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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6개의 시선 22-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를 모토로 내거는 시대
기획연재 | 등록일 : 2022-12-30

집 근처에 새로 문을 연 식당이 있다. 장사 잘되던 가게가 어느 날 갑자기 문 닫는 일도 빈번한 요즘이니, 신장개업했다는 이유로 굳이 눈길 줄 필요가 없다는 요량으로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특이한 풍경이 눈을 끌었다. 이제 막 개업한 식당인데도 그 칼국수집 앞은 좀 특이했다. 입구에 늘어선 개업 축하 화환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음식 맛이 좋아도 입소문이 나려면 시간이 필요한 건 자명한 이치인데, 저 집은 어떤 연유로 문 열자마자 저리도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 그 까닭이 궁금했다. 성공한 바이럴 마케팅의 한 사례라고 해석 내리기엔 뭔가 아닌 듯 싶었고, 주인장이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사람을 동원한 결과라고 추정하자니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구글링’이라는 걸 했고 붐비는 까닭을 알게 됐는데, 그 이유가 사뭇 허탈했다. 그 집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유명한’ 대표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구글링 덕택에 나는 식당 대표의 재산, 그가 타는 자동차 모델, 그가 소유한 빌딩의 숫자, 그가 쓴 책까지도 알게 됐다. 그 집은 여느 식당이 아니라 인터넷의 ‘셀럽’이 운영하는 칼국수집이었으니 문을 연 첫날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던 것이다. 그렇다. 일단 유명해지고 볼 일이다. 유명하다는 건 21세기형 무형의 사회 자본이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지 않아 부모로부터 금융자산을 상속받지 않은 우리가 인생역전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거다. 유명해지면 된다.

 

유명함, 사회 자본이 되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이다. 재선에 성공해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대통령을 지냈으니 나름 성공한 대통령 축에 든다. 1980년대 영국의 총리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이끈 대통령이기에 신자유주의 체제를 분석하는 책에 반드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거니즘(Reaganism)이라는 단어를 역사에 남겼다는 의미에서 역사적 대통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건은 잘 알려진 대로 정치인이 아니라 영화배우로 사회적 경력을 시작했다. 물론 레이건 이후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영화배우는 그가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제38대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아널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역시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영화배우 출신이다.

 

레이건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등장하는 분기점이기도 하지만, 유명함 또한 사회 자본이 될 수 있는지를 예증했다는 점에서 21세기를 예견한 문화적 ‘징후’기도 하다. 미디어 학자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30여년 전에 쓴 《죽도록 즐기기》의 서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전직 할리우드 영화배우 출신이다”라고 썼는데, 그는 이미 그 당시에 레이건을 통해 21세기의 문화적 징후를 감지했던 것이다. 영화배우 출신이라는 점은 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정치인에게 전문적 신뢰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라면 영화배우 출신은 약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명함’을 능력과 동일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선 영화배우로서의 ‘유명함’은 정치인으로의 성공적 변신을 돕는 자산일 수도 있다. 정치인 레이건은 전직 영화배우로 쌓은 명성의 덕을 보았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그가 유명함이라는 사회적 자산을 오랜 기간 동안 축적하지 않았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다. 이런 맥락에서 레이건의 미국 대통령 선출은 문화적 무의식 측면에서 어떤 징후의 기원이다.

 

‘재미있음’이 유명함의 원천이 되는 시대

 

닐 포스트먼의 예언자적 식견은 레이건을 지나 다른 인물에도 주목한다. 포스트먼은 문화적 무의식의 전환에 대한 또 다른 예증 격인 인물 두 명을 더 언급한다. 그 중 한 명이 목사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이고 또 다른 인물은 성심리 전문가 루스 웨스트하이머(Ruth Westheimer)다. 역사상 남침례교 목사 빌리 그레이엄만큼 유명함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당대의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운동선수, 연예인에서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유명인의 간증을 전도 집회에 배치했고 성가대를 동원해 복음 전도에 흥미를 더했다. 그는 기존의 목사 이미지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논란이었고 “반계몽주의적인 형태의 기독교 신앙”이라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비판가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유명했고,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그의 유명함 앞에 굴복했다. 텔레비전은 빌리 그레이엄의 유명함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레이엄의 생애 동안 그의 설교를 미디어를 통해 시청한 사람이 무려 22억 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레이엄은 바티칸 로마 가톨릭 교황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루스 웨스트하이머 역시 비슷한 사례다. 섹스에 관한 대중적 토크쇼를 진행하는 루스 웨스트하이머의 모습에서 그가 나치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라는 과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1985년에 시작된 그의 텔레비전 쇼 <루스 박사 쇼>는 매주 2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냈다. 루스 웨스트하이머는 민감할 수도 있고 민망할 수도 있는 섹스와 관련된 고민에 즉흥적인 충고를 잘 해주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의 언어는 따뜻했고 유쾌했고 재미있었다. 그는 재미를 자신의 전문성과 충돌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시작부터 익살스럽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낼 때가 되면 서슴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를 연예인과 같다고 여길지라도 기꺼이 환영한다. 교수가 유머 감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기억하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 아닌가?”

