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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명 회원들의 소액 정기 후원에 토대를 둬 지난 9년간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탐사보도 전문기관으로 우뚝 선 뉴스타파. 2012년 1월에 해직 언론인이 모이고 언론노조 파견 기자 등이 합류한 프로젝트 형식으로 시작했다가, 2013년에 회원 기반의 비영리, 비당파, 시민 지향의 독립 언론을 표방하며 정식 출범했다. 그런데 잠깐, 해직 언론인이라고? 군부독재 시절도 아니고, 정권과 회사에 의해 강제 해직된 언론인이 있었다니? 많은 사람이 잊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뉴스타파 초대 대표였던 이근행 PD는 김재철 사장 선임 반대 파업을 이끌다가 2010년에 MBC에서 해고된 바 있고, 뉴스타파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노종면 YTN 기자, 황일송 국민일보 기자, 최승호 MBC PD 등도 비슷했다. 불과 10년이 안 된 일이다.

그가 걸어온 험난한 길
2013년에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로 정식 출범한 이후 줄곧 대표직을 맡고 있는 김용진 기자는 엄밀히 말해 ‘해직’ 언론인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역시 험난한 길을 걸었다. 사실상 최초의 매체 비평 프로그램이랄 수 있는 <미디어포커스>와 방송 저널리즘의 황금기를 이끈 주요 축 가운데 하나인 KBS 탐사보도팀장을 거치면서 온갖 상이란 상은 다 탔던 그. 하지만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내려보낸 사장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KBS 울산방송총국으로 전보, 그와 동시에 KBS 저널리즘의 심장이었던 탐사보도팀은 해체됐다. 그 뒤로도 그는 계속 싸웠고 그만큼 중징계가 찾아왔다. 세월이 흐르고, 정치 환경도 좀 나아지면서, 노조 파견 기자들이나 해직 언론인의 복귀도 있었지만, 함께 투신했던 몇몇 기자들과 함께 그는 뉴스타파에 남았다. 그리고 뉴스타파가 뽑고 훈련시킨 새로운 세대들과 같이 성장하며 또 늙어갔다. 그 8년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 가능하다.
“처음엔 언론노조 회의실이 비어 있을 때 작업하다가 회의가 있으면 나와 있다가, 그렇게 1년을 보냈죠. 2013년에 마포에 작은 사무실로 옮긴 후 임대 기간이 끝나자 사무실을 물색하러 다녔는데 저하고 경영실장이 엄청 고생을 했어요. 그때가 마침 박근혜 정부 때였는데, 세 군데 정도 계약 직전까지 갔고, 그중 한 군데는 실제 임대차 계약을 했어요. 근데 최종 결재 단계에서 건물주가 ‘뉴스타파 이거 뭐하는 데냐?’ 물어서 실무자가 보고를 하니까 ‘아, 여기 안 돼’해서 퇴짜를 맞았죠. 실무자가 우리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며칠 뒤에 전화를 해서는 ‘죽을죄를 졌다. 건물주가 절대로 안 된다고 그런다’ 하길래 (혹시라도 그 실무자에게 피해를 줄까봐) 계약금만 돌려달라고 했죠. 근데 그런 게 반복이 되니까, 이게 뭐, ‘야…이거 정말 공간 하나 확보하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랬다. 해직 언론인이라는,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특히 이 세계에 발을 담근 지 얼마 되지 않는 기자들에게 일견 고색창연해 보일 수도 있을 이 단어는 단지 역사 속의 사건만 기술하지 않는다. 게다가 권력을 강하게 감시하고 비판하는 (하지만 그 규모는 작은) 언론사에게는 임대조차 꺼리는 건물주들이 많았던 시절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그런 설움이 뉴스타파로 하여금 시쳇말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을 감수한 사옥 마련하기로 이끈 걸까?
“회비로 운영되는 조직이 월세로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고요, 내부 의견 수렴도 하고 외부 자문도 받았는데, 독립언론으로서 근거지를 확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어요. 그리고 그 당시부터 여러 독립 언론이나 1인 미디어와 함께 협업하고 있었잖아요. 그 분들이 대개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작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씩 자금 비축을 했고요.”
