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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그 진실을 기록해 바깥세상에 알린 이는 외신기자, 독일 공영방송 ARD의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였다. 학살자가 시민의 머리를 향해 총알을 난사할 때, 그 참상을 알리기는커녕 시민을 폭도로 묘사했던 한국 저널리즘은 자신의 범죄를 때마다 고백하고 두고두고 참회해야 마땅하다.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우리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의 동반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실을 알려면 외신(外信)을 보라는 치욕스러운 조언을 거부해도 좋을 만큼 우리 저널리즘은 내적으로 탄탄해졌을까? 불과 6년 전의 세월호 ‘보도’ 참사 이후로 한국 저널리즘은 자기 사회에 대해 그 어떤 외부의 시선보다도 압도적인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을까? 당장의 코로나19 국면에서 다수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외신을 번역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고 있는 현실은 그저 특정 정치색을 띤 집단이 편의대로 외신을 재단해 확증편향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로 치부될 수 있을까?
막연한 외신 찬양은 변형된 식민주의의 표출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올바른 기록을 여전히 거부하거나, 그저 빨리 ‘세월’이 흘러 기억의 저편으로 잊히기를 바라거나, 심지어 정치적 망언을 슬그머니 밀어 올려 세월호를 폄훼하려는 한국 저널리즘 다수의 태도를 보며, 다시금 우리 바깥의 시선과 의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세월호에 관련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닐 조지(Neil George) 감독을 만났다.
월간 《신문과방송》은 세월호에 관련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닐 조지 감독을 만났다. 닐 조지 감독(우)과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좌)
해답을 찾아나선 긴 시간
영국인인 그는 동아방송예술대 영상제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세월 이후(After the Sewol)>를 2017년에 선보인 후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후속작인 <크로스로드(Crossroads)>를 2018년에 발표해 로스앤젤레스 독립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기도 했다. 왜 그는 세월호 문제에 천착했을까? 그 이유를 물었다.
“저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영상물을 제작하고 감독하는 일을 합니다. 2011년에 한국에 와서 대학 강의를 시작한 이후로 대개는 학술 목적의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됐죠. 때문에 그 재난에 대해 제가 알지 못했던 모든 요소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유족들이나 사회운동가들, 사람들이 가졌던 질문일 뿐 아니라, 저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다큐멘터리 <크로스로드>에는 대단히 사회 구조적인 질문이 담겨있다.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고,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을 넘어, 대단히 차분한 시선으로 그리고 매우 긴 호흡으로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 긴 시간을 들여 세월호 참사를 추적했다.
“첫 다큐멘터리는 2015년 중반부터 제작이 시작됐습니다. 공동 제작자이자 연출자인 제 동료 역시 저와 비슷한 관심을 품고 실제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에 대한 온갖 질문에 대해 답을 찾으려 하고 있었죠. 제가 2016년 초 그의 작업에 합류한 이후 1년에 걸쳐 첫 다큐멘터리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배는 여전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었고, 유족들은 정부의 답변과 조치를 요구하며 광화문이나 안산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제 작업을 지속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 밀어붙여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 했기에 1년이 더 걸렸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2016년에서 2017년에 걸쳐 한국에는 많은 일(역주: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새 정부 탄생 등)이 있었죠.
우리는 목포를 비롯한 여러 곳을 여러 차례 찾아가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그동안 계속해서 새로운 사건이 더해졌죠. 정부도 바뀌었고, 여기 광화문 광장을 점했던 집단의 성격도 시간을 두고 바뀌었습니다. 편집에 들어간 매우 긴 시간과 함께 새로운 정보가 확인되면서 이야기 역시 지속해서 진화해갔습니다. 이미 만들었던 내용의 일부가 편집되고 새로운 일부가 더해졌습니다. (중략) 이번에 못다 한 이야기는 아마도 다음 대선 즈음이면 새로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시점이 되면 (세월호 참사를 통해 이미 시작됐던) 한국의 정치적 변화가 진정한 사회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목격하게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그리고 그에 뒤이은 일련의 무능력과 무책임, 심지어는 언급하기도 싫은 악행으로 인해 유족들은 너무나 깊은 상처를 받았다. 씻기 어려운 죄의식 때문일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몇 번을 멈춰 감정을 추슬렀는지 모른다.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가능한 한 차분한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보는 이 스스로 울컥해지는 감정을 억제하기는 어려웠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관찰자로서의 냉정함이 동시에 필요했을 이 작업, 무척이나 힘들지 않았을까?
