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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NYT 발행인이 말하는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3-07-28

언론 자유가 위협받는 것은 전 세계적 상황이다. 굳건한 명성을 누려온 뉴욕타임스도 예외는 아니다. 아서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은 최근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에세이를 기고했다. 그가 내린 언론의 자유 회복을 위한 처방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언론 신뢰도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기자들에 대한 공격을 포함해 언론 자유가 위협받는 일도 늘고 있다. 세계 유수의 미디어 기업들은 앞다퉈 뉴스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인공지능(AI)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기자 업무 영역이 잠식당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언론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위기를 실감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 매일 같이 펼쳐지고 있다. 영어라는 이점 때문에라도 글로벌한 독자층과 사업 기반이 확고해 보이는 미국의 대형 미디어 기업들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아서 설즈버거(A.G. Sulzberger) 뉴욕타임스 발행인은 미국 저널리즘이 “한 세기여 만에 자유 언론에 가해진 가장 심오한 위협”에 놓여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그가 내놓은 처방은 다름 아닌 언론의 ‘독립성’이다.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포기한다면, 저널리즘의 가치 있는 미래는 없을 것”이라면서다. 

 

지난 5월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JR, Columbia Journalism Review)에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1)라는 제목으로 실린 그의 에세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립적인 언론을 강조한다. 1만 2,000단어가 넘는 분량의 에세이에서 그는 언론이 왜 독립성을 추구해야만 하는지를 줄기차게 설파한다. 설즈버거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언론들의 ‘체질 개선’ 바람에 불을 지핀 2014년 뉴욕타임스 디지털 혁신 보고서 발간을 주도한 인물이다. 혁신가라는 평판을 가진 그가 이번엔 지나치게 뻔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닐까. 당장 위기를 타개할 뾰족한 해법이 없으니, 그동안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된다는 식의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주문을 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 언론의 독립성인가

 

저자는 독립적인 저널리즘이 견지해야 할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팩트가 어디로 인도하든 그것을 따라가기”, “무엇보다 진실을 앞세우고, 또한 열린 자세로 회의를 품고 진실을 추구하기”, “세상을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논쟁에서 한 쪽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을 숨김없이 전달하기”, “사실이 불분명하거나 합리적 이견이 존재하는 사안에서는 단정적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전달하기…”

 

사실 굳이 ‘독립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위의 것들은 모든 저널리즘이 지향해야 하는 덕목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저널리즘 개론에 나오는 단조로운 클리셰로 들리겠지만, 극도로 양극화된 시대에는 급진적인 목표가 됐다”고 말한다. 

 

1896년부터 뉴욕타임스를 경영하는 설즈버거 가문의 여섯 번째 발행인인 저자가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는 독립성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다. 1년 차 발행인이었던 2018년 가을, 뉴욕타임스의 한 보도가 좌우 진영 양쪽으로부터 공격받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선 캠프의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로버트 뮬러(Robert Mueller)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끈질기게 수사 무력화를 시도했는데, 트럼프에 반대하는 이들은 수사 감독을 맡은 로드 로즌스타인(Rod Rosenstein) 법무부 부장관이 최후의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런 로즌스타인 부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 역량을 우려한 나머지 대통령의 대화를 녹음하는 방안, 특히 헌법 조항을 발동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담당 기자들은 수개월의 취재를 거쳐 여러 부처 고위 인사들의 증언과 메모를 확보함으로써 보도의 정확성에 만전을 기했다. 저자가 놀란 것은 그다음이었다. 보수 진영이 트럼프 행정부의 치부를 드러낸 이 기사에 대해 ‘거짓’이라며 분노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그런데 진보 진영은 기사를 비판하면서 보도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보도로 인한 정치적 파급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로즌스타인 부장관을 해임하고 특검 수사를 중단시킬 명분을 얻게 됐다면서 뉴욕타임스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잘못된 중립”을 택했다고 비판했다. 독립 저널리즘을 지지하는 이들조차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저자는 “독립 저널리즘에 대해 커지는 압력뿐 아니라 이에 대한 비판에 내재된 까다로운 요구 사항을 더 우려하게 됐다”고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는 언론의 독립성

 