 

 

루스 웨스트하이머 성심리 전문가 Ⓒ연합뉴스

 

 

루스 웨스트하이머로부터 심각한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빌리 그레이엄 그리고 루스 웨스트하이머는 각각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 출신이다. 이들의 전문 분야는 다르지만 유명한 사람이라는 점과 심각한 내지는 심오한 내용을 ‘재미’로 가공할 수 있는 특출한 능력을 소유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이들은 ‘재미있음’이 유명함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인물이다.

 

로널드 레이건, 빌리 그레이엄, 루스 웨스트하이머는 매우 전형적인 미국적 사례처럼 보인다. 청교도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뉴잉글랜드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던 그 때의 미국은 우리가 상상하는 미국과 달랐다.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는 자신이 속한 교구의 목사가 유명한 학자이기를 기대했고,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뉴잉글랜드 목사의 95%가 대학 학위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존경받는 목사는 해석과 합리적 담론을 강조했고 떠들썩한 감정 표현을 삼갔다. 신도는 목사에게 떠벌이 특유의 재미를 겨냥한 언변과 요란하고 화려한 제스처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신중하고 논리적이고 계몽적이며 이성적인 목사를 원했다. 청교도의 설교는 철학과 신앙심과 학문을 결합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빌리 그레이엄은 이민 초창기의 뉴잉글랜드에는 어울리지 않는 목사였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제40대 대통령 레이건과도 대조되는 인물이었다. 1858년 8월 21일 일리노이주 오타와에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링컨과 반대하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스티븐 더글러스(Stephen Arnold Douglas) 사이의 토론회가 열렸는데 그 토론은 7시간이나 이어졌다. 토론이 지루하다고 불평하는 청중은 없었다. 당시의 청중이자 유권자는 이성적이고 학구적인 목사를 기대했던 것처럼 사상가 스타일의 정치인을 원했다. 링컨은 그러한 당시의 기대에 부합하는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링컨이 레이건이나 슈워제네거와 경쟁해야 했다면 그는 정치인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링컨은 누가 봐도 ‘노잼’인 정치인이니까. 노잼인 그는 21세기의 인물은 될 수 없다. 21세기에는 명성을 얻으려면, 그리고 명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제일 중요한 요소는 전문성이 아니라 ‘재미’를 창출하는 능력이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양립하는 방송

 

텔레비전을 튼다. 방송법 제2조에 따라 종합편성 채널이라면 “보도, 교양, 오락 등 다양한 방송 분야 상호 간에 조화를 이루도록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한다. 텔레비전이 오락적 기능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만든 조항일 것이다. 방송법을 충실하게 따르는 텔레비전 종합편성 방송국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뉴스, 드라마, 예능과 시사교양으로 분류된다. 각 영역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드라마와 예능 카테고리에 가수, 코미디언, 유튜버가 출연하고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것은 특이할 게 없다. 그들이야말로 예능과 드라마 분야의 전문가이니, 전문 영역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의 활약은 지극히 당연하다.

 

시사교양 분야의 전문가와 드라마 예능의 전문가가 일치할 리 없다. 시사교양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와 드라마 예능에서 활약하는 전문가가 동일 인물일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대표적 문화적 징후 중 하나는 내용적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서로 다른 분야를 관통하는 동일한 코드가 있다는 점이다. 그 코드는 ‘재미’다. 아무리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진지해 노잼이라면 방송용 인물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은 21세기의 상식이다. 설사 그 사람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진지함’과 ‘객관성’ 그리고 ‘이성적’인 태도라 할지라도, 이 모든 전문가의 덕목은 재미있음과 재미없음이라는 마지막 시험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아침 방송에 출연해 의학 정보를 제공해주는 의사조차도 최소한의 재미는 갖춰야 한다. 전문성이 아니라 최소한의 전문성에 최대한의 오락적 재능을 갖춘 인물이 방송에 적합한 최종 인물로 낙찰된다.

 

전문적 지식을 소유한 전문가는 범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피된다. 오히려 선호되는 사람은 어느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나 출중한 연기력을 지닌 유사 전문가다. 사태가 이쯤까지 오면 어느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사실상 방송인으로 분류해야 하는 인물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도 설명하고, 정치학자도 아닌 동일 인물이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 Machiavelli)의 《군주론》도 설명하고,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설명하고 심지어 서양 미술사까지 설명하는데 전문가인 교수는 패널로 앉아있는 희극이 연출되기도 한다. 단 한 명의 범용 퍼포머를 찾지 못하면 탈출 방법도 있다. 전문가는 노잼으로 강의할 터이니 노잼을 방지하기 위해 패널로 ‘재미’를 담당하는 방송인을 앉히는 방법이다. 연예인이 활약하는 프로그램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전문가는 텔레비전에서 사라진다. 재미가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은 우리 시대의 웃기는 풍경이다.

 

심지어 뉴스조차도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를 모토로 내거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모든 뉴스가 재미있을 수 있는가? 어떤 뉴스는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만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 또한 재미라는 범주에 포섭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교양에 재미를 색칠할 수 있는가? 모든 면에서 노잼인 어떤 전문가에게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재미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 방송에선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양립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봤다고 시청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재미있게 포장된 전달된 비극을 다 잊는다. 또 다른 재미를 찾느라 생각할 틈이 없는 사람에게 이 모든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양립하는 세계는 모순이 아니다. 그럽시다. 죽도록 끝까지 즐겨봅시다. 대체 이 재미를 숭상하는 이 시대의 분위기의 끝은 어디인지, 그 끝과 마주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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