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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 리뷰: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0-07-03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 표지 ©이학사

 

조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39년 3월 5일 자에 하윤명이란 남자가 유괴범으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 자는 아내와 조수를 대동하고 1932년부터 남도를 돌아다니며 가난한 농부의 딸들을 경성에 취직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모집했다. 모집된 여자들은 실은 베이징, 톈진, 상하이 등의 접객업자에게 팔려갔다. 매일신보의 후속 기사에 따르면, 이 자가 취업 사기로 유인하거나 유괴한 여자는 150여 명에 달했다.
 

하윤명은 원래 대전형무소에서 간수로 일하다가 황해도 사리원에서 요릿집을 운영한 전력이 있다. 그는 당사자, 그의 부모, 친권자, 또는 후견인에게 20~30엔을 지불하고 모집한 여성을 접객업자에게 150엔에서 최고 1,000엔에 팔았다고 한다. 빈곤에 몰린 피해 여성과 그의 가족은 하윤명 같은 인신매매범이 내민 백지위임장에 도장을 찍었다. 

 

하윤명 사건으로 식민지의 경찰은 유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유곽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유사한 인신매매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다. 경찰이 소환장을 발부하기 시작하자, 경성의 유곽업자는 이미 소개업자 등에게 지불한 전차금을 떼이지 않으려고 여성들을 ‘북지’ 또는 ‘만주’로 다시 팔아넘겼다. 이렇게 팔려 간 여성 중에 조학남이 있는데, 그는 경성부 유명루라는 유곽에서 산둥성 다징의 군위안소에 500원에 팔려갔다. 

 

근로정신대에서 위안부로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일제는 전선을 확대하면서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1939년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국민징용령’을 시행했다. 제국령은 1943년 ‘학도지원병령’을 거쳐 1944년 ‘징병령’으로 강화됐는데, 이 과정은 ‘모집’에서 ‘관의 알선’으로, 그리고 ‘징용’으로 바뀐 동원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렇게 동원된 조선의 청년들이 35만 내지 40만에 달했다고 한다. 

 

전쟁 마지막까지 여성은 ‘징용’의 대상이 아니었다. 명목적으로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되기 전에 이미 조선총독부는 “관의 지도 주선” 방식을 따라 젊은 여성을 동원하고 있었다. 식민지 정부는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원조선연맹’이 결성돼 식민지 국민을 동원할 수 있는 하부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조건에서 군위안부 ‘모집’은 관헌의 개입, 징모업자의 작업, 자발적 위문단 응모, 그리고 여자근로정신대 ‘지원’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경우가 여자근로정신대에 ‘지원’한 여성들의 경우인데, 예를 들어 강덕경은 힘든 노동에 지쳐, 강제로 저축한 임금을 포기하고 도망쳤는데, 헌병에게 체포된 후 군위안부로 갔다. 김은진은 패전 직전에 공습으로 공장이 폐쇄돼 더 이상 정신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경우다. 그는 아오모리현(県)에 있다가 군위안부로 보내졌다. 박순이는 국민학교에서 담임의 말을 듣고 근로정신대에 자원했 다. 그의 국민학교 학적부에는 ‘여자정신대’라고 기록이 남아있다. 도야마에서 보름 동안 훈련을 받은 박순이는 공장에 배치되지 않고 군위안소로 갔다. 

 

자료와 주장  

 

윤명숙의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는 내용이나 분량으로 보건대 마음 편하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쪽마다 저자의 고민과 노력이 꼼꼼하게 밴 알찬 책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내 딴에는 조선인 ‘위안부’의 징모 상황서술에서 혹시나 꼬투리가 잡힐까 봐 매 장 지나치게 끈질기다고 느껴질 만큼, 핵심을 짚고 또 짚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썼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명료한 문체로 쓰이고 번역된 책이라 읽기에 수월하다. 쟁점을 따져들어 가는 문제의식, 방대한 자료로 뒷받침한 논거들, 그리고 갈등하는 해석과 시각을 제시하는 시야가 돋보인다. 이른바 ‘군위안부’ 또는 ‘전시 성노예’에 대한 논쟁을 둘러싼 쟁점의 갈래와 자료의 범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주요 쟁점 중 하나가 ‘위안부’를 강제로 모집했느냐 여부다. 윤명숙은 강제로 끌려 갔다고 증언한 피해자의 증언도 담았지만, 동시에 군의 관여가 분명한 방식으로 모집업자가 ‘취업 사기’를 통해 젊은 여성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사료와 문헌으로 정리해서 제시한다. 취업 사기가 이뤄진 전형적 방식 중 하나가 앞서 제시한 하윤명의 사기 행각이다. 이 책은 또한 식민지 정부가 여자근로정신대를 체계적으로 모집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렇게 모집한 여성 중 일부가 결국 군위안소에 떨어진 경우가 엄연하다는 것을 밝힌다. 

