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1년 봄. 당시 대한민국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4월 26일에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중 백골단이라 통칭하던 사복 체포조의 쇠 파이프에 맞아 숨졌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줄곧 수세에 처해 있던 권위주의 정권이 1989년의 공안정국을 거쳐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공세로 전환한 결과물이었다. 여러 청년, 학생들이 자신의 몸에 불을 댕겨 저항했다. 잘할 줄 아는 것이라곤 ‘공작’밖에 없었던 정권은 그런 죽음의 배후에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급기야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해냈다. 고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고 지목된 강기훈 씨는 1991년 7월에 자살방조죄로 기소된 후 1992년 7월에 유죄가 확정됐다.
이렇게 1991년은 잊혔다. 강기훈 역시 잊혔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11년, 박기묵 CBS 스마트뉴스팀 기자가 <대필 공방 20년, 유서는 말한다>라는 4부작 심층 보도물을 내놓았다. 기대만큼 큰 반향을 얻진 못했다. 다시 기억해내고 싶은 사람이 많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당시 정권의 분위기에도 안 맞았을 게다. 때마침 영화 <도가니>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자 ‘도가니법’이라 불리는 법까지 제정되는 걸 보고, 박기묵 기자는 문학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해서 펴낸 책이 《화월(火月): 1991년 유서 대필 사건의 실체와 진실》이다. ‘소설 쓰냐’는 말이 가장 모멸적으로 들리게 마련인 기자가 자신이 취재했던 사건의 실체를 대중들에게 더 넓게 알리기 위해 선택한 게 장편소설이었던 셈이다.
“강기훈 씨가 그때 언론에 대해서 너무 안 좋은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겨우겨우 설득해서 했는데, 제 보도물이 성과를 못 냈어요. 그 죄책감이 너무 크잖아요. 이분이 그 당시엔 더 몸이 안 좋으신 상태였거든요. 회사에서도 저한테 두세 달 취재하게 해줬는데 이슈가 안 됐고, 그래서 제 죄송함 때문에, 이걸 어떻게든 알리고 싶어서 실화 소설을 쓰게 된 거죠.”
박기묵 기자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계기 가운데 하나였던 유서 대필 사건 보도와 책을 살펴보면서, 내심 놀랐던 건 애초에 그가 입사 후 고작 1년 된 ‘햇병아리 기자’로서 해당 심층 보도를 수행했다는 사실이었다. 1991년을 현장에서 경험했던 세대도 아닌데, 이 처참히 묻혀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일에 뛰어들다니.
“지금 그 사건이 일어났다면 엄청난 사건으로 받아 들여졌을 텐데, 우리 세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걸 우리 세대 그리고 밑에 세대한테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무척 컸어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는 건가, 그런 심정이었죠.”
보도를 통해 사회적 반향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다시 그로 하여금 매일 퇴근 후 세 시간을 집필에 할애하도록 했다. ‘2년 차 막내 기자가 소설이나 쓰고 있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그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정작 주변 선배들은 출판 시장이 선뜻 반기지 않는 이 책이 결국 빛을 볼 수 있도록 십시일반의 조력자가 돼줬다. 그리고 박기묵 기자의 죄책감은 2012년 재심 결정을 거쳐 2015년에 대법원 무죄 판결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됐던 것 같다.

그에게 맡겨진 디지털 실험
이제 입사 후 10년을 넘긴 비교적 젊은 기자지만, 그의 이력은 꽤 흥미롭다. 지금은 CBS 체육팀에 배속돼 있는데, 전문 분야는 인터랙티브·데이터 뉴스다. 2017년에 <안산의 눈물> 보도로 한국방송대상 라디오 부문 작품상을 받았고, 2019년엔 인터랙티브 뉴스인 <임정 27년의 역사> 보도로 한국방송기자클럽 올해의보도상 디지털뉴스 부문 우수상도 받았다. 2020년에는 <대한민국 플라스틱 보고서>로 팩트체크 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요컨대 지난 10년간 거쳐 간 주요 직무마다 업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다. 게다가 2017년에 언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다수의 저널리즘 분야 논문을 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강의도 맡고 있다. 상당히 실력 있는 기자로구나 싶으면서도, 보도와 저술, 그리고 학술과 교육에 걸친 그 만만찮은 이력은 보통 의욕(혹은 솔직한 표현으로, 욕심)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할까요,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하면 많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저연차 때는 미래가 조금 막막했어요. 나중에 연차가 차서 내가 뭘 해야 하지? 신입 때는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선배들 모습을 보니까 나중에 회사 간부급이 되지 않으면 결국 또 다른 삶을 찾아야 하더라고요. 물론 기자 소양을 계속 가지신 분들, 대기자나 전문기자가 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학부를 정치외교학을 해서 언론 쪽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언론 분야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쌓으면서 일도 같이해야겠다고 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거죠. 다행히 좋은 지도교수님들을 만나게 되면서 석사를 거쳐 박사학위에 대학 강의까지 연결되게 된 것이고요.”
