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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들: 변상욱 YTN 앵커
기획연재 | 등록일 : 2020-04-01

 

월간 《신문과방송》은 37년간 언론계를 지키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변상욱 YTN 앵커를 만났다. 변상욱 YTN 앵커(좌)와 인터뷰를 진행한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우)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변상욱 기자를 만났다.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로서 그의 마지막 직함에 따라 그를 CBS ‘대기자라 호칭하는 게 마땅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의 새로운 이력이자 현재 진행형의 실험이랄 수도 있을 YTN <뉴스가 있는 저녁> 앵커라고 불러도 좋을 테다. 하지만 그와 몇 번을 마주친 내 경험에 따르면 그는 평생을 평기자로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것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특정 언론사 소속 여부를 떠나, 연구에 가까운 취재라는 과 그에 바탕을 둔 글쓰기와 말하기라는 에 그는 언제나 몰입해 있었다. 

 

결국 기자는 단독자입니다. (하지만) 기자가 만나는 모든 것은 다 조직입니다. 기관이고, 세력이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기자가 혹시 자기를 떠받치는 조직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내가 어느 정도의 위세 혹은 권력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그간 내가 품고 있던 그에 대한 인상은 이 말이 뒷받침한다. 그에게 기자라는 건 단독자로서의 존재 의미를 갖고 있었다. 기자는 사회적 영향력을 지향하는 조직 안에서 활동하고, 그들이 취재하는 대상 역시 대개는 권력을 지닌 존재들이다. 그러다 보면 은연중에 혹은 대놓고 위세를 떨게 마련인데, 바로 거기서, 우리가 흔히 짐작하고 마주쳐온 위험이 뒤따른다. 얄궂게도 변상욱 기자 스스로 단독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잠시 잊었을 때, 그에게도 위험이 찾아왔다. 검찰 개혁의 방향을 놓고 군중이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모으던 2019년 가을, 현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에서 저는 조국 같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렇게 섰습니다라는 발언을 한 어느 청년에게 날린 부정적 트윗이 사달이었다.

 

제가 SNS에 글을 올릴 때도 한 개인으로서 더 생각했다면 더 존중할 수 있었고, 아니면 글을 더 길고 자세하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쓸 수 있었을 텐데 어느 정도의 위세를 (깔고) ‘그러면 안 되지라고 하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써버린 거죠). 그 배경 이해에 따라서 전혀 다른 글이 될 수 있고, 상처가 될 수 있는데, 청년들의 문제라든가, 단상에 선 사람의 개인적인 배경에 대해 내가 무지한 채로 너무 쉽게 접근했다는 반성을 하죠.”

 

선명히 갈려 모두들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그때, 실제로 논란이 될 만한 청년의 배경을 아는 이들에게는 동의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이들에게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한 설화, 아니 필화였던 셈이다. 비록 SNS를 통한 짧은 발언이기는 했으나, 사태의 책임을 지고 YTN 앵커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폐쇄성이 강한 언론사의 속성상 굴러들어온 일 수밖에 없는 그에게 불편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성명이 YTN 일각에서도 나왔다.

다행히도 사과와 자숙 기간을 거쳐 사태는 일단락됐고, 그가 진행하는 <뉴스가 있는 저녁> 역시 단독자로서의 변상욱과 조직으로서의 YTN이 만나는 창구로서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CBS에서 은퇴한 이후에 YTN 앵커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된 그의 자기 평가는 무엇일까?

 

맥락을 살피고, 이유를 끄집어내서, 알기 쉽게 전달하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삶이 제가 원하는 삶이거든요. 앵커는 기자들이 갖고 온 것을 모아 판단해서 몇 가지 코멘트를 붙여 소개하는 것인데,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더욱이) 아직도 기자를 하면 나중에는 다 앵커가 되는 게 꿈인 시대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죠. 이제는 맥락을 살피고 건강한 대안을 어떻게든 취재해서 그것을 알기 쉽게 스토리로 풀어서 얘기해주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시대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변상욱 YTN 앵커

 

 켜켜이 쌓아온 취재 파일준비된 스토리텔러

 

