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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 - 이정환·이주연 오마이뉴스 독립편집부 기자
기획연재 | 등록일 : 2020-12-07

뉴욕타임스가 2012년에 온라인으로 출간한 존 브랜치(John Branch)의 기사 <강설(Snow Fall)>이 던진 파장은 무척 컸다. 높은 수준의 미학적 완성도 속에 오롯이 담겨낸 기사의 충실성. 탁월한 신문 저널리즘이 온라인으로 옮겨지면 이런 것도 가능해지는구나, 라고 많은 이들이 탄복을 금치 못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등장으로 인해 비로소 체감되기 시작했던 디지털 충격이, 그 기사의 부제에 쓰였던 표현처럼, 가히 ‘산사태(avalanche)’같이 쏟아져 내릴 때, 이 기사를 통해 누군가는 (새로 부상하는 저널리즘의) 희망을 보았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무너지는 옛 저널리즘의 한계 속에서) 절망을 느끼기도 했을 테다.

 

오마이뉴스 독립편집부가 이번에 펴낸 특집기획 <교제살인> 시리즈를 접하면서 오랜만에 뉴욕타임스의 <강설>에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강설>이 일으킨 큰 반향과 함께 이른바 ‘멀티미디어 피처 기사’ 장르가 고품질 온라인 기사의 벤치마크로 세워진 이후 다양한 후속 실험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2019년 11월에 경향신문이 선보인 특별기획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를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을

만하다. 오마이뉴스의 이번 <교제살인> 시리즈는 전편을 양방향 콘텐츠로 출시하면서 모바일과 PC에 모두 잘 어울리는 유려한 편집, 그리고 특히 웹툰 스타일의 역동적 스토리텔링과 사실의 토대를 이루는 판결문의 건조함이 묘한 대비 효과를 이루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독립편집부’가 ‘반독립’으로 길어 올린 성과


오마이뉴스가 한국의 온라인 저널리즘을 태동시킨 주역이라고는 하지만, 주류 언론도 시쳇말로 ‘출입처 뺑뺑이’를 돌리고 은근슬쩍 ‘어뷰징’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이 현실인 지금 조건에서, 상근 인력이 적고 투자 역량도 크지 않은 언론사가 이 정도의 기사를 만들어낼 여력이 있었을까? 이 시리즈를 담당한 독립편집부의 이정환 기자와 이주연 기자를 만나 물었다.

 

이정환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도움이 컸죠. 한국언론진흥재단 기획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디지털 인터랙티브 업체에 외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셈이니까요.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고, 회사 안에 있는 서비스국의 도움, 인포그래픽을 담당하시는 분 등 여러 분이 같이 협업을 해줘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주연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원래는 기금 지원을 받아서 영국 취재를 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영국을 안 가게 되니까 예산이 생각보다 넉넉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일러스트에도 굉장히 저희 나름대로 힘을 썼고 디지털 스토리텔링에도 힘을 썼고. (…) 코로나19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를 누렸다고나 할까요?” (웃음)

 

확실히 좋은 저널리즘에는 넉넉한 투자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돈, 인력, 시간. 이 세 가지의 충분한 결합 없이 막연히 ‘기자 정신’에 호소해 ‘고품질 저널리즘’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변하는 건 탁상공론이거나 무책임한 억지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도움으로 ‘돈’의 상당 부분을 끌어올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력과 시간을 내는 것까지 자동적으로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었을 게다.

 

이주연 “독립편집부라는 별개 부서로 빠져나와서 이런 것에 집중해보라고 했던 회사의 배려와 지원이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죠.”

 

이정환 “해보고 싶다고 (윗선에) 말씀을 드렸고요, 3년을 보장받았어요. 지금 2년이 지나간 상태인데, 한 1년 정도는 정말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죠. 하고 싶었던 것도 많고 욕심도 많아서, 모든 언론이 받아쓰는 단독, 새로운 팩트, 그쪽으로 집중했죠. 그런데 엎어지고 또 엎어지고 하다가 (…) 올해 초 들어서, ‘그러지 말고 우리가 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라며 방향을 틀었고 (…) 이 아이템을 잡아서 쭉 준비를 하게 됐죠.”

