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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7일 영국 런던에서 ‘Sir Harry Evans 33Investigative Journalism Summit’이 개최되었다. 400여 명의 기자, 편집자, 방송인, 미디어 리더, 문화·정치 인플루언서 등이 참석해 위기 속에서도 지켜내야 할 언론의 사명과 나아갈 방향을 논의한 이 행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지난 5월 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해리 에반스 경 탐사 저널리즘 서밋(Sir Harry Evans InvestigativeJournalism Summit)’은 글로벌 저널리즘 공동체가 탐사보도의 정체성과 사명을 묻는 자리였다. 영국 출신 언론인이자 탐사보도의 선구자로 알려진 해리 에반스(Harry Evans)의 이름을 딴 이 콘퍼런스는 그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열리고 있다. 세계 각국의 탐사보도 기자, 편집장, 정책 입안자,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언론이 직면한 도전과 윤리, 기술 변화, 정치적 위협 속에서 언론의 역할과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서밋의 첫 세션은 ‘굴복하지 않는 율리아 나발나야(Yulia Navalnaya Unbowed)’였다. 그는 감옥에서 숨진 러시아 반체제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Alexei Navalny)의 아내로, 남편의 죽음 이후 침묵을 거부하고 공공의 장에 나서 디지털 기반의 반푸틴 저항 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녀는 민주적 재건을 위한 국제 연대와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며, 푸틴 정권에 맞선 지속적인 연결과 행동을 촉구했다.
‘제프리 골드버그, 대화에 합류하다(Jeff-rey Goldberg Enters The Chat)’ 프로그램에서 제프리 골드버그(Jeffrey Goldberg) 미 시사 주간지 애틀랜틱(The Atlantic) 편집장은 기자가 마주하는 윤리적 딜레마와 언론의 책임에 대한 사례와 통찰을 공유했다. 그는 한때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참여한 시그널(Signal) 채팅방에 초대되어 예멘 공습 관련 정보를 접하게 됐고, 정보의 진위를 확인한 후 자발적으로 채팅방을 나와 보도를 진행했다. 그는 트럼프로부터는 ‘사기꾼’이라는 공격을 받았지만, 동시에 백악관에 초대받고 인터뷰를 허용받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가 언론을 적대하면서도 관심과 주목을 끄는 수단으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왔다고 평가했다.
골드버그는 언론이 압박과 위협 속에서도 진실을 보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언론은 명예훼손 소송, 물리적 위협, 정치적 탄압에 시달려왔으며, 이에 맞서기 위해 더욱 엄격한 윤리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트럼프 2기의 경우, 내부 견제 장치가 사라지고 오직 충성만을 기준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구조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골드버그는 애틀랜틱의 편집 철학은 흥미로우면서도 사실에 기반한 보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매체는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팩트(fact)여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사실을 충족한다면 친트럼프 기사도 게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기록
오늘날 언론인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를 넘어, 권위주의 정권의 직접적인 표적이 되고 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언론인들이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탄압받는 사례와, 이에 맞서 싸우는 실천적 대응을 함께 조명했다.
