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면 상품의 가치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과 평가를 통해 결정된다. 소비자는 평가의 주체로서 똘똘해야 하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렇다.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과 평가로 형성되는 수요공급의 결과로 가격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된 가격에 따라 어떤 재화가 얼마만큼 생산될지, 이를 위해 자원이 어떤 산업에 어떻게 배분될지, 소득이 어떻게 분배될지 등 주요 경제 문제가 해결된다. 이것이 시장에서 가격이 발휘하는 기능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시장과 가격을 주도한다고 보아 소비자 주권을 내세운다.
물론 기업, 특히 대기업의 힘이 소비자 주권을 압도할 수 있다. 특히, 기업의 광고가 소비자의 선호를 변경시켜 소비자의 판단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시장의 매매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므로, 소비자가 제품을 소비해 보고 광고와 제품의 내용이 부합하는지 판단해 재구매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기업에 규율을 가할 수 있다.
서양에서 이보다 먼저 등장한 민주주의의 원리에서도 정치인은 유권자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선거장에서 평가된다. 그리고 선거의 결과인 득표수에 따라 당락이 결정돼 권력이 부여되고 배분된다. 시민이 권력을 부여하므로 민주주의는 주권재민 혹은 시민의 주권을 내세운다. 여기서 시민은 소비자에 상응하고 득표수는 가격과 비슷하다.
당연히 양자 사이에 차이도 있다. 특정 후보자에 대한 시민의 선택은 선거의 결과가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회적 선택이다. 이에 비해 가령 사과를 사는 소비자의 선택은 구입의 결과가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개인적 선택이다. 따라서 시민의 선택은 소비자의 선택보다 더 많은 지식과 판단력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양자 모두 다원적으로 보이지만 선거장에서 이뤄지는 시민의 선택은 ‘일인일표’로 시민들이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다. 이에 비해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일불일표’로 소득과 재산의 차이에 따라 구매력 혹은 투표수의 차이를 지닌다. 이것은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의결권이 보유 주식 수에 비례하는 것과 같다.
나아가 선거나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몇 년에 한 번 이뤄진다. 중간 평가가 있지만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속력이 없고 일상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선거장의 평가는 시장의 평가보다 그 중요성이 더 크면서 빈도는 훨씬 더 적다. 그렇더라도 정치인이 표방한 것과 정책 등을 통해 실제로 실시한 것을 비교해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
전문직일수록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외에 한국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제도로 입학시험을 위시한 각종 시험을 들 수 있다. 특히, 학벌 사회인 한국에서 학벌을 결정하는 입시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평가하는 잣대다. 그리고 입시는 다른 어떤 평가 체계보다 더 철저함과 객관성을 자임한다. 가격, 득표수와 함께 점수 및 석차가 사회의 또 다른 척도다.
그런데 시험장에서는 문제에 대한 답이 정해져 있어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이 이미 주어져 있다. 국어, 영어, 수학이 각기 100점 등으로, 특정 과목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이미 정해져 있다. 이에 비해 선거장과 시장에서는 평가 기준의 가중치가 정해져 있지 않고 시민의 입장이나 이념, 소비자의 선호와 소득이 합쳐져 사후적으로 기준이 형성된다.
어떤 시민은 후보자의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시민은 경력이나 학벌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또한 어떤 소비자는 자동차의 엔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소비자는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같이 선거장이나 시장의 평가는 시험장의 평가보다 불확실하고 규격화돼 있지 않다.
선거장과 시장에서 다수의 시민과 소비자가 갑이라면, 시험장에서는 소수의 평가자가 갑이다. 물론 시장에서도 소비자가 명목상으로만 갑이고 실질적으로는 을인 경우가 있다. 의사, 변호사, 교수의 서비스와 같이 전문 지식에 근거한 업종이 대표적인 예다. 이 점에서 이들에 대한 선택은 일상적인 식료의 선택과 차이가 있다.
