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방송의 모든 웹 기사를 확인·검색할 수 있습니다.
웹 기사는 2020년 3월호부터 제공됩니다.
총 게시물 0 건
-
-
[글로벌 미디어 현장] 호주_ ‘뉴스 협상 인센티브’ 최종안 의회 통과 빅테크 기업, 언론사에 연간 약 2, 500억 원 지불해야 해2026년 8월 20일, 호주 의회가 ‘뉴스 협상 인센티브(NBI, News Bargaining Incentive)’ 최종안을 통과시키면서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과 언론사 간 수익 배분을 둘러싼 호주의 새로운 규제가 본격화됐다. 새 제도는 구글, 메타, 틱톡 등 일정 규모 이상의 디지털 플랫폼이 호주 언론사와 상업적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플랫폼이 정당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디지털 광고 매출을 기준으로 부담금을 내야 하지만, 언론사에 직접 지급한 계약 금액은 이 부담금에서 차감된다. 즉, 플랫폼에 ‘호주 언론사와 계약을 맺고 뉴스에 비용을 지불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에 부담금을 낼 것인지’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징수된 부담금은 뉴스 저널리즘 지급 제도(News Journalism Payment Scheme)를 통해 뉴스 사업자들에게 배분된다.1) 즉, 언론사와 계약하는 편이 부담금을 내는 것보다 유리하게 만드는 경제적 ‘인센티브’인 셈이다. 최종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언론사와의 최소 계약 건수, 개별 계약을 통해 차감할 수 있는 금액의 한도, 부담금 비율 등을 둘러싸고 정부와 언론업계 간 상당한 논쟁과 조정이 이뤄졌다.
호주는 2021년 세계 최초로 「뉴스미디어협상법(NMBC, News Media Bargaining Code)」을 도입한 국가다. 당시 제도는 디지털 플랫폼과 뉴스미디어 간 협상력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플랫폼이 뉴스 콘텐츠의 가치에 대해 언론사와 협상하도록 하는 새로운 규제로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구글과 메타는 호주 언론사들과 30건 이상의 상업적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24년 메타가 기존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서 제도의 근본적인 한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플랫폼이 뉴스 제공 자체를 중단할 경우 기존 협상법의 적용을 사실상 피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러한 규제적 허점을 보완하고자 뉴스 협상 인센티브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2)
5년 만에 다시 설계된 호주의 플랫폼-뉴스미디어 규제는 기존 제도와 무엇이 달라졌으며, 플랫폼과 언론사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또한 새로운 제도는 대형 언론사뿐 아니라 지역·중소·독립 언론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목표까지 달성할 수 있을까. 이를 둘러싼 쟁점과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협상’에서 ‘인센티브’로, 달라진 뉴스미디어 지원 방식
2026년 최종안에서 가장 큰 변화는 플랫폼과 언론사 간 협상을 유도하는 방식과 부담금 산정 기준이 보다 구체화됐다는 점이다. 우선 대형 디지털 플랫폼에 적용되는 부담금 비율은 당초 제안된 2.25%에서 디지털 광고 매출의 2.75%로 상향됐으며, 부담금 산정 기준도 3년 전이 아닌 2년 전의 디지털 광고 매출을 적용하도록 변경됐다. 또한 플랫폼이 언론사와 직접 체결한 상업적 계약에 지급한 금액은 부담금에서 차감할 수 있는데, 부담금 전액을 차감받는 데 필요한 언론사와의 최소 계약 건수는 당초 4건에서 8건으로 확대됐다.이는 플랫폼이 소수의 대형 언론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만으로 부담금 납부 의무를 충족하는 것을 방지하고, 지역·중소·독립 언론사를 포함한 보다 다양한 뉴스 사업자와의 계약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반면 개별 대형 언론사와의 계약을 통해 차감할 수 있는 금액의 상한선이 전체 부담금의 16%에서 25%로 높아졌다. 당초 16%의 상한선에 대해 호주 대형 언론사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오스트레일리안파이낸셜리뷰(Australian Financial Review)를 발행하는 나인 엔터테인먼트(Nine Entertainment)와 뉴스코프(News Corp) 등 주요 미디어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가 언론사의 수익 감소와 저널리즘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전체 전문 언론인의 6분의 1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새로운 제도가 적용되면 이들이 플랫폼과 체결하는 계약 규모가 최대 40%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3) 이러한 초기 안에 대한 우려를 의식해 규모와 영향력을 보다 적절하게 반영하기 위한 조치다. 이로써 하나의 대형 언론사와의 계약으로 최대 25%를 차감할 수 있지만, 나머지 계약을 통해 보다 다양한 언론사에도 재원이 돌아가도록 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또한, 이번 새 법안에서는 플랫폼과 언론사 간 직접 계약을 유도하기 위해 계약 금액의 150%를 플랫폼이 납부해야 할 부담금에서 차감해 주며, 중소 규모 언론사와 계약할 때는 계약 금액의 200%까지 차감해 준다. 예컨대 중소 언론사에 100만 호주달러(약 10억 원)를 지급하면 부담금에서는 200만 호주달러(약 20억 원)를 차감받을 수 있는 구조다.