잘 준비된 스토리텔러로서의 삶이 그가 꿈꾸는 모습이라고 할 때, YTN 객원 앵커로서 <뉴스가 있는 저녁>을 이끄는 현재의 모습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코로나19의 폭발적 확산원으로 부각된 신천지 이슈로 인해 최근 꽤 분주했던 그의 활약상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신천지라는 집단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 다양합니다. 거기에 들어가 있는 아이들을 빼내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입장, 거기에 빠졌다가 나와서 자기의 청춘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피해자의 입장, (아직도)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입장, 거기에 빠졌다가 무사히 탈출해서 다시는 신천지의 자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귀를 닫고 눈을 감은 사람들의 입장, (기성) 교회의 입장, 그리고 엉뚱하게 폭발해 버린 사태에 대응해야 하는 방역당국의 입장, 이곳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입장까지. 상당히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버렸어요. (중략) 이럴 때 신천지라는 집단은 어떻게 움직일 것이며, 사회는, 방역당국은, 부모들은, 교회는 어떻게 움직이는 게 맞는지 고민하고 결론을 빨리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자리에 제가 하필놓여 있었던 거죠.”

 그의 말마따나, 하필 그는 CBS 출신이자, 관련 취재를 이미 넓고도 깊게 수행해왔으며, 하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하필 그 폭발적 확산의 중심에 신천지 교단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우연의 조합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상황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정보를 전달하고, 더 세련된 대응을 조직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가 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이단이나 사교(邪敎)에 관해, 그리고 기독교 교회에 관해 오랜 고민과 경험을 누적해온 그는 특정 종교 집단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안에서의 갈등과 문제는 무엇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입장을 갖고 그것에 연계돼 있는지를 목격하고, 취재하고, 분석해온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많은 분들을 만납니다. 그렇게 신천지를 취재했고요. 그러면서 이번 사태 이전에도 이런 걸 고민하게 됐습니다. 15~20만 명이나 되는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한국 사회는 그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지? 교회가 도움이 되는 게 있을까? 그곳에 들어가야 할 사회적 비용은 어떤 걸까? 그러던 와중에 이 사태가 터진 거죠.”

 언론학자들은 전문직(profession)의 프리즘을 통해 저널리즘을 분석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놓고 오랜 논쟁을 벌여왔다. 사실 그런 논쟁 속에는 저널리스트를 전문직 반열에 올릴 수 있도록 비판하면서도 옹호하고 독려할 필요가 있다는 속마음이 숨겨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종종 묻히곤 하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여타 직종이나 전문직과는 구별되는 저널리스트의 직업적 전문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동의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취재 활동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의사의 전문성이 진단과 처방에 있고, 학자의 전문성이 연구와 논문에 있듯, 저널리스트의 전문성은 꼼꼼한 현장취재를 통해 이것을 다수에게 납득 가능한 형태로 발화하는 데 있다. 흔히 저널리즘의 위기 돌파 방안으로 거론되었던 전문기자 제도 등은, 독특한 인식론과 윤리론을 결합시켜야만 가능해질 직업적 전문성(professionalism)을 특정 분야의 지식 전문성(specialism)으로 축소시켜버렸다. 기자의 힘은 조직과 출입처라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물고기 잡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만의 취재 파일에서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한국의 기자들 다수가 현장에 가보지도 않은 채 감으로 잡아챈 몇 개의 사실을 엮어 어설픈 훈장질을 하는 데 익숙한 것과는 달리, 켜켜이 쌓인 취재 파일은 언젠가 어디선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줄 수 있다.

언론으로서 중요한 건 이 시점에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남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죠. 위험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에게 중첩됩니다. 가난하고, 사기 당하고, 신흥종교의 유혹에 빠지는데, 바이러스마저 덮친다는 말입니다. 가장 위험한 사람들에게 더 큰 위험이 중첩된다면 이걸 방역만으로, 기존의 안전망만으로 걸러낼 수 있을까도 고민해봐야 하죠. 그다음 사회 한 구석의 위험은 결국 다른 곳, ,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다른 계층, 다른 집단으로 전파됩니다. 그러면 지금은 바이러스가 문제지만, 그다음에 올 경제 위기와 같은 위험을 차단하고 방비할 수 있는 대책은 뭘까, 그곳에 참여할 수 있는 집단은 어디 어디인가? 이런 것들이 이번 신천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과제로 떨어져 있는 거죠.”