그러고 보니, 뉴스타파의 정식 명칭은 한국 탐사 저널리즘 ‘센터’이다. 탐사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대안 언론들이 모일 수 있는 ‘중심’이 되겠다는 명시적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저희가 마련한 작업 공간을 두고 ‘건물’ 또는 ‘사옥’ 이런 용어를 쓰시곤 하죠. 그런 단어가 나올 때마다 저희는 ‘그게 아니다’ 말씀을 드리죠. 의도적으로. ‘여기는 협업 공간이다. 뉴스타파도 이 협업 공간에 입주해서 일하는 한 매체에 불과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죠. 실제 지하층 같은 경우는, 지하층이 지상층보다 면적이 두 배 큰데, 상당 부분 외부 독립매체라든지 아니면 시민단체라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또 지하에 회의실이라든지 편집실을 배치해 놨거든요. 그 부분은 거의 실비로, 그런 시설이 없는 독립 언론인들이 와서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했죠. 그래서 이게 일종의 협업 공간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건물 관리는 저희들이 하긴 하지만.”
겸양의 덕이 물씬 배어나는 대답이긴 해도, 또 시쳇말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푸념이 만연한 시대다. 그래서 그 협업이란 게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물었다.
“작년 하반기에 재단법인을 별도로 설립했거든요. ‘뉴스타파 함께센터’. 일단 그곳을 매개로 독립 매체와의 협업을 확대하고, 교육 사업, 그리고 기존에 뉴스타파에서 해오던 콘텐츠 판매, 영화 제작, 출판 이런 것들을 넘겨 역할 분담 하려고 합니다. 뉴스타파는 뉴스와 프로그램 제작 주체로 남고, 재단은 여러 가지 교육 사업, 임대 사업, 기타 수익 사업 등을 맡는 식이죠. 작년 재단 설립 이후에 기존 독립 PD나 감독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공모를 했어요. 1년에 네 편, 1,000만 원씩 제작비 지원하는. 전부터 그걸 2년 정도 운영했는데, 재단 설립 이후에는 좀 더 확대하겠다는 거죠. 이를 위해 DMZ다큐멘터리 쪽, 그리고 리영희재단과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또 올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과 상호양해각서를 체결해서 탐사 저널리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생각이고요, 서울대에 탐사보도 교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도 편집실을 고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독립 감독들, 유튜브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에게 지하에 있는 협업 공간을 제공하는 일이 있죠. 또 언론 운동 단체나 언론 유관 학회 행사가 저희 ‘리영희홀’을 많이 씁니다. 저희는 전기값 정도 받고 있습니다. 전기값까지 우리가 깎아줄 수는 없으니까. (웃음)”
전문성을 갖고 길게 가는 것
뉴스타파보다 수십 배, 수백 배 큰 건물과 인력, 자원을 갖고 있는 기성 언론사들이 이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불행히도 들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부자가 곳간을 열기보다는, 그나마 ‘밥술이나 뜨는’ 친인척이나 이웃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이를 돕는,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을 보는 것 같아서, 기특하면서도 입맛이 쓰다. 헌데, 협업이 그저 불우이웃 돕기 수준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면, 좀 더 적극적인 미래상이 있어야 할 듯했다.
“단순히 외부 독립 매체들 하고 협업한다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지금 한국의 언론 현황을 보면, 소위 메이저들의 영향력이라는 게… 발행 부수만 보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주류 메이저에서 만들어내는 그런 정보가, (세상을 보여주는) 틀이 (강력하고), 유튜브든 뭐든 오리지널 정보가 돼서 돌아다니더라고요. 그걸 (누군가) 잘라서 돌리든지, 뭐, 의견을 달아서 돌리든지, 그런 영향력이 여전하다고 봐요. 이런 지배적인 구조에 좀 뭔가 변화를 일으켜야 되지 않을까. 연대와 협업 활동을 통해서. 지금이야 뭐 너무 미약하지만 시작을 해보는 거죠.”
