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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언론에 정파성을 허하라?] 프랑스 언론은 어떻게 의견을 표명하나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1-04-08

영미 언론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보도 관행을 지닌 데 반해 프랑스 언론은 오래전부터 사실과 의견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형태를 띠어 왔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프랑스에는 최근 정파적이고 주관적인 매체가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의 특징과 변화의 흐름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전통적으로 프랑스 신문은 정치적 이념이나 의견을 중시하는 오피니언 저널(Journal d'opinion)이 주류였다. 영미 신문과 달리 프랑스 신문은 뉴스 중심의 정보 저널리즘이라기보다는 해설과 정치적 의견에 중점을 둔 경향 저널리즘에 충실했던 것이다.1) 그러다 1880년대에 이르러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뉴스 보도를 중시하는 영미식 저널리즘이 프랑스에서도 확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이 새로운 저널리즘 관행에 대한 프랑스 저널리스트들의 저항은 상당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저널리스트인 에밀 졸라(Emile Zola)는 1888년 쓴 <저널리즘>이란 제목의 논평에서 “언론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변화는 전방위적이며 어마어마하다. 정보가 조금씩 저널리즘을 변형시키고, 토론을 위한 기사를 죽이고, 문학비평을 축소시키고, 날마다 더 많은 지면을 통신사 기사에, 크고 작은 뉴스에, 조서와 인터뷰에 할애한다. 문제는 즉각적으로 독자를 정보통으로 만든다는 것이다”라면서 당시의 상황을 통탄했다(Zola, 1888.11.24). 문학적 글쓰기, 수사학적 논증을 중시했던 프랑스 저널리즘 전통에 비춰보면, 사실 중심의 단순 보도나 속보로 지면을 채우는 새로운 관행이 그리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2)

 

이처럼 오피니언 언론은 잘 확립된 프랑스 전통의 일부라 할 수 있다. 20세기 초까지도 저명한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예를 들어, 1871년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쥘 발레스(Jules Vallès)가 창간한 르크리뒤푀플(Le Cri du Peuple), 같은 해 프랑스 대표 정치가, 레옹 강베타(Léon Gambetta)가 창간한 라레퓌블릭프랑세즈(La République Française), 1904년 정치가이자 대표적인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Jean Jaurès)가 설립한 뤼마니테(L’Humanité) 등이 있다.

 

정치인의 주도로 나오는 신문이나 정당에 직접 연결된 신문 외에도 정치적 감수성이나 흐름을 전달하기 위해 창간된 신문은 무수히 많다.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가 창간한 리베라시옹(Libération)을 비롯한 68혁명의 여파로 등장한 수많은 좌파 신문이 그런 사례라 할 수 있다.

 

저널리즘을 민주적 토론을 위한 행동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면 이는 논리적인 현상이다. 파비앙 그랑종(Fabien Granjon) 파리8대학 언론학 교수는 “사회적 대결의 수준은 높지만 중대한 혁명적 위기를 맞닥뜨리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 전쟁은 항상 상징 투쟁, 정치적 입장의 투쟁이며, 한 사회가 겪고 있는 제도적, 이념적, 그리고 정당성의 위기의 정도에 따라 그 전쟁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 행위자들에게는 대의적 자율성의 수단을 얻기 위해 자신들이 옹호하는 계층이나 특권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콘텐츠를 대중이 읽고,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라고 분석한다.

 

 

프랑스에는 정치적 감수성이나 흐름을 전달하기 위해 창간된 신문이 무수히 많다. 장 폴 사르트르가 창간한 리베라시옹(Libération)도 그중 하나다. Ⓒ연합뉴스

 

 

미디어 전문가 장-마리 샤롱(Jean-Marie Charon)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정파성 강한 저널리즘 모델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치적 감수성을 유지하던 지역 일간지와 전국 일간지를 중심으로 탈정치화가 진행됐다(Rahmil, 2020.6.24).


여전히 존재하는 프랑스 저널리즘의 전통

 

그런데도 프랑스 저널리즘의 전통은 지속해서 계승됐다. 지배적인 미디어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편집 논조를 가진 매체들이 이러한 의견 저널리즘의 계보를 잇고 있다. 1995년 대파업을 다룬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불만으로 1996년 등장한 르몽드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나 미디어 비평 기관인 아크리메드(Acrimed)의 간행물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상에 관한 토론을 중시하는 문학 및 지적 저널리즘의 전통을 잇는 매체들도 있다. 에스프리(Esprit), 르데바(Le Débat), 뮐티튜드(Multitudes), 무브멍(Mouvement)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아울러 기사 작성 방식에도 그런 유산은 일부 남아있다. 영미 저널리즘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보도 관행이 일반화돼 어떤 경우든 저널리스트들에게 자신들의 견해나 의견을 표현할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다(Chalaby, 1996). 결국 영미 저널리즘에서 뉴스 보도의 형식은 ‘사실’과 ‘의견’이 분리돼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영미 신문에서 뉴스와 의견은 각기 독특한 두 장르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반면 프랑스 신문 기사의 전통은 사실과 논평의 분명한 선이 없고 자유롭게 뒤섞인 형태인데, 이처럼 사실과 저널리스트의 의견을 혼합하는 방식은 많은 프랑스 언론들이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임종권, 2007; 성일권, 2009).

