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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에 배꼽이 있는가?
우리가 에스토니아라 부르는 민족국가는 과거에 이름도 없었다고 한다. 그 땅에 독일, 스웨덴, 러시아 사람들과 다른 원주민이 분명 살고 있었지만, 그들을 부르는 명칭도 분명치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에스토니아 타르투(Tartu)에 있는 박물관에 가보면, 무려 10만 점이 넘는 민족문화의 유물이 전시돼 있는데, 이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유산이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19세기에 자기 민족을 무에서(ex nihilo) 창조해냈다.
이 놀라운 주장은 위대한 어니스트 겔너(Ernst Gellner)가 토론 중에 남긴 말이다. 그는 1995년 심장마비로 급서하기 직전, 영국 워릭대에서 제자인 앤서니 스미스(Anthony Smith)와 민족의 기원에 대해 토론했다. 토론 중에 ‘민족에 배꼽이 있는가’는 논쟁적인 질문이 나왔는데, 그는 배꼽 자체가 만들어진 것이라 응답했다. 그는 전근대적인 수많은 농업 사회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민족국가로 남은 현실을 환기하며, 민족은 산업화를 통해서 지배 계층으로 등장한 세력이 문해력을 갖춘 인민을 동원해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에스토니아 민족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겔너는 민족이 근대 민족주의 운동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근대주의자다.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 톰 네언(Tom Nairn) 등을 포함한 근대주의는 이른바 ‘원생주의(primordialism)’라 알려진 오래된 민족주의론을 강타하면서 1970년대 이 후 주류 민족주의 이론으로 등장했다. 원생주의란 민족은 가족에서 확대한 것이기에 그것의 기원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고 보는 입장을 말한다.
원생주의는 상식적인 민족론이다. 민족 구성원은 공통의 언어·관습과 같은 문화적 기반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조국의 흙, 계절, 언어 등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강한 유대감을 함께 느낀다. 왜냐하면 구성원들이 일종의 친족 관계를 갖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주의자들은 이런 혈통에 기초한 민족이라는 생각 자체가 허구에 가까운 근대의 창작물이라고 말한다. 민족이 친족에서 출발했다는 관념을 만든 세력이 있었는데, 민족주의 엘리트가 그 주인공이었고, 민족의 신화, 전통, 역사 등도 실은 그들이 정치적 주권을 주장하기 위해 인민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냈다고 한다.
상징이라는 배꼽
겔너의 제자 앤서니 스미스는 근대주의 관점이 오래된 원생주의와 영존주의 민족이론의 한계를 폭로한 것에 동의하지만, 동시에 근대주의가 민족의 역사성과 현실의 영향력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다. 그는 《족류: 상징주의와 민족주의》(2009/2016, 김인중 옮김)에서, 민족이란 결국 국가 엘리트가 만들어 낸 일종의 ‘담론구성체’라는 시각에 일단 찬성한다. 그러나 민족의 구성원인 보통 사람들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렬한 애착심을 어떻게든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미스는 설명의 열쇠로 종족 공동체의 상징물을 제시한다. 신화, 전통, 기억, 가치 등과 같은 종족적 상징물이 민족의 배꼽이 된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근대 엘리트가 종족의 상징물을 활용하지 않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민족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민족 구성원이 운명을 함께하는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기 위해서는 ‘조상 신화’, ‘선민사상’, ‘신성한 고토’, ‘지나간 황금시대’ 등과 같은 구체적인 상징적 자원이 필요하다.
상징적 자원이 과연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현세대의 민족 구성원이 과거 이 땅에 살던 사람들과 과연 핏줄로 연결됐는지도 마찬가지다. 조상과 혈통적 연결을 암시하는 이야기가 있거나 후대의 기록물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조건에서 민족 구성원은 혈연에 기초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고, 일단 이것이 성립하면 민족의 정치적 주권에 대한 주장은 자연히 따라온다.