연간 2,500억 원 뉴스 산업에 지원
호주 정부는 새로운 NBI를 통해 플랫폼과 언론사 간 직접 계약 및 부담금 등을 포함해 연간 약 2억 5,000만 호주달러(약 2,510억 원) 규모의 재원이 뉴스 산업에 제공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임의로 산출된 금액이라기보다 2021년 뉴스미디어 협상법 도입 이후 구글과 메타 등이 호주 언론사와 체결한 상업적 계약을 통해 연간 약 2억~2억 5,000만 호주달러가 뉴스 산업에 유입됐던 수준을 유지하려는 데서 출발한다.4) 특히 2024년 메타가 기존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재정적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에 디지털 광고 매출의 2.75%를 기준으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했다. 따라서 기존 플랫폼 계약을 통해 뉴스 산업에 들어왔던 금액을 토대로 정부가 유지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뉴스 지원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플랫폼이 계약 대신 납부한 부담금은 뉴스 저널리즘 지급 제도를 통해 뉴스 사업자들에게 배분된다. 지원은 공적 논의와 민주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핵심 뉴스 콘텐츠(core news content)’의 생산을 유지하고 언론사의 저널리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지원금은 각 언론사가 고용하고 있는 상근 언론인 수를 주요 기준으로 산정하며, 기자뿐 아니라 사진·영상기자, 데이터, 편집자와 프로듀서 등 뉴스 제작에 참여하는 다양한 직군을 포함한다. 또한 징수된 부담금의 10%는 별도의 보조금으로 배정해 5%는 호주연합통신(AAP)에, 나머지 5%는 플랫폼과의 직접 계약을 통한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하는 소규모 언론사에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실제 징수된 재원을 어떤 방식과 절차를 통해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운영 방식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5)
AI 기업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새 제도가 플랫폼의 뉴스 산업 지원 회피를 막는다는 점에서는 진전이지만, 지원 규모와 배분 방식, 중소·독립 언론의 접근성, AI 플랫폼 규제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6) 무엇보다 부담금 산정 기준이 플랫폼의 호주 내 전체 매출에서 디지털 광고 매출로 축소되면서 전체 지원 재원 역시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부담금 비율을 2.25%에서 2.75%로 높였지만, 이러한 감소분을 충분히 보완할지는 불확실하며, 무엇보다 호주에서 플랫폼이 벌어들이는 디지털 광고 매출을 어떻게 정확하게 정의하고 산정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또한 플랫폼이 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체결해야 하는 최소 계약 건수를 8건으로 늘렸지만, 한 언론사와의 계약에 전체 인정 금액의 최대 25%를 배정할 수 있어 소수 대형 언론사에 자금이 집중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더불어 뉴스 협상 인센티브 제도의 협상 대상이 되려면 호주통신미디어청의 적격 뉴스 사업자 명부에 등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연간 15만 호주달러(약 1억 5,0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이 기준으로 인해 상당수 소규모·독립 언론사가 협상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으며, 별도로 마련된 5%의 지원금만으로는 이들을 충분히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AI 기업이 새로운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점이 중요한 규제 공백으로 지적된다. 생성형 AI가 뉴스와 정보에 접근하는 주요 경로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고, 이에 따른 시장과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이 빠르게 커지는 시점에서 이들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속가능한 저널리즘을 위한 호주의 새로운 실험
새로운 뉴스 협상 인센티브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플랫폼에 단순히 ‘협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언론사와 계약하지 않는 선택 자체에 경제적 비용을 부과한다는 점이다. 이는 플랫폼과 언론사의 직접 계약 또는 부담금 납부를 통해 호주 뉴스 산업에 보다 안정적인 재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특히 플랫폼이 뉴스 제공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뉴스 산업에 대한 재정적 기여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은 기존 제도의 중요한 허점을 보완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앞으로는 △플랫폼이 실제로 계약을 선택할 것인지, △재원이 대형 언론사에 집중되지 않을지, △지역·중소·독립 언론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플랫폼이 새로운 방식으로 뉴스 노출을 축소할 가능성은 없는지가 제도의 성패를 가늠할 지표로 보인다.
이번 호주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플랫폼에 뉴스 사용료를 부과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이 협상을 거부하거나 뉴스 유통 전략을 바꾸더라도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지원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그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최근 호주에서는 뉴스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지원하기 위한 또 다른 방안으로 언론인 인건비에 대한 환급형 세액공제(refundable tax offset) 도입이 제안되고 있다.7)
세액공제는 기업이 납부해야 할 세금에서 일정 금액을 차감해 주는 제도로, 특히 ‘환급형’ 방식은 공제액이 납부할 세금보다 많을 경우 그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수익성이 낮아 세금 부담이 크지 않은 지역·중소 언론사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캔버라대 뉴스·미디어연구센터가 제안한 이 모델은 공익 저널리즘을 생산하는 언론사의 언론인 인건비 일부를 세액공제 형태로 정부가 지원함으로써 언론인 고용을 안정시키고, 지역 및 소외 지역을 포함한 공익 저널리즘의 공급과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센터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익 저널리즘에 해당하는 언론인 인건비의 10%를 공제할 경우 정부 지원 규모는 연간 약 7,200만 호주달러(약 722억 원), 20%는 1억 4,400만 호주달러(약 1,440억 원), 30%는 약 2억 1,600만 호주달러(약 2,17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8) 특히 30% 공제 모델은 기존 「뉴스미디어협상법」이 당초 목표로 했던 연간 2억 5,000만 호주달러(약 2,500억 원) 규모에 근접한다. 이러한 방식은 플랫폼과 언론사의 협상이나 정부의 단기 보조금에 의존하기보다 세제를 통해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정부와 언론사 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언론의 독립성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책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플랫폼과의 협상을 넘어 저널리즘 자체의 생산 기반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지원할 것인가라는 호주의 고민은 디지털 전환을 겪고 있는 다른 국가의 뉴스 산업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1)Fisher, C. & Park, S., , The Conversation, 2026.8.13, https://theconversation.com/new-laws-to-make-tech-companies-pay-for-news-will-help-but-there-are-4-key-problems-289703
2)3) Mizen, R., , Financial Review, 2026.8.13, https://www.afr.com/politics/federal/labor-caves-to-media-giants-with-eleventh-hour-changes-to-tech-levy-20260812-p60nsy
4)Mizen, R., , Financial Review, 2026.8.3, https://www.afr.com/politics/federal/labor-finalises-tech-giant-tax-designed-to-force-funding-for-news-20260802-p60kou
5)6) Fisher, C. & Park, S., , The Conversation, 2026.8.13,https://theconversation.com/new-laws-to-make-tech-companies-pay-for-news-will-help-but-there-are-4-key-problems-289703
7) Nikolovski, Z., , Mumbrella, 2026.8.3, https://mumbrella.com.au/journalist-tax-offset-pitched-as-long-term-fix-for-public-interest-news-931773
8) Brownlow, M., Park, S., & Lee, J(2026), , News & Media Research Centre669 2026-08-28 -
[글로벌 미디어 현장] 독일_ 공영미디어에 대한 국민 인식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쳐독일에서 공영 미디어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제도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에 놓여 있다. 디지털 플랫폼과 상업 미디어가 일상적인 정보 소비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공영 미디어가 ‘방송분담금(Rundfunkbeitrag)’이라는 특별 재원으로 계속 유지될 필요가 있는지, 나아가 기본법(Grundgesetz)과 제도적 장치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둘러싼 의문이 여러 방향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해 동안 독일 공영 미디어는 운영 투명성 부족, 정치적 중립성 훼손, 시대 변화에 뒤처진 운영 방식 등을 이유로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렇기에 현재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공영 미디어를 원칙적으로 옹호하거나,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공영 미디어의 존재 이유는 시청률이나 수익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오히려 사회적 필요성과 공적 기능 수행 여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이때 참고할 수 있는 것이 독일의 최상위 미디어 법제인 「미디어주간(州間)협약(Medienstaatsvertrag)」이다. 이 협약은 공영 미디어에 시장 경쟁의 성과와는 다른 책무를 부여한다. 다양한 콘텐츠 제공은 물론 민주주의 수호,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뉴스 제공, 시민적 공론장 형성, 의견의 자유 보호, 사회 통합 기여 같은 역할이다. 따라서 독일 공영 미디어를 평가하는 작업은 이 협약이 부여한 공적 책무를 실제로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독일 사회가 공영 미디어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필요가 수용도와 뉴스 신뢰, 사회 통합에 대한 기대라는 세 측면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관련 조사 결과를 통해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 독일 공영 미디어가 사회 안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제도적으로 부여된 공적 역할을 실제로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지를 짚어본다.
