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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만남은 확실히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코너를 연재하면서 그간 3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 매번의 만남은 특별했다. 하지만 이번 만남만큼 활기가 넘쳤던 경우가 또 있었을까. 흔히 사람으로부터 ‘기운’을 받는다는 말을 하는데, 이들을 보는, 이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 내게 전해지는 신선한 에너지가 필경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소진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는 정치부를 거쳐 약 1년째 탐사팀에서 일하고 있는 4년차 기자다. 이정원 기자는 기존에는 경찰팀에서 일하다가 탐사팀으로 옮겨 1년 선배인 조소진 기자와 내내 같이 일했다. 이른바 ‘저연차’ 기자들이지만 이들의 활약은 여러 수상 실적을 통해 볼 수 있듯 뚜렷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와 처조카들의 ‘스펙 쌓기’ 논란이 불거질 무렵 이른바 ‘K-사교육’의 현실을 취재한 <비뚤어진 욕망, 아이비 캐슬> 기사로 한국기자협회 2022년 6월 기획보도 부문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뒤, 불과 두 달 지난 2022년 8월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시위 취재를 통해 작성된 <맹신과 후원, 폭주하는 유튜버> 기사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 기사, 국내 자영업의 고충을 다룬 <치킨 공화국의 속살>로 이달의 기자상을 탔으니, 2~3개월 주기로 기획보도 부문(신문·통신) 단골 수상자가 된 셈이다.
“일단 한 번 가봐라”
“다음 주에 한 번 더 가보겠습니다”
단순히 이런 화려한(?) 수상 실적을 보고 이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실은 지난 10월 15일 서울대에서 개최된 한국언론학회 가을정기 학술대회에서 이미 이들과 마주한 적 있었다. 학술성과물이 아닌 일반 기사가 학술대회에서 발표 꼭지를 맡는다는 것도 이례적인 것이었지만, 실제 발표를 듣고 난 다음에는 ‘폭주하는 유튜버’ 기사 시리즈가 우리 학문적 기준에 의하면 민속지학적 방법론을 충실히 이행해 미처 들여다볼 수 없었던 현장을 조명함으로써 어떤 학술논문 이상의 가치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취재 과정과 취재 결과를 번갈아가며 발표하는 이들의 태도에서 강한 지적 에너지가 느껴졌고, 토론자의 의견에 귀를 쫑긋하며 빽빽하게 노트에 받아 적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조소진: “저희 그때 토론을 너무 인상 깊게 들어서. 폭풍 필기해서 가져갔어요. (…) 저희끼리는 ‘이거 우리가 생각했다가 좀 외면하고 넘어간 부분인데, 그걸 딱 잡아냈구나’ 그러면서. (웃음)”
이정원: “발표 끝나고, 저희를 초청해주신 교수님 말씀으로는, 원래는 대학원생들이 오면 (토론자들이 발표자를) 막 울리고 그러는데 되게 마일드하게 넘어간 거라고 하셨어요.”
무릇 좋은 논문이건 좋은 기사건 스스로를 성찰적인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하지만 그렇게 해서 튀어나오는 약점에 제약되기보다는 그것을 과감히 극복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이들은 자신의 취재에서 어디가 문제될지 알았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슬기롭게 우회했다. 대학원생의 발표라고 해서 그를 ‘울릴’ 권력이 기성학자들에게 있으랴.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정작 ‘울어도 마땅’하지만 차마 울리지는 않고 넘어간 논문이나 발표는 다른 곳에서 오히려 더 허다했다.
이들이 작성한 <맹신과 후원, 폭주하는 유튜버> 기사는 무려 5주가 넘는 오랜 취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획기사고 탐사 보도니까 그럴 수 있다? 아니다. 그걸 감당해줄 언론사는 결코 흔치 않고, 그걸 감당하겠다고 나설 기자는 더욱 드물다. 이들은 평일에는 다른 취재를 하면서 서울에서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마을까지 여러 번 왕복해야 했다. 취재에 적대적인 시위 참가자, 때로 폭력적 언사와 행위를 서슴지 않는 유튜버들의 틈바구니에서, 그것도 여름 땡볕을 견뎌가며 그 광란을 지켜보고 그들의 속내를 열어야 했다. 혹시라도 수상 실적을 위한 ‘기획’ 취재는 아니었을까?
