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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미국 대선이 이토록 ‘이변’의 연속일 줄은 워싱턴 정가나 전문가, 언론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 전현직 대통령 간 ‘리턴매치’로 치러지는 듯했던 대선 구도는 70대 보수 백인 남성과 50대 진보 흑인 여성이라는 ‘극과 극’ 후보의 맞대결로 재편됐다. 11월 5일 선거일을 약 100일 앞둔 지난 7월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다.
고령 논란이 따라다니던 바이든에서 해리스로 후보가 교체된 이후 가장 직접적이고 빠른 변화는 소셜미디어 영역에서 나타났다. 해리스를 소재로 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밈(meme)’이 온라인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미 대선을 전례 없는 선거로 만드는 데 일조한 암살 시도 피격을 모면한 트럼프의 지지자들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밈의 유행은 인공지능(AI) 시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로 떠오른 딥페이크를 둘러싼 우려 또한 환기했다.
카멀라 해리스 ‘밈통령’으로 인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3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해리스는 부통령으로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인기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첫 대선 TV 토론 참패 이후 당내 사퇴 요구에 내몰린 바이든이 물러난 뒤 대선 후보를 이어받은 해리스는 갑자기 많은 밈의 주인공이 됐다.
해리스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된 코코넛과 야자수를 활용한 밈이 대표적이다. ‘코코넛 밈’은 해리스가 지난해 5월 백악관에서 히스패닉계 미국인을 위한 교육 지원책을 발표할 때 자신의 어머니와의 일화를 소개하다가 한 발언에서 유래했다. “누구도 코코넛 나무에서 그냥 떨어진 사람은 없다”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 그는 모든 이의 삶은 ‘맥락’ 속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공화당이 “해리스가 또 뜬금없는 발언을 했다”며 영상 클립을 만들어 해리스를 공격하는 소재로 활용했다. 그런데 해리스가 후보가 된 이후에는 청년층 지지자들이 ‘코코넛’ 발언 영상에 열광했다. 인플루언서 등이 다양한 버전의 편집 영상을 제작해 올렸다.
코코넛은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는 흑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쓰이는데, 해리스는 인도계 흑인 여성이다. 민주당 소속 연방의회 의원들이나 주지사 등 유력 정치인들도 직접 야자수 위에 올라가는 사진을 올리거나 코코넛과 야자수로 장식된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올리는 등 밈 열풍에 올라탔다. 해리스가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과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이나 “나는 벤 다이어그램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영상도 편집돼 인기를 끌고 있다.
해리스 캠프도 밈의 유행에 발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영국 여가수 찰리 XCX(Charli XCX)가 자신의 앨범 제목을 차용해 “카멀라는 브랫(brat)이다”고 언급하자 해리스 캠프는 즉시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의 배경색을 찰리 XCX를 상징하는 라임색으로 바꾸며 호응했다. 악동을 뜻하는 ‘브랫’은 해리스를 상징한 표현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피격 소재 밈도 확산
이에 질세라 트럼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밈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 7월 펜실베이니아주 선거 유세 도중 그의 암살을 노린 총격 사건을 모티브를 한 이미지는 지지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연단 위로 날아온 총알을 피해 극적으로 살아남은 트럼프의 어깨를 천사가 감싸고 있는 등 여러 버전의 ‘트럼프 성화’가 탄생했다. 트럼프 자신이나 공화당이 피격 사건을 두고 “신의 개입(divine intervention)”, “하나님의 손이 트럼프를 보호했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밈도 종교적 색채를 여과 없이 드러낸 셈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를 개인숭배 수준으로 ‘영웅화’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 나왔다. 앞서 기밀 문건 유출, 대선 전복 시도,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등의 혐의로 트럼프가 기소됐을 때도 유사한 영웅화 시도가 있었다.
암살 시도 당시 트럼프가 취한 행동은 그 자체만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피격 후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유세장을 떠나는 그는 주먹을 공중에 치켜들고 지지자들을 향해 “싸우자(Fight)!”를 외쳤는데, ‘파이트’라는 단어는 그 직후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원들의 공식 구호로 자리잡았다. 얼굴에 피가 묻은 채로 주먹을 높이 든 트럼프의 모습을 성조기를 배경으로 포착한 뉴욕타임스의 보도사진은 티셔츠와 머그컵 등 각종 트럼프 ‘굿즈’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밈 정치’의 빛과 그늘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처음 등장한 단어인 밈은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모방의 형태로 전수되는 일종의 ‘문화적 유전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어떤 생각이나 스타일이 복제돼 유행한다는 의미로 쓰여왔다.