<출처 - ARD 수용자 연구 2026 재구성1)>
필요성 인정하지만, 일상에서의 체감은 낮아
독일 공영 미디어의 필요성을 판단할 때 는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이 연구는 독일에 거주하는 14세 이상 독일어 사용 인구를 대상으로, 지역 공영방송사 연합인 ARD가 제공하는 채널과 서비스를 시민들이 얼마나 이용하며, 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자료다. 조사 결과는 오늘날처럼 정보 소비가 레거시 미디어를 넘어 플랫폼과 스트리밍, 소셜미디어 등으로 분산되는 환경에서 공영 미디어가 사회와 어떤 접점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ARD의 매일 이용률은 전체 조사 대상의 71%이며, 중점 관찰 그룹에서도 60% 이상으로 집계된다. 이는 미디어 환경이 분산된 오늘날에도 ARD가 특정 세대나 특정 정치 성향의 이용자에게만 국한된 매체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인프라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ARD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평가도 전반적으로 높다. 사회적 중요성은 75%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정보와 콘텐츠에 대한 신뢰 및 복잡한 사안에 대한 이해 증진은 각각 74%였다. 또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항목도 72%로 조사됐다. 이 결과는 시민들이 ARD를 단순한 방송 사업자가 아니라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매체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는 시민들이 느끼는 공영 미디어에 대한 일정한 거리감과 한계도 함께 드러낸다. 먼저 지역 공영방송사 연합이라는 ARD의 특성은 지역적 유대감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난다. 자신의 지역방송사를 고향의 일부로 느낀다는 응답은 68%였고, ARD가 사라지면 아쉬울 것이라는 응답도 62%로 집계됐다. 이는 ARD가 단지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를 넘어 정서적 연대의 대상이기도 함을 확인하게 한다. 그러나 ARD가 토론과 사회적 교류를 위한 장을 제공한다는 응답은 62%, 사회의 다양성을 잘 반영한다는 평가는 61%였다.
독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방송분담금을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조사 결과, 공영 미디어가 방송분담금만큼의 가치를 한다는 응답은 61%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ARD가 공론장 형성과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기능에서 일정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사회적 중요성이나 신뢰, 이해 증진 같은 핵심 항목보다는 다소 낮다. 시민들이 ARD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지만, 일상에서 수행하는 공론장 기능이나 사회 대표성을 체감하는 정도는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방송분담금의 가치와 개인적 유용성에 대한 평가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ARD가 방송분담금만큼의 가치를 한다는 응답은 61%, 개인적으로 유용하다는 평가는 60%에 그쳤고, 특히 개인적 유용성은 14~29세에서 56%, 30~49세에서는 50%로 더 낮게 나타났다. 이는 시민들이 ARD의 사회적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상에 얼마나 직접적인 가치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더 유보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공영 미디어의 사회적 정당성과 개인이 체감하는 효용 사이에 일정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는 독일 공영 미디어에 대한 평가가 찬반이나 호불호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음을 부각한다. ARD는 사회적 중요성과 신뢰, 이해 증진, 포용성, 일일 도달률 등과 같은 핵심 지표에서 여전히 강한 사회적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공영 미디어가 독일 사회에서 여전히 폭넓은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방송분담금의 가치와 다양성 반영, 개인적 유용성 및 사회 통합과 같은 항목들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아 향후 과제도 함께 드러낸다. 오히려 공영 미디어가 이미 인정받고 있는 사회적 필요에 부응해 어떻게 더 설득력 있고 체감 가능한 역할을 수행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초점이 맞춰져야 함을 보여준다.
