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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 대한민국의 산업 물류 일부를 잠시 멈춰 서게 했던 화물연대의 파업, 아니 집단적 작업 거부는 종료됐다. 스스로를 화물 노동자로 부르지만, 정부에 의해선 자영업 차주(車主)로 호명되던 이들은 정부의 초강경 대응에 밀려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올해로 일몰 예정인 안전운임제는 12월 31일 2022년의 마지막 해와 함께 지평선 뒤로 넘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안전운임제의 일몰 조항을 없애고, 대상 범위를 확대해달라고 요구했다. 본래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일단 연장한 뒤 대상 범위 확대 여부는 추후 논의를 통해 정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젠 안전운임제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고 말한다.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차주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화물연대 파업의 배경, 실제로 그들이 놓인 환경, 그리고 왜 이 논의에 ‘안전’이라는 이름표가 붙게 되었는지가 궁금한 독자가 있다면, 변진경·전혜원 시사인IN 기자가 작성한 기사 <화물차를 쉬게 하라>(https://truck.sisain.co.kr/)를 일독해 보시길 감히 권한다. 2022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탐사보도 시리즈가 풍부한 현장 취재, 데이터, 이미지를 결합해 제공됐다. 그중 백미는 앞에 하이퍼링크로도 달아놓은 인터랙티브 기사다. 흑백영화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도입부에서부터, 디지털운행기록부(DTG, Digital Tacho Graph)가 화물차 바퀴처럼 쉼 없이 돌아가는 기사 후반부에 이를 때까지 내내 우리를 몰입하게 한다. 디지털 기사의 형식미와 함께 내용적 충실성까지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 요즘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편향’의 문제를 들먹이고 싶다면, 이들이 전하는 당사자의 목소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에는 눈과 귀를 열어둬야 할 게다. 적어도 이 정도에 값하는 ‘반대편’ 목소리와 그것을 뒷받침해줄 자료를 갖고 오면 된다. 그런 게 맞물려야 우리 사회의 공론이 만들어질 최소한의 토대가 확보되는 것 아닐까?
기자와 학자, 공통 관심사를 갖고 만나다
당연히도 이런 기사는 매일 아침 출입처에 들어가서 유력 정치인이나 행정 관료가 던져주는 말을 붙잡아 교차 확인도 없이 고스란히 타이핑해(가끔은 실제 했던 말과는 다르게 ‘마사지’까지 해서) 현장 송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변진경·전혜원 기자의 발로 뛰는 취재와 글, 이명익 기자의 사진, 조남진 기자의 인트로 영상, 최예린 기자의 그래픽, 데이터 시각화를 담당한 VWL의 배후 지원이 만나서 완성됐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자문도 큰 역할을 했다.
변진경 기자: “(데이터 시각화를 맡아주신) 그분은 그냥 좋은 데이터가 있으면 욕심을 내는 분이에요. 작년에 제가 스쿨존(어린이들의 안전한 통학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만 13세 미만 어린이시설 주변 도로 중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교통안전시설물 등을 설치한 구간) 기획을 했을 때 같이 해주셔서 그 후로도 계속 필요할 때마다 내용을 공유하곤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한상진 교수님이 연구하시면서 얻은 화물차 디지털운행기록 데이터를 보고 작업을 하면서 또 도움을 주시게 된 거죠.”
한상진 교수: “저는 주로 교통안전을 연구하는데요,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최우선 순위가 ‘도시 구(舊)도로의 속도 관리’고 그건 어느 정도 해결이 됐어요. 그다음 순위가 화물차 사고예요.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가 보기에 열악한 노동 환경이 분명히 연관돼 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을 제대로 분석한 적이 없어서 저도 연구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DTG 분석을 해보게 된 거죠. 변 기자님은 어린이 보호구역 취재를 하시다가 화물차 사고 문제에까지 이르게 된 거고.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됐죠.”
변진경 기자: “사실 화물연대 파업이나 안전운임제 문제는 화물차 사고의 원인을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다가 대안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고려하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당사자인 화물연대를 접촉해보자 생각한 거죠.”
기자와 학자가 ‘교통안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놓고 만났다. 화물차 사고라는 우리 교통안전 체계의 중대한 결함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혹시라도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것인지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학자는 화물차에 부착된 디지털운행기록부 데이터를 들고 연구를 시작했다. 기자는 그 데이터를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실제 화물 기사를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고 아예 이들의 동선에 함께해보기로 했다.
