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한국 언론을 ‘찌라시’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이 속된 표현은 한국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는 방증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꿔야 할까. 우리 언론을 왜, 그리고 어떻게 재건축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실패 중이다. 언론사의 사업 모형을 봐도 취재 보도 관행과 이용자 신뢰를 봐도 그렇다. 주요 언론사들이 근근이 버티는 모양새가 된 지 오래고, 이제 공영방송사와 신문방송 겸영사업자마저 어렵다. 한국식 취재보도관행을 따라 만들어진 뉴스는 이용자의 비판과 외면을 받다가 조롱의 대상이 돼버렸다. 우리 언론이 세계에서 가장 믿지 못할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몇 년째 반복하고 있다.
모든 실패가 그렇듯 우리 언론의 실패에도 전조가 있었다. 위기 담론은 지난 세기말에 이미 등장했다. 언론 개혁이니 디지털 혁신이니 하는 구호와 그에 동반한 외래어 주문들도 유래가 깊다. 언론사마다 위기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출입처 관행을 개선하고, 편집과 편성을 바꾸지 않은 데가 없다. 미국의 권위지와 영국의 공영방송사에서 혁신 전략을 빌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은 데가 없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하다. 언론사 경영진에게는 사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결과가 괴롭겠지만, 기자에게는 이용자의 뉴스에 대한 관심 자체가 쇠락하는 현실이 더 큰 문제다. 언론인들 가운데 ‘뭘 해도 안 되더라’는 식으로 체념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서글프다. 사정이 이렇게 된데에는 투자에 인색한 사주, 성과를 노리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경영진, 권한 없는 혁신단장, 오래된 관행에 충실한 야전 부장들, 그리고 해외 사례를 주문처럼 남용했던 전략가들이 기여했다. 따라서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기조차 민망한 결과다. 개혁과 혁신에 참여했던 자들의 열패감이 이어지는 가운데,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도 불분명하다. 일단 자율성과 관행에 대해 검토해 보자.
개혁의 조건: 자율성
첫째, 외부에서 온 충격은 개혁의 동인이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기술적 진보, 시민의 압박, 정치적 기획 등 어떤 요인이라도 그렇다. 예컨대, 청와대가 기획한 브리핑 제도의 도입, 시민들의 조직적인 불매운동,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 등은 모두 유의미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었다. 언론 쪽에서 취재 보도 관행을 돌아보고, 이용자 요구를 반영하고, 기술적 혁신으로 대응하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언론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이런 사태는 외적 충격에 대한 저항이나 반동의 출발이 될 뿐이다. 실제 역사를 보면, 우리 언론은 오래된 출입처 관행으로 회귀하고, 정파적 노선을 강화하고, 목전의 이익을 탐해서 기술적 주도권을 내주는 방향으로 나갔다. 따라서 언론인이 직접 개혁 의제를 설정하고, 내부 역량을 동원해서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방식으로 주도성을 발휘해 개혁하지 않고 외부에서 개혁의 동력을 얻겠다는 기대는 무리다.
출입처 제도를 개선하자는 주장은 따라서 이유가 있지만, 역시 따져 봐야 할 것이 있다. 현행 출입처 제도의 기능과 역기능은 무엇인지, 목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제도 개선을 해야 할 이익이 있는지, 그리고 제도 개선을 결행할 수 있는 역량은 있는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언론인 스스로 제도 개선에 대한 신념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검찰 기자단에 속한 기자와 기업이나 기관 출입처로 출근하는 기자가 자신이 쓴 기사를 다시 읽으면서, 이 제도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긴밀하게 취재할 수 있고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검찰 기자단이나 기업 홍보실에 드나들지 않는 기자들에게 취재를 지시해서 얼마든지 더 좋은 기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편집자가 있어야 한다. 이런 기자와 편집자가 없는 조건에서 출입처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개혁을 주장한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규제와 처벌을 도입하면 뭔가 변화가 없지 않겠지만, 그 변화가 언론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지 살펴야 한다. 언론인 변화를 계기로 삼아 소송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으며, 그래서 뉴스 이용자들에게 더 좋은 역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일단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개혁으로 인해 소송이 두려워 비판적인 기사 쓰기를 포기하는 기자들이 나오면 곤란하다. 만약 자신이 쓴 기사로 인해서 피해를 주장하는 자에게 법적 보상금에 더해서 징벌적 배상금마저 물 수 있다고 믿는 기자들이 대다수인 언론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혁신의 의미: 관행의 파괴
둘째, 기존 제도와 관행을 그대로 둔 채 혁신한다고 할 수 없다. 예컨대, 신문사에 디지털 발행을 도입한다면서 종이신문의 마감과 발행 일정을 그대로 두는 일이 대표적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제작·편성·송출 인력을 그대로 두고 디자인·자료 분석·디지털 제작 인력을 따로 보강하면 혁신이 이뤄질 것처럼 말한다. 저녁 종합뉴스 일정에 맞춰 만들어진 제작 공정은 그대로 둔 채, 인터넷 서비스를 별도로 만들자는 계획도 그렇다. 요컨대, 기존 제작 및 발행 관행을 바꾸지 않고도 혁신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오가 뼈아프다.