공영 뉴스에 대한 신뢰 변화
공영 미디어의 사회적 필요를 판단하는 데서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뉴스에 대한 신뢰다. 이와 관련해 ZDF가 발표한 는 유용한 자료다.이 조사는 일반적인 시청자가 아니라 유권자를 기준으로 공영 텔레비전 채널의 보도에 대한 신뢰를 분기별로 추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정 시점의 신뢰 수준뿐 아니라, 장기적 흐름 속에서 공영 미디어 뉴스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6년 7월 조사에 따르면 공영 텔레비전 채널의 보도에 대해 ‘매우 높은’ 또는 ‘높은’ 신뢰를 보인 비율은 56%였다. 이는 다양한 뉴스 플랫폼과 디지털 서비스가 공존하는 환경에서도 공영 미디어 뉴스가 여전히 과반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상업 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 소셜미디어 기반 정보 유통이 확대된 상황을 고려하면, 공영 미디어 뉴스가 여전히 사실 보도의 주요 기준점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공영 텔레비전 채널 뉴스에 대한 신뢰는 대체로 50%대 후반에서 60%대 중후반 사이였다. 2016년 초에는 58%까지 낮아졌지만, 같은 해 2분기에는 68%까지 상승하며 안정적인 수준을 회복했다. 이 시기는 독일 사회에서 난민 유입과 이주 문제, 사회적 갈등이 본격적으로 정치 쟁점화된 때였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신뢰 변동은 당시 독일 사회의 정치·사회적 긴장과도 일정 부분 맞물려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공영 미디어 뉴스에 대한 신뢰는 팬데믹 국면에서 뚜렷하게 상승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신뢰도가 60% 후반에서 70%대로 측정됐고, 특히 2020년 2분기에는 조사 이래 최고치인 74%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상승은 대규모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검증된 정보원으로 인식되는 매체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팬데믹 시기 공영 미디어는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사실 확인과 정보 제공의 중심 채널로 기능했고, 그 결과 신뢰도 역시 크게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런 상승세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022년부터 공영 텔레비전 뉴스에 대한 신뢰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2022년 초에는 60%대 후반이었으나 하반기로 갈수록 60%대 초반으로 완만하게 낮아졌고, 2024년에는 5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특히 최근에 실시된 2026년 7월의 조사 결과 56%로, 이는 조사 시작 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공영 미디어 뉴스는 여전히 과반의 신뢰를 받고 있지만, 팬데믹 시기에 형성된 높은 신뢰 수준은 유지되지 못했고, 장기적으로는 약화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 변화는 독일 공영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민 인식이 이중적임을 잘 드러낸다. 공영 미디어 뉴스가 여전히 사실 보도의 중요한 기준점으로 기능하며 과반의 시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있으나 그 신뢰는 더 이상 안정적이거나 자명하진 않다. 공영 미디어의 필요성은 여전히 인정되지만, 그 필요를 뒷받침하는 신뢰가 지속적으로 시험받고 있으며 예전처럼 관성적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 공영 미디어의 과제는 단순히 제도를 유지하는 데 있지 않고, 변화한 정보 환경 속에서 왜 여전히 신뢰할 만한 뉴스 제공자인지를 지속적으로 입증하는 데 있다.
사회 통합 기능에 대한 기대와 평가
독일 공영 미디어 3사가 공동으로 진행한 는 시민들이 현재 독일 사회의 결속을 어떻게 인식하며, 그 과정에서 공영 미디어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다룬다.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약 76%가 사회의 결속이 위협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강한 결속을 느낀다는 응답이 68%로 나타나 사회 전체 차원에선 분열을 느끼면서도 일상적으로는 공동체적 연결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회 전체에 대한 결속감은 낮지만, 소규모 공동체에 대한 결속감은 상대적으로 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공영 미디어의 역할이 특히 중요해진다. 사회를 넓게 연결하고 공통 의제를 형성하며 국가적 차원의 논의를 이끌 계기가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공영 미디어에 거는 기대는 매우 높다. 공영 미디어가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한다는 응답(82%)과 서로 다른 사회 집단에게 대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응답(83%)이 높게 측정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자신의 이해관계나 생활양식이 직접 반영되길 바라는 비율(49%)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와 사건을 다뤄야 한다(88%)는 항목과 다양한 의견과 삶의 방식, 공동체를 반영해야 한다(80%)는 항목이 더 높게 측정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시민들이 공영 미디어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공유하게 하고, 서로 다른 집단 간 접점을 만들어 내는 공적 인프라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인식함을 말해준다. 공영 미디어에 대한 기대가 사적 대변보다 공적 대표성과 사회적 연결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기대만큼 공영 미디어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가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다. 독일 사회 통합에서 공영 미디어가 매우 높거나 높은 기여를 한다고 평가한 응답은 53%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공영 미디어가 토크쇼나 대담으로 중요한 사회문제를 잘 다룬다는 평가(63%)와 가족·지인들과의 대화를 촉진한다는 평가(60%), 다양한 사회 집단의 의견과 관점을 고르게 제시한다는 평가(57%)에 대해선 긍정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역할 기대에 비해선 낮았다. 더불어 갈등과 문제해결에 긍정적 사례 제시(47%), 이용자의 참여 촉진(44%)에선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응답률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할 때, 사회 통합 차원에서 독일 시민들은 공영 미디어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필요가 실제로 충족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출처 - ARD·ZDF·Deutschlandradio 사회통합 연구 2025 재구성>3)
공영 미디어의 필요성과 정당성의 조건
독일 공영 미디어의 필요성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앞서 살펴본 세 조사—ARD 수용자 연구, ARD·ZDF 신뢰도 조사, 사회 통합 연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듯, 독일 시민 다수는 공영 미디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큰 이견 없이 민주주의와 사회를 위한 제도로 인식하고 있고, 뉴스와 정보 신뢰 측면에서도 공영 미디어가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조사는 공영 미디어 스스로가 그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도 말해준다.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뉴스 신뢰, 그리고 사회통합 기능에 대한 높은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제 평가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공영 미디어가 단지 존속해야 하는 제도라는 이유만으로 지지를 확보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독일 공영 미디어뿐만 아니라 현대 공영 미디어의 필요성은 존폐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 책무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수행하는가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제공, 다양한 사회 집단의 대표성 확보, 사회적 대화와 공론장 형성, 사회 통합에 대한 기여는 그 핵심 기준이다. 결국 공영 미디어의 미래는 시민들이 그것을 여전히 필요한 제도로 인정할 수 있도록 이러한 책무를 각 사회의 조건 속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1) , https://www.linkedin.com/posts/ard-akzeptanzstudie-2026-ugcPost-7477670235442024448-xBtP/l
2) , https://www.zdf.de/assets/glaubwuerdigkeit-berichterstattung-juli-2026-100~original?cb=1784840411179
3) , https://www.media-perspektiven.de/fileadmin/user_upload/media-perspektiven/pdf/2026/MP_13_2026_Leistungen_der_oeffentlich-echtlichen_Medien_fuer_den_Zusammenhalt_in_Deutschland.pdf669 2026-08-28 -
[취재기 제작기] 경인일보 <뚜안, 스물셋 죽음 뒤의 벽> 취재기 기사 한 줄로 끝나는 이주노동자의 죽음, 해외 유족의 이야기를 담다지난 3월 10일 경기도 이천시 한 자갈 공장에서 베트남 국적 이주노동자 응우옌 반 뚜안 씨가 컨베이어벨트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경인일보는 한 줄의 부고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사고의 이면을 파고들었다. 전국 최초로 ‘산업재해 사망 외국인노동자 유가족 지원 조례’가 통과되는 데 이바지한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한 청년이 일터에서 숨졌습니다. 처음에는 ‘20대 이주노동자 끼임 사망 사고’라는 한 줄로 정리될 수 있는 사건처럼 보였습니다. 사고 개요와 입건 여부만 확인해도 기사는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줄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뚜안 씨의 직계 유족은 모두 베트남에 있었습니다. 반면 부검과 장례, 시신 송환과 보상 절차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죽음 이후의 절차에서 해외 유족은 쉽게 뒤로 밀려났습니다. 경인일보의 <뚜안, 스물셋 죽음 뒤의 벽>은 사고 기사 한 줄로는 보이지 않았던 사각지대를 따라간 보도입니다. 3개월여간 사고 현장과 경찰서, 빈소와 경기도의회를 오가며 전화 취재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절차의 빈틈과 기자에게 남은 질문들을 되짚어봤습니다.