“물론이죠. 엄청난 비극이었고, 가슴이 무너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유족들에게 말을 거는 것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절박하게 싸우는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차츰차츰 그들에게 다가가서 진실을 찾아갔고, 규제의 결여 문제, 이와 유사한 사고가 과거에도 발생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됐죠. (중략) 모든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외국인인 우리는 모르고 있던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 등을 다이버들이 말해줄 때, 그리고 그런 사건 뒤로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걸음 한걸음, 일종의 저널리즘적 방법을 사용해서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많이 실체를 확인했고, 비로소 유족들이 왜 광화문에서, 목포에서, 안산에서 그렇게 싸워야 했는지에 대한 답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절절하게 싸운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단지 자식들을 잃었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큰 문제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무능력과 무책임에 대한 부끄러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아이들은 언젠가 우리 가슴팍에 묻을 수밖에 없겠지만, ‘전원 구조’라는 희대의 오보로 그치지 않고, 유족들을 고작해야 정부를 압박해 자식들 핏값이나 톡톡히 우려내려는 파렴치한으로 만들어버렸던 그 숱한 보도를 어찌 묻을 수 있을까. 정부에 대한 분노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기에, 낯선 이방인으로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다가가야 했던 상황에 대해 물었다.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취재를 시작했던 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2년이 흘러버린 시점이기도 했죠. 그래서 우리는 먼저 그분들과 관계를 쌓아가야 했습니다. 필경 일반적인 기자들이라면 빨리빨리 돌아가는 뉴스 생산 구조에서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거예요. 뭐, 유족들이 저희를 신뢰할 정도의 관계를 수립하는 데 긴 시간을 투입할 수 있었다는 그런 ‘사치(luxury)’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청난 분량의 뉴스 취재가 있었지만, 그분들은 더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기자들에 비해 저희에게 더 열린 자세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닐 조지 감독은 시간적 ‘사치’라는 말을 쓰며 겸손을 표했고 당시 한국 기자들이 처했을 구조적 한계에 대해 이해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외부자로서 그리고 실제로 취재에 임했던 사람으로서 좀 더 냉정한 평가를 듣고 싶었다.
“정부에 의해 완벽히 통제돼 있었죠. 당시 한국의 강력한 보수 정부는 주요 방송국을 강력한 통제하에 둘 만큼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보수적인 미디어와 진보적인 미디어가 내보내는 메시지에서 차이가 발견되는 건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두가 무사하다, 모두가 구조됐다는 초기 보도는 심각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배가 바다 한가운데 있고 그로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는데, 모든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전할 수 있다니. 게다가 나중에 제가 유족들을 취재할 때 그분들이 그랬거든요, 언론이 미친 듯이 쫓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해달라고 조르고 심지어 아주 개인적인 정보까지 얻으려 했다고요. 정말 실망스러웠어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피해자와 가족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자각할 수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면, 한발 물러서서 그걸 도울 수 있었어야죠. 어떤 기자는 화장실에 숨어서 유족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했다더군요.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부끄러웠다. 따지고 보면 같은 현장 취재를 하는 다른 기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언급을 삼가고자 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조지 감독의 입에서 ‘실망스럽다(disappointing)’는, 그마저도 최대한 완곡한 단어가 여러 번 쏟아졌다. 부끄러워서, 약간은 배알이 꼬였던 것일까? 약한 구석을 찌르고 싶었다. 그럼 영국에서 2017년에 벌어졌던 ‘후진국형 사건’이랄 수 있는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 화재나 기타의 재난에서 영국 정부와 영국 언론은 많이 달랐던가 물었다.