시민이나 소비자는 전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 이들의 서비스를 선택하거나 평가하기가 힘들다. 특히, 대형 로펌이나 종합병원에 가면 고객이 변호사나 의사에게 요구하기보다 변호사나 의사가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종합병원의 의사가 거의 기계적으로 실시하라는 검사와 투약 등의 처방이 과연 어디까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환자들은 평가하기 힘들다. 그러니 고객은 겉으로는 갑이면서 속으로는 을이 된다. 교수보다 지식이 부족한 학생은 수업료를 내면서도 갑이 아니라 을일 수 있다. 이런 경우 민주주의나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기 어려우므로 전문직일수록 보다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필요로 한다.
말과 글의 가치와 영향
소비자와 시민 등의 이런 평가에 말과 글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경제학이 경시해 왔지만 경제 영역에서도 말과 글은 가치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흔히 인용되는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말과 글에 의존해 생산되는 가치가 GDP의 25%로 알려져 있다. 기업의 광고가 말과 글로 돼 있으니 상품의 가치는 제품 자체의 가치일 뿐만 아니라 말과 글의 가치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에서 파는 과자는 그것의 가격, 함량이나 성분뿐만 아니라 그것의 이름과 간결한 선전문구로 호소하고 설득한다. 식당들도 가격이나 질, 맛에 앞서 식당의 이름으로 승부한다. 동일한 내용의 투자 상품이지만 이름을 바꾸면 인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또한 음식의 재료와 요리법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그 음식에 대한 기호를 촉진한다. 커피와 관련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것도 커피에 대한 소비를 촉진시킨다. 어떤 학자는 사람들이 커피 등 재화를 소비할 때 재화 자체가 아니라 말과 글로 전달되는 개념을 소비한다는 ‘개념적 소비’를 내세우기도 한다.
기준금리에 대한 미국 연방준비은행 등 중앙은행 총재의 발언은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주식시장에서는 정보와 풍문이 주가를 요동치게 만든다. 그래서 최근에는 말의 경제학을 제안한 학자도 있다. 심지어 경제학의 과학성은 과장된 것이며 수리적 모형과 통계적 모형조차 모두 설득을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핸드폰과 같은 유형적인 재화보다 무형적인 서비스에서 말과 글은 더 중요해진다. 서비스의 경우 생산과 소비가 시공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아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하기 때문이다. 가장 고전적인 서비스는 중세시대 서양의 설교로 알려져 있다. 설교는 순전히 말이지만 신도에게 감동을 주거나 신도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의사의 처방도 말과 글이며 정신병원 의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식당, 호텔, 은행 등에서는 음식, 청소, 송금 등 서비스의 내용뿐만 아니라 종업원의 말이 가치를 지닌다. 교육 서비스에서도 말과 글이 학생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학생의 미래 소득과 사회적 지위 형성에 기여한다. 시험장의 응시자도 글과 말로 시험관에게 평가를 받고 이 점수에 따라 당락을 경험한다. 손해배상과 관련된 판검사와 변호사의 말과 글은 수백억 원이나 수천억 원의 금전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정치가나 외교관의 발언은 그들의 생명이다. 선거에서 정당이나 후보자는 자신들의 이념이나 정책을 연설이나 전단 등으로 전달한다. 여기서도 이념과 정책의 가치와 함께 말과 글의 가치가 당선 여부를 결정한다. 이 때문에 정당이나 후보자가 말과 글로 유권자들을 현혹할 수 있다면 시민의 주권은 무력해진다. 그리고 여기서 말과 글의 영향은 제품에 대한 광고의 영향보다 더 심각하다.
언론(言論)은 문자 그대로 말과 글에 의존해 정치 및 경제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언론 매체는 말과 글로 된 기사나 광고를 통해 선거의 후보자나 정당, 그리고 기업이나 제품을 소개하거나 심지어 선전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에 있어서 언론의 융통성과 영향력이 가장 크고 그 위험도 가장 크다.