디지털화의 충격으로 인해 언뜻 기성 저널리즘의 힘이 약화되는 듯해도, 그 디지털 공간조차 장악하고 있는 건 여전히 기성 언론이 제공하는 세계관이거나 기성 언론이 생산한 정보 조각이 재편집된 결과물이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에 대한 대안을 찾는 건 말마따나 ‘미약한 시작’에서 출발하지 않을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데일리 구조에 바탕을 둬 생산되는 이런 정보 환경을 어떻게 바꿀 건가,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해법을 당장 뭘 하기는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희들은 일단 중요한 공적 이슈에 집중하면서,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소규모 매체들이, 진짜 실력 있는 매체들이 어떤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까는 단순하게 불특정 다수의 독립 매체들과 연대, 협업을 한다고 그랬는데, 앞으로 구체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중점을 둘 사업은 환경이면 환경, 기후변화면 기후변화, 에너지면 에너지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두세 명이라도 모여서 집중하고, 그것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어 연대할 수 있고… 주류 매체 쪽에서는 제대로 관심도 안 기울일뿐더러, 특정 분야를 오랜 기간 제대로 파는 기자를, 저도 KBS에 오래 있어 봤지만,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 진짜 전문성 있고 실력 있는 강소 매체들이 많이 생겨서, 처음에는 느슨한 형태의 연합이더라도, 일정 채널이나 이런 것들도 공동으로 플랫폼을 갖고, 요일별로 오늘은 에너지 문제 하겠다, 내일은 사법부 관련 문제를 하겠다, 이런 식으로 하면 그런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들어요. 물론 인적 인프라가 굉장히 중요해서, 그걸 어떻게 양성해낼 것인가 그게 또 과제죠.”
기성 언론에서는 왜 그런 것이 잘 안 되고 있을까? 그리고 거기서 (혹은 거기서조차) 잘 안 되고 있는 것을 인프라가 부족한 새로운 언론이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거기는 정기 인사도 있고 조정도 있고, 또 중요한 출입처에 대해서는 ‘왜 쟤만 계속하냐’는 불만도 있고. 그러다 보니 계속 (인력을 여기저기) 돌리는 거죠. (이런 구조 속에서는) 기자들, PD들 수는 많지만, 전문성을 갖추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가능한 조직이다. 예를 들면 2013년에 했던 조세 도피처 프로젝트, 그건 물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데, 그런 게 대표적인 예고, 그런 전문성을 갖고 길게 가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봐요.”
탐사보도를 해야 하는 이유
탐사보도처럼 권력이 싫어할 만한 저널리즘을 억압하고 퇴출시켰던 환경이 바뀌고, 공영방송과 지상파 방송을 중심으로 앞다퉈 탐사보도 지향을 내세우면서 중흥기가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탐사보도에 뛰어들었던 이들은 실망감과 무기력증을 종종 표한다. 열심히 파헤쳐서 터뜨려도 누구 하나 받아써주는 데 없고, 파급력이나 영향력이 도무지 안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일까, 데스크가 도무지 권력 감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며 집단행동을 하는 젊은 기자들이 있나 보던데, 정작 권력 감시의 핵심인 탐사보도를 위한 팀을 만들었을 때, 도무지 지원자를 찾을 수 없더란다. 말인즉슨 자신들은 ‘주요 출입처를 좀 더 돌면서 경험을 쌓을 테니, 그 중요한 건 다른 분들이 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출입처에 그렇게나 목매는 그들이 무슨 권력 감시를 하겠다는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최근 뉴스타파가 국회 예산 오남용 문제를 다뤘는데, 제일 보람도 있고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한 3년 걸렸거든요. 