“그렌펠 타워 화재 비극은 세월호 참사보다 매우 빨리 진행됐고, 당연히 많은 언론이 주목했습니다. 여러 기자가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려 찾아왔지만, 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았습니다. 세월호와 유사점이 있다면 바로 정보 통제일 거예요. (다큐멘터리 안에서도 언급했던) 힐스버러(Hilsborough) 참사를 보세요. 정부가 자신을 잘못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데 27년이 걸렸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 (그리고 언론이) 어느 정도 욕먹을 만할 거예요. 세월호에 관련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총선을 통해 매우 강력한 권력을 얻었잖아요. 그렇다면 그 힘을 강하게 밀어붙여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유족들이 마침내 그들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길 기대해요. (중략) 그렌펠 타워 화재 사건 이후 영국 정부가 변했을까. 아니오. 제 생각에 영국 정부에 놓인 가장 큰 장애는 브렉시트예요. 그렌펠 타워 재난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긴 했지만, 정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죠. 슬프게도 그들은 (더럽혀진) 손을 씻고 지나갔고, 브렉시트가 모든 걸 삼켜버렸습니다.”
세월호 세대의 의미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 당시 외신은 국내 언론보다 나았다고 보는지도 궁금해졌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 상당수의 외신 보도를 인용하고 있기도 하니.
“외신이 한국 언론보다 확실히 더 나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그들은 그저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을 뿐이죠. 당시 한국 언론에는 정부 통제가 강력했잖아요. 당연히도 외국 언론은 그런 영향을 덜 받았죠. 그래서 CNN이나 BBC 등의 국제방송사로부터 나오는 정보는 한국 언론의 것에 비해 덜 폐쇄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국제방송사가 내보낸 영상이라든가 정보의 상당 부분은 한국 언론에 의존하고 있었던 거여서, 특별히 더 나을 것은 없었어요. 해외 언론이 약간 더 정보 수집과 전달에서 개방적이었고, 한국 정부가 말했던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피해자 가족에게 훨씬 더 초점을 맞춰서 그분들에게서 얻은 사실을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정도겠죠.”
그의 다큐멘터리는 세월호 참사의 이면을 다루는 것을 넘어 세월호라는 창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깊게 이해해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도 동의했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시선은 기대 이상으로 깊고 구조적이었고, 호흡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더 이상 물릴 수 없는 사회 변화를 여러 번 강조하면서 그 배후 동력으로 ‘세월호 세대(Sewol generation)’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단순히 나이로 구별된 세대가 아닌, 세월호에 대한 경험과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는 세대 말이다. 그래서 물었다, 공교롭게도 한국어로 ‘세월’은 ‘흘러가는 시간’의 의미가 있는 반면 세대는 그것을 고정해 붙잡아 놓은 것 아니겠냐고, 세월호 세대는 어떤 의미를 가질 것 같으냐고.
“세월호와 같은 비극은 그 충격이 현실화되는 데 시간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5년 혹은 10년의 세월 속에서 사람들은 이 사건을 다시 되돌아볼 거고, 그 참사가 발생했던 시간을 기억할 거고, 거리에서 투쟁하며 정부로 하여금 변화로 이끌리도록 하는 유족들의 염원처럼 한국 사회는 바뀌어 갈 거예요. 저는 한국사 전반에서 이 사건이 거대한 ‘투쟁의 시간’으로 기억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던 그날은 말쑥한 차림의 교수였지만, 다큐멘터리 안에서는 야구 모자를 쓰고 활동적인 옷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모습이었던 닐 조지 감독. 그에게서 현장의 힘과 기록의 힘을 믿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거시적인 시야를 구축해나가는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documentary: 사실을 기록한, 기록과 자료에 의한)’적 저널리스트의 풍모를 보았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련 오보를 낸 CNN의 사례로 보듯,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은 그저 ‘외신’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실을 찾고, 긴 호흡으로 역사와 함께 하는, 기록하는 자의 발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