 

 

표창원 전 의원을 만나고 있는 이주연 기자 <출처 – 필자 제공> 

 

 

일상적인 취재 보도와는 다른 목적과 작동 방식을 지닌 일종의 ‘별동대’ 같은 3년 시한의 조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중 첫 1년을 시행착오를 겪으며 흘려보냈다. 아무리 3년을 기다려준다지만, 회사 눈치도 보이고, 성과를 올리겠다는 욕심도 없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이주연 “다른 것도 같이 하면서…”

 

이정환 “완전 독립은 아니기 때문에…” (웃음)

 

말을 들어 보니, 독립편집부라고 해서 마냥 하고싶은 대로 두는 것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역점 취재를 하는 별도의 아이템이 있기는 하지만, 필요시 다른 취재에도 손을 대고 하는 식이다. ‘완전 독립’은 아니라 ‘반독립’인 셈이라고 했더니, 독립편집부의 이 유이(唯二)한 구성원들은 질박하게 인정했다. 독립편집부 출범 후 첫 1년 동안 파헤쳤던 단독성 취재가 ‘엎어진’ 이유가 무언지 질문하는 건 아픈 기억을 후벼 파는 일이 될 듯한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그래도 짓궂게 물었다.

 

이정환 “아픈 손가락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었는데요 (…) 관련된 곳을 모두 파고 다니다가, ‘아, 역시, 내부 고발이라든지 공익 제보를 같이 잡지 않으면 정말 어렵구나’ 이런 큰 교훈을 얻고 저희가 턴을 하게 된 거죠.”

 

이주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 사안에 관련해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전문가라고 할 정도로 팠었는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우리의 기본 방침에 비춰볼 때) 결과물이 좋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뭔가 내놨다는 것에 만족하는 그런 결과물이라면 내놓지 말자, 그런 수준이라면 우리는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봐서 보도를 안 내보내고 그냥 취재 경험을 잘 살리는 걸로…(마감을 했죠).”

 

이정환 “그냥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 결국 시간 싸움인데, 그 시간을 그래도 투자할 수 있도록 계속 기다려 주니까…(가능했죠).”

 

내 얘기라 생각하고 읽어 주길

 

유사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라면, 그렇게 공들여온 일을 결국 ‘엎어버리기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알 거다. 결론을 정해놓고 시작해서, 주어진 시간 안에 그럴 법한 그림이 되도록 몇 가지를 엮어, 기사랍시고 던져놓는 게 ‘취재 기법’이 돼버린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아쉽지 않았을까? 그냥 버리기엔 아깝지 않았을까? 부스러기라도 이용해 보려는 생각은 안 들었을까?

 

이주연 “안 들었어요. 취재를 한 네다섯 달 했잖아요. 꽤 길게 했었는데, ‘핵심에 도달하지 못했다. 딱 그 점 하나에 도달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 ‘더 갖고 가지 말자. 우리는 여기서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선배나 저나 판단을 해서, 그래 그만하자!”

 

이정환 “저희가 완벽주의자는 아니고요. 저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랄까…우리가 스스로 납득을 하지 못하면 그 부분은 놓아 버리는 게 맞다.”

 

그렇다면, 이번 <교제살인> 시리즈는 ‘그 한 점’에 도달했다고 보았는지 궁금해졌다.

 

이정환 “우리가 납득할 수준의 보도에 이르렀다고 보긴 했지만 기사 출고는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늦어졌어요. 디지털 스토리텔링 작업이 한 달 이상 소요된 것 같은데, 계속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수정 작업을 했죠. (…) 이주연 기자가 인트로 기사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잘 써줬어요. 취재된 내용을 어떻게 나눠 쓸 것이냐를 놓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인트로는 여성이 쓰는 게 맞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고, 그게 주목을 많이 받았고, ‘교제살인’이라는 명명 측면에서도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다’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이번 시리즈의 강점을 스스로도 잘 짚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교제살인> 기사의 탁월함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있었으며, 그것을 ‘일인칭 화법’으로 전달함으로써 독자와 피해자 사이의 강한 동일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주연 “읽는 사람이 ‘나’가 되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이 공포를, 정말 그 당사자가 느끼는 것의 100분의 1이라도, 읽는 사람이 느끼기를 바랐어요. 그래야 이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고통스러웠을지,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로 팔아먹는다고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고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공포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이 방식이 좋을 것 같다고 결정했죠. 그 공포, 헤어날 수 없고 이 사람이 나에 대해 다 알고 있고, 나는 정말 도망갈 데가 없고, 경찰에 도움을 청해도 뭔가 되지 않는 이런 상황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 기사를 접한 이들은 정확히 그런 공포를 간접체험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충분히 성공적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문장은 실제와 허구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킬 수도 있고, 이주연 기자 스스로 언급했듯, 자칫하면 선정주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도 하다. 그런 부분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있었는지 물었다.