한상진 교수: “화물차 운전자들은 운행 기록 장치를 의무적으로 달게 돼 있어요. 그런데 그걸 제출하지 않으면 그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죠. 그걸 지자체가 하는데, 화물차 운전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경우는 없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이거 좀 내세요’라고 자꾸 강제해야 그나마 모을 수 있죠. 어떤 지자체는 잘 모으고 또 어떤 데는 잘 안 되고.”
변진경 기자: “저희가 DTG를 분석한다는 걸 그분들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죠. 그분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작업 일상이 드러나는 거니까) 싫어하실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 취지에 잘 설득이 돼서 그 뒤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인터뷰 대상자 섭외도 할 수 있었고, 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도 하게 된 거죠. 적으면 몇십 명, 많아야 몇백 명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기사의 재료 정도로 써야겠다 싶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응답해주셨어요. 내용도 너무 좋고, 주관식 답변도 길게 달아주셨어요. 다 휴대폰으로 써야 했던 건데. 그래서 느꼈죠. ‘아, 되게 말할 기회가 없으셨구나’라고요.”
한상진 교수: “그러니까요.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시장인데, 이 정도로 심층적으로 쓰인 기사가 이번에 처음으로 난 거 아니겠어요?”
‘소리 없던’ 아우성에 작은 마이크를 놓아주다
자신들의 작업 현장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 작은 휴대폰 화면 위로 그 설문 문항에 답하면서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을 깨알같이 적어내더라는 것. 이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기를 염원했던 듯하다. 변진경 기자의 이 기사는 이 ‘소리 없던’ 아우성에 작은 마이크를 잠시 놓아주었을 따름이다. 실존하지만 실재하지 않은 듯하게 덮여 있던 현실의 장막을 걷어 보여주는 일. 저널리즘이란 본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나마 이렇게 해서라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기회를 얻은 데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변진경 기자: “사실 이 기사가 원래는 한 10월쯤에 나올 예정이었어요. 한상진 교수님께서도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고 계셨고요. 그런데 (여러 예상 못 한 일이 생기면서) 좀 늦게 나오게 됐어요. 솔직히 이런 종류의 기사는 그 시기의 주요 이슈하고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그냥 조용히 묻히고 지나가게 마련이에요. 저희 것도 그럴 가능성이 컸죠. 그러다가 화물연대가 파업을 하게 됐고, 그때쯤 저희 기사가 나갔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이 기사를 보고 파업의 이유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화물연대에서는 ‘도와주어서 감사하다’고 제게 말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저희 기사가 도움을 받은 거예요.”
한상진 교수: “화물 운송 시장의 내부 편차가 커요. 그걸… 뭐라고들 하죠? 그래요, 뭐 진짜 귀족 노동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월 500만 원 이상 버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분명히 있어요. 근데 월 100만 원이 안 돼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죠. 이런 격차를 보여주는 통계 수치가 전혀 없으니까, 그냥 항상 중간만 보여주니까. 누구는 이걸 보라고 하고, 또 누구는 이것만 봐야 한다고 하고. 이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그럼 이걸 잘 모니터링해서, 각 단계는 어떤지 보여줄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해요. 사고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근로 조건도 그렇고, 임금도 그렇고, 다 같이 제대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확히 그렇다. 애당초 화물연대 측이 안전운임제 상설 및 확대를 주문했을 때, 정부나 화주 측의 태도는 ‘자료가 충분치 않아서’ 확답을 주기가 여의치 않다는 거였다. 그러다가 강경 대응 기조로 선회하고, 그간 한 번도 쓰이지 않던 법 조항을 들어 ‘업무 복귀’를 명령하고 난 다음에는, 갑자기 교통연구원의 한 수치를 들고나와서 ‘안전운임제가 사고 예방에 별 효과가 없더라’는 주장을 펼쳤다. 중요한 건 불안전한 수치로 자의적인 주장을 펼치는 게 아니라, 한상진 교수와 변진경 기자가 제시한 것과 같이, 문제의 원인을 짐작케 해주는 최소한의 데이터를 토대로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 테이블을 만들고, 현재 가능한 것부터 하나하나 집행해 나가는 게 아닐까?
