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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디어 현장]영국_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공영방송의 자세
글로벌 미디어 현장 | 등록일 : 2024-12-27

2024년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Baku)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9)가 진통 끝에 폐막했다. 전 세계 200여 개국이 참가한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는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새로운 기후 재원 조성이었고, 회의 막판에 이르러서야 참가국들은 재원 확대 규모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같은 달, 부산에서는 플라스틱 오염 대응에 관한 국제협약을 마련하기 위한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열렸다.

 

기후변화 문제는 오늘날 국제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이슈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협력의 필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지금, 글로벌 미디어 산업을 선도하는 영국 BBC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환경적 지속가능성’ 위한 장기적이고 분명한 전략 마련

 

지난해 여름 BBC는 사회적 책임이 있는 공영방송으로서 ‘탄소중립(Net Zero)’을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발표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SBTi(Science-based Target Initiative,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의 인증을 거쳐 2050년까지 모든 탄소 배출량을 90% 이상 줄이겠다는 장기적 목표가 포함됐다. 앞서 BBC는 영국 정부의 탄소중립 기조에 맞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 가까이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내놓은 셈이다. 이번 발표에서 BBC는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파괴가 매우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사의 모든 제작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분명한 전략을 갖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BBC 본사 외경. BBC는 2050년까지 모든 탄소 배출량을 90% 이상 줄이겠다는 장기적 목표를 담은 새로운 탄소중립(Net Zero) 정책을 발표했다. ⓒ이윤녕

 

 

실제로 지난 2020년 가을 무렵부터 본사에는 각 본부별로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 방안을 논의할 이른바 ‘지속가능성 실무위원회(Sustainability Working Group)’가 꾸려졌고, 친환경적인 제작 여건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민을 시작했다. 콘텐츠 본부에는 TV, 라디오, 스포츠 등 부서별로 개별 실무위원회가 수립됐고,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등 지역 본부에도 각각의 실무위원회가 발족해 활동을 시작했다. 필자는 당시 뉴스 본부에 꾸려진 ‘BBC 뉴스 지속가능성 실무위원회(BBC News Sustainability Working Group)’에 론칭 위원으로 참여했고, 이후 위원회 실천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BBC 월드서비스 지속가능성 그룹(BBC World Service Sustainability Team)’의 공동 의장을 맡아 4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BBC의 지속가능성 계획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마련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직접 경험하며, BBC의 선진적인 행보가 한국 미디어 산업에도 시사점을 제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BBC 뉴스 및 시사·보도 부문에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갖는 의미와 목표는 뉴스 미디어 업계를 선도하고 시청자들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통해 가장 친환경적인 글로벌 방송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범 부서적 논의를 거친 끝에 뉴스 본부에선 제작 방식, 출장 및 교통, 뉴스 콘텐츠 등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최우선 영역들을 추려냈고, 이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수립했다. 탄소 배출량을 비롯해 콘텐츠 제작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데이터로 정리했고, 이를 기반으로 실천 방안을 다듬어 나갔다. 뉴스 및 시사보도국 전 영역에 걸쳐 기후 변화 관련 콘텐츠 제작이 강화됐고, 친환경 교통수단 사용 등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크고 작은 방안들이 논의됐다. 본사는 물론 전 세계 지국에 있는 모든 뉴스 직원의 인식 개선을 위한 세미나와 워크숍이 이어졌고, 친환경 방송 제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의무 교육 과정도 새로 업데이트 되거나 개설됐다.

 

회사 전반에 걸친 논의와 고민 끝에 BBC는 ‘환경적 지속가능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환경 및 지속가능성 문제는 BBC가 제작하는 콘텐츠에 오랫동안 반영돼 온 이슈이기 때문에 BBC의 콘텐츠 제작 운영 방식에도 이러한 지속가능성 문제를 잘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중에게 기후변화와 탄소 중립 등의 이슈를 보도하는 언론 및 미디어 업계가 앞장서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을 거란 설명이다. 특히, ‘수신료’라는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공영 언론사로서 BBC는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더 특별하고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콘텐츠 생산에서 발생하는 모든 탄소발자국 측정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BBC의 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방송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부분이다. 프로그램 초안에서부터 최종 송출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도 콘텐츠의 품질을 유지할 방안을 모색해 온 BBC는 보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제작 공급망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확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탄소 중립 계획의 주요 실천 과제 중 하나로 ‘알버트(ALBERT)’1) 탄소계산기의 전반적 도입을 적극 추진한 것도 이러한 의지의 일환이다.