지난 3월 13일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뚜안 씨의 빈소 ⓒ경인일보
사고 바깥에 남은 질문
사고 기사는 대개 전화로 시작됩니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사고 시각과 장소를 확인합니다. 소방과 노동 당국에도 출동 내용, 수사 착수 여부 등을 묻습니다. 사고가 난 회사가 확인되면 입장을 듣고 재발 방지 대책 등의 자료를 요청합니다. 다음 날 지면에 실릴 기사 한 꼭지는 그렇게 완성됩니다. “경찰과 노동 당국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라는 익숙한 문장과 함께.
2026년 3월 10일 새벽, 경기도 이천의 한 자갈·모래 제조공장에서 베트남 국적의 청년 노동자 응우옌 반 뚜안(Nguyen Van Tuan)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스물셋, 베트남 국적, 새벽 작업 중 끼임 사고. 처음 확인한 사실들은 산재 사망사고 기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였습니다.
다음 날 현장에 갔습니다. 공장에는 경찰 통제선이 남아 있었습니다. 뚜안 씨가 마지막으로 쓰고 있던 안전모는 컨베이어벨트 아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익숙한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왜 기계는 멈추지 않았을까. 왜 그는 혼자 그 아래로 들어갔을까. 안전장치는 있었을까. 외국인 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는 안전 교육은 이뤄졌을까. 산재 사망사고를 취재하는 기자에겐 당연한 질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국내에 사는 뚜안 씨의 친척과 이주 인권 활동가들이 경찰서를 찾는 과정에 우연히 동행하면서 질문은 사고 원인 바깥으로 넓어졌습니다.
모두가 절차를 따랐지만
이천경찰서 수사관은 사고 경위와 향후 절차를 설명했습니다. 부검의 필요성, 동의권자, 시신 인도 시점, 위임에 필요한 서류가 차례로 언급됐습니다. 위임장과 가족관계 서류가 필요하다는 설명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검사를 통해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안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절차를 따라 진행됐습니다.
다만 그 설명을 직계 유족이 직접 듣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경찰서에 앉아 있던 사람은 사촌 누나 린 씨와 이주 인권 활동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베트남의 가족을 대신해 물었습니다. 부검은 왜 필요한지, 누가 동의할 수 있는지, 시신은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들은 설명은 추후 다시 베트남에 있는 가족에게 전달돼야 했습니다.
누군가 큰 소리를 높이거나 문전박대를 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사관은 자신의 자리에서 가능한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그 설명을 들어야 할 부모와 형제들이 한국에 없다는 커다란 장벽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취재의 방향도 달라졌습니다. 뚜안 씨가 왜 숨졌는지와 함께 그의 가족이 죽음 이후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절차를 어떻게 겪게 되는지도 지켜보려 했습니다. 사고 현장에 남아 있던 안전모에서 시작한 질문은 경찰서 안에서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남겨진 가족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 물음이 보도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기사의 파장이 유족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경찰서 취재 이후 기사의 초점은 사고 원인에서 죽음 이후의 절차로 넓어졌습니다. 유족이 어떤 설명을 듣고 있는지, 회사는 무엇을 지원하겠다고 했는지, 배·보상 협의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고 초기, 회사는 책임을 통감하고 장례와 필요한 절차를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중대재해 대응 조직을 둔 대형 로펌이 선임됐습니다. 유족 측은 위임장과 가족관계 입증 서류, 공증 절차를 거쳐 국내 대리인에게 권한을 맡긴 상태였습니다. 회사 측은 이를 부정하고 또 다른 형식의 위임장을 요구했고 배·보상 협의에 필요한 자료 제공도 늦어졌습니다. 유족이 권한을 증명하는 데 시간을 쓰는 사이, 협의의 주도권은 점점 회사 쪽으로 기우는 듯했습니다.
사고 한 달 뒤, 베트남에서 입국한 동생 뚜 씨가 형의 생일날 사고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날 사 측은 언론의 출입을 제한했습니다. 저는 유족 측 동의 아래 활동가들과 함께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뚜안 씨가 숨진 기계와 작업 공간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잠입취재였습니다. 유족이 처음으로 사고 지점을 마주하는 이 자리는 취재진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현장이었습니다. 2인 1조 근무와 설비 정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기에, 이주노동자인 뚜안 씨가 왜 새벽 시간 홀로 기계 쪽으로 들어가야 했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가 숨진 기계는 어떤 구조와 규모였는지, 작업자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밖에서는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보이지 않는지도 직접 봐야 했습니다. 뚜안 씨가 어떤 기계 앞에서 일했고 어떤 공간에서 숨졌는지 확인해야, 작업 환경과 안전관리의 문제, 그리고 남겨진 가족의 질문까지 함께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뚜 씨는 컨베이어벨트 아래에 국화꽃을 놓고, 향 대신 담배를 피워뒀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아버지는 영상통화로 그 장소를 봐야 했습니다. 해외 유족이 사고 현장과 절차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기사로 옮길 때도 한 가족의 애도 장면을 그대로 전하는 데서 멈추고 싶지 않아 고민했습니다. 무엇을 기사에 담아야 유족의 권리가 보이고, 그들의 슬픔이 기사 속 장면으로만 소비되지 않을지 생각했습니다.