변진경 기자: “기사가 나가고 나서 저한테 메일이 많이 들어왔어요. ‘소형 화물차도 취재 좀 해주세요’ 이런 내용도 있었고요. 동조하는 목소리도 있고, 좀 다른 시선에서 보는 목소리도 있고 한데, 정말 다양한 시각과 감정이 들어 있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각자의 현실을 토로하면서 메일을 보내고 전화도 하는 되게 복잡한 시장인데, 이걸 단순히 ‘노동시장 이중구조’라고 규정하고, 예를 들어 화물 분야의 고임금 노동과 저임금 노동을 갈라치기 위해서, 서로 싸움 붙이기 위해서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우리에게도 좋은 기사가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안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과연 현재와 같은 진행 방식이 도움이 되는 걸까, 아니 더 나아가서 근본적으로 그걸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걸까,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한상진 교수: “(해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 최근 이야기되는 안전속도 5030 문제만 해도 그래요. 그게 사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됐어요. 그때 경찰청 교통국장이 ‘사고를 줄이려면 필요한 정책이다’라고 하면서 자기가 끝까지 밀어보겠다고 했고, 그래서 여러 기관 전문가들이 모여서 얘기한 결과로 지난 정부에서 결실을 맺었죠. 그런데 지금 다시 그걸 없애겠다고 하니 제가 깜짝 놀랐어요.”
변진경 기자: “지금도 지방자치단체 여기저기에서 다시 제한 속도를 올리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한 번 모아서 써보려고요. 실제로 가보고, 파보고, 얼마나 나아졌나 보고.”
한상진 교수: “그건 제한 속도를 올리지 않아야 할 데를 올리고, 낮추지 않아도 될 데를 낮춰서 생긴 문제에요. 예를 들면 제가 오늘도 노들길로 운전하고 왔는데, 거기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제한 속도를 낮출 필요가 없는데도 낮춰놨죠. 그러다 보니 그런 정책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거 완전히 주먹구구로 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게 되죠. 그런 걸 조정할 필요는 있어요. 그런데 그걸 넘어서 갑자기 ‘전체적으로 이 정책은 문제가 있으니 철회하겠다’ 이러면 안 되죠.”
보편적 교통안전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니, 학자와 기자의 눈이 더 초롱초롱해지고 목소리에 더 힘이 들어갔다. 교통안전 문제를 전공하는 학자는 자신이 연구해온 바에 따라 확신과 의무감을 갖고 이야기한다. 교통안전 문제에 집중해왔던 기자는 다시 또 그 현장으로 들어가 ‘정말로 그러한지’를 꼼꼼히 파보고 글을 쓰겠다고 한다. 전문성을 지닌 저널리스트와 전문 연구자의 열정과 그 합이 추운 날씨를 무색케 할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한상진 교수에게 변진경 기자로부터 ‘자문 당하는’ 소감이 어떠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한상진 교수: “저는 사실 되게 감명받았어요. 완성된 기사를 보고 나서, ‘야, 이렇게까지 공부했구나’라고요. 저도 기자분들을 여럿 만나지만 (변 기자의 눈치를 보며) 그… 좀… 적당히 하시고 대충 쓰는 것 같은데. (웃음)”
변진경 기자: “(쑥스러워하며) 저희가 아는 게 없으니까, 일단은 있는 것 갖고 해보자라고.”
한상진 교수: “<화물차를 쉬게 하라>는 정말, 예, ‘두 거장’이 만난 거예요. (웃음) 변 기자님도 그렇지만, 데이터 분석해서 시각화해주신 분, 진짜 대단해요.”
변진경 기자: “저도 쉽게 가고 싶어도, VWL 대표님이 밤새고 그러시니까 진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웃음) 그분이 원래 노동 분야에 관심이 있었거나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데이터만 보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데이터를 보다 보니, 이게 정말인가 싶어서) ‘이상한데, 이상한데…’ 그러시면서 저한테도 ‘취재 좀 해보세요’ 그러시고.”
한상진 교수: “그분이 미적 감각도 뛰어나요.”
변진경 기자: “저희 기사에서 인상적이었던 그 바퀴 굴러가는 이미지. 처음에는 제가 ‘주행 기록’은 최대한 빨갛게, ‘휴식 기록’은 초록색으로 구분을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끝까지 휴식은 까망, 주행은 빨강, 이렇게 해서, 최대한 까만색을 많이 쓰려고 하시는 거예요. 근데 제가 보기엔 그렇게 하면 구분이 잘 안 돼 보여서 막 싸웠어요. 그러다가 제가 졌는데, 결과적으로는… (현재와 같이 나온 거죠).”
한상진 교수: “잘 졌어요. (웃음)”
마냥 부드럽게 협력했다기보다는, 각자의 고집을 품고, 서로 다른 시각에서 때론 다투기도 하고, 서로를 부추기기도 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래서 더 값지고, 그래서 더 호소력이 높은 기사가 됐다. 얼마 전 이태원 참사 이후 BBC, 워싱턴포스트, 로이터 등이 만든 인터뷰 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 등을 보고 외국 언론의 우수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렇게 시사IN이 해낸 것 같은 좋은 기사가 있다.