혁신은 파괴적이다. 파괴적이어야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예컨대, 뉴욕타임스와 BBC가 이룩한 혁신이란 디지털 환경에서도 고품질 내용과 효율적 경영을 동시에 이룩했다는 뜻인데, 이는 △제작비에서 인건비 비중을 감축하고 △관리직 중 고액연봉자를 줄이며 디지털 생산을 강화하고 △인력과 이용자 관리비용을 줄였으면서도 고품질 디지털 역무를 제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괴적인 인력조정을 감행했고, 새로운 플랫폼과 채널 전략을 채택했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존경받아 온 뉴스의 품질을 유지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언론계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강하고, 법적 해고비용도 매우 높다. 따라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동반한 혁신 전략을 펼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한국 언론사들의 조직 개편과 인력 재배치 등 조직 관련 개선안이나 성과 평가와 보상 등 수행 관련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자료 분석 전문가가 개편을 주도하고, 이용자 실험을 근거로 기획물을 만들고, 성공한 프로젝트에 제대로 보상하는 일들이 일회성 시도에 그치지 않고, 고품질 뉴스 제공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 낸 경우 말이다.
어차피 기자직은 언론인 개인의 소통 재능을 기반으로 한 모험적 투자일 뿐, 안정된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진정한 혁신이 시작할지 모른다. 아예 채용부터 차별화된 새 언론사가 출범하지 않는 한 취재 보도는 물론 경영상의 혁신을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플랫폼 사업자와 함께 모험적 투자를 감행하는 새로운 사업 모형을 만들어 내는 편이 빠를것이다. 무엇이 됐건 현행 취재, 제작, 경영 관행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언론인이 있는 한, 혁신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의겸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가 지난 4월 1일 국회에서 언론 개혁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열린민주당은 이날 악위적 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중대과실이 있는 오보에 대해 언론에 책임을 묻는 오보방지법 제정,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개혁을 통한 종편의 막말 편파 방송 규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뉴스1
성공의 확인과 규범화
그간 우리 언론에 성취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연한 승리나 작은 성과라 할지라도 적극 발굴해서 의미를 살리고, 전형화해서 실행 가능한 루틴으로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또한 일상적인 언론 실천 속에서 누가 좋은 취재를 했고, 좋은 기사를 썼고, 새로운 기획을 제안하는지 인정할 수 있는 안목을 집합적으로 갖춰야 한다. 그 안목이야말로 성공의 조건, 양상, 그리고 효과를 파악하는 역량이기 때문이다. 기자라면 어디에서라도 좋은 기사를 보면, 누가 쓴 기사인지 확인해서, 칭찬하면서 인용하고 또한 공유해야 한다. 훌륭함을 확인해서 인정해 주는 행위야말로 자율적으로 규범을 형성해서 관행을 개선하는 실천의 요체다.
우리 언론이 이룩한 작지만 중요한 성취 가운데 하나가 ‘당사자 의견반영’ 규범이다. 이는 뉴스의 최대 이해관계자에게 뉴스를 미리 소개하고, 그의 견해를 해당 뉴스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약 15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우리 언론에 우연히 등장하기는 했어도, 의식적으로 준수되는 규범은 아니었다. 공영방송 뉴스가 공정성 논란을 겪으면서, 공영방송 뉴스 제작자들이 규칙으로 채택한 이후 확산하고 있다. 뉴스가 공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런저런 의견들을 균형 있게 제시하는 것 이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는데, 일단 당사자의 목소리를 뉴스에 정당하게 반영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인식에 다다른 것이다.