 

앞서 제시한 강덕경과 박순이의 사례가 그것이다.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 또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읽고 혼란을 겪었거나, 최근 전개하는 이용수와 정의기억연대 사태로 불거진 논쟁에 관심을 갖게 된 독자들은 일단 윤명숙의 이 책을 찾아서 읽어 보기를 권한다. 우리는 과거 자행된 제국의 범죄가 엄연하다고 믿건만, 그 엄연한 역사가 남긴 자취는 뜻밖에 명료하지 않다는 데 놀란다. 그런데 일본 제국주의는 군위안소 제도의 치명적 중요성을 알고서 관련 행위를 은밀하게 수행하면서 동시에 관련 자료를 주의 깊게 은폐한 정황을 남겼다. 이 책은 그런 정황을 추적해 역사적 사실을 복원해서 하나의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 낸다.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는 저자가 히토쓰바시(一橋)대에서 받은 박사논문이다. 원래 아카시서점에서 일본어로 출판한 책을 우리글로 번역했다. 박사학위 시점까지 출간된 일본군 위안소제도 관련 공식 문서 자료들, 한국에서 출간한 피해자 여성들의 증언집, 중국과 북한 등에서 출간한 일본군 위안소제도 관련 보고서, 그리고 당대 언론의 보도 등에서 수집한 자료들이 꼼꼼하게 잘 정리했다. 저자가 직접 코딩해서 분류한 피해자 증언을 요약한 표만 보아도 집요한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 문헌과 문서 및 증언 자료집을 인용한 각주만 봐도 수집 가능한 증거의 범위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소 제도

 

윤명숙은 군위안소가 제국의 군대가 정책적으로 운영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이 제도의 실체는 성폭력이다. 강제로 여자를 구속한 상태에서 강간을 행한 것이다. 이 성폭력은 (1)성병 예방과 주둔지 치안 유지를 위해서 군이 군위안소를 설치를 지시·허가·확충했으며, (2)피해자의 이송에 정부와 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협력·통제 감독했으며, (3)군위안소 운영을 일본군이 통제하고 감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윤명숙은 또한 군위안소에 조선인 여자를 모집하는 과정에 조선인 경영자와 징모업자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 일본군이 기획·감독하고, 통제한 위안소제도 자체의 성폭력적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식민지 정책 하에서 이뤄진 정책에 공모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정책 주체의 책임을 경감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일본의 우익세력은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소제도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예를 들어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동경대 교수는 일본 교과서 논쟁 과정에서 군위안부 기술 내용을 비판하면서 그 내용이 ‘자학 사관’에 근거해서 역사적 사실을 현저하게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왜곡된 역사적 사실이란 구체적으로 (1)위안부들은 업자를 따라 전쟁지역으로 일하러 갔던 매춘부였으며, (2)전쟁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군이 위안부 수송과 보호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안소를 경영한 것은 아니며, (3)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영훈 등 한국의 일부 학자들도 이 요점을 따른다.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는 일본 우익세력의 부정에 대한 종합적 응답을 제시한다. 부정론자의 개별 주장에 반박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일본군이 무슨 이유로 군위안소 제도를 운영하고 관리했으며, 어떤 과정으로 제도를 유지했고, 결국 이 모든 운영과 관리가 동원된 여성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했는지 종합적으로 밝히고 있다. 특히 저자가 피해자 증언의 내용을 분석해서 표로 정리해 놓은 결과가 압도적이다. 

 

과거사를 복원하는 일 중에 쉬운 게 없다. 폭력의 사실을 파악하는 일, 파악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 가능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일, 그리고 그렇게 재현한 역사에 대한 이해가 타당함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대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결국 한두 개의 돌출한 문서 자료로 역사적 해석을 뒷받침했다고 말하기 어렵고, 한두 명의 증언으로 결정적 반증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흔히 그렇게 수집한 자료와 증언은 반대편은 물론 동료가 수집한 새로운 자료와 증언과 다시 충돌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이라면 남길 수밖에 없는 무수한 물리적 흔적들과 의미적 자취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서로 정합한 명제의 집합으로 종합해서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 윤명숙의 책이야말로 이 작업을 수행한 값진 시도 중 하나다.

 

국제적 연구의 연결망  


한 연구 결과가 역사적 사실을 확증할 수는 없다. 600여 쪽에 달하는 윤명숙의 책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러 연구자의 여러 연구 결과가 모여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하나의 뚜렷한 해석적 흐름을 이루어 낼 수는 있다. 이 책도 그런 해석적 흐름에 속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이 모든 결과가 홀로 잘해서 이룩한 성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의 성과는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가 1992년에 일본에서 출판한 《종군위안부자료집》, 양소전 등이 1987년 중국 랴오닝에서 출판한 《조선인반일독립운동자료총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993년부터 서울에서 출판한 피해자 증언집, 그리고 새로운 사료를 발굴해서 출판한 선배 연구자들의 선행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일본, 중국의 학자들 서로 격려하듯 자료집을 내고, 연구 논문을 출판하고, 자료와 논문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종합함으로써, 일본 우익세력과 그 추종자의 대안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제국주의의 폭력적 범죄를 드러낼 수 있었다. 

 

이용수와 정의기억연대 사태가 장기화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이 시점에 국제 연구자 연결망의 존재와 성과가 함의하는 바가 크다. 제국주의 시대의 폭력을 입증하고 책임을 규명하는 일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 연구와 실천의 연대를 이어나가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누구도 역사를 홀로 살 수 없듯이, 역사의 자취를 홀로 감당할 수 없고, 역사에 대한 해석도 독점할 수 없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자료를 추적하고, 분석을 수행하고, 해석적 대안을 만들어 가면서, 동시에 서로 검토하고 비판하는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런 흐름을 이어나가는 일은 곧 역사 그 자체를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 속에서 누구도 운동을 독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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