근데 제일 조회수가 낮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회수가 가장 많이 나온 거는 윤석열 보도인데, 그건 외려 그렇게 품이 많이 안 들어요. 우리가 다뤘던 국회 개혁 이슈는 어떤 중요한 제보자가 있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맨땅에서 한 거거든요. 그저 ‘필요할 것 같아서’ 한 거예요. 국회의원들이 다른 행정부 예산은 국감할 때 다 들여다보는데 자기들 예산은 어떻게 하는지 봐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정보공개 청구를 해봤는데 비공개. 그럼 행정심판을 가보려고 하다가, 심판 가봤자 안 될 것이 뻔하니 바로 소송 가자. 그래서 소송 갔죠. (…) 그 3년 동안 기사를 세어보면 한 100건이 넘게 나왔을 거예요. 처음에는 우리 기자 대하기를, 완전히 그냥, 반말 틱틱 하면서 ‘그걸 어쩌라고’ 이런 식으로 하다가, 이게 좀 쌓이니까, 나중에는 우리가 갈 때마다 국회에 비상이 걸리는 거야. ‘뉴스타파 또 왔다!’ 그러면서. 이제 기자가 방문을 하면 ‘아, 그거 내가 잘못한 거고, 예산 반납 바로 할게.’ 이럴 정도가 됐어요. 2년 사이에 완전히 반응이 바뀐 거죠.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고, 좋아요 누르고, 전파하고 하지 않더라도, 그 이슈가 중요하고, 실제 문제 사례라든가 심지어 범죄까지 나오고 그러면, 당사자인 그 집단에서는 매우 유심하게 본다는 거죠. 사회 전체가 다 안다고 임팩트가 있는 건 아니고, 당사자들이 긴장하고 행동을 바로잡게 되는 게 중요하죠. 우리가 보도하면서 국회의원들이 자진 예산 반납하기 시작한 게 건당 500만 원, 1,000만 원 되는 건데, 우리가 2년 넘게 하면서 중간에 집계 내보니까 거의 한 3억 원에 가깝게 반납하게 한 거죠. 근데 그걸 다른 언론에서 얼마나 받았겠습니까? 거의 받아쓴 데 없었죠.”
쉽게 말해서, 매체가 얼마 없었던 시절의 ‘화려한 기억’에 사로잡혀 정작 왜 탐사보도를 해야 하는가를 잊어버린 게 아닌지 자문해 볼 때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을 찾아 그것이 고쳐질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하니까? 아니면, 솔직히, 그저 한 방에 이목을 끌고, 박수받고 싶어서? 하긴, 원래 목적과 욕망이 그런 데 있다면, 힘들게 고생하며 몇 년간 탐사보도를 하느니, 주요 출입처 돌면서 인맥 쌓고, 나에게만 흘려주는 대가성 정보를 받아 ‘언론 자유’와 ‘권력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하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기자라면 전문 분야가 없어선 안 되는 거거든요. 근데 지금은 어떤 일종의 ‘점’처럼 출입처를 가는 거죠. 예를 들어 (전문 취재 분야라는 게 고작해야) 환경부를 출입하니까 환경을 다룬다는 식. 출입처 거기에만 고립된 영역 이런 식으로. 예를 들어 환경을 전문 취재 분야로 한다면, 환경에 관련된 게 정말 많잖아요. 행정부 차원의 관련 정책이나 집행이야 환경부에서 나오겠지만, 더 큰 차원에서 보면 국회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에서 할 수도 있고,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이 엄청 많고, 해외에도 우리가 챙겨봐야 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수직, 수평 다 포괄적으로 들여다봐야 되는 거죠. 환경이라는 이슈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면 그중에 매우 작은 부분으로서 환경부에 가는 것일 뿐이라는 거예요. (…) 기자들이 지금 두려워하는 게 ‘출입처가 너무 멀어지면 거기서 나오는 정보가 끊기는’ 건데, 정말 기우라고 봐요. 우리가 체크하고 취재해야 될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외곽에서 수집한 정보를 갖고 공무원한테 ‘저기서 이런 게 있었는데, 그럼 여기서 이런 건 어떻게 된 거야?’ 하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근데 계속 출입처 나가고, 출입처에 의존하고, 거기에 묶여있고 하니까. ‘아, 얘들한테 좀 민감하거나 부담되는 기사를 쓰면 그다음에 나한테 안 줄 거 아니야.’ 그 걱정으로 하면 그거는 기자가 아니지 사실.”
