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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은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식이다. 화자가 있다면 청자가 있다. 대중매체 시절의 신문은 독자라는 이름의 청자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매체의 특성이 그렇듯 그 소통은 다분히 일방적인 것이었다. 신문의 독자는 가시적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독자 편지’라든가 ‘편집자에게’라는 특별한 코너를 통해 드문드문 드러날 뿐이었다. 저널리스트에게 독자는 구독률이나 열독률과 같은 지극히 추상적인 수치 덩어리(mass)로만 체감됐기에, 일상의 가시적인 독자인 동료 기자나 타사 기자, 그리고 정치인, 관료 등 그들 스스로 취재원이기도 한 유력 독자들로부터의 반응을 청자 일반의 것인 양 받아들였다. 이걸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 독자위원회 등의 옴부즈맨 제도였는데, 이들 역시 순수 독자라기보다는 그들을 ‘대리한다고 전제된’ 청자이자 의례상의 지정 화자였던 셈이다.
인터넷은 이와 같은 대중매체식 일방향적 소통의 물길을 바꿔놓았다. 댓글창을 통해 개별 독자들이 가시화됐고, 기자 개개인에게는 아마도 로마 네로 황제의 엄지손가락처럼 느껴질 법한, ‘좋아요’ 혹은 ‘싫어요’라는 ‘감정의 단두대’를 설치했다. 더불어 구독률과 같은 추상적인 수치 덩어리는 조회수 등의 무시무시하게 구체적인 수치(data)로 변모됐다. 이것은 전과 다른 소통이지만 그렇다고 양방향적 대화는 아니다. 본질적으로 단독 화자인 저널리스트는 다중 독자와 일일이 대화를 나눌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이번엔 독자들이 또 다른 종류의 ‘일방적 화자’가 된다. 기사 하나 던져놓고 나서 그다음 대화에 임하지 않는(좀 더 공정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대화에 돌입하기 어려운) 기자에게 피드백의 창구를 쥔 독자는 감정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기껏해야 대화는 댓글창 안에서 독자들 사이에서 벌어질 따름이고, 기자들은 그렇게 열린 창을 찬찬히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렇게 저널리즘적 소통 모형은 다시금 오리무중 상태에 빠져 있다.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 겸 논설위원과 마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널리즘 ‘책무성’이라는 적극적인 개념을 시도한 보기 드문 사례의 첫 책임자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이 그간 독자와의 직접 소통 시도를 안 해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송법에 의해 강제된 시청자위원회나 옴부즈맨 프로그램, 그에 상응하여 일부 신문에서 시행돼 온 독자위원회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 그에 반해, 한국 최초의 국민주 실험을 통해 탄생한 한겨레는 이보다는 한두 걸음 더 들어가 본 경험이 있다. 일찍이 편집권을 독자에게 개방하는 시민편집인 제도를 실험했던 바 있고, 최근에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저널리즘책무위원회를 만들었다. 실은 그가 책무성 칼럼을 처음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만나보고 싶었지만, 운영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면 좀 이른 감이 들었던 데다가, 이게 오래 갈 제도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위한 시간도 필요했다.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이젠 만나 봐도 좋을 법했다.

독이 든 성배를 움켜쥔 이유
“작년… 2020년 3월 말에 인사발령이 났으니까, 딱 1년쯤 됐네요. 이번 가을까지 하면 1년 반 하는 거고. 뉴욕타임스 첫 옴부즈맨이 쓴 책이 있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그 사람도 처음 할 때 편집장하고 1년 반을 계약하고 했대요. 그 이유가… 엄청 싸웠다는 거예요. (웃음) 지적질을 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적절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이게 약간의 멘탈을 붙잡고 버텨야 하는 일이니까.”
말 그대로 주마등처럼 흐른 시간을 되돌려보는 듯한 눈빛과 함께 그는 지난 1년의 심경을 담담히 토로했다. 2주마다 한 편씩 칼럼을 썼는데, 외부 책무위원들과는 달리 자신은 신문사 내부와 외부를 잇는 성격이 좀 더 강했던 탓에 일종의 샌드위치 같은 입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꽤 컸던 듯했다.