 

 


 

 

만나본 자그리고 ‘보고 들은 것을 숨길 수 없는 자'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품고 현장을 취재해 자기만의 취재 파일을 쌓아 올리고, 그와 같은 현상의 이면에 있는 어떤 뿌리를, 이 문제를 계속 유지하고 지탱하는 구조 탐색하며 그에 대한 고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변상욱 기자에게는 어떤 원초적 체험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졌다.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군사정부의 보도 금지 명령을 어기고 스튜디오 문을 걸어 잠근 채 특집 방송을 내보냈던 경험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금 다른 데선 하나도 나가지 않는데, 겨우 하나 만들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보낼지도 모르는데, 이걸 우리가 두렵다고 접어버리면 어디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안 나간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그런 절박함. 만나보면 아는 거거든요. 고문당했던 사람, 고문당하러 끌려간 사람들 부모의 목소리, 그리고 그들을 보고 들은 자라면 뭔가 결단할 수밖에 없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투사로서의 기자상은 여전히 한국 언론의 뿌리를 형성하는 기억이자 지향이다. 솔직히 이 질문을 던지면서, 암흑의 시대를 살았던 지사적 언론인의,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과장돼 보일 수도 있을 영웅담으로 흐를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내심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선, 필경 여러 차례 반복해왔을 엄청난 무게의 증언이라든가 비장한 정의감이 아닌, ‘목격자로서의 거스를 수 없는 양심에 대한 수줍은 고백이 흘러나왔다. 그는 스스로를 영웅적 기록자 혹은 발화자로 묘사하기보다, ‘만나본 자그리고 ‘보고 들은 것을 숨길 수 없는 자'로서 회상했다.

 

제가 입사했던 CBS(군사정부에 의해) 뉴스 기능을 빼앗기면서 프레스카드를 받지 못했어요. (그래도) 여러 명 중 한 명은 기자로 써야 하니까 테스트를 거쳐 (피디로 입사한 동기들 가운데) 저 혼자 기자가 됐지만 관공서를 일체 출입하지 못했죠. 결국 겉돌면서 흔히 얘기하는 핍박받는 사람들, 박해당하는 사람들, 기층민중이라고 부르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만 만나 취재하면서 오늘날의 () 모습이 이뤄진 거죠. 그런 점에서 후배 기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기자가 누굴 만나서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가 결국 기자의 영혼을 구성한다, 공무원을 만나거나 기업 홍보팀장을 만나거나 아니면 자기에게 잘해주고 기삿거리 주는 사람들을 만나 편히 지내면서 자료만 받아쓰는 게 결국 자기 영혼이 되는 거니까 조심해라, 어떤 시간에 어떤 만남을 갖느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죠.”

 

그래서일까, 그에게서는 통상 기자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이상한 권위의식이나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분위기 같은 것이 도통 느껴지지 않는다. 메이저 언론사에서, 각종 출입처를 도는 이른바 로열로드를 타고 나서, 주요 취재부서의 부장과 편집국장을 거쳐 종종 관료나 정치인, 혹은 적어도 거대 기업의 홍보 이사로 영전하기도 하는 눈부신 커리어 사다리를 밟지도 않았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

 

사실 언론을 어느 편에 서서 바라보느냐의 차이가 제일 컸던 거 같아요. 언론이라는 것을 시민사회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과 언론사에 소속돼 바라보는 것은 다르거든요. 저는 시민사회 편에 자주 내려가 있었으니까 시민사회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용이했고, 언론을 이용하려는 관료나 기업인보다는 학자나 사회운동가들 편에서 언론을 바라보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언론이 왜 본령에서 벗어나는지, 언론이 왜 국민이 원하는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는지를 늘 생각했고, 언론이 어느 쪽으로 변해야 하는데 그리로 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만 있는지가 더 잘 보였던 거죠.”

 

어느 웹툰의 대사처럼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는 걸 변상욱 기자는 몸으로 겪었고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 애썼던 듯하다. 그는 평생을 천생 기자의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흔히들 그렇듯 활자를 영상에 대립시키고 신생 매체에 대한 기성 매체의 우위를 어떻게든 확인받고 싶어 하는 다수의 기자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삶의 경로를 보여줬다.

 

언론이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며 세상의 모든 정보를 빨아들여서 거른 다음 내가 생각하기에 국민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시민사회에 뿌려줘야 한다고 보는 게 맞나, 아니면 국민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그 그것을 추려서 당국자와 정치인에게 뿌려주는 게 맞나, 이 방향성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중략) 언론은 국민 그리고 시민사회가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의견을 모아서 논의하는 장이다, 언론사의 행위가 곧 언론은 아니며 기자의 행위가 곧 언론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여기서 차이가 컸던 것 같아요.”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한국프레스센터를 나와 굽히지 않는 펜앞에서 인사를 나눈 그는 트렌치코트를 날리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기자의 상징으로 종종 언급되는 펜과 트렌치코트, 그리고 변상욱. 일부러 설정이라도 한 것처럼, 몹시도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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