밈이 인터넷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정치인들도 적극적으로 이를 포용하게 되면서 선거 정치에 미칠 영향도 주목을 끌고 있다. 일단은 단순하고도 강렬한 밈의 이미지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효과를 발휘하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크게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짧은 시간에 후보에 대한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지형이 갈수록 양극화, 분절화하는 가운데 밈의 위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선거운동에 관심이 적거나 정보가 부족하고, 정치 불신도가 높은 유권자들에게 비교적 거부감이 적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눈길을 끌기에 적격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해리스-트럼프 대결이 고조되면서 양당에서도 자기 후보의 강점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숏폼, 틱톡 등 짧은 동영상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리스크도 여럿이다. 하루, 아니 몇 시간, 몇 분 단위로도 트렌딩하는 이슈가 휙휙 바뀌는 소셜미디어 특성상 인터넷 하위문화인 밈의 유효 기한은 태생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또한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캠프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만든 정황이 드러나면 역풍이 불 우려도 있다. 공화당 하원의장실의 디지털 디렉터를 지낸 칼렙 스미스(Caleb Smith) 드라이브 퍼블릭 어페어스 대표는 악시오스에 “(밈과 같은) 소통 수단은 진실에 기반을 두고 후보자가 누구인지를 반영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고 말했다.1)
정치인들이 즉각적인 반응과 광범위한 유통을 기대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 선거운동에 주력하다보면 기성 언론과의 소통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할 염려도 있다. 해리스는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기자회견은 물론 언론 인터뷰도 한 차례도 하지 않아 비판받고 있다. 트럼프는 해리스의 상승세로 빼앗긴 관심을 되돌리겠다는 계산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는 했지만 보수 성향 언론이 아닌 곳과의 인터뷰는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지난 8월 12일에는 자신을 지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X에서 2시간여 대담을 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위협하는 딥페이크… 뾰족한 대책 없어
대선 후보들의 밈이 폭발적인 유행을 끌고 있는 것은 이번 선거에서도 소셜미디어가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딥페이크’ 확산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해 조작한 가짜 사진이나 영상, 음성 등이 온라인상에서 대선 후보나 선거캠프의 공식적인 콘텐츠처럼 유포되면서 논란을 일으키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AI를 악용한 허위 정보가 선거를 방해하고,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말, 소셜미디어에 AI로 그의 목소리를 조작해 만든 가짜 영상이 퍼졌다. 영상은 “조 바이든이 마침내 토론에서 그의 고령을 노출시키면서 내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다. 나는 국정 운영에 대해선 하나도 모른다”고 말하는 해리스의 가짜 음성을 담았다. 영상을 제작한 한 유투버는 ‘패러디’라고 밝혔지만, X의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는 아무 말 없이 이 영상을 자신의 X 계정에 공유하면서 순식간에 확산됐다.
△ 트럼프와 머스크의 대담이 열린 지난 8월 12일에도 딥페이크가 기승을 부렸다. X에서 생중계하기로 한 대담이 기술 문제로 인한 접속 장애로 40여 분 지연되는 동안, 유튜브에서는 대담을 사칭하는 여러 건의 가짜 영상이 올라왔다. X 접속을 기다리는 사이 다른 방도를 찾던 필자도 처음에는 영상에 붙은 ‘대담 라이브’ 제목과 머스크의 음성을 듣고 잠시 ‘진짜 대담인가’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 앞서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지난 1월 23일 뉴햄프셔주 예비 경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을 사칭해 경선 불참을 권하는 가짜 음성 메시지가 유포됐다. 민주당과 무당파 지지자들에게 공화당 경선에 참여하면 11월 대선에서 투표할 수 없으니 “표를 아껴두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허위였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목소리와 흡사했던 음성도 실제로는 AI를 활용해 만든 자동 녹음 전화 메시지였다.
위와 같이 딥페이크로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치려 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현재 10여 개 주가 생성형 AI 등의 악용을 규제하는 조치를 도입했지만, 미 연방정부 차원의 AI 규제 법안은 아직 없다. 현행 선거법에도 딥페이크를 제재할 근거가 없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가 지난해 8월 AI가 만든 딥페이크 규제를 위한 검토에 착수했지만 공화당 소속 FEC 위원장과 위원들은 최근 “현재까지 연방 선거운동에서 AI로 생성된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며, 따라서 규제할 만한 중대한 피해가 있다는 증거가 거의 없다”면서 규제 도입에 사실상 반대했다. 비영리단체 퍼블릭시티즌의 로버트 와이스먼(Robert Weissman) 대표는 연방 규제가 전무하다는 의미로 “와일드 웨스트라고 할 수 있다”2)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I 업체들이 민주주의를 저해할 위험이 있는 딥페이크 기술이 악용되지 않도록 더욱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정치컨설턴트협회(AAPC, American Association of Political Consultants)는 회원들에게 딥페이크 사용 자제를 촉구하는 성명3)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과 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정 노력’에만 기대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등 플랫폼들은 AI로 만든 콘텐츠의 경우 이를 표기하도록 하고 있지만, 글자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을 때도 많다.
1) Hawkins, E., <Campaigns ride the meme wave as 2024 election cycle heats up>, Axios, 2024.8.15, https://www.axios.com/2024/08/15/harris-trump-memes-2024-election-strateg
2) Saksa, J., <Election laws not ready for deepfakes, experts warn: ‘It’s the Wild West right now’>, Roll Call, 2024.3.14, https://rollcall.com/2024/03/14/federal-election-laws-not-ready-for-deepfakes-experts-warn/
3) <AAPC Condemns Use of Deceptive Generative AI Content in Political Campaigns>, AAPC, 2023.5.3, https://theaapc.org/americanassociation-of-olitical-consultants-aapc-condemns-use-of-deceptive-generative-ai-content-in-political-campaigns-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