“전 솔직히 (제 전문 분야인) 경제 칼럼을 쓰라면 매주 쓰겠더라고요. 다른 부서에 있을 땐 한 2년 정도 그렇게 쓰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건 내부와 외부를 잇는 그런 칼럼이라서, 내부 이야기를 써야 하거든요. 우리를 비판하거나 우리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그런 소재가 많지는 않은데, 그런 소재를 굉장히, 늘, 생각하고 있어요. 또 이게 정확하게 쓰지 않으면 내부에 상처를 주거든요. 반발을 불러일으키거나. 그러면 제가 내부로부터 신뢰를 못 받아요. 근데 또 반대로는 너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교과서처럼 하면 독자들이 ‘뭐 하는 거야’ 이럴 거고. 그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마치 외줄을 타는 기분? 그런 기분으로 1년을 살아온….”
말하자면 ‘잘해야 본전’, ‘못하면 양쪽에서 얻어맞는’ 그런 일인 셈인데, 약삭빠른 사람이라면 응당 온갖 회피 기술을 써서라도 고사할 일을 떠맡게 된 이유, 요컨대 독이 든 성배를 움켜쥐게 된 이유는 뭘까?
“취재보도준칙을 전면 개정한 게 계기가 됐어요. 그 전에 ‘조국 사태’에서의 보도 방향을 둘러싼 진통이 있었고, 그 뒤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된 보도에서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많은 문제의식을 느꼈고. 내부에서는 갈등이 있었고, 외부에서도 큰 비판을 받았죠.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윤리적인 기준을 재정비하자 해서 취재보도준칙을 크게 손봤죠. 이 자리는 그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취재보도준칙을 만들면 뭐하냐, 만들어놓고 정작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그러지 말자, 취재보도준칙을 개정하고 나서는 그에 기준을 둬서 감시하고 강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 해서 저널리즘책무실이라는 연관 조직이 생긴 거죠.”
지난 호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와 같이, 혁신 의지를 갖고 창설한 부서가 조직 내부에서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표류하거나 좌초되는 경우는 흔하다. 전사적인 동의나 지원이야 꿈같은 일이라 친다 해도, 최소한 사장이나 편집국장과 같이, 조직 내 의사결정의 주요 정점과의 꾸준한 소통이 없이는 그저 그런 ‘기피부서’로 형해화될 따름이니까.
“부서를 만든 다음 사람부터 받아놓으면 그에 맞춰서 허겁지겁 일을 ‘만드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게 안 하겠다. 나 혼자 해보겠다’고 해서 저 한 명으로 출발을 했어요. 실(室)을 만들어놓고 달랑 실장 하나 있다고 하니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는데, 과거 유사 조직이 실효성을 갖지 못했다는 평가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1년 동안 세팅을 해가면서 무슨 일을 하는 데 얼마만큼의 인력이 필요한지 가늠해보겠다고 했죠.”
조금씩 나아가면 시간이 걸려도 갈 수 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한겨레의 저널리즘책무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조직인지 감이 잡힌 건가?
“세 가지 축으로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모니터링, 즉 내부 감시 기능, 두 번째는 조직에 대한 윤리 교육, 세 번째는 내부를 향한 소통 기능. 우선 감시 기능은 우리 콘텐츠를 되돌아보면서, 이상한 제목 등 문제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전에는 편집국장이나 간부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사후에는 칼럼을 써요. 이건 제가 직접 해온 거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되죠.
두 번째인 윤리 교육 기능은 혼자 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기자들이 스스로 생각을 하고 윤리 문제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근육을 키우는 게 중요하죠. 즉 윤리적인 딜레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주로는 칼럼을 통해 이야기하죠. 제 칼럼은 2주에 한 번 나오고 3인의 저널리즘 전문가로 구성된 외부 저널리즘 책무위원들이 격주로 칼럼을 써요. 매주 하나의 주제를 놓고 저희 직원들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거죠.
세 번째는 소통인데, 우리가 하는 일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잘못했다면 사과를 하고, 독자와 내부자를 대상으로 소통을 하는 거죠. 독자들은 그것을 통해 오해가 풀렸다고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내부에서는 서로 감정이 엉킨 채 쌓여 있는 것들 드러내는 역할을 해주죠.”