 

다만 장-마리 샤롱에 따르면, 프랑스의 젊은 저널리스트들은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보다 사실과 맥락, 해설을 전달하고 독자들이 상황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TV와 달리 신문의 경우,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저널리즘 행위, 즉 르포 기사나 탐사보도 등에 더욱 집중하고 사설이나 칼럼을 통한 의견 표출은 그리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Charon, 2018.10.18).


 

2018년 10월, '의견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미래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서 미디어 전문가 장-마리 샤롱은 프랑스의 젊은 저널리스트들은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보다 독자들이 상황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출처 - pressclub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새로운 오피니언 언론의 부상

 

최근 몇 년간 새롭게 등장한 매체들을 살펴보자면, 프랑스의 의견 저널리즘은 명맥을 유지하는 단계를 넘어 부흥기에 들어선 듯하다. 이러한 경향을 촉발한 것은 2017년 9월 25일 르몽드의 자유 발언대에 게재된 ‘새로운 시민 미디어 선언문’이었다. 이 선언문은 시민단체와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모여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난 새로운 대안 매체의 창간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는데 이 선언문이 발표된 이후 많은 사설, 기사 또는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서 오피니언 언론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역동성은 이듬해에도 지속돼 ‘정파적이고 주관적’인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Porro, 2019.3.21). 대표적인 사례가 르메디아(Le Média), 랭코렉트(L'Incorrect), 라프랑스리브르(La France Libre) 등이다.

 

2018년 1월 15일, ‘인터넷에서 최고의 시청각 뉴스 매체’가 되겠다는 야망으로 등장한 르 메디아는 프랑스 극좌파의 수장, 장 뤽 멜랑숑(Jean-Luc Mélenchon)의 지지자들이 론칭한 웹TV(web TV)다. “인본주의자, 환경주의자, 페미니스트, 반인종주의자”라는 슬로건을 걸고 등장한 이 대안 미디어는 지배계급을 대변하는 주류 미디어에 반발하며 ‘좌파의 공론장’을 되찾겠다는 목적으로 창간됐다. 초기에는 동영상 평균 조회수 12만 건을 기록하는 등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현재는 약 2만 뷰가량으로 떨어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정파적 매거진’이라는 딱지를 거부하는 랭코렉트는 마린 르펜의 조카이면서 극우정당의 기대주였던 마리옹 마레샬-르펜(Marion Maréchal-Le Pen)의 전 협력자들이 참여하는 월간지로 2017년 9월 신문 가판대에 등장했다. 우파와 극우파 간의 화해를 목적으로 창간된 이 매거진의 첫 번째 호는 거의 12만 부가량의 판매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판매 부수가 훨씬 줄어든 상황이지만, 여전히 극우파들 사이에서는 영향력 있는 매체로 자리하고 있다. 르메디아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한 웹TV, 라프랑스리브르는 2018년 2월 6일, 극우 논객이면서 트럼프 지지자인 앙드레 베르코프(André Bercoff)와 질-윌리암 골드나델(Gilles-William Goldnadel)이 론칭했다. ‘저항 미디어’로 주류 미디어가 숨겨 놓은 정보를 다루며, 이른바 ‘교정정보’3)를 제공하는 온라인 매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라프랑스리브르는 극우 성향의 사람들을 초대해 프랑스 정치에 대한 거침없는, 때로는 불쾌하기까지 한 입담을 들려주며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매체를 통해 주류 매체에서 찾기 힘든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겠다는 시도 자체는 환영받을 만하다. 그런데 정파적인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공개 토론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신생 매체의 확산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언론의 소유 구조, 정치 환경의 변화 및 웹의 등장으로 인한 디지털 언론의 성장 등이 이러한 정파적 오피니언 언론의 부상에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프랑스 대부분의 언론은 거대 재벌이 소유하고 있고, 더군다나 이들은 미디어가 아닌 다른 분야의 재벌들이다.4) 이는 결국 언론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기성 언론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불신은 기성 언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언론으로 독자의 발길을 이끌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요인은 정치 환경의 변화에 있다. 미디어 역사학자 파브리스 달메이다(Fabrice d'Almeida)는 이러한 현상이 특히 프랑스 정치 세력의 우경화와 연관돼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우파 담론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그들은 현재 시스템에 반대하는 여러 형태의 포퓰리즘과 결합돼 있다. 경제적 불평등과 세계화, 유럽의 개방성 등의 배경에 대중에 대한 엘리트의 배신이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다 보니 보호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이 훨씬 더 큰 목소리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Rahmil, 2020.6.24).