사 측은 취재 내용에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특히 현장 취재가 문제가 됐습니다. 사 측은 유족 측에 예외적으로 허용한 현장 방문에 기자가 동행한 것을 두고, 배·보상 협의에 나선 대리인과 활동가들에게 신뢰를 깬 행동이라는 취지로 항의했습니다. 합의 이후에도 언론 보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협의 과정에서 쟁점이 됐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그 이면을 보도하는 일은 당연한 취재였습니다. 그러나 회사와 협의를 이어가야 하는 유족 측에는 취재 시도 자체가 회사에 해명해야 할 문제가 된 것입니다. 공론장에서는 필요한 보도가 현실의 협상 과정에서는 유족에게 불리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취재의 아이러니였습니다.
그래서 기사마다 공개 시점을 따져야 했습니다. 지금 쓸 수 있는 사실인지, 조금 더 확인한 뒤 써야 하는 내용인지 구분했고, 기사에 쓰인 문장이 사 측과의 협의 과정에서 유족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함께 살피고자 했습니다. 유족의 의사와 협의 상황을 건너뛰고 보도가 앞서가서도 안 됐습니다. 기사로 쓰는 순간 회사는 보도에 대응했고, 유족은 그 파장을 함께 감당해야 했습니다. 사고의 진상을 짚은 기사가 다시 유족에게 돌아오는 과정을 보며 기사 한 줄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의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 이후를 오래 보려는 일
뚜안 씨가 숨진 곳은 경기도 이천이었습니다. 사고 다음 날 찾아간 공장, 유족과 활동가들이 향한 경찰서,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앞 기자회견과 시민분향소, 조례를 논의한 경기도의회까지 모두 경기도 안에 있었습니다. 사고 현장을 본 뒤 장례식장으로 갔고 분향소와 수사기관의 설명, 도의회 논의까지 이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하루짜리 산재 사망사고 기사로 끝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역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경인일보 보도를 접한 유호준 경기도의원은 뚜안 씨 가족이 겪은 일이 개별 사건의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산재 사망 외국인 노동자의 해외 유족이 제도 밖에 놓이는 문제라고 봤습니다. 그는 이를 지방정부가 제도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조례를 준비했고, 이후 ‘산업재해 사망 외국인노동자 유가족 지원 조례’를 대표 발의했습니다. 조례안은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 없이 논의됐습니다.
그렇게 지난 6월 경기도의회에서 전국 최초로 제정된 해당 조례에는 해외 유족에게 입국 절차와 국내 체류, 장례와 시신 송환, 통역과 법률·심리 상담, 산재 보상 절차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담겼습니다. 뚜안 씨 가족에게는 무엇 하나 당연하지 않았던 일들이었습니다.
조례 통과 소식을 베트남에 있는 유족에게 전했습니다. 남동생 뚜 씨는 이 조례가 외국에서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 ‘가장 힘든 시기에 가족들이 사회의 관심과 배려를 받고 권리를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조례가 뚜안 씨를 돌아오게 할 수 없고, 한 가족이 겪은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죽음이 반복됐을 때 국경 밖 유족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생겼다는 점은 분명했습니다.
뚜안 씨의 죽음 뒤에는 국경의 벽, 언어의 벽, 행정의 벽이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답변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무심함의 벽도 있었습니다. 한 편의 기사가 그 벽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만, 그 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을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보도를 통해 죽음이 한 줄의 사고 개요로 정리된 뒤에도 그 한 줄 밖에 남은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669 2026-08-28 -
[취재기 제작기] TV조선 <아이온의 AI:온> 제작기 AI 리포터, 언론인의 데스킹 더 중요해져방송에서 AI 앵커·기상 캐스터 등을 접하는 것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지만, TV조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뉴스 아이템 선정부터 취재, 대본 작성, 진행까지 맡아 하는 AI 리포터를 직접 만들어 낸 것. AI 리포터가 바꾼 뉴스룸의 풍경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아침 뉴스 제작진의 하루는 대체로 비슷하게 시작된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은 시간, 모니터는 먼저 깨어 있고 메신저 창은 벌써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밤사이 뉴욕 증시는 어땠는지, 워싱턴에서는 무슨 말이 나왔는지, 국내 정치 일정은 바뀐 게 없는지, 경제부처 브리핑은 몇 시인지. 누군가는 기사를 찾고, 누군가는 영상을 뒤지고, 누군가는 “이거 오늘 그림 되겠는데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리 팀 톡 방에 조금 이상한 팀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도 없고, 커피도 안 마시고, 밤샘 뒤에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친구들. 이름은 뉴봇, 아일린, 제니.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회의는 했다. 발제도 했다. 서로 의견이 다르면 반박도 했다. 때로는 사람이 쓴 원고를 보고 “이 문장은 방송 문장으로는 조금 무겁다”라고 고쳐왔다.
처음엔 우리도 웃었다. “AI가 회의를 한다고?” 그런데 얼마 뒤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생각보다 일을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AI와 On, 항상 켜져 있는 뉴스
처음 회사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비교적 단순했다. 아침 뉴스에 AI 앵커, 혹은 AI 리포터를 등장시키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방송사에서 가상 인간이나 AI 앵커를 선보인 적이 있다. 사람과 비슷한 얼굴을 만들고, 사람과 비슷한 목소리로 대본을 읽게 하는 방식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놀랍다. 그런데 방송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음 한구석에 이런 질문이 남았다. ‘결국 사람이 쓴 대본을 AI 얼굴이 읽는 거라면, 이게 진짜 새로운 제작 방식일까?’ 얼굴만 사람에서 AI로 바뀐다면 포장지의 변화에 가깝다. 우리가 궁금했던 건 그다음이었다. AI가 뉴스를 읽는 것을 넘어, 스스로 뉴스를 만들 수 있을까. 아이템을 고르고, 자료를 찾고, 대본을 쓰고, 영상과 싱크를 제안하고, 자기들끼리 회의까지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아이온 프로젝트’는 두 갈래로 출발했다. 하나는 화면에 등장하는 AI 리포터, 즉 아바타 구현이었다. 이 부분은 범용 AI가 아닌 립싱크 AI 솔루션을 활용해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표정, 입 모양, 움직임은 방송 화면에서 시청자가 가장 먼저 만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했던 두 번째 축은 따로 있었다. 바로 AI를 활용한 취재·제작 자동화 시스템이다. 아이온이 단순히 예쁜 얼굴로 원고를 읽는 존재가 아니라, 뉴스룸 안에서 실제로 일하는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AI 리포터의 이름은 ‘아이온(Aion)’으로 정했다. 인공지능을 뜻하는 AI와 항상 켜져 있다는 뜻의 ‘On’을 붙였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뉴스 감각을 가진 리포터라는 의미다.
