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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준 것을 후회합니다.”
“(CNN 기자에게) 이미 두 차례 질문을 했잖아요. 당신의 추가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주장의 증거가 있느냐는 기자에게) 당신이 기자니까 확인해야죠.”
미국 역사상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인 캐롤라인 레빗(Karoline Leavitt)이 브리핑 도중 기자들을 향해 한 발언들이다. 되도록 국정 성과를 전달하려는 대변인과, 어떻게든 더 많은 정보를 캐내려는 기자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긴장이 흐를 수밖에 없다. 공개 석상에서 둘이 정면충돌하는 모습도 아주 낯선 일은 아니다.
물론 레빗 대변인이 날선 태도로 발언한 대상은 대부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뉴스’라고 공격해 온 기성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들 매체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백악관 브리핑룸은 물론 출입기자 등록 및 풀취재단 개방 방침에 따라 새로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 우파 성향 매체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날개 단 극우 언론들
1997년생 백악관 대변인 탄생으로 화제를 모은 레빗 대변인은 첫 브리핑에서부터 관행을 깨는 파격을 보여줬다. 백악관 브리핑룸을 뉴미디어에도 개방해 인플루언서, 1인 창작자, 코멘테이터(해설자) 등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동안 통상 AP통신에 돌아가던 첫 번째 질문 기회도 바꿨다. 첫 브리핑에서 그는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와 우파 매체 브레이바트(Breitbart) 기자를 각각 지목했다. 명분은 레거시 미디어 중심 기득권을 깨뜨리고, 취재 접근의 문턱을 낮춘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매체들의 취재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언론 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도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백악관의 행보가 비판적 언론을 통제하고, 트럼프 대통령에 우호적인 매체들에는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백악관 공보국은 그동안 출입기자단이 자체적으로 해오던 대통령의 각종 일정이나 관련 행사에 대한 풀취재 기자 선정을 앞으로는 백악관이 직접 하기로 했고, 그에 따라 우파 매체들을 풀취재단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만’ 명칭 변경을 거부하고 ‘걸프만’ 표기를 고수한 AP통신에 대해선 백악관 출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런 흐름 속에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파 성향 매체들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커졌다. 미디어매터스(Media Matters) 조사에 따르면 이들 매체에 소속된 기자들은 백악관 브리핑에서 질문 기회를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난 1월 20일부터 4월 22일까지 백악관이 실시한 브리핑 16개를 분석한 결과 우파 매체가 한 질문은 전체 267개 중 110개로, 41%를 차지했다. 이념적이지 않은 언론은 53%, 외신은 7%로 나타났다. 특히 가장 많이 이름이 불린 기자 5명 중 4명이 데일리콜러(The Daily Caller), 폭스뉴스, 데일리와이어, 뉴욕포스트 등 우파로 분류되는 매체 소속이었다.
레빗 대변인이 매체 별로 호명한 횟수를 따져봐도 우파 매체들이 상위권을 장식했다. 물론 CBS(19회), CNN(14회), ABC(13회) 등 기성 방송 뉴스 채널이 질문 기회를 여전히 많이 얻기는 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4회), AP통신(3회)에 그친 것과 비교해보면 폭스뉴스(15회), 뉴욕포스트(12회), 데일리콜러(10회), 데일리와이어(8회) 등과의 격차가 두드러진다.
트럼프 ‘팬클럽’을 연상시키는 질문들
질문 횟수가 우파 매체 기자들에 집중되고 있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건 이들이 질문하는 내용이다. 공개적으로 ‘친트럼프’ ‘마가(MAGA)’ 언론을 표방하는 이들 매체들의 초점은 일반적인 언론과는 다르다. 현안을 따져 묻기보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을 홍보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찬사를 보내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민이나 관세 등 논란이 되는 트럼프표 정책에 관해 일방적인 지지를 표하는 경우가 많다. 정책의 성공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는 데서 나아가, 정책에 관한 상식적인 비판과 검증조차 ‘발목잡기’로 공세를 펴기도 한다.
한 우파 정치 평론가이자 인플루언서는 백악관 브리핑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추방 조치에 대해 법원이 적법 절차를 결여했다고 제동을 건 것을 비판하면서 “법원은 갱단에게 더 많은 적법 절차를 제공하고 있다. 급진적 판사들을 막기 위해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해비어스 코퍼스(habeas corpus, 인신보호 영장)를 언제, 어떻게 박탈할 계획인지 알려달라”고 말했다. 기자가 사실상 국정 홍보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논평에 가까운 이 정치평론가의 발언이 장황하게 이어지는 동안 레빗 대변인은 아무런 주의를 주지 않았고 오히려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듯한 질문을 하는 데도 별로 거리낌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한 우파 매체 기자는 “트럼프는 8년 전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그가 바비 케네디(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와 헬스를 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맥도날드를 적게 먹고 있어서인가”라고 물었다. 또 다른 우파 매체 기자는 기내에서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과의 문답에서 그날 발표된 건강 검진 결과를 언급하며 “당신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부디 알려달라. 도대체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 건가”라며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필자도 취재 현장에서 극우 매체 기자들을 종종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놀라는 점은 이들이 대개 주저하지 않고 트럼프 정책을 앞장서서 옹호한다는 점이다. 최근 미등록 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된 로스앤젤레스(LA) 시위 현장에서도 시위대와 우파 매체인 리얼아메리카보이스(Real America’s Voice) 소속 기자가 말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 방위군 투입 결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며 시위가 폭동과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시위에 참가한 시민은 폭력을 부추기고 있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과잉 대응이라고 맞섰다. 어느 쪽이 먼저 논쟁을 부추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취재 대상과 언성을 높이고 감정을 드러내며 싸우는 기자의 모습은 분명 낯설게 느껴졌다.
트럼프 2기, 언론 자유의 미래는
국경없는기자회는 지난 2월 발표한 <트럼프의 정부 투명성에 대한 공격이 언론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트럼프 2기 출범 직후부터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자료들이 삭제되고 있는 것을 비판했다. 이와 함께 백악관 풀취재단이 제공하는 자료를 일부 매체에 제한하거나, 국방부가 ‘연례 언론 순회 프로그램’을 시작해 NBC, 뉴욕타임스, NPR, 폴리티코 등 매체의 국방부 출입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문제 삼았다.
“브리핑 접근을 민주화하기 위한 방안이라지만, 이러한 변화는 전문 저널리스트의 접근을 추가적으로 제한할 위험이 있고, 브리핑룸을 (행정부에) 이념적으로 우호적인 콘텐츠 창작자들로 채우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은 사실상 언론뿐이다. 생중계되는 국무회의가 ‘충성 경쟁’ 무대로 전락한 것에서 보듯이 내각은 충성파 일색이다. 미 의회 상·하원은 공화당이 근소한 의석수 차이로나마 장악하고 있다. 사법부 역시 하급심 법원이 잇달아 트럼프 정책에 제동을 건다고 하더라도 최종 판단은 보수 절대 우위 구도인 연방대법원에서 나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파 매체들은 가히 전성시대를 맞았다. 권력 감시보다는 정권 지지에 전념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취재와 보도 행태가 언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기성 언론과의 소송전도 불사해 온 트럼프 대통령도 이제는 우호적인 미디어에 둘러싸여 이들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태세다. 알아서 정권 홍보에 유리한 질문을 하고,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되는 헤드라인을 생산하는 언론을 권력자가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