 

 

BBC는 탈탄소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단계별 실천 방안을 발표했다. <출처 - BBC 홈페이지>

 

 

알버트는 10여 년 전 BBC의 주도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이후 영화 및 TV 산업에서의 환경 지속가능성을 위해 일하는 선도적인 환경 단체로 성장했다. 현재는 BAFTA(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가 운영하고 관련 업계의 후원을 받는 독립 단체가 됐고, BBC는 창립 멤버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하며 활발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알버트 탄소 계산기를 도입한 제작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알버트를 도입하게 되면 제작진은 사전 준비 및 후반 작업까지의 모든 제작 과정을 기록해 모니터링하며 콘텐츠 생산에서 발생하는 모든 탄소발자국을 측정하게 된다. 제작팀은 콘텐츠 제작에 따른 환경 영향을 측정하면서 보다 친환경적인 제작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이후 해당 콘텐츠는 환경 지속가능성을 고려했다는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알버트 인증(Albert Certification)’을 받게 된다. 이 인증은 방송 마지막 화면에 띄우는 등의 방식으로 최종 크레딧에 사용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해당 프로그램이 친환경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린다.

 

알버트 탄소 계산기는 현재 전 세계 48개국 2,300개 이상의 제작사와 150개 방송사가 사용하고 있으며, BBC 역시 이 같은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모든 제작 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2022년 1월부터 모든 TV 콘텐츠 제작 편성 과정에 알버트 인증을 의무화했다.2) 실제로 최근 발표된 BBC 연례 보고서3)를 보면, 지난 회계연도 동안 알버트 인증 범위 내에서 제작이 편성된 모든 TV 콘텐츠가 탄소발자국 기록을 마쳤고, 특히 2022년 1월 이후 제작된 BBC 콘텐츠의 90%는 환경적 지속가능성 제작 인증을 완료했다. 

 

 

BBC는 프로그램 제작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전략을 갖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출처 - BBC 홈페이지>

 

 

탄소중립 향한 BBC의 행보가 미디어 산업에 전하는 메시지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를 언급할 때 또 하나 중요하게 거론되는 점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문화의 확산이다. BBC도 회사 차원에서 환경 지속성 목표에 대한 직원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인지하고 있다. 이에 BBC는 탄소 중립 목표를 발표한 이후, 다양한 부서와 팀을 위한 맞춤형 워크숍과 온라인 교육을 개발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제작의 중요성을 알리고 친환경 업무 방식의 모범 사례를 공유해 오고 있다. 영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 BBC 지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원격으로 교육받을 수 있으며, 환경 문제에 대해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탄소 중립 목표 달성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2021년부터는 BBC 최고 콘텐츠 책임자(Chief Content Officer)인 샬롯 무어 (Charlotte Moore)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매년 ‘기후 크리에이티브 회의(Climate Creatives Conference)’ 행사4)를 주관하고 있으며, 자회사인 BBC 스튜디오와 영국 왕립 텔레비전 협회, 알버트, 영국영화협회 등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미디어 산업 전반에 걸친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23년 11월에는 BBC 공급업체와 파트너사 등을 본사로 초청해 처음으로 ‘BBC 지속가능성 심포지엄(BBC Sustainability Symposium)’5)을 개최하기도 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관계자들로 성황리에 진행된 해당 회의에서는 BBC가 보다 지속가능한 조직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더 나아가 사회적 책임을 갖는 공영방송으로서 미디어 산업 전반에 걸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협력 방안도 다각적으로 논의했다.

 

기후 위기가 절정에 달한 지금, 지구상에 있는 우리 모두는 환경 문제의 당사자다. 기후 문제의 심각성과 기후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언론 역시 책무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중에서도 공정성과 신뢰, 다양성 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공영방송은 기후 문제에 있어 더 무거운 책임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해 탄소중립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BBC의 사례는 미디어 산업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4년 3월 23일, 세계 기상의 날을 맞아 셀레스트 사울로(Celeste Saulo)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기후 행동이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이는 시급한 문제이며 우리 모두의 ‘소명(call)’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고 말했다.6) 전 지구적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그 모두의 ‘소명’에 언론도 결코 예외는 아닐 것이다.

 

 

 

 

 

1) https://wearealbert.org

2) Moore, C., <Our commitment to sustainability>, BBC, https://www.bbc.co.uk/commissioning/sustainability

3) https://www.bbc.com/aboutthebbc/reports/annualreport

4) https://www.bbc.co.uk/academy/events/climate-creatives-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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