스미스류의 상징주의 민족주의론이 대두하는 이유는 원생주의와 영존주의는 물론 근대주의도 놓치고 있는 민족 간 갈등을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원생주의자들은 인접한 민족들 간의 갈등이란 오래된 것이며 따라서 피할 수 없는 어떤 숙명적인 대립으로 본다. 반면 근대주의자들은 어디까지나 민족의 형성에 주목하기 때문에, 민족 내외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란 민족주의적 엘리트가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 낸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이주민이 초래하는 집합적 갈등, 외부 집단에 대한 증오감, 민족 간 대립은 일시적이지도 않고, 허구적이지도 않다. 민족적 갈등은 민족 국가 외부에서는 물론 내부적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양상으로 변모하면서 등장하는데, 이는 결국 민족 정체성에 대한 해석과 재해석이 갈등에 기여하는 양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민족은 언제 누가 만들었나
우리 민족을 빼고 민족주의를 논의하기 어렵다. 국제적으로 ‘코리안’이라 불리지만, 정작 스스로 한, 고려, 조선 등 혼란스럽게 자신을 지칭하는 우리 민족 말이다. 세계의 어느 누구도 우리 민족의 독립성과 고유함을 의심하지 않는데, 아자 가트(Azar Gat)는 《민족》이란 저서에서 한 발 더 나가 우리 민족의 역사가 근대주의 민족론을 반박하는 결정적 사례라고 주장한다. 이 민족은 주변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근 1,000년 이상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했다. 이는 정치적 주권을 주장하고 또한 실현한 종족이 근대 이전에도 역사적으로 엄연히 존재한 증거가 된다.
가트의 《민족》은 ‘정치적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긴 역사와 깊은 뿌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은 민족주의가 재발흥하는 듯한 21세기에 민족의 문제를 정치적 종족성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한다. 가트는 민족을 종족집단(ethnos)과 떼어서 볼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종족성이란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친족 감정과 문화를 공유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그의 전제는 민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혈통을 공유한다는 생각이 없더라도 친족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관찰에 기초한 것이며, 친족 감정에 근거한 응집력이 결국 정치적 권력으로 전화할 수 있다는 인식을 따른 것이다.
《민족》에서 가트가 제시한 주요 개념들을 도식적이나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일단 친족 의식과 공통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 종족이 되는데, 이런 종족이 집단적 정체성, 역사적 서사, 운명 공동체로서 인식 등을 갖추면 인민(people)이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정치적 주권을 주장하고 행사하는 사람들을 민족이라고 한다. 정치적 주권을 형성한 민족은 그 자체가 민족국가다. 논리적으로 하나의 민족국가 내에 서로 다른 종족적 정체성을 지닌 복수의 인민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보통 민족국가 내에 문화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는 다수 집단인 지배인민(Staatsvolk)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언어와 종교 등에서 문화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인민이 있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가트에게 민족이란 종족적 친족 인식과 공통 문화를 기초로 하고, 집단적 정체성과 운명 인식을 갖춘 인민을 구성요소로 하며, 정치적인 주권을 주장하는 공동체다.
《민족》에 따르면, 정치적 주권의 현실태인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거나, 정치적 자결과 자치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인민이라고 해도 민족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개념 규정이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 주권을 주장하는 인민들의 투쟁이 현대 사회의 민족적 갈등의 주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가트는 일관되게 주권을 주장하는 정치적 종족성이 민족의 요체라고 보는데, 이는 그가 민족국가 내의 갈등이나 민족국가 간의 갈등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채택한 관점이다.
가트는 근대주의적 관점만으로는 민족의 구성원들이 종족적 정체성과 운명의 공동체라는 연대감이 어떻게 현실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예컨대, 근대 이전의 공동체 중에는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때, 지배층뿐만 아니라 하층민도 외적에 대한 증오심으로 맞서 싸우는 등 운명공동체 인식을 보였는데, 이런 인식과 그에 기초한 현실적인 힘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가트의 논의는 민족을 단순한 엘리트의 도구로 보는 관점이나 근대 시민계급의 민족주의 운동의 부산물로 보는 관점을 떠난다. 특히 산업화와 근대화의 주체인 시민계층이 인민주권을 주장하면서 일반 주민을 동원해서 정치적으로 민족을 건설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일은 사태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라 비판한다.
