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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 리뷰: ≪전문가와 강적들≫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0-04-29

 

《전문가와 강적들》 표지 ©오르마

 

 

기자는 전문직일까, 아닐까? 30여 년 신문사 밥을 먹으면서 계속 던져온 질문인데 여전히 명확한 답이 어렵다. 기자가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기자 일을 하면서 발달되는 능력의 하나는 취재원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눈이다. 아무리 높은 자리와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어도 전문성이 없으면 취재원으로서 영양가가 없다. 기자는 전문가를 알아보는 감각을 키우는 직업이다. 그 잣대를 기자 직군에 들이댄다면? 기자를 전문가로 선뜻 인정하기 힘들다. 다른 전문직처럼 자격증이나 진입 문턱의 보호가 없어서가 아니다. 기자의 업무는 뉴스의 가치를 판단하고 취재원을 만나 독자를 대신해 물어보고 그 내용을 간명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상당한 수련을 거쳐야 능숙해진다는 점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매끄럽게 수행하는 기자 직군이 전문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자 업무에 필요한 능력과 그 수행의 난이도 때문이 아니라 기자 직군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과연 전문성을 지녔는지 생각하게 된다. 부실한 기사, 왜곡되고 편향된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정확하고도 날카로운 비판을 이제는 수시로 만난다. 내가 해당 기사의 필자가 아니라고 해서 면책되는 게 아니다. 기사를 읽다가 분노하고 부끄럽고 결국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독자로, 또 언론계 종사자로 피할 수 없다. 신뢰도 바닥의 한국 언론 종사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직무 수행에 대해 대중의 요구와 기대 수준에서 겸허하게 성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기자들이 전문가들을 취재하면서 내가 수행하는 직무는 전문적인가라는 질문을 만나왔다면, 이제는 기자를 향한 안팎의 시선이 달라진 상황이다. 전문직은커녕 사회에서 가장 비하되고 비판받는 직종이 돼 모멸스러운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전문 지식 외면하는 현대사회

 

톰 니콜스(Thomas Nichols)의 저서 전문가와 강적들은 이런 고민을 하는 언론인들에게 많은 질문을 만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조지타운대와 다트머스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를 거쳐 현재 네이벌워대(Naval War College) 교수로 재직 중인 국제관계 전문가이자 논객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2017년 발간된 책의 원제는 전문지식의 죽음: 확립된 지식을 공격하는 세력과 그 문제(The Death of expertise: the campaign against established knowledge and why it matters)이다. 같은 해 국내에 번역되면서 전문가와 강적들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나도 너만큼 알아라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오늘날 전문가를 바라보는 단적인 표현이다.

 

기사 댓글에서 흔하게 직면하는 문구는 나도 아는 것도 모르고 썼냐. 기자질 하기 참 쉽다는 유의 비난이다. 오늘날 기자들은 과거와 달리 정보 이용과 취재원 만남에서 배타적 접근권이나 우선권이 없는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게다가 부실하고 오류 있는 기사,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기사엔 어김없이 악플이 붙어 소셜미디어에서 지적되고 회람된다. 독자의 지적이 적확하지 않을뿐더러 기사를 읽지 않고 퍼부은 감정적 비난인 경우도 많다. 미디어 이용자들도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달라진 정보환경을 살고 있는 까닭이다. 황당한 주장도 인터넷에선 손쉽게 근거를 장만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사실이 자신의 가치와 충돌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말했다. 정보사회에서 가짜뉴스, 허위·왜곡 정보로 인한 피해는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전문가와 강적들은 기자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만인이 정보의 바다에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자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기자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더미를 던진다. 사실 기자만 위태로워진 것은 아니다. 모든 전문가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자격증의 문턱과 전문지식에 대한 배타적 접근 및 해석 권한을 기반으로 전문가의 권위와 지위가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위태롭다. 인터넷의 정보 민주화는 누구나 전문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전문성을 축적한 덕후가 즐비한 세상에서 전문직의 권위와 신뢰는 흔들리고 있다. 책은 인터넷 환경에서 전문지식의 달라진 처지를 세세하게 들추면서 허위·왜곡 정보를 판별하는 능력과 전문가의 역할을 다룬다. 이 책의 가치는 지식과 정보가 가장 중요한 권력이 되는 정보사회에서 전문적 지식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기자는 무한정보 환경에서 핵심이 되는 정보 판별 능력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는 데 있다.

 

나도 너만큼 알아라며 전문 지식을 외면하는 현상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인터넷을 탓하지만, 저자는 이를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라고 본다. 확립된 지식을 공격하는 현상엔 오랜 역사가 있고 책, 라디오, 텔레비전 등 다양한 매체에 의해 반복된 동일한 문제다. 본질적으로는 문명 발달과 교육 확대가 불러온 결과다. 기자와 학자를 비롯한 소수의 전문가들이 전유해온 지식의 장벽이 사라지고 접근권이 확대되면서 엘리트 전문가들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일반 시민들 간의 구분도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결과 지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지적 수준이 동등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확산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고 말한다. 교육의 애초 의도와 정반대되는 상황이다. “교육은 아무리 똑똑하거나 재주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그를 일평생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목표로 하는데, 우리는 약간의 배움이 교육의 시작이 아니라 종착점이 돼버린 사회에 살게 됐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간이 늘어났다. 복잡성의 증가는 시민들에게는 무력감과 분노를 불러왔다. 자신들의 운명이 소수의 전문가 집단에 의해 좌우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접근권과 평등이 확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전문 집단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된 현실이 전문가에 적대감을 불러온 배경이다. 기술과 사회는 발전했지만 새로운 정보를 배우려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은 추가되지 않았다. 사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전문가 집단과 일반 시민 사이의 지적 능력의 격차가 확대되는 이유다. 저자는 확립된 지식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그러한 지식에 대한 적대감의 출현이 현대 사회 공론장의 위험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관해서건 모든 의견이 똑같이 타당하다고 우기면서 전문가의 견해나 확립된 지식을 서슴없이 자신의 의견으로 대체하려 한다.” 근래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중의 왜곡된 의견이 생기는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