금기를 깬 건, 후원자와 시민과의 약속 때문
김용진 대표의 이야기는 요컨대 ‘기자라면’으로 시작해서 ‘기자가 아니지’로 끝이 났다. 그런데 내가 만나고 아는 기자들의 대다수는 그런 범주에 속하지 않았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김용진 대표가 정의하는 기자상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걸까, 아니면 기자를 자처하는 그 수많은 이들이 단지 실존하는 기자라는 그 ‘다수성’의 힘만으로 기자상을 왜곡해버린 걸까. 이런 현상의 근원에는 ‘괜찮은 언론(인)’이 먹고 살기는 점점 더 어렵고, ‘그냥 언론’이거나 ‘괜찮지 않은 언론(인)’이 먹고 사는 데 유리한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용진 대표가, 우리 언론계에서는 금기시되는 이야기, 즉 타 언론사의 ‘깊고 어두운 그늘’에 대해서 정면으로 말하게 된 이유 역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뉴스타파가 최근 제작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 말이다.
“(지금 우리 신문에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한) 기사형 광고. 예전에는 신문법에 처벌 조항이 있지 않았습니까? 근데 이게 이명박 정부 때 개정되면서 없어졌어요. 그때 발의한 의원들 보면 3대 신문사 출신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죠. 또 공교롭게도 지난 10년 동안의 기사형 광고 적발 건수를 짚어 보니까 그 1, 2, 3위가 정확하게 3대 신문사에 일치했습니다, 경제신문보다 많은 걸 보고 저도 놀랐어요. 법적 환경 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이면의 힘을 갖고 있다는 건데, 그런 유력 언론사 출신이 이미 오래전부터 정관계에 굉장히 깊숙하게 진출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신문들이 사세를 계속 확장해나가는 데 이런 네트워크가 정치 측면이든 행정 측면이든 지원을 해주고 있는 거죠.”
디지털 환경의 도래와 함께, 특히 한국에서는, 가히 언론 폭발 시대라고 일컬을 만큼 온갖 언론과 저널리즘 행위자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고 하듯 시민의 갈증을 채워줄 진지하거나 새로운 저널리즘은 오히려 태부족인 상황이다. 더욱이 기성 언론은 결코 대안이 되고 있지 못한 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더 타락하고 있다는 혐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저널리즘 위기 극복의 모범이기는커녕 오히려 새로 나타난 저널리즘 주체들이 더 나쁜 저널리즘으로 몰려갈 표본을 제공하는 ‘나쁜 모범’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이전부터 진행해온 ‘언론 개혁 대시보드’라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주로 언론사의 ‘변종 돈벌이’ 관련해서 하는데. 그것에 대한 피드백이 언론사, 특히나 광고 파트로부터 많이 왔습니다. ‘야, 이거는 좀 아프다’는 거예요. 이걸 역으로 생각하면 이게 일종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고, 이걸 통해서 언론 지형을 좀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예컨대 기사형 광고 같은 건)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거든요. 절독이니 폐간이니 하는 운동 그런 거 말고. 예전에 있던 처벌 조항을 그대로 살리기만 하면 돼요. 이런 것들이 너무 당연시되고, TV에도 간접광고나 이런 것들을 은연중에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어버린 거야. 큰 매체를 가지고 있는 세력들이.”
그가 이렇게 언론계의 금기 아닌 금기를 깨고자 했던 건, 스스로 소위 ‘큰 매체’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이자, 새로운 저널리즘을 만들기 위해 투신한 이로서 후원자와 시민들에게 내걸었던 약속 때문이었을 게다.
과도일반화의 오류는 마땅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경상도 중년 남성 특유의 무뚝뚝한 말씨에, 일생을 탐사보도에 매진해온 기자답게 무척 날카로운 표정을 가진 그에게 선뜻 다가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실은 예전의 나도 그랬다.) 실제로도 그는 인터뷰 내내 그 인상만큼 진중했고, 그 이상으로 원칙적이고 엄격했다. 하지만 삶의 온갖 풍파를 겪으며 무언가를 통달해낸 이에게서 나오는 긴 호흡과 깊은 혜안은 듣는 이로 하여금 위안을 얻고 묘한 여유와 희망마저 자아내게 했다. 무엇보다 직위나 연배 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기자들과의 사이에서 잠시 오갔던 말과 행동 속에서 한 언론사의 대표이기 이전에 동료 기자로서의 신뢰와 자연스런 연대감이 읽혔다. 그가, 그리고 뉴스타파가 독립 언론의 너른 플랫폼이자 협업의 상대가 되기에 충분한 이유를 여기에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