사실 방송국의 아침은 늘 ‘밤사이’와 싸운다. 시청자가 잠든 사이 세상은 꽤 많이 움직인다. 미국 증시가 흔들리고, 글로벌 기업의 실적이 나오고, AI 기업의 신제품 발표가 열리고, 중동이나 워싱턴에서 돌발 발언이 튀어나온다. 아침 뉴스는 이 흐름을 짧은 시간 안에 정리해야 한다. 특히 AI, 로봇, 반도체, 글로벌 산업 같은 분야는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어제 새로웠던 것이 오늘은 이미 낡은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아이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밤사이 쏟아진 첨단 산업 뉴스를 누가 가장 빨리 훑고, 비교하고, 방송 문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 기자 한 명이 모든 글로벌 정보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AI라면 여러 모델이 동시에 검색하고, 서로 다른 관점으로 판단하고, 결과물을 비교할 수 있다.
우리는 오픈AI(OpenAI)와 딥시크(DeepSeek)의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아이온의 내부 제작 흐름을 짰다. 각기 다른 AI 엔진을 가진 세 개의 AI 에이전트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이템을 보고, 판단하고, 문장을 만든다. 어떤 모델은 구조화에 강하고, 어떤 모델은 문장 감각이 좋고, 어떤 모델은 낯선 관점을 잘 던진다. 여기에 각각의 역할과 성격을 부여하자, 도구라기보다 팀원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우리 팀에 들어온 AI가 뉴봇, 아일린, 제니다.
TV조선의 AI 리포터 ‘아이온’ ⓒTV조선
AI끼리 회의하고, 사람은 데스킹한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사람의 개입 없이 AI끼리 회의를 이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날 아침 증시 전망 코너를 준비한다고 해보자. 세 AI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오늘 코스피는 어떤 흐름을 보일까?” 그러면 셋은 같은 답을 하지 않는다. 어떤 AI는 전날 뉴욕 증시와 반도체 흐름을 먼저 본다. 다른 AI는 환율과 외국인 수급을 더 크게 본다. 또 다른 AI는 전날 국내 시장의 낙폭과 투자 심리를 중시한다.
사람 회의와 비슷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깔끔했다. 서로의 말을 끊지 않고, 감정 상하지 않고, 근거를 붙여 의견을 낸다. 이후에는 “우리 셋의 공통 의견은 이렇고, 차이는 이렇다”라는 식으로 정리본을 가져온다. 처음 결과물을 받았을 때 솔직히 조금 섬뜩했다. 회의실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도 아닌데, 회의가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아이온의 대표 코너 중 하나가 <3대 AI 증시 전망>이다. 세 AI가 각각 내놓은 시장 전망을 아이온이 비교해 전한다. 이 코너의 재미는 단순히 AI가 증시를 맞히느냐 못 맞히느냐에 있지 않다. 같은 시장을 놓고도 AI 모델마다 판단의 결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그 차이를 시청자가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물론 최종 방송 전에는 사람이 데스킹한다. 팩트가 틀린 곳은 없는지, 표현이 과하진 않은지, 투자 조언처럼 들리지는 않는지, 방송 문장으로 자연스러운지 확인한다. 하지만 반복해서 작업하며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사람이 개입하는 이유는 AI가 부족해서라기보다, 방송의 최종 책임이 아직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상당 부분을 AI가 스스로 해낸다. 때로는 사람이 쓴 원고보다 AI가 정리한 초안이 더 빠르고, 더 단정하고, 더 균형적일 때도 있었다.
아이온 프로젝트를 아주 오래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방송에 실제로 내보내기까지는 여러 기술 점검과 내부 논의가 필요했지만, 기본 시스템의 윤곽은 생각보다 빠르게 잡혔다. 대략 한 달 정도였다. 방송사가 AI 리포터를 만든다니 개발자 여러 명이 붙어 장시간을 고민했을 것 같지만 실제 현장은 조금 달랐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유난히 뛰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AI 기술이 그만큼 가까이 와 있었다. 예전 같으면 방송국이 직접 개발하기 어려웠던 기능들이 이제는 여러 서비스와 모델, 에이전트 조합으로 구현 가능해졌다. 중요한 것은 코딩 실력보다 제작 감각이었다. 무엇을 AI에게 시키고, 어떤 순서로 연결하고, 어느 단계에서 사람의 판단을 넣을 것인가. 기술보다 편성이, 개발보다 제작 설계가 더 중요했다.
아이온 제작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노하우도 여기에 있다. AI를 잘 쓰려면 ‘좋은 프롬프트’만으로는 부족하다. 방송 제작의 공정을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쪼개야 한다. 발제, 취재, 자료 검증, 구성안, 리드 멘트, 그래픽 문구, 영상 제안, 최종 원고. 사람이 머릿속에서 한 번에 처리하던 일을 단계별로 나눠야 한다. 그리고 단계마다 AI가 해도 되는 일과 사람이 반드시 봐야 하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예컨대 AI에게 “오늘 AI 뉴스 하나 써줘”라고 하면 대체로 밋밋한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아침 뉴스 시청자에게 필요한 글로벌 AI 산업 뉴스 후보 5개를 뽑고, 각각의 시청자 관심도·영상 가능성·경제적 파급력을 평가한 뒤, 1분 30초 방송 대본으로 적합한 순서를 제안해달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AI는 훨씬 방송 제작자에 가까운 방식으로 움직인다. AI는 질문의 수준만큼 일한다. 그리고 제작자의 질문은 결국 제작자의 경험에서 나온다.
TV조선 뉴스퍼레이드팀의 단체 대화방 ⓒTV조선
‘방송 가능한 문장’을 가르치는 과정
프로젝트 진행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기술 자체보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방송 가능한 언어로 길들이는 일이었다.