선배들의 현재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했던, 말하자면 꽤 ‘올된’ 신입 기자였던 셈인데, 비뚤어진 마음에서 보자면 ‘주는 것 없이 미울’ 수도 있었을 그에게 혹여나 주변으로부터 시샘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제 분야가 인터랙티브, 데이터 저널리즘이고, 기존 것과 새로운 걸 계속 연결 짓는 시도를 하는 거였어요. 회사에서 그런 걸 요구하는 자리에 저를 배치했죠. 스마트뉴스팀, SNS팀 등등. 그래서 재량이 좀 생길 수 있었죠. (아마도 회사가) 지식과 현장을 융합해보자는 취지로 제가 재량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것 같아요. 휴가, 반차, 혹은 야간 근무를 하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회사가 배려해주기도 했고요.”
요컨대 주는 것도 있었고 받는 것도 있었던 관계였다는 건데, 아마도 때마침 디지털 저널리즘 바람이 불었고, 2014년에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국내 저널리즘 업계에도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만큼, 의욕적이고 재주 있어 보이는 이 젊은 기자에게 회사는 다양한 디지털 실험을 맡겼던 듯하다.
“제가 2010년에 노컷뉴스로 입사했는데요, (CBS는 라디오 기반이기 때문에) 뉴미디어 분야는 노컷뉴스가 담당해왔어요. 제가 인터랙티브 뉴스나 데이터 저널리즘, 그리고 팩트체크 이런 걸 다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해온 셈이죠. 회사에서 저를 믿고 일을 맡겼던 건데, 기회와 시간을 제게 준 만큼 저도 그에 부응하게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 안 하고서 학업을 하겠다 뭐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을 했고 회사에서도 인정을 해줬습니다.”
디지털 저널리즘을 개척하는 임무를 부여받았고, 대학에서 공부와 연구를 하며 현장과 접목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여러 수상 이력으로 증명되듯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현재 배치된 곳은 CBS 체육팀이다. 유력한 출입처를 두루두루 경험한 후 이른바 간부급의 편집 책임자에 이르는 길을 선택한 (혹은 회사에서 배려한) 것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디지털 저널리즘 분야에서 흔히 목격되듯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전문성을 버리고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순환보직 경로를 걷게 된 것인지 헷갈렸다.
“제가 디지털 쪽에서 시작했고, 계속 그것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는 있어요. 근데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회사에 제 것만 요구할 수는 없죠. 그런 곳에서 회사 내 불화가 생기는 거잖아요. ‘나는 이 출입처만 있겠다. 난 저기엔 안 나가겠다’ 할 수 없죠. 내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자들이 다른 기초적인 직무를 메워주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부서에서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이게 (자신이 해온 디지털 저널리즘 역량이) 계속 필요하다는 일종의 증명을 회사에 해보여야 하는 거죠. 이 기술이, 이 보도 방법이 일회성으로 사장되는 게 아니라, 독자들에게 수요가 있고 (디지털 저널리즘으로 특화된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도 그걸 적용시켰을 때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는) 그걸 계속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물론 지금 그게 제 숙제인데 제가 그걸 못하고 있긴 합니다. (웃음)”
‘기초를 깔아주는’ 보도가 필요한 이유