조소진: “상 받으려고 한 기획은 절대 아니었고요. 이것도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애초에 ‘평산에 한 달 가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기획은 절대 아니었어요. ‘일단 한 번 가봐라’ 해서 갔는데, 그 기사에도 쓴 내용이지만, 첫날에는 접근도 못했고, 둘째 날에 겨우 좀 이야기를 나눴고, 셋째 날 되니까 조금 나아져서, ‘다음 주에 한 번 더 가보겠습니다’ 이렇게 점점 길어져 5주까지 있었던 거예요. (…) 심지어 제가 처음 갔을 때에는 당일 올라올 생각으로 그냥 노트북만 갖고 갔거든요. 그랬더니 ‘더 있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랴부랴 모텔 예약하고. 속옷 사고, 양말 사고.”
이정원: “상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예를 들어 애초 발제와 콘셉트 자체를 시상단체가 좋아할 만한 쪽으로 잡고 들어갈 수도 있겠죠. 저희는 그걸 시작부터 하지 않고 취재 과정 중에 잠깐 생각하기도 하죠. ‘이 정도 나왔으니까 콘셉트를 그럼 이렇게 가면 되겠다’ 이 정도. (…) 사실 그런 기사의 경우에는 어떤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만한) 레토릭이 반복돼 나오기도 해요. 일종의 매너리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저희는 적어도 그렇게는 안 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 투입됐다가 겪게 된 의외의 상황. 그대로 물러설 수 없어서 더 물고 늘어졌고, 그렇게 돌파하다 보니 얻어진 나름의 성과. ‘일단 한 번 가봐라’라는 지시와 ‘다음 주에 한 번 더 가보겠습니다’라는 응답. 지극히 현실적인 취재기지만, 우리의 언론 환경상 그래서 더 비현실적으로 비쳐진다.
저연차 기자라서 가능하다?
이정원: “저희 직속상관이 사회부장이신데, 탐사팀에 쏟는 애정이 좀 크세요. 그래서 부장이 관심 있는 주제를 막 던지면, 저희가 왼 바퀴, 오른 바퀴로 해서 그냥 가는 거죠. (웃음) 탐사팀이 저희 같은 저연차 기자 두 명을 기초로 굴러간다는 걸 알고 ‘이게 뭐지?’하며 놀라시는 분들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저연차 애들 두 명이기 때문에 이런 운영이 가능한 거라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저연차 기자라서 이런 운영이 가능하다? 왜일까?
이정원: “일단 저희는 가라면 가고. (웃음)”
조소진: “저희가 아는 게 없다 보니까,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는데, 결국에는 둘 다 현장에 가서 그걸 검증해보려는 성향이 강해요. 만약 저희가 연차가 더 찼으면 또 아는 게 많고 시야가 넓다 보니까, 이건 얘기가 된다 안 된다 판가름 날 수 있지만요.”
이정원: “지시가 내려오면 숨이 막히지만 빨리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오히려 길이 뚫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떻게 보면 지시를 그냥 그대로 흡수하는 연차다 보니 오히려 이게 가능한 것 같아요.”
조소진: “저희가 궁금증이 아직 많아서, 이것도 알아보고 저것도 알아보고 이런 게 많다 보니까, 우여곡절도 많고 시행착오도 많아서, 누가 보면 ‘이거 기사 나갈 수 있어?’라고 기사 출고 직전까지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저희는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편이에요. (…) 거의 뭐 매일 일밖에 없으니까, 서로 매일 카카오톡을 해서 ‘내가 취재한 건 이런데, 우리가 세운 가설에 어느 정도 부합하고, 이건 좀 더 같이 알아볼 만하다, 이것은 이 사람의 주장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같이 이야기를 해서 점점 기획안을 구체화하면서 만들었어요.”
이정원: “그래서 여기 왔다가 저기 갔다가, 이렇게 (기사의 방향과 내용의) 배치를 계속 바꾸고요. 근데 그런 것에 대해서는 부장께서 완전히 저희한테 맡겨 버리시는 거죠.”
조소진: “너희 둘이 알아서 조절을 해봐라.”
이정원: “(막상 말하고 보니) 되게 묘한 팀이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만담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들의 증언 속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일단 한 번 가봐라’라는 말과 ‘다음 주에 한 번 더 가보겠습니다’라는 말이 내 귀에 걸렸던 이유, 그리고 그 실체가 보였다. 이들은 서로를 믿고 있었다. 지시하는 이도, 지시를 이행하는 이도. 언뜻 보면 상명하복으로 오해될 수도 있지만, 믿고 있기에 일단 던지고, 믿고 있기에 일단 가보고, 믿고 있기에 더 해보도록 맡기고. 그렇게 해서 신뢰를 실물로 완성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즐거워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들의 다음 이야기 속에서도 확인된다.