그가 지난 1년의 경험을 누적해 정리해본 세 가지 영역 모두 중요하고 또 그만큼 실천적으로 비교적 잘 점검된, 저널리즘 책무성 관련 임무수행목록(mission statement)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무성이라는 개념이 여러 의미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유력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중심으로 제반의 문제의식이 교차하고 있다고 할 때, 이런 소통 구조는 ‘누가, 누구의 어떤 질문에 대해, 무슨 절차를 거쳐 답을 하고, 다시 그것을 저널리즘적 생산에 재투입할 것인가’를 포괄하게 된다.
“제일 열심히 보는 게, 독자들이 전화를 걸어서 뭐라고 하시는지, 댓글로 뭐라고 하는 건지 등이에요. 저 시민이 무얼 생각하고, 무엇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에 대해서 내부를 취재한 결과를 알려드리는 거죠.
(…) 다만, 그전에, 밖에 있는 분들이 이 일을 할 때는 어떤 한계가 있었느냐면, 내부의 복잡한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글을 쓸 경우 외부 설득은 어떻게 되겠지만 내부 설득은 안 되고 그 결과 (정작 중요한) 내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였죠. (…) 예를 들어 정정보도 같은 거. (…) 안에서는 정정보도의 필요성에 대한 동의는 있어요. 다만 기자들의 자존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상회해서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면 잘 안 되죠.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잘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느냐’고 하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실제 변화가 잘 안 만들어지니까) 그게 안 되는 여건을 보면서 조금씩 (실천 수준을) 높여나가는 거예요.
(…) 작년 5월에 윤석열 건으로 화끈하게 (정정보도를) 했지만 그 뒤로도 바로 정착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이야기를 한 거예요. 저도 이야기를 하고, 다른 책무위원 칼럼으로도 서너 차례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2면에 (정정보도) 고정란이 들어가게 되고, 이름 하나 틀린 거… 전에는 그냥 말도 없이 고쳤다면 이제는 온라인 수정 이력제까지 가고. 나중에는 더 자발적인 상세한 수정이 가능한 쪽으로 가려고 해요. 그런 식으로, 내부의 적응성을 고려해서 조금씩 나아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과정은 구성원의 인식과 수용성을 높여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조직 문화나 시스템이 받쳐줘야 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
“편집국장도 협조적이에요. 부서장들도 (문제가 있는 부분을) 혼자서만 이야기하긴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해주면 그것을 받아서 편집국장도 강조하고, 그러면 또 조금씩 부장들도 움직이고, 이렇게 되더라고요. (…) 그들도 하고 싶은데, 전에는 조금 나가다가 마는 것 같고 그러니까 유지가 잘 안 됐다면, 이제는 우리가 바른 소리 하면서 (조직 내부에 있는 정당한 문제의식을) 밀어주는 거예요. 그런 느낌이에요. 그렇게 해서 조금씩 나아가다 보니 나중에는 ‘많이 왔네?’ 하는 거죠.
(…) 주로 편집국장하고 호흡이 잘 맞아야 돼요. 내가 편집국장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자리도 아니고, 무작정 비판하는 자리도 아니고. 그도 이렇게 해서 신뢰성 있는 뉴스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안을 놓고 ‘협업’을 해야 해요. (…) 편집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고, 왜 그런지도 이해를 하는 입장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죠.
(…) 예를 들어, 십수 년 전 일이기는 하지만, 기존 시민편집인 제도는 (취지는 좋았지만) 시민편집인과 편집국장이 싸우는 일이 벌어져서, 칼럼은 칼럼대로 그냥 독백이고, 편집국은 거기서 지적된 것을 받는 게 없는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런 경험을 딛고, 원칙적인 것을 항상 전제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생기도록 편집국과 잘 소통하려고 노력했죠.”
이 사례만 들으면, 약간의 내부 저항과 변화 지체가 있었다고는 해도, 꽤 평화롭고 순조로운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 내심 의심병이 도졌는지,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담을 여는 고백은 ‘외줄 타기의 스트레스’ 아니었던가? 뜻대로 되지 않고 삐걱댔던 경우는 없었는지 물었다. 이봉현 실장은 검찰 개혁 이슈,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과 정의기억연대 사례 등을 들었다. 독자들은 고인을 기리고 싶어 했고, 일부 기자들은 피해자 입장을 중시했다. 두 집단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한겨레의 어정쩡한 태도에 반발했다.
