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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디지털 기술’에 느끼는 양가적 감정이 있다. 먼저 디지털 기술의 발전 덕분에 누리는 생활 편의, 새로운 소통과 참여 가능성, 새롭게 등장하는 직업과 역량 등 기술에 대한 희망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면에는 최첨단 기술을 알지 못해 낙오되지는 않을까, 디지털 기술로 인한 편의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으며 더불어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강화된 허위 정보·사회 갈등 문제 등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희망과 두려움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디지털 기술을 따라다니는데, 기술에 대한 양가적 감정은 우리가 부모, 양육자, 교육자로서 자녀 세대를 볼 때 더욱 강화된다.
자녀에게 언제, 어떻게 디지털 기술을 접하게 해줄지 결정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부모나 양육자의 몫이다. 이에 ‘디지털 육아’라는 용어는 현대 부모·양육자에게 중요한 키워드다. 디지털 육아에 대한 바람직한 가치관과 입장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부모·양육자의 ‘디지털 육아관’은 자녀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1)은 우리가 주로 통계치로 보았던 가정 내 미디어 이용률의 이면에 어떤 협상과 논의, 고민이 흐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 책은 가정 안에서 디지털 육아 방식은 어떻게 결정되고 이에 대해 가족 구성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경험하는지를 면밀히 탐구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저자들은 부모와 양육자가 자녀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서 디지털에 대해 가진 희망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구체화한다.
또한 저자들은 디지털 육아를 논함에 있어, 현대 사회에서 육아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과업에 그치지 않는 개인적·사회적 프로젝트임을 강조하며,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가 자아를 성찰적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던 이론적 논의를 가져와 디지털 육아 역시 가정의 성찰적 프로젝트임을 제시한다. 동시에 비판적 관점에서 육아가 이뤄지는 사회를 살피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 책은 부모와 양육자가 디지털 육아관을 세우는 데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면서, 가정에서 실현되는 디지털 육아가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결정되는 협상의 대상임을 깨닫게 한다는 데서 차별성이 있다.
‘수용’, ‘균형’, ‘저항’
당신의 디지털 육아 형태는
디지털 육아는 특히 부모와 양육자에게 까다로운 과업이다. 부모와 양육자 세대는 본인의 부모나 학교로부터 디지털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을뿐더러, 디지털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지 않아 전문성을 전수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이처럼 부모는 자신이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며 동시에 그것이 단순히 자녀의 디지털 미디어 선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자녀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디지털 육아 방식을 함부로 결정하기 어렵다.
디지털 육아에 영향을 받는 자녀 당사자도 지속적인 협상 과정에 함께 하는 주체다. 이 책은 부모나 양육자뿐 아니라 자녀 당사자는 어떻게 디지털을 경험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자녀의 입장과 경험을 다각적으로 살핀다. 가정 안에서뿐 아니라 학교나 학교 밖 활동에서 어떤 방식으로 디지털을 접하고 익히는지, 그것이 가정 안에서 부모와 자녀 간 디지털을 둘러싼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색하며, 디지털 육아가 앞서 언급했듯 가정 내 성찰적 프로젝트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런던 내 73개 가정을 방문해, 부모 및 양육자와 자녀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디지털 생활을 관찰했다. 이때 도출한 결과를 토대로 2017년 영국 전역의 2,000여 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내용도 연구 결과에 함께 녹아있다. 이 책을 통해 코스모폴리탄 도시인 런던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직업·나이·배경의 부모와 양육자는 자녀와 디지털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그들은 디지털 육아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자녀와 협상하고 있는지, 자녀는 가정 안팎에서 어떤 디지털 양육과 교육을 경험하고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디지털과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연구 결과 중에서 특히 디지털 육아를 유형화한 결과가 흥미롭다. 저자들은 여러 경제·사회·문화적 배경의 부모와 양육자를 아울러 ‘수용’, ‘균형’, ‘저항’ 등 세 가지 디지털 육아 유형을 도출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수용적 디지털 육아 유형은 부모나 양육자가 자녀와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을 찾아내 제시하는 유형이다. 수용적 디지털 육아관을 지닌 부모는 가정생활의 편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녀가 가치 있는 전문 기술을 습득하고 ‘미래형’ 정체성이나 생활 방식을 익히게 하는 것을 중시하며, 디지털 기술을 수용한다.