 

투명성과 경쟁을 통해 전문성 높여야

 

전 세계를 초유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염병) 상황으로 몰고 간 코로나19 관련 대응에서도 정보 유통과 전문성의 역할이 주목받았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의 불안은 폭발적 정보 이용으로 나타났는데, 허위·왜곡 정보와 의도적인 가짜뉴스도 많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해 물리적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허위정보로 인한 정보전염병의 위험인 인포데믹을 경고해야 할 수준이었다.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국제사회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은 이유에는 전문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확산 초기부터 적극적 검사, 추적, 치료, 투명성을 앞세운 한국 방역 체계가 주목받은 배경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있었다. 확진자와 불안감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그의 브리핑은 막힘없었고 상세하고 객관적이었다. 낙관도 비관도 거리를 둔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가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는 신뢰가 전달됐다. 정치권과 언론의 잡음도 그의 냉정한 전문성에 묻혔다. 온 국민이 전문가의 입에 집중한 것은 2002 월드컵 히딩크 감독 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여러 국외 언론들이 정은경 리더십을 심층적으로 보도했다. 그에 비해 전문가를 취재해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은 기대치 밖이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한 코로나19 대응 설문조사에서 질병관리본부 등 전문집단 신뢰도는 지속 상승한 반면, 언론 신뢰도는 지속 하락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시민들은 사회적 신뢰를 위해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미디어의 과장·허위·왜곡 보도를 지목했다.

   

언론의 생명인 신뢰도는 전문성을 높이는 게 첩경이다. 그런데 정보사회에서 전문성과 전문가 지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는 더 어려워졌다. 언론이 처한 딜레마적 현실이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전문화하는데 전문화라는 게 본질적으로 배제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특정 분야의 지식을 공부하는데 요구되는 시간과 역량은 갈수록 늘어난다. 이 때문에 인터넷은 정보의 장벽을 없앴음에도 실제로 전문가는 다른 분야에 능통해지기 더 어려워졌고, 국외자가 전문 분야에 개입할 문턱은 더 높아졌다고 저자는 본다.

 

책은 여섯 개의 항목에서 각각 가짜 전문가가 판치는 세상, 확증편향에 빠지는 인지구조, 고객 위주의 교육, 검색의 영향, 언론과 전문성, 전문가의 오류 등을 점검한다. 그중에서 별도의 항목으로 다뤄지는 언론의 전문성 추락 배경은 귀를 기울이게 한다. 지난날 언론은 특수한 기술을 요하고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업무였으나 오늘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환경에서는 시장의 강한 압박을 받게 된다. 독자의 반응이 직접적이고 그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전문성을 강화하는 취재와 기사가 속보와 소셜미디어 바이럴에 밀려나는 상황이다. 언론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와 노하우가 축적돼 전수되고 업계의 준칙으로 확립되는 게 아니라 시장의 영향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질 나쁜 보도가 늘어나는 현실을 지적한다.

 

저자는 언론의 신뢰를 높이고 사회가 전문성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길을 제시한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무지를 인정하는 길이다. 위험한 것은 지식의 결핍 자체가 아니라, 지식의 결핍에 대한 오만한 태도다. 오늘날의 인터넷 환경은 모든 사람을 정보의 바다로 안내했지만, 자신의 무지에 대한 가장 오만한 태도도 동시에 제공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일반인들도 자신들만의 정밀한 논리로 전문가의 주장을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도구는 회의주의다. 구체적으로는 “1. 전문가 의견이 모두 일치한다면 정반대 의견은 맞다고 볼 수 없다. 2. 전문가들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면 어떤 의견에 대해서도 맞다는 확신을 가져선 안 된다. 3. 그럴싸하게 들려도 전문가들이 모두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말하면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방법이다.

 

저자는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관계는 신뢰에 기반을 두는데 신뢰가 무너지면 전문가와 일반인은 서로 적대적인 파벌이 된다며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관계 붕괴는 민주주의 기능을 방해한다고 본다. 한국 언론에 대한 뼈아픈 지적으로 들린다. 전문가에 대한 적대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회학자이자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인 필립 테틀록(Philip E. Tetlock) 의 제안을 추천한다. 전문가들이 무거운 책임을 지고 일을 하게 하는 방법이자, 구체적으로 투명성과 경쟁을 늘리는 방법이다. 인터넷 환경에서 많은 언론사가 오보와 부실한 기사라는 지적을 받으면 소리도 없이 기사를 삭제하고 수정해 흔적을 없애버리는 경우가 일반적인 게 한국 언론이다. 이는 언론 공멸의 길이다. 오보도 기록으로 남기는 게 투명성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권위 있는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기사가 수정되면 그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해 투명성과 신뢰를 제공한다. 신뢰를 잃고 있는 한국 저널리즘이 살아갈 길 또한 투명성과 경쟁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는 길이라는 결론으로 이끌어주는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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