‘가자를 향한 시선(Eyes on Gaza)’ 세션에서는 로이터 사진기자 모하메드 살렘(Mohammed Salem)이 10대 시절부터 가자지구의 분쟁을 기록하며, 폐허 속에서도 인간의 회복력과 희망을 포착하려 노력해 온 여정을 조명했다. 특히 조카의 시신을 껴안은 고모의 모습을 담은 사진1)은 전 세계적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으며, 그는 형과 매형을 공습으로 잃는 고통 속에서도 기록자로서의 책임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푸틴의 유령 감옥들, 빅토리아 로슈티나의 삶과 죽음(Putin's Ghost Prisons, The Life and Death of Viktoriia Roshchyna)’ 세션에서는 우크라이나 기자 빅토리아 로슈티나(Viktoriia Roshchyna)가 러시아 점령지에서 민간인 실종과 불법 구금 실태를 취재하던 중 납치, 고문을 당하고, 시신으로 발견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었다. 그녀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포비든스토리즈(Forbidden Stories)2)의 설립자 로랑 리샤르 (Laurent Richard)와 가디언 부편집장 줄리엣 가이사드(Juliette Garside)가 세션에 참여했으며, 현재 전 세계 50여 명의 기자들이 협업해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표적이 된 언론인들(Journalism Hit List)’ 세션에서 인사이더(The Insider)의 탐사보도 기자 크리스토브 그로제브(Christo Grozev)는 러시아 정보기관을 추적하며 알렉세이 나발니(Alexey Navalny) 독살 시도를 폭로한 뒤 암살 위협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제 인권 변호사 킬린 갤러허(Caoilfhionn Gallagher)는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이란 등 권위주의 정권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언론인을 향한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특히 정치인의 반언론적 수사가 이러한 위험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크리스토브는 언론의 유료화(paywall)가 정보 접근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진실에 대한 접근이 점차 특정 계층에만 허용되는 구조로 고착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튜브, 틱톡 등 대중적 플랫폼의 활용과 국경을 넘는 언론인 간의 협업을 통해 저널리즘의 가능성은 여전히 확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널리즘 vs 탈레반(Journalism vs Taliban)’ 세션은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 통치 아래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언론인과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기록과 저항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압박하는 권력, 변화하는 시장
‘정치판의 분노한 전략가, 제임스 카빌(James Carville: Politics' Ragin' Cajun)’ 세션에서 정치 전략가 제임스 카빌(James Carville)은 트럼프와 언론의 복잡한 관계를 사례로 들어, 정치와 언론 사이에 형성된 불편한 공생 구조를 짚었다. 카빌은 수익을 우선시하는 기업 언론이 권력 비판에 소극적이라며, 언론의 감시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마존과 디즈니와 같은 대기업의 소유 구조가 정부와의 이해관계 속에서 언론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빌은 미국 언론이 트럼프라는 현상을 과도하게 조명하면서 스스로 그를 확대 재생산한 측면이 있으며, 민주당 역시 경쟁 없는 경선과 정체성 정치로 유권자와의 거리감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다만 카빌은 민주당에 여전히 유능한 인재들이 대기하고 있으며, 늙은 도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유권자의 삶에 닿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빌은 언론 역시 실존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현실을 재구성하고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미국 민주주의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이 위기는 언론과 정치, 시민 모두가 자초한 것이기에 정직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알렉산드라 갈로니(Alexandra Galloni) 로이터 편집장, 조 칸(Joe Kahn)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아난드 기리다라다스(Anand Giridharadas) 작가, 그리고 브라이언 스텔터(Brian Stelter) CNN 수석 미디어 분석가가 참여한 ‘언론은 싸울 것인가, 굽힐 것인가(Will Press Fight or Fold)’ 세션은 언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다. 패널들은 언론이 법무부의 개입, 소송, 소유주의 편향 등 다양한 정치적·제도적 압박에 직면해 있으며, 특히 CBS <60분(60 Minutes)> 총괄 프로듀서 사임을 편집권 독립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했다. 그럼에도 많은 기자가 탐사보도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미디어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도 주요 논점이었다. 기리다라다스는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대안 플랫폼이 기존 언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기자들에게 새로운 출구가 되고 있으며, 수익 모델과의 직접적 연결이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리다라다스는 언론이 독자와 직접 소통하지 않으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레거시 미디어의 재시동(Rebooting legacy media)’ 세션에서는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기성 언론의 생존과 진화 전략이 논의되었다. 자니 베도스(Zanny Minton Beddos) 이코노미스트 편집국장은 조직 정체성과 철학이 지속가능성의 핵심이라고 강조했고, 데보라 터니스(Deborah Turness) BBC News CEO는 청중의 니즈에 맞춰 콘텐츠 형식과 전달 방식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고 설명했다. 마크 톰슨(Sir Mark Thompson) CNN 회장은 미디어 소비의 세대 전환에 대응해 기존 콘텐츠 종료까지 포함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디지털 플랫폼 전략 측면에서 BBC는 자체 및 외부 플랫폼을 병행해 구독자의 체류 시간을 핵심 지표로 삼고 있고, CNN은 틱톡과 유튜브를 통해 핵심 청중 유입에 주력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검색 기반 소비 감소에 대응해 브랜드 신뢰도와 탐색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으로 전환 중이다. 신뢰 구축을 위한 핵심 요소로는 투명성과 신속한 대응, 공정성과 객관성이 강조되었다.