둘째, 균형을 중시하는 디지털 육아가 있다. 이때 부모는 디지털 활용에 있어 특정 내용은 장려하지만, 그 외 것은 통제함으로써 디지털이 수반하는 위험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저자들은 균형적 디지털 육아를 하는 부모와 양육자들은 디지털 관련 이슈가 생길 때 즉석에서 미래 지향의 기회나 위험을 따져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끝으로, 저항적 디지털 유형은 부모나 양육자가 디지털 기술이 가정에 들어오는 것이 불가피한 일일 지라도, 일정 기간만이라도 자녀가 디지털 기술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유형이다.
이 세 가지 유형 모두 이면에는 고유의 불안함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 것도 중요한 발견이다. 예를 들어, 세 유형 중에서 중도로 보이는 ‘균형’을 추구하는 디지털 육아관을 지닌 부모들도 균형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디지털 기술을 막거나 허용하는 자신의 판단에 대해 매 순간 맞는지,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 자문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는 결정권자 아닌 소외자일 수도
저자들이 어떤 유형의 디지털 육아를 주로 하든 매번 불안함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로 디지털 육아 주체 간 협력의 어려움을 지적한 것도 흥미롭다. 연구에 참여한 부모와 양육자들은 디지털 육아관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다른 부모들의 육아 방식을 살피고 평가한다. 동시에 자신이 실행하는 디지털 육아가 시대 흐름에 뒤처지거나 앞서가는 것은 아닌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기도 한다. 디지털 육아의 방향성이나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부모와 양육자는 디지털 육아 영역에서 서로에게 끊임없이 평가 대상이 된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규범이 잡혀 있지 않아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부모와 양육자가 느끼는 디지털 육아에 대한 지속적 불안감은 사회적 맥락에서 강화된다. 이 책에서는 부모·양육자, 자녀의 목소리와 경험을 통해 디지털 육아에 영향을 주는 정책이나 사회적 담론의 문제와 빈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연구에 참여한 부모와 양육자는 자녀의 스크린 타임(컴퓨터, 텔레비전, 게임기 등의 장치를 사용하는 시간)을 부모가 적극적으로 관리·조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담론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실생활의 맥락에서는 일방적으로 스크린 타임을 통제하기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해 자녀가 어느 정도 그리고 어떤 측면에 관심이 있는지 살피고 이를 존중하며 협상하는 등 보다 자녀를 존중하는 육아 방식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특수교육이 필요하거나 장애가 있는 아동의 부모 사례들도 면밀히 살피면서, 이들이 디지털 기술의 기회와 위험 사이 균형을 유지하는 데 다른 부모들보다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이들을 위한 정책적·교육적 지원 부족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들이 탐구하고 분석한 디지털 육아의 모습과 디지털 육아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보면 부모나 양육자가 디지털 육아에 가장 큰 결정권이 있는 사람처럼 인식되지만, 사실은 진정한 디지털 육아에서 소외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들이 “디지털 환경은 부모를 대체로 자녀의 온라인 경험과 무관한 사람으로 취급했고, 가끔 감시하거나 응원할 기회만 제공했다”고 짚어낸 부분이 울림이 주는 이유다. 디지털 육아의 주체로 부모와 양육자가 힘을 얻을 수 있기 위해 어떤 사회적 지원이 필요할까. 저자들은 디지털 육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회적 실천과 지원에 대해 여섯 가지 구체적 제언을 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디지털 육아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 정책입안자 등 모든 독자가 이 여섯 가지 권고를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중 하나만 소개하자면 두 번째 권고인 ‘대중과 언론의 담론은 부모에게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하라’를 꼽겠다. 디지털 기술이나 첨단 기술에 대해 희망과 두려움의 담론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닌, 아동의 삶과 성장을 중심에 둔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부모나 양육자가 디지털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을 갖출 수 있도록 대중과 언론 담론이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들의 제언에 동감한다.
디지털 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항상 사회 발전과 궤를 함께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부모나 양육자, 그리고 더 나아가 자녀가 디지털 기술에 대해 막연한 희망과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디지털 기술에 대해 성찰할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디지털 육아의 어려운 부분들을 면밀히 찾아내 첨단 기술이 아닌 아동과 가정을 중심에 둔 사회적 지원이 시급히 필요한 때임을 생각하게 한다.
1) 원제는 《Parenting for a digital future : How hopes and fears about technology shape children's lives》로 2020년 발간됐고, 한국에서는 2023년 번역본이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