AI는 가끔 너무 잘 쓴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문장은 유려하지만, 방송에서는 길다. 근거는 그럴듯하지만 출처가 흐릿하다. 표현은 멋있지만 시청자가 한 번에 듣고 이해하기 어렵다. “AI 혁명의 패러다임 전환이 산업 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같은 문장은 보고서에는 들어갈 수 있어도, 아침 뉴스에서는 곤란하다. 시청자는 출근 시간에 뉴스를 듣는다. 물을 끓이고, 셔츠를 찾고, 아이 도시락을 챙기면서도 이해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AI에게 계속 방송 문장을 가르쳤다. 짧고 쉽게. 먼저 그림이 떠오르게. 추상어보다 동사로. 그래픽 문구는 8자 안팎으로 줄이고, 리드 멘트는 너무 많은 변수를 담지 않게 했다. 매일매일 조금씩 조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이 피드백을 꽤 빠르게 흡수한다는 것이다. 어제 너무 길다고 지적한 구조는 오늘 조금 짧아져 온다. “이건 기사가 아니라 보고서 같다”라고 하면 더 방송 톤에 가까운 초안을 내놓는다. 사람 후배를 데리고 원고를 고치는 느낌과 닮은 구석이 있다. 다만 이 후배는 지치지 않고, 삐치지 않고, 새벽에도 바로 답한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잘하는 AI일수록 틀렸을 때 더 위험하다. 어설픈 오류는 금방 보이지만, 유려한 오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할루시네이션(환각)은 맞는 정보와 틀린 정보 사이에 그럴듯한 접착제를 발라 매끈한 문장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아이온의 뉴스 제작 과정에서 데스크는 문장 교정자가 아니라, 방송 책임의 최종 방파제여야 한다.
사람 없는 제작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현재 아이온 코너에는 사람이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제작 공정 대부분은 이미 사람 없이도 상당 수준 가능하다. 아이템 발제, 자료 검색, 관점 비교, 대본 초안, 그래픽 문구, 영상 구성안, 싱크 후보 제안까지 AI가 해낸다. 방송에 송출되는 CG와 동영상 자료 화면도 AI가 스스로 제작한다. 회사 내부 시스템과 보안 문제로 최종 영상 편집과 송출 단계까지 완전히 연결하지는 않았지만, 기술적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 정보 전달 영역이라면 더 그렇다. 날씨 특보, 지진 경보, 교통 정보, 금융 지표, 속보성 데이터처럼 정형화된 정보는 AI와 데이터 시스템을 연결하는 순간 거의 실시간으로 방송 문장화할 수 있다. 사람이 화면 앞에 앉아 원고를 기다리는 동안, AI는 이미 데이터를 읽고, 문장을 만들고, 화면에 등장할 준비를 마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방송 저널리즘에서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사람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정보를 찾는 사람에서, 질문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초안을 쓰는 사람에서, 기준을 세우는 사람으로. 모든 문장을 직접 만드는 사람에서 어떤 문장이 방송돼도 되는지 판단하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꽤 불편하다. 솔직히 말하면 무섭기도 하다. 아이온을 만들며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뿌듯함과 섬뜩함이 섞인 것이었다. ‘우리가 뭔가 해냈다’는 생각과 ‘이러다 정말 많은 일이 바뀌겠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AI가 사람의 일을 돕는 수준을 넘어, 어떤 영역에서는 이미 이를 뛰어넘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이온의 대표 코너 중 하나인 <3대 AI 증시 전망> ⓒTV조선
뉴스룸, AI 그리고 언론인
AI가 스스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면, 우리는 기술보다 먼저 책임을 이야기해야 한다. AI가 쓴 문장이 틀렸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AI가 고른 아이템이 편향됐을 때 누가 설명할 것인가. AI가 만든 영상이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 때 시청자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내부 원칙은 명확했다. AI 생성물이 방송에 사용될 경우 시청자가 알 수 있도록 표시한다. 뉴스의 생명인 정확성과 신뢰성을 위해 최종 단계에서는 사람이 확인한다. AI의 장점은 속도와 확장성에 있지만, 방송의 신뢰는 아직 사람의 이름과 조직의 책임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원칙이 AI 활용을 소극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다. 기준이 분명할수록 더 과감한 실험이 가능하다. 어디까지 AI에게 맡길 수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지, 어떤 제작물에는 AI 표기가 필요한지, 어떤 영역은 아직 보류해야 하는지. 이런 기준을 세우며 부딪혀보는 과정 자체가 앞으로 언론사들에게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될 것이다.
AI를 써본 사람과 안 써본 사람의 차이는 점점 커질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툴 하나를 배웠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뉴스 생산에 요구되는 감각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취재력, 문장력, 편집 감각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여기에 AI를 지휘하는 능력이 더해지고 있다.
PD든 기자든 작가든 마찬가지다. 앞으로 중요한 사람은 좋은 질문을 던지고, 결과물을 판별하고, 시청자에게 필요한 맥락을 고르는 사람이다. AI가 100개의 후보를 가져왔을 때 그중 방송할 하나를 고르는 감각. AI가 쓴 매끈한 문장 속에서 위험한 빈틈을 발견하는 눈. 그리고 AI가 먼저 묻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 그런 역량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AI는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뉴스룸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누군가 거창하게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어느 날 회의실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다. 처음엔 보조처럼 보이다가 발제하고 대본을 쓰고, 회의하고 어느 순간 사람이 쓴 문장을 데스킹한다.
처음엔 우리가 AI 리포터 한 명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아이온 프로젝트는 사람 없이 스스로 제작하는 AI 콘텐츠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확인한 첫 현장 실험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AI가 들어온 뉴스룸에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제작기이기도 했다.
방송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침 7시 40분이 되면 뉴스가 나가야 한다. 그 시간에 맞춰 아이온은 화면에 서고, 화면 밖에서는 뉴봇과 아일린과 제니가 밤새 뉴스를 훑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오늘의 문장을 준비한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우리 팀은 AI 리포터를 만든 게 아니라 AI 제작팀을 들인 셈이다. 그리고 이 팀원들은, 아마 내일 새벽에도 나보다 먼저 출근해 있을 것이다.669 2026-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