이정원: “회사 안에는 기획부서도 있지만 데일리 부서가 더 많잖아요. 항상 부장도 말씀하시고 저희도 많이 느끼는 게, 기획부서는 스포트라이트를 어쨌든 주기적으로 받죠. 또 저희가 취재를 길게 하는 동안 데일리 부서들이 신문을 지탱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는 인식이 크거든요. 그래서 (마냥 이 자리에 있는 게) 좀 부담스러운 것이 있기는 해요.”
조소진: “감사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게 신문이란 건 하나의 팀이잖아요. 어느 하나가 빠지면, 지면에 구멍이 나면, 신문을 못 내는 건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시는 선배와 후배들이 있으니까 저희가 이렇게 한 발 더 나아가서 장기적인 취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거고.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지만 부담으로도 다가오죠. ‘너희는 한 달이나 시간을 줬는데 성과가 이것밖에 안 돼?’라는 말을 들을까 봐. 또 저희는 특히 저연차 둘이니까 ‘그래서 뭐가 되겠어?’라는 선입견이 좀 있어요. 그래서 좀 더 악착같이 이렇게 뭐 하나라도 조금 더 팩트를 가져오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직업보다 ‘삶’에 가까운 기자
궁금한 것이 많지만 아직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오히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또 자신들에게 드리워지는 선입견과 부담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현장을 파고 몸으로 부딪쳐가며, 서로에게 의지해가며 답을 찾는 이들의 모습은, 나 역시 나이가 들어서일까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언론의 현실은 불행히도 이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의미에서 초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 만남은 특별했고, 이들이 더 특별해 보였다. 저연차 기자일수록 이직이 잦고 기자를 떠나 다른 직업을 찾는 경우가 부쩍 더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라 더 그렇다.
조소진: “많이 이직했어요. 제 주변에 있는 친구들 진짜.”
이정원: “이직을 했거나 아직 이직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 같아요.”
조소진: “저는 대학교 때 학보사를 했는데, 그때 어떤 선배가 와서 했던 말 중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게 ‘기자는 직업이 아니라 삶 같다’는 말이었어요. ‘네가 학보사를 해봤으니까, 이게 맞다, 이게 맞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 삶이 맞다는 생각이 들면 쭉 가고, 혹시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언론사에) 지원조차 하지 말아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말이 진짜 맞는 것 같아요. 직업보다는 어떤 ‘삶’에 가깝죠.”
‘직업’이 아니라 ‘삶’이다? 언뜻 이해가 될 법도 하지만 혹 그렇다 해도 너무 장중한 어법인 듯하다.
조소진: “하루 종일 고민하고, 밥 먹다가도 고민하고. 말하자면 이게 ‘일’과 ‘생활’이 분리가 안 되는 직업이잖아요. 요즘 제 주변의 친구들은 그렇게 일을 열심히 했으면 그만큼의 돈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직업이 그렇지는 못하잖아요. 제 주변에 홍보 쪽으로 옮긴 친구들이 많은데 홍보 일도 저희만큼 힘들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거기는 돈을 1.5배 이상 주니까요. ‘어차피 똑같이 힘들 거면 나는 돈이라도 더 받을래’ 이런 생각으로 이직하는 친구들도 많았고요. 아니면 나는 적어도 일과 생활이 딱 분리되는 식으로 살고 싶다고 해서 아예 스타트업으로 틀어서 간 친구들도 되게 많아요. 제 연차가 딱 이직을 시작하는 연차다 보니 주변에서 많이들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기자의 일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노동을 하고, 딱 그만큼의 보수를 받고, 나머지는 개인에게 주어진 여가로서 마음 편히 활용할 수 있는 성격의 직업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자신의 삶을 온통 지배하는 그 일이 좋아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매우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른바 ‘워라밸(work & life balance: 노동과 여가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는 통칭 MZ세대에게는 적합한 직업이기 어렵다는 말이다. 적어도 내게 삶(life)이란 일(work)과 여가(leisure)를 묶어주는 더 광의의 개념인데, 이들 세대에게 ‘삶’은 ‘일’ 혹은 ‘직업’과 대비되는, ‘여가’에 가까운 개념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것은 세대성의 문제일까, 아니면 직업 종류의 문제일까, 또 아니면 이른바 노동 소외라는 무척 전통적인 개념이 현재에 들어 더욱 도드라지게 된 걸까?