그럼에도, 저널리즘
‘시선 경제(The Eyeball Economy)’ 세션에서는 ‘시선 경제(eyeball economy)’ 속에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다양한 플랫폼 사례를 통해 조명했다. 서브스택(Substack)은 텍스트 기반 구독 모델을 통해 신뢰와 독립성을 강조하며 유튜브와 차별화된 플랫폼으로 소개되었고, 누스피어(Noosphere)는 기자가 직접 수익을 얻고 청중과 연결되는 폐쇄형 초대제 앱으로 젊은 세대의 뉴스 소비 패턴을 반영한 모델을 실험 중이다. 뉴스테이트먼(New Statesman)은 전통 언론사로서 품질과 깊이를 유지하면서 지적 콘텐츠 중심의 온라인 전략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세션에는 크리스 베스트(Chris Best) 서브스택 CEO, 제인 퍼거슨(Jane Ferguson) 누스피어 CEO, 톰 맥테이그(Tom McTague) 뉴스테이트먼 편집국장이 참여했다. 이들은 젊은 세대가 뉴스 소비 방식에 유연하며, 새로운 플랫폼에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 플랫폼 모두 지속가능한 저널리즘의 미래는 구독, 독립성, 청중과의 직접 연결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진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Can Truth Survive)?’ 세션에서는 기술 발전과 정치 환경 변화 속에서 언론이 직면한 도전과 사명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됐다. 제프리 골드버그 애틀랜틱 편집장은 AI와 SNS의 확산이 정보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는 동시에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인 에밀리 메이틀리스(Emily Maitlis)는 기술이 정치 서사를 조작하는 도구로 전락했음을 강조하며, 권위주의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혼란을 유도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미국 담당 편집국장 에드 루스(Edward Luce)는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트래픽을 유도하는 존재라는 딜레마를 짚으며, 저널리즘은 여전히 사회를 바꾸는 힘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는 팟캐스트나 자극적 콘텐츠와는 달리, 사실에 기반한 깊이 있는 보도가 언론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연사들은 공통적으로 진실은 투명성과 정직, 용기를 통해 끝내 살아남을 것이라 확신했고, 그 책임은 언론이 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감춰진 부당함을 밝혀내는 저널리즘
‘사우디 가정부 산업의 비밀(The Secrets of Saudi's Maid Trade)’ 세션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한 동아프리카 여성 가사 노동자들이 겪는 학대와 인권 침해 실태를 고발한 탐사보도를 다뤘다. ‘포르노와 위험: 온리팬스의 민낯(Porn and Peril: OnlyFans Exposed)’ 세션은 온리팬스(OnlyFans) 플랫폼에서 아동 성 착취물, 강제 포르노 제작, 인신매매 등 심각한 불법 행위가 방치되고 있으며, 관리 부실과 법적 허점을 악용한 수익 모델이 일반 이용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초래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인도의 유튜브 저항자(India's YouTube Resister)’ 세션에서는 인도 정치와 국제 이슈를 비판적으로 다루며 전통 언론이 감당하지 못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유튜브 교육자 드루브 라티(Dhruv Rathee)의 활동을 조명했다. ‘마두로의 가면을 벗기다(Unmasking Maduro)’ 세션은 베네수엘라의 부패와 독재 정권을 10년에 걸쳐 추적한 다큐멘터리 <죽음을 무릅쓴 취재(A Very Dangerous Assignment)>를 통해, 권력의 부정과 시민의 고통을 강조했다.
해리 에반스 경 탐사 저널리즘 서밋 2025는 언론사들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플랫폼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팩트체크, 탐사보도, 투명성, 진실성과 같은 고전적 저널리즘의 원칙이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오늘날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이 서밋은 기술 혁신과 윤리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며,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