시민계급이 주도적으로 평등한 시민권과 근대 인민주권 사상을 주창하고, 그 이념을 기반으로 민족주의를 설파한 일은 분명 역사적 사실이다. 칼 도이치(Karl Deutsch)나 베네딕트 앤더슨 등이 잘 살폈듯이, 이 과정에 언론과 출판 매체가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전근 대부터 존재했던 종족의 집단적 정체성과 공동운명 의식이 종족의 수준에서 이미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산업화와 그에 따른 도시화, 교통과 소통 매체의 발전 등은 근대 민족을 형성한 독립변수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종족성이 시민적 민족주의를 낳는데 기여한 일종의 조절 변수로 작동했다.
21세기 민족문제의 재부상
가트의 《민족》을 읽다 보면, 오래된 원생주의적 논의를 진화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제시한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영존주의 관점과 유사하게 종족과 민족에 대한 역사적 기록에 근거해서 민족태의 유래를 서술한 것도 보인다. 또한 종족에 고유한 상징들, 즉 신화, 전통, 기억, 가치 등이 개별 종족의 역사적 고비마다 어떻게 활용됐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민족》이란 책 전체가 일종의 근대주의 민족 이론에 대한 총반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가트의 노력을 학술적 주도권을 얻기 위한 현학적 노력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수많은 종족들이 각자 겪은 우여곡절이 다르지만 오래된 종족성과 새로운 민족태를 형성해서 정치적으로 주권을 갖춘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인민의 민족의식은 유럽과 아시아가 다르고, 유럽이라고 해도 시민 민족주의가 일찍이 성립한 서구와 종교, 왕조, 방언의 분열로 종족적 대결이 심했던 동구가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오래된 민족들은 정치적 주권을 주장하는 근대적 민족의식을 갖추지 않은 경우라도,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역사적으로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춰, 결국 정치적 주권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 요점은 현대 민족주의를 둘러싼 갈등적 현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공통의 종족적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외부적 간섭 때문에 근대적 제도를 갖추어서 오히려 위험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부족과 종족은 있어도 민족의 형성이 미흡하다. 코트디부아르, 토고, 가나, 케냐, 차드 등에서는 국가 제도가 약한 경우인데, 이렇듯 다종족 다부족 대립이 있는 조건에서 허약한 민주정이 들어설 경우, 오히려 대학살을 포함한 정치적 폭력이 만연하기도 한다. 민족의 발전이 미약한 조건에서 민주적 제도를 도입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경우다. 이는 에이미 추아(Amy Chua)가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관찰한 바와 일치하기도 한다.
알렉산더 야콥슨(Alexander Yakobson)은 《민족》에서 민족국가의 헌법적 정체성을 탐구한 장을 따로 제시했는데, 그의 논의도 민족국가 내부 갈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프랑스와 같은 시민 민족주의 국가는 문화적 동화정책을 일관되게 펼친다. 소수자 집단에게 정치적 평등권을 보장하고, 헌법적 권리보장의 관점에서 포용하는 정책을 채택한다. 그러나 동화정책을 펼치는 민족국가가 문화적으로 중립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배인민, 즉 ‘슈타츠폴크’(Staatsvolk)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내려진 정책적 결정은 소수자 집단에게 열패감을 남길 수 있다. 반면, 캐나다와 같이 문화 다원주의를 채택한 국가도 있다. 이 경우 소수자 집단은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 다원주의에 오히려 저항하기도 한다. 이런 저항이 시민 민족주의 내부로부터 깊은 파열을 만들어 낸다.
오래된 민족과 민족주의는 아직도 갈등과 투쟁의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뒤늦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인민들은 민족주의라는 원유를 찾아 채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민족국가 내부의 투쟁과 국가 간 갈등의 불길은 잦아들 날이 없다. 우리로 말하자면, 남북으로 분단돼 민족적 갈등을 겪고 있는 당사자이며, 주변의 강대국들도 민족주의 열정이라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나라들이다. 21세기 새롭게 점화하는 민족 내 분열과 민족 간 갈등에 심도 있게 접근하기를 원하는 독자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종합적 논의를 제공하는 아자 가트의 《민족》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기를 권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