언론의 독립성이라고 하면 흔히 권력의 잘못을 고발하고 자본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에 국한되는 것으로 이해되기가 쉽다. 물론 권력의 부당한 압력이나 광고주의 영향으로부터 기자들을 차단, 보호하는 것도 독립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언론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저자는 독립성의 개념을 한 발 더 밀고 나간다. “독립성의 확실한 신호는 독자들이 그들이 기대하지 않거나 듣기를 선호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자주 듣게 될 때”라는 것이다. 때로는 독자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남김없이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불편한 진실’을 달가워 할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독자의 불만과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사실 그대로를 보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뉴욕타임스는 일각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까지 주장하는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박해를 수년간 집중 보도해왔다. 기자는 어느 날 난민 캠프에서 만난 어린 네 자매로부터 군인들이 집에 불을 지르고 가족을 몰살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확인 결과, 일부 증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독립 저널리즘은 때로는 난민 어린이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널리즘의 기본 프로세스를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는 언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이 강조했던 접근과 맞닿아 있다. 그는 기자 개개인이 지닌 편견과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론의 교훈을 빌려 기자의 업무 절차를 전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세운 가설을 단순히 확인하는 데서 

나아가, 가설에 도전할 수 있는 증거와 팩트를 찾는 데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과학 및 의학 분야와 사법부에 빗대어 저널리즘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과학계와 의학계, 사법부 등이 “독립성을 지원하기 위해 명시적인 시스템과 윤리적 규범을 채택”하고 있지만, 언론도 이들 분야도 항상 완벽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미국 연방대법원 사례에서 보듯이 이념 지향에 따라 법률 해석이 180도로 바뀌는 사법부는 물론이고 과학이나 의학처럼 언론보다 좀 더 엄정하고 체계적일 것으로 여겨지는 분야에서도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좋은 저널리즘 과정은 실수의 빈도를 줄이고, 오류가 있을 때 스스로 고칠 수 있는 체계를 만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완전한 독립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신경 끄기를 선택하기보다는 기자들이 방어 가능한 과정에 힘입어 불완전하나마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한다. 결국 내부의 끊임없는 자정 노력이 관건인 셈이다.


용기 있는 보도, 언론이 바로 서는 길

 

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독자들은 이제 즉각적으로 기사에 대한 피드백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양극화된 여론 지형과 이에 따른 이른바 ‘진영 논리’의 심화로 언론의 독립성 추구는 때때로 양쪽 모두로부터 격앙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미국에선 ‘백인 남성’이거나 ‘대졸 이상 대도시 거주자’ 출신 기자가 다수인 기성 언론이 소수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독립 저널리즘이 오히려 양비론(bothsidesism)을강화한다는 식의 비판이 인기를 끈다. 임신 중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타협의 여지가 없는 ‘제로섬’ 사안에서 양측 입장을 소개하면 마치 한 쪽 편을 들거나 다른 쪽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기자들에게 어떤 주제를 확정된 사실로 다루도록 요구해 논쟁을 피하면서 논쟁에서 이기려는 시도”라며 “많은 것들이 동시에 진실이고 중요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광범위한 보도 내용을 가장 진실하고 중요한 것에 관한 단일한 진술로 축소하려는 시도”라고 반박한다. 독립 저널리즘은 기계적인 객관성 추구의 관행으로부터 탈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각도로 질문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독립 저널리즘이 보도가 초래할 ‘나쁜 결과’의 위험을 간과할 수 있다는 비판도 단골로 등장한다. 뉴욕타임스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성전환 수술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보도하자, 인권 단체들이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억압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될 뿐이라고 비판한 것이 일례다. 기자도 기사가 초래할 파장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특정한 사실과 관점을 적극적으로 억압하거나 사회적 의견의 불일치를 무시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언론을 공개적인 정치적 행위자로 만들고, 언론이 부정직하다는 주장과 음모 이론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자와 데스크는 원칙적으로 “이것이 사실인가? 그리고 중요한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만약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예’라면? 보도할 내용 자체보다 보도가 초래할 결과를 우려하는 식의 주장을 깊이 의심하고, 보도에 용기를 내야 한다. 언론이 바로 서는 길은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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