많은 언론학자가 그리고 언론계가 이구동성으로 ‘전문성 강화에 답이 있다’고 이야기했고, 나 역시 그런 주장을 줄곧 펼쳤다. 하지만 그런 주문이 현장에는 잘 먹히지 않았다. 한때 도입했던 전문기자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거나 회사 내에서 비주류적 지위를 가진 ‘장식품’으로 전락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 언론 기업 내부의 주류는 여전히 이른바 ‘정경사(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출입처를 두루 거친 제너럴리스트의 몫이다. 편집 방향을 결정하고, 현장 취재를 지휘 및 취합해 보도를 수행하려면 결국 그런 경험을 누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한국 언론이 거의 모두 여전히 정경사 위주의 일반 보도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박기묵 기자는 이런 문제를 일종의 ‘기회 다툼’과 ‘조직 내 협업’의 틀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 분야만 파겠다 하면, 다른 동료들이 다른 분야를 메워줘야 해요. 여기서 회사 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이걸 잘 풀어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가 이것만 하겠다고 하지 않고 다른 것도 해줘야 합니다. 다른 것도 열심히 해줘야 구성원들의 인정을 받는데 그걸 하지 않고 특정 분야만 파겠다 해서 갈등이 생기고 결국 한 사람한테 전적으로 무얼 맡기는 걸 (회사로서는) 주저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선호하는 분야와 기피하는 분야가 있을 수밖에 없고, 만약 누군가가 다른 이들도 모두 선호하는 분야를 붙잡고 놓지 않겠다고 하면, 기피하는 분야를 떠맡아야 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표현을 내 식으로 바꿔 말하면, 기피하는 분야도 맡아주면서 구성원의 신의를 얻는 것도 중요하고, 그 와중에도 그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이 살아나도록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성을 살리는 일과 조직의 운영에 도움이 되는 일 두 가지를 모두 잘해보려는 대단히 모범적인 태도다. 하지만 아무리 순환보직을 통해 자원 독점의 불만을 해소하고 화합을 이뤄낸다고 해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이른바 ‘꿀 보직’을 거쳐 간부급으로 향하는 탄탄대로를 걷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결국 갈린다. 개인의 이기심을 억눌러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회사의 이득은 모질게 말하자면 구시대적인 일반 저널리즘에 고착함으로써 얻어지는 이득일 뿐이다. 예컨대, 박기묵 기자가 두 번씩이나 힘줘 말한 ‘누군가 메워줘야 하는 다른 분야’란 게 무얼까?
“제가 있는 체육팀의 예를 들자면, 매일매일 경기가 있단 말이에요. (…) 매일매일 경기 기사만 쓰면 늘 경기 기사만 나오지 기획 기사 같은 건 안 나오는 거죠. 그럼 누군가는 그런 기획을 하기 위해 시간을 따로 빼야 하고, 그걸 위해 투입되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취재 방향도 달라야 하죠. (…) ‘난 정치 전문기자가 돼서 매일 국회의원만 만나고 다니겠다’, 뭐, 좋죠. 그래서 양질의 인터뷰를 따면 되죠. 하지만 누군가는 그걸 위해서 정당의 아침 브리핑, 보도자료, 이런 것들을 처리해주고 있다는 거죠.”

말인즉슨, 모름지기 모든 보도는 ‘경기 기사’나 ‘정당 브리핑 기사’처럼 그날그날의 기초를 깔아주는 보도에 가끔씩 ‘기획 기사’처럼 시간과 노력이 별도로 투여돼야 하는 보도가 결합돼야 하는데, 만약 누군가가 기획 기사처럼 ‘폼 나고’ 실력이 쌓이는 보도만 하겠다고 고집하면, 폼도 안 나고 실력도 안 쌓이면서 그냥 부품으로 소모되는 듯한 보도를 감당해줘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는 거다. 조직 운영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수긍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다시 또 질문이 나선다. 그런 ‘기초를 깔아주는’ 보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무얼까?
“언론사는 논조라는 게 있어서 자기 기자를 현장에 투입해서 얻은 (즉, 언론사의 편집 방향에 따라 확보한) 사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 또 무엇보다 우리 취재니까 우리가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써야 한다는 태도가 있는 거죠.”