 

이주연 “그래서 판결문에 나오지는 않는 내용은 절대 기사에 넣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상황에 대한 묘사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예 안 들어갔다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 가급적이면 판결문에 없는 내용은 한 줄, 두 줄이라도 추가를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스스로 경계를 했죠.”

 

이정환 “기본적으로 독자는 속일 수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기자가 오버한 것 같으면 그걸 독자가 안다고 봐요. (…) 그래서 문장으로 보여주고 그 위에 판결문이 같이 노출되도록 했죠. 그 두 개를 (독자들이 비교해) 봤을 때 우리가 부끄럽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 이 기사의 강점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가 바로 이 판결문이다. 이들은 판결문을 집중 분석했고, 그로부터 실제의 ‘사건’을 재구성했다. 판결문이라는, 필경 이 세상에서 가장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사실의 출처로부터 가장 극적인 공포를 도출해낸 것이다. 기사를 읽는 이들은 여기서 그로테스크함을 느낀다. 수사학을 걷어낸 법적 사실을 모아 ‘피해자’의 시선으로 쌓아 올리고 나면, 그 장면은 하나하나가 지극한 공포를 재생산한다. 그런데 그 판결문이 이르는 곳은 피해자가 느꼈을 그 공포에 값하지 않는 처벌이다. 그리고 이건 이들 두 명의 기자가 ‘젠더사법’ 영역을 하나의 전문 분야로 키워갈 이유를 제공했다.

 

이주연 “저희는 사법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여성이 아직 굉장히 약자의 위치에 있다고 봐요. (…) 여성이든 남성이든 재판에 임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판사들이 많은 조건에서는 (…) 사법부 내에서 판결 내에서 여전히 여성은 약자고 여전히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저희는 판단을 하거든요. 이번에 분석한 108건의 판결문을 봤을 때 이 사실은 명확했기 때문에 (…) 비단 교제살인뿐 아니라 젠더사법에 대한 감시, 이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려고 하고 있어요.”

 

 

<교제살인> 인터랙티브 기사에 사용된 이미지 <출처 – 필자 제공>

 

 

열 명 중 한 명에게라도 전달된다면 우리 언론이 의제설정을 넘어 의제지속 기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다수의 언론학자나 언론현업자들로부터도 나온 이야기다. 근데 그러려면 매체력을 지닌 언론 매체가 관련된 편집 방침을 굳게 세워줘야 하고, 매체들 사이의 지속적 연대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화된 전문성을 가꿔온 기자 집단이 있어야 한다.

 

이정환 “보통의 경우는, 사실, 기사를 한번 털면 그걸로 (전문적 취재 경험이나 전문가들과의 관계가) 끝나죠. 그런데 그 분야를 계속 다루려면 (…) 앞서 인터뷰를 해주셨던 전문가들하고 다시 만나볼 수밖에 없어요. 또 대안을 좀 더 힘 있게 제시하려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고요. 그런 네트워크를 이제 막 형성하기 시작하는 단계이고, 저희가 만약에 계속 젠더사법을 잡고 간다면 그런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출입처를 자꾸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보면 사실 취재원하고 (전문적인) 관계를 유지할 동기 자체가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 또 출입을 하면서 느끼는 건, 아무리 친해도 어쨌든 고급 정보를 주는 매체는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고요. 그럼 오마이뉴스 같은 곳은 무엇으로 승부를 해야 할까? 결국 파고 있는 것을 (취재원에게) 보여주면 제보도 들어올 수 있고, 거기에 따라서 우리가 취재했던 이유도 명확해지니까 (…) 자연스럽게 전문성을 쌓아가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도 더 키워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주연 “다른 매체들은 확실한 출입처 인원, 그러니까 특정 출입처만 해도 10명씩 나가는 곳이 있는데 출입 기자 수 경쟁으로 가면 현격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 한계가 명확해요. 그런 뻔한 게임이 아니라, (전문 분야를 개척해서) 저희 매체가 갖고 있는 특성에 비춰 더 재미있는 것, 우리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면서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애초부터 온라인 영역에서 둥지를 텄고, “시민기자와 상근기자의 화려한 결합”을 꿈꿨던 조직이기에,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현재까지 오마이뉴스가 높다. 왜냐하면 기성 지면을 상근기자들이 손을 놓아도 시민기자들의 자발적 힘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매체니까”라고 이정환 기자는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 저널리즘의 위기가 종이신문의 위기이고, 그것에 묶여 있던 프로페셔널 저널리즘 위기라고 한다면, 그 위기를 돌파할 단서는 종이신문 바깥에서 찾아져야 하고, 종이신문을 움직여온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의 작동 방식의 변화 그리고 그것을 위한 투자와 개발에 있다고 그는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현장의 기자들을 만나보면 자신의 직업이 ‘기레기’로 불리는 것에 대한 자괴감과 모멸감이 극심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두 기자에게, 혹시 지금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재밌다”였다.