필요한 건 ‘복수의 의견 저널리즘’

 

급진주의와 심화하는 정치적 갈등에 기반을 둔 이러한 오피니언 언론이 지금은 번성하는 듯 보이지만 그 지속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엄격한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매체의 유료 구독자 수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메디아파르트(Mediapart)의 구독자 수는 최근 22만 명을 넘어섰다. 2019년 기준으로 메디아파르트의 디지털 유료 구독자 순위는 스포츠 일간지 레큅(L'Equipe), 대표적인 정론지 르몽드(Le Monde)에 이어 세 번째를 기록했다. 거대 일간지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인터넷 신문이 ‘믿고 보는 매체’라는 평판을 얻으면서 명실공히 프랑스 최고의 독립 언론으로 우뚝 선 것이다. 주류 언론의 역할 또한 여전히 중요하다. 알메이다는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테러, 노란 조끼 시위 또는 팬데믹과 같은 전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해와 해독을 필요로 하기에 주류 미디어는 여전히 중요하다. 분명히 파괴적인 오피니언 미디어의 부상에 직면해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르몽드와 같은 정론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Rahmil, 2020.6.24).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이라도 진실을 아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므로 이를 반드시 존중할 것’을 자사 언론인의 필수 임무 중 하나로 정해 놓은 르몽드나 자신들은 ‘근원적 민주주의자’들이고, ‘저널리스트의 역할은 민주주의를 더욱 심화시키고 전진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믿는 메디아파르트, 이 매체들에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의견 표명이나 포퓰리즘에 기대려는 시도 따위는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불신은 프랑스 사회에서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이러한 불신의 뿌리에는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소유 구조가 존재하겠지만, 동시에 대다수의 언론이 다양한 의견을 들려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장-마리 사롱은 “언론에 노출되는 의견들은 대부분 대동소이하거나, 특정 부류의 입장만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치 자신들의 의견이 대다수 시민의 의견인 양 둔갑시킨다”고 주장한다(Charon, 2018.10.18). 결국 언론이 정작 들려줘야 할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파적 오피니언 언론의 부상에 프랑스 기자협회는 2018년 10월, “의견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미래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당시 토론회에 참가했던 한 저널리스트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만약 우리가 단수가 아닌 ‘복수의 의견 저널리즘(Journalisme d’opinions)’을 실천한다면 의견 저널리즘은 미래가 있다. 우리가 의견이라고 말할 때는 통상 정치적 의견만 떠올리지만, 실제로 의견은 정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문제, 이민 문제, 환경문제, 인권 문제 등을 비롯해 수없이 다양한 영역에 의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언론에서 그런 의견들은 많지 않을뿐더러 진짜 토론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만약 하나의 의견, 혹은 다수파의 목소리만을 대변하는 의견 저널리즘이라면 그건 포퓰리즘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단수가 아닌 복수의 의견 저널리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5)

 

 

 

 

 

 

 

 

 

 

1) 프랑스에서 직업으로서의 저널리즘은 19세기 말이 돼서야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여 그 이전까지 저널리스트는 신문을 생계 수단을 삼기보다는 주로 문학과 정치계에 입문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이처럼 신문이 정치와 문학의 틀 속에서 발전해 나가면서 이후 프랑스 르포의 문학적 특성이나 비평 저널리즘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의견도 있다(임종권, 2007).

2) 19세기 말, 영미권의 정치적 투쟁은 의회의 양당주의에 국한되어 있었기에, 의회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던 영미권의 저널리스트들은 두 정당을 공평하게 다룸으로써 중립을 지켜야 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에서부터 극우 보수인 왕당파에 이르기까지 정치 스펙트럼이 다양해 정치적 갈등이 그 어떤 사회보다 격렬했다(임종권, 2007). 이처럼 서로 다른 정치 환경도 프랑스 저널리즘의 특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3) 교정정보(reinformation)는 극우 세력이 주류 언론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용어다. 

4) 일례로 대표적인 보수 일간지 르피가로(Le Figaro)의 대주주는 전투기 제조사인 다쏘(Dassault)이며, 경제지 레제코(Les Echos)의 대주주는 루이비통(LVMH)이다. 

5) , Press Club de France, 2018.10.18, https://pressclub.fr/18-10-18-le-journalisme-dopinion-est-il-lavenir-de-la-pr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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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진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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