변진경 기자: “사람들이 정론지는 다 외국에 있고, 한국은 이런 거 하지도 못하는 ‘기레기’들만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저는 좀 화가 나요. 우리도 노력하는 기자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저희 기사를 보고 ‘이런 거 한국에서 처음 봤다’는 분들 계시지만, 그전에도 여럿 있었거든요. 또 근데 이런 거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거든요. 돈, 시간, 그런 게 다 비용인데, 무조건 ‘기레기’라고 하고, ‘너희는 이런 거 못 하지? 우린 이제 BBC 볼 거야’ 이렇게 가니까 슬프죠. 물론 우리 언론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불태우지 않더라도 적절한 보상 받을 수 있어야
맞다. 좋은 기사는 비용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기자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는 저널리즘은 결코 유지될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변진경 기자: “저희가 칭찬을 들어도, 돈이 따라오진 않아요. (웃음) 칭찬 다음에 구독이 이어지고 한때 그러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잘 안 돼요. 솔직히 이런 작업 하는 거, 되게 눈치 보이거든요. 이만큼 시간과 비용을 빼는 거면, 그만큼 다른 곳에 더 자주 가야 할 걸 뺏기게 되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만큼 (주간지 지면을 메우기 위해) 매주 올릴 기사를 써야 하는 거고요. 저도 사실 충분한 시간을 빼지 못했어요. 그래서 휴가 내고 한 거예요. 웹페이지를 만들 때는 눈치가 보여서. 당장 기사 빨리 써야 하고, 포털에 빨리 공급해야 하는데, 이런 건 좀 ‘외도’ 같은, 그러니까 ‘사치’ 같은 게 돼버리니까.”
칭찬이라는 보상은 있지만, 그렇게 칭찬받을 수 있는 기사를 만들 토대가 보상으로 찾아오지 않는 조건. 내가 <신문과 방송이 만난 사람>을 통해 상찬했던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어려움이었다. 그들은 늘 자신의 ‘개인 시간’까지 내서 ‘눈치를 보며’ 기사를 써야 했고, 그걸 뒷받침해주는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해했다. 이런 구조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다. 그렇다면, 학자에게는 어떨까? 이런 기회를 통해 그가 받은 보상이 있을까?
한상진 교수: “저는 괜찮아요. 이런 작업이 제가 논문을 쓰는 데도 물론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사실 제 연구가 세상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더 커요. 그러려면 (연구논문으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언론에서 ‘이게 중요한 이슈고, 이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된 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 저는 별로 한 게 없고, 변진경 기자와 전혜원 기자 두 분이 다하셨어요. 예를 들어 제가 학생한테 ‘이거 좀 조사해봐’ 이러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나올 수가 없어요. (웃음)”
변진경 기자: “저희 일하는 방식이, 만날 쫓기면서, 제한된 시간 안에 마감해야 하고. 가끔씩 제 관심사와 맞아떨어지면 이제 이렇게 ‘버닝(burning: 화르르 불태우듯 기력을 소진)’ 하죠. 그렇게 몇 번 버닝을 하고 나면, ‘나도 이제 마지막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제 마흔이 다 됐는데, 지금 너무 힘들어서 이제 현장 나가는 거 그만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죠. 그런데 또 저는 현장에 나가는 게 재미있긴 하거든요. 솔직히 그런 걸 하는 게 재미있어서, 계속 그것만 할 수 있으면, 수습인 척하고 만날 그러면 좋겠어요. (웃음)”
학자라는 직업도, 기자라는 직업도, 연구가 재미있고 취재가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걸 위해서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없이 움직이기도 한다. 말 그대로 불태우는 직업이다. 그런데 ‘번아웃(burn-out)’이라는 말이 있듯, 그렇게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하고 나면 하얗게 재가 된 것처럼 쓰러지는 순간이 오게 된다. 너무 불태우지 않고서도, 인간답게 일하면서도 적절한 보상과 적절한 품질이 만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게 안 돼서 우리 저널리즘이, 우리 학문이, 또 우리의 노동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사라져도 시장은 남을 거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 학문이 비틀거리고 있어서, 우리 저널리즘이 흔들리고 있어서, 우리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우리 노동이 무너지고 난 다음 홀로 남은 시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일이 주는 보람과 즐거움으로 밝게 웃었지만, 흔들리는 안전 그리고 무너지는 노동으로 인해 또 침울했다. 2022년을 보내고 2023년을 맞는 우리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