‘명목적인 을이면서 실질적인 갑’ 언론
20세기 초의 언어학자 소쉬르(Ferdinand Saussure)에 따르면, 단어의 의미와 가치는 그 자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체계 전체 속에서 출현한다. 가령, 한국에서 ‘밥’과 ‘빵’은 서양의 ‘rice’, ‘bread’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이 단어들은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밥이 빵을 포함해 식량 전체를 대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서양에서는 rice가 아니라 bread가 식량 전체를 대변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가 아니라 ‘인간은 밥만으로 살 수 없다’가 정확한 번역이다. 이는 밥이나 빵 같은 재화, 그리고 정치인이 그 자체로 평가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그래서 글은 단어들의 단순한 모음이 아니며 동일한 단어도 맥락이 바뀌면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고 다른 단어도 맥락이 비슷하면 그 의미와 가치가 유지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역사를 반영해 한국어에는 한글뿐만 아니라 한문, 일본어, 영어가 혼재하므로 그 복잡성이 가중된다. 복덕방 부동산 리얼 에스테이트(real estate)라는 명칭의 변동이 그 예시다. 특히, 조선 시대 이후로 우리의 말과 글은 한글과 한문으로 시작되는 외국어나 외래어의 이중적인 구조를 유지해 왔다. 이에 따라 한국의 지식인은 적어도 묵시적으로 한글 이외의 한문, 일본어, 영어에 대한 구사력을 자부해 왔다.
이렇듯 수입된 외국어나 외래어, 그리고 언론이 만들어내는 신조어들이 보도나 광고의 맥락을 구성하고 변경하는 데 수시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언론은 복합적인 우리의 말과 글에 의존하고 그것도 외래어와 외국어가 뒤섞인 언어로 보도하면서 맥락과 맥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이를 통해 언론의 기사나 기업의 광고는 사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독자와 소비자를 설득한다. 주로 사건이나 재화가 지닌 여러 차원 중에서 특정 차원을 중요하게 만들고 다른 차원을 사소하게 만들어 시민과 소비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 등장한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완전한 합리성을 전제한 기존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이런 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상황에 대한 규정(framing)이나 특정 차원을 부각시키는 두드러짐(salience)이 대표적인 개념이다.
또한 언론 매체가 보도하는 방식과 횟수, 취급하는 크기가 동일 사건의 중요성을 바꾼다. 이런 것들이 정치인이나 기업의 가치를 높이거나 낮추는 데도 기여한다. 흔한 예로 디트로이트시와 미시간주 중 어느 쪽이 연간 살인 사건 수가 더 많은지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디트로이트시의 건수가 더 많다고 답한다. 디트로이트시가 미시간주에 속한 하나의 도시이므로 이것은 틀린 답이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이런 오답이 나온 것이다.
나아가 사람들의 주의(attention)는 선별적이고 제한돼 있어 기업의 광고와 언론의 보도는 주목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그것은 기사의 내용이나 논조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건과 보도가 시민의 관심을 끄느냐의 문제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 중요한 문제가 사소해지고 사소한 문제가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의 보도·광고와 연설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놓칠 수 없다. 기업이 제품을 팔기 위해 광고하고 정치인은 정책과 입장을 팔기 위해 말하지만 언론은 말과 글을 팔기 위해 보도한다. 광고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통해 평가할 수 있고 정치인의 공약이나 구호는 시민들이 집권 후 활동을 보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언론 보도의 근거는 제품이나 정책이 아니라 사실인데, 사실은 다시 말과 글로 구성돼 있다.
구체적인 재화도 아니고 서비스도 아니며 특정한 이름을 지닌 후보자나 수험생도 아닌 무정형의 말과 글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맥락의 변동과 언론사마다 다른 관점의 차이 때문에 심지어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에도 독자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대단히 힘들다. 따라서 언론을 평가해야 하는 주체인 독자는 시민이나 소비자 혹은 시험관처럼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언론의 보도는 일상적이면서도 시장의 상품과 같이 일상적으로 평가받는 것도 아니고, 선거장에서처럼 몇 년에 한 번 크게 평가받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시험장에서처럼 언론에 대한 평가의 객관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선거나 시험과 달리 언론의 보도는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순간순간 흘러가기에 반복게임이나 지속적인 평가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언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거의 전무하다. 그러면서도 언론은 전문가들과 국민을 매개하면서 전문가보다 더 자신 있게 특정 문제에 대해 단정하고 설득한다. 이 때문에 언론인은 변호사나 의사보다 더 심각하게 ‘명목적인 을이면서 실질적인 갑’이 된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를 지키려면 해결해야 할 일차적인 과제가 한국의 언론이다. 더구나 외교와 분단, 경제 등은 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지만, 언론은 우리 손 안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