 

이주연 “(엎어졌던 단독 취재였지만) 이러다가 진짜 전문가 되는 거 아니야? (이정환 기자가) 화이트보드를 좋아하시거든요. 거기에 ‘이게 이렇게 연결돼 있고, 저렇게 연결돼 있고’ 막 그림을 그려가면서, 취재를 되게 즐겁게 했고, 업무 만족도는 굉장히 높았어요.”

 

이정환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각자 가졌던 그림이 있었을 거예요. 그 그림에 근접하면 할수록 이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그림을 그렸길래, 지금이 즐겁다는 걸까?

 

이정환 “(지금처럼 여기저기 막 파고 다니는) 이런 그림이요. 제가 정치부장을 하면서 거기 취재하는 기자들이 ‘정말 빡세게 한다. 열심히들 일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 노동을 존중하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그렸던 그림은 아니었어요. 그 확신이 들면서 이 친구(이주연 기자)하고 (독립편집부) 일을 하게 된 거죠.”

 

이주연 “저는 일이 즐거워요. 제가 정치부 기자를 조금 오래 했어요. 그 안에서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지만 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정치의 소용돌이 안에 빨려드는 곳이더군요. (…) 정치부 기자 중에서도 정말 그 일이 즐거워서 하는 친구도 있기는 해요. 하지만 제가 본 대다수의 정치부 기자들은 그냥 ‘절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 지금은 제가 주제를 잡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제대로 보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죠. 그런 과정이 저는 즐겁고 재밌어요.”

 

혹시라도, 고민하던 기자들이 때로 그렇게 되듯, 그냥 매체 속의 세계에서 즐거움을 찾는, 즉 독자들의 온갖 비판과 욕설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킨 채, 히키코모리적인 저널리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이른바 ‘편들어주기’ 저널리즘을 통해 다른 한쪽의 비판은 무시한 채 어느 일방의 칭찬만을 자극하고 거둬들이려는 것은 아닐까?

 

이정환 “사실 독자들한테 바라는 건 없어요. 이미 저널리즘 판이 왜곡돼 있는 조건에서, 독자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 편 가르기 보도로 난리들인데, 뭘 더 기대하겠어요? 이 파편화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하는 조직이 많아지는 게 먼저가 아닐까, 독자들이 오래 지켜본 결과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게 맞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이주연 “저희가 잘해야죠. (…) 잘하면 그래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 무조건 기자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당연히 계시겠지만, 그래도 열 명 중 한 명에게라도 전달이 되면 그것도 괜찮은 일 아닌가.”

 

 

기사 작성을 위해 분석한 판결문 <출처 – 필자 제공>

 

 

인터뷰를 마치면서,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직업에서 행복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천진함은 아니었고, 자부심이 넘치는데 그리 오만해 보이지 않았고, 약간이라도 독자 탓을 할 여지를 남길 법한데도 그런 모습이 일절 없었다. 이 긍정적인 마음이 나한테까지도 전염된 걸까. 무척 쌀쌀해진 날이었는데, 여민 옷깃 속이 훈훈했다. 독립편집부의 첫 1년을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고 표현했지만, 그 시간이 남겨준 어엿한 결과 중 하나로 이주연 기자가 최근 펴낸 책이 있으니, 제목이 무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다. 그 책의 소제목이 말하듯 ‘염치는 전염’되는가 보다. 그리고 그런 ‘당신의 염치’가 ‘귀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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