당사자 의견반영 규범을 ‘반론권 보장’이라고 오해하는 기자들이 있다. 반론권은 일단 보도가 나간 이후 당사자가 요구하는 것이며, 언론의 편집권을 제한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언제나 존중해 줘야 하는 권리라고도 할 수 없다. 반면 당사자 의견반영은 취재와 제작 단계에서 가능하다면 언제나 당사자에게 의견을 구하고, 그것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해도 당사자 의견을 최대한 대변할 수 있는 삼자의 견해라도 구해서 해당 뉴스에 반영해야 옳다는 규범이다. 이는 공정한 취재와 제작을 달성해야 한다는 윤리에 속하며, 언제나 준수해야 마땅한 일이다. 비록 사소하게 보이더라도 이 규범을 일종의 공정성 규범으로 인식해서 반드시 지켜나간다는 느낌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한국 언론의 체질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기획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연이라고도 할 수 없는 중요한 성취로 2016년 탄핵 보도를 들 수 있다. 한국 언론은 민주화 과정에서 관찰자 역할에, 그것도 대체로 기회주의적 참견꾼 역할에 그쳤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부패한 권력의 타락을 고발하고 시민의 집합적 참여를 추동하는 데 성공했다. 탄핵 보도는 특히 여러 언론사가 이어달리기하듯이 취재하고,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도,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전망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집합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성과를 어쩐지 돌보지 않는 데 있다. 성공의 의미를 따지고, 이유를 살펴서, 다른 영역과 조건에서도 반복해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그러나 마치 그 모든 일이 우연한 성공이었다는 듯, 돌이켜 보니 당파적인 해석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는 듯, 심지어 성공인지 아닌지조차 의심스럽다는 듯 과거를 돌보지 않고 있다. 함께 답변해 보자. 도대체 우리 언론인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만하고, 당사자나 집단, 지역사회와 공동체, 한국 사회와 정치에 기여했으며, 따라서 반복해서 실천 가능한 모범으로 삼을 만한 성공은 무엇이란 말인가.
손석희 전 앵커가 <JTBC 뉴스 9>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언론 전문직 문화의 형성
앞서 제기한 질문에 합의할 만한 답변을 구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언론인들 간 배경, 전문 영역, 추구하는 가치 등이 서로 다르기에 훌륭한 취재, 고품질 내용, 이용자 만족, 사회에 기여하는 보도 등에 대한 수행 평가도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취재를 통해서 나온 기사를 격려하고 싶은 마음은 다를 수 없다. 고품질 제작을 보고 같은 수준의 성과물을 내기 위해 준비하는 경쟁적인 자세를 보며 분발하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다. 언론 직역에 고유한 훌륭함에 대한 추구가 없을 수 없다. 기자들 간에 추구하는 가치는 달라도 기자로서 이룩할 수 있는 훌륭함을 보이는 동료의 실천을 인정하지 않는 직역을 전문직이라 할 수 없다.
요즘 우리 언론을 서구의 선진 언론과 비교해서 비판하고 조롱하는 일이 유행이다. 제대로 망해봐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격언이 참이라면, 2020년 한국 언론이야말로 새롭게 시작해야 할 적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무모하게 선진 언론을 흉내낸 곳만 보면 실패가 엄연하지만, 역사적 전망을 갖춰 길게 보면 우리 언론에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특히 최장수 언론사가 이제 창간 100주년밖에 안 되고, 그것도 민주화 이후 실천만 보면 약 30년의 경력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이제라도 언론의 재건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나쁘지 않다. 언론사의 영향력이나 언론인 위신의 하락을 염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뉴스의 품질과 보도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서 성찰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우리는 지금 다른 어떤 곳을 보며 두리번거릴 때가 아니다. 동료의 얼굴과 행동을 보면서 한국 언론의 고유한 성과와 언론인의 전문직 규범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