“이렇게 쓰면 한쪽이 서운해하고, 또 저렇게 써도 다른 한쪽이 욕을 할 거라서 (난감했죠). ‘최소한의, 우리가 공유하는 공약수, 관점에 따라서 다른 태도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사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흐리면 안 된다’ 이 정도의 입장을 가지고….”
그 어려움을 십분 공감하지만, 그리고 지금까지 말해온 것처럼 이조차도 일도양단 결론을 내기보다는 조금씩 합의와 실천의 영역을 넓혀가야 하는 거겠지만, 모호했다.
시끄럽고 불편해도… 역동성이 한겨레를 살린다
“지금 소통 체계에서의 난점이 있죠. 기자들이 현장으로 출근해 현장에서 퇴근하고, 대부분의 일은 메신저로 왔다 갔다 하는, 심지어 부장들도 부원을 볼 일이 거의 없는 상태예요. 더군다나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더 소통이 어려워졌죠. 그래서 날카롭게 대립하는 의견을 어떻게 조정해나갈 수 있느냐가 심각한 고민이에요. 그래서 최근에 토론조직위원회까지 만들어서 (담당자를) 인사 발령까지 냈어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의견을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였죠.”
근래에 언론사마다 각각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이른바 세대 간 격차나 문화적·이념적 갈등 요소도 이런 고민 안에 포함돼 있는 듯했다.
“그런 새로운 세대의 생각과 의식이 조직 속에서 이야기가 되면서, 조직 내에서 잘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신문의 전통 독자가 불편해하실 수는 있겠지만, 한겨레의 창간 정신이라는 게 그렇게 굳어있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 이런 현상이 시끄럽고 불편해 보이지만, 이런 역동성이 오히려 한겨레를 살릴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하지 못해서 젊은이들이 떠나버린다든지, 기존에 하던 대로 윗세대의 시각으로 계속 만든다든지 그러면 한겨레가 오히려 죽는 거죠. 그래서 이 문제를 차라리 빨리 겪는 게, 빨리 겪고 빨리 업그레이드해나가는 게, 우리한테는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진통이라면 대충 덮고 뭉개기보다 바깥으로 드러나게 해서 내부 혁신의 힘으로 빠른 변화를 기하는 게 훨씬 낫다는, 그 연배에 도달한 현직 언론인에게선 선뜻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던진 이봉현 실장 겸 논설위원. 그렇다면 그의 저널리스트로서의 여생은 어떤 모습이고 싶을까 궁금해졌다.
“지금 맡은 이 일을 조금 더 하고, 시스템이 돌아가면, 저는 취재 현장에 가든지 해서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제가 사실은 오래전부터 기후변화와 저널리즘을 주제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이 일을 맡게 되면서 잠시 미뤄뒀어요. 이제 에너지 전환 국면에 들어갈 테고 모빌리티 변화도 있을 테고, 이 주제에 딸린 일들이 매우 많아요. 우리 회사에는 기후변화팀도 있으니까 그들을 북돋아 주는 일도 있을 테니, 기후변화라는 키워드로 앞으로의 언론인 생활을 이어가려고 해요.”
이런 꿈을 이야기할 때 그의 얼굴엔 옅은 웃음이 번졌다. 물론 난해하고 격한 주제를 이야기할 때도 줄곧 온화하고 담담한 표정과 말투를 유지하는 성품을 가진 그이기는 했지만, 책임감 이상의 희망을 품은 자의 얼굴은 이렇게 화사해지는가보다 싶어 재미났다. 그는 이 대담이 출판될 시점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으로 발령받았다고 알려왔다. 저널리즘책무실장은 후임자를 찾을 때까지 당분간 겸직하기로 했단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결국 ‘1년 반’을 채워 저널리즘책무실장으로서 봉사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의, 아니 바라건대 그 이상의 의지와 지혜를 가진 후임자가 나서서 그보다 더 튼실하게 한겨레의 책무성을 조금씩 높여나가는 일에 매진해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