이정원: “음…. 저희 둘은 진짜 같은 연차의 기자들에 비해서 기자직을 삶으로 생각하는 축에 속하거든요. 아, 진짜, 정말이에요.”
조소진: (격하게 동의하며) “네, 꼰대에요. 저희 동년배에서.” (웃음)
이정원: “맞아요. 동년배에서 전 꼰대. 그러니까 여기 탐사팀에서 이러고 있는 게. (…) 저는 아직은 그 낭만이 남아있기는 해요. 그래서 이게 소진될 때까지는 당연히 계속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 낭만을 유지하는 것도 조직의 ‘우쭈쭈’가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조직도 나를 좀 계속 예뻐해 주고, 상황이 잘 돌아가면 제 낭만이 계속 될 것 같은데, 진짜 이게 언제 한순간에 소진될지도 모르는 거구나 깨닫기도 해요. 어떤 애착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상황에 따라서는 뭔가 내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거나, 아니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진짜 애정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죠. 저는 이 생각을 기자가 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왜냐하면 저는 기자가 제 소명인 줄 알았고, 이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조소진: “저는 그냥 생(生)이, 그냥 제 삶이, 그냥 하루하루가 거의 뭐, 다, 어떻게 보면 일과 연결이 돼 있어요. 밥 먹다가도 ‘이거 막혔는데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샤워하다가도 ‘아까 취재하면서 전화할 때 이렇게 말할 걸, 내가 질문을 잘못했네’ 이렇게 되고요. 심지어 운동 가서도 자꾸 생각나고, 기사가 나간 다음에도 미처 다 못 쓴 취재 내용을 하루 종일 생각하고 그래요. 이런 게 이 직업의 매력이자 약간 좀 마이너스 요소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MZ세대의 ‘꼰대력’이 끌어갈 미래
왜 스스로들을 꼰대라고 부르는지 이해할만했다. 이들은 여전히 기자라는 직업이 좋다. 삶과 분리되지 않는, 삶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이 직업이 싫지 않다. 비록 보상이 조금 적어도 비록 계속 일이 머리에 맴돌아도. 나쁘게 말하면 ‘일 중독’ 상태에 빠지고, 자신의 ‘여가’를 ‘삶’과 동일시하는 동년배와는 다른 꼰대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소진: “저희 둘은 그래도 이 직업을 좋아하고, 약간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재밌어요.”
이정원: “지금 팀을 떠나더라도, 전혀 다른 분야로 갈 일은 없어요. 진짜 마약 같아요.”
조소진: “저희가 아마 탐사팀에 있어서 이렇게 얘기하는 걸 수도 있고, 연차가 더 차고 여러 부서를 경험해 보면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저희는 어쨌든 취재하고 싶은 대로 취재 다 할 수 있고, 기사도 대체로 존중해주는 편이고, 기사가 나갔을 때도 되게….”
이정원: (조소진 기자의 말을 잡아채며) “뿌듯하고. 만약 지금 이 직업에서 벗어나려는 젊은 기자들이 한 번이라도 저희 같은 경험을 해봤다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재미를 다른 기자들도 느껴봤다면 아마도 기자직을 떠나는 결정을 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 만큼이나, 자신들의 ‘일’이 ‘삶’과 다르지 않은 이들의 오늘을 그대로 대변하는 게 또 있을까 싶었다. 이들의 에너지에 동화된 나는, ‘앞으로 또 어떤 취재를 하고 싶냐’는 매우 관습적인 질문을 던져놓고는, ‘이런 게 어떨까, 저런 고민도 해보면 어떨까’하며 학자이자 교육자 특유의 ‘꼰대질’을 저도 모르게 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조소진 기자는 또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다. 그리고 이정원 기자는 “갑자기 의지가 생긴다”며 눈망울을 키운다. 조소진 기자가 “모 선배가 저한테 ‘너는 나이는 MZ세대지만, 네 정신은 전후 세대에 가깝다’고 했다”고 말하자, 이정원 기자는 “이 선배는 이번 유튜버 취재 전까지는 유튜브가 뭔지도 잘 몰랐다”고 일러바친다. 참으로 시쳇말로 ‘쿵짝이 잘 맞는’ 파트너. 나까지 포함해서, 세대를 멀찍이 가로질러 각 세대에서 가장 꼰대스러운 이들이 만나 빚어낸 이 ‘꼰대력’이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그려갈지 새삼 궁금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