금해하고 그걸 따라 하고 싶은 귀족이 많아질수록 왕의 식사를 구성하는 메뉴는 화려해지고 절차는 복잡해진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귀족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챈 루이 14세는 자신을 구경하는 시선을 역으로 이용한다. 베르사유에서 루이 14세는 정중하고 세련된 태도를 늘 취한다. 그는 힘으로 귀족을 굴복시키지 않고 귀족들이 자신을 부러워하게 만들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절제와 위엄을 조화시킨 몸동작, 우아함이 배어나는 테이블 예법, 귀족조차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화려한 의상, 루이 14세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귀족의 화제가 되고 그를 따라 하려면 귀족은 루이 14세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그를 관찰하는 시선에 호기심이 담길수록 루이 14세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는 귀족의 허영심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 귀족 사이의 질투심을 자신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변신시키는 수단으로 삼았다.

 

쥐스토코르(justaucorps) 칙허장(勅許狀)은 루이 14세가 고안해낸 놀라운 장치 중 하나였다. 소맷부리 장식이 있는 붉은색 안감을 댄 푸른색 옷인 쥐스토코르를 루이 14세는 화려한 문양이 금실과 은실로 수놓아진 붉은색 저고리와 함께 입었다. 왕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귀족들은 이 옷을 탐냈다. 귀족의 허영심과 경쟁심을 자극하기 위한 술수로 루이 14세는 쥐스토코르를 자신이 총애하는 사람에게 선물했다. 궁내부를 관장하는 국무비서가 루이 14세의 쥐스토코르를 받을 수 있다는 자격을 증명하는 문서인 칙허장을 발행했는데, 그 칙허장은 왕이 그를 총애한다는 뜻이었다. 칙허장을 받은 귀족은 칙허장을 손에 들고 자랑했다. 칙허장을 손에 넣고 싶은 귀족은 앞다퉈 루이 14세의 편을 들고 그를 칭송했다. 한때 귀족의 놀림거리이자 가십거리였던 루이 14세는 자신을 기꺼이 구경거리로 만들어 유일한 절대적인 존재인 ‘태양왕’이라는 지위를 얻는 데 성공했다.

 

베르사유는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로 진화한다. 진화 과정에 미디어 기술의 도움까지 더해지면서 기꺼이 구경거리의 대상이 됨으로써 권력이 작동하는 효과는 더 정교해진다. 나치는 베를린 올림픽을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베를린 올림픽은 하나의 극장 무대였다. 나치는 베를린 올림픽을 텔레비전으로 중계했고, 개막식이라는 스펙터클을 조직했다. 올림픽이라는 스펙터클을 본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치에 대한 국제적 염려는 줄어들었다.

 

주목(注目)을 통한 권력의 작동에 주목으로 인한 상업적 이윤의 실현 가능성까지 끼어들면서 구경거리의 메커니즘은 진화한다. 나치는 사라졌지만 나치가 권력의 작동을 위해 기꺼이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시각적 스펙터클의 메커니즘은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지금 여기에도 여전히 작동하며 인터넷과 만나면서 진화했다.

 

SNS는 현대의 가상 베르사유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021년 세계 최초로 3억 명을 넘었다. 2022년 2월 22일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4억 명을 넘어섰고, 자신의 기록을 계속 갱신 중인 호날두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022년 7월 15일 기준 4억 6,70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순위 1위인 K-POP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는 6,800만 명, 그 뒤를 잇는 방탄소년단(BTS)의 팔로워는 6,580만 명이다. 블랙핑크 멤버 지수가 팔로워 6,200만 명으로 3위,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팔로워 6,100만 명으로 4위, 블랙핑크의 공식 계정이 팔로워 4,700만 명으로 5위이며 그 이후의 순서 대부분은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멤버들로 채워진다.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의 인스타그램 <출처 -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SNS는 현대의 가상 베르사유를 닮았다.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셀레브리티는 베르사유의 루이 14세와도 같다. 셀레브리티가 자신이 입는 옷, 머무는 호텔, 사용하는 화장품, 먹는 음식을 포스팅하면 수백만 명의 팔로워가 포스팅을 구경하고 포스팅을 따라 한다. 나치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연출을 활용하고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기술을 통해 도달하려고 애썼던 시각적 노출을 통한 영향력 행사의 경지를 상회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은 우리 시대에 갈수록 늘어간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만이 아니다. SNS에는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영향력을 강력하게 행사하는 이른바 인플루언서가 넘쳐흐르며 현대의 베르사유는 매일 SNS에 새로 지어지고 있고 SNS화된 베르사유를 들락거리는 사람의 숫자의 규모는 매일 기록을 갱신한다. 셀레브리티는 기꺼이 구경거리의 대상이 됨으로써 영향력을 확보하고 그 영향력으로 광고 수익과 협찬을 통해 경제적 자원을 획득한다.

 

셀레브리티의 자기 노출과 그 노출을 구경하는 팔로워의 팬심이 만나 만들어낸 가상의 베르사유가 공공의 문제를 논의하는 공론장의 자리를 대체한다. 20세기를 상징하는 표현이 “감시하면 권력자다”였는데, 만약 21세기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럴 것이다.

 

“우리는 구경거리가 될수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21세기의 팔로워 수는 권력의 원천이다.”

 

셀레브리티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팔로워 수가 권력의 원천이 되면 공론장은 시궁창에 처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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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노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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