들어보면 그 자체로는 틀린 게 없는 말이다. 스스로 취재한 바에 바탕을 둬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직접 취재하지 않고 남의 것을 대충 버무려 쓰는 기사도 넘쳐나고, 직접 취재한 기사라는 게 고작해야 (매일 아침 관례처럼 벌어지는 정당 취재 기사처럼) 똑같은 취재원에게서 나온 기사라는 걸 고려해보면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사의 차별성을 두고 경쟁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그 취재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두고 경쟁이 벌어진다. 게다가 똑같은 취재원에게서 나오는 이른바 ‘발생성’ 기사인 만큼 차라리 그 보도가 서로 똑같기라도 하면 내용을 접하는 입장에서 헷갈리지는 않을 텐데, 똑같은 발언이 언론사 보도마다 (심지어 실제 발언과도) 영 다른 의미로 뒤바뀌도록 하는 게 진정한 ‘논조’의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맞습니다. 비효율적이에요. 아침에 그 기자들, 50명, 100명 되는 기자들이 국회에 와서 정당 브리핑을 매일 아침마다 챙겨야 한다는 거, 정말 비효율적이죠. 근데 이게, 정치 분야만 일단 떼서 이야기하면, 하나의 공생관계처럼 돼버렸어요. (정치인으로서는) 아침에 무슨 발언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기자들은 그 발언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그렇게 돼 버린 거죠. (…) 다른 출입처도 마찬가지예요. 보도자료를 놓고 다 똑같은 글을 쓰는. (…) 이상적으로는 말씀하신 그게 딱 맞죠. (…) 하지만 기사를 각 언론사에서 언론사 사이트나 종이신문을 통해 소비하는 게 아니라 포털을 통해 소비하다 보니까 이런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도로 가는 거죠. (…) 이렇게 반복되다 보니 저널리즘에 관련된 ‘이상’을 얘기하고 모델을 얘기해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고요.”
독자의 응원을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
이렇게 이야기는 다시 포털 의존적인 국내 저널리즘 산업 구조의 문제로 돌아온다. 국내 언론사가 출입처 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순환보직 체계를 바꾸지 못하는 것도, 디지털 환경에 맞는 품질 높은 저널리즘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결국 그런 선택을 하는 게 더 큰 이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른 무엇보다, 포털에 종속된, 아니 이제는 포털과 함께 사는 게 유리하다는 걸 체득한 언론 기업이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포털, 좋습니다. 광고도 깔끔하고, 기사 레이아웃도 좋고. 개발자들이 많고 그만큼 디자인도 좋아서 독자들이 읽기 편하죠. 근데 그런 포털 환경에서는 인터랙티브 기사라든지 (언론사가 디지털 저널리즘을 위해 개발해낸) 이런 것들이 적용이 안 되니까 그런 콘텐츠를 볼 수가 없는 거죠. (…) 제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저희가 시도한) 디지털 콘텐츠를 보여주면 ‘처음 봤다’고 합니다. (저널리즘 혁신 사례로 유명한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 스노우폴(Snowfall)도 처음 봤다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만들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여기에 답이 있는데요) 만들고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기 때문인 거죠.”
맞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자 전달 내용과 전달 매체 사이의 단단한 결합이 붕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클루언(McLuhan)의 말처럼 ‘매체가 곧 내용’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내용을 만드는 자는 그 내용을 자신이 의도한 매체 형식을 통해 전달해야 의도가 구현된다. 그런데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는 포털이 제공하는 형식에 내용을 맞추도록 한다. 여기서 국내 각 언론사의 디지털 저널리즘 실험은 갈 곳을 잃는다. 결국 국내 디지털 저널리즘은 (상대적으로 깔끔하지만 고유의 논리로 표준화된) 포털을 통해 최대한의 트래픽을 얻어내는 쪽으로의 저질화되는 길을 걷는다. 그런데 이건 포털의 잘못일까, 언론사의 잘못일까, 아니면 기자 개인의 잘못일까, 혹은 그런 소비에서 도무지 벗어나려 하지 않는 독자의 잘못일까? 박기묵 기자는 어렵사리, 비록 모두의 잘못이 복합적으로 얽힌 것이지만, 가장 큰 책임은 언론사와 기자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밝힌다.
“그래도 중요한 건 독자들이 콘텐츠를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인데, 그게 가능하려면 (인정해줄 만한 콘텐츠를) 계속 보여줘야 하겠죠. 우리는 계속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있고, 당신들에게 그것을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홈페이지를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 한 곳에 이런 것을 오랫동안 쌓아왔다, 그러니 응원해 달라, 이런 취지가 필요할 것 같아요. (…) 저는 머니투데이 <남기자의 체헐리즘>이 정말 좋아요. 그분이 그걸 계속할 수 있는 것도, 그분의 의지도 있지만, 독자들의 응원 덕분인 것 같거든요. 처음 체헐리즘 기사를 봤을 때, 그냥 ‘한다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걸 통해 독자와의 소통을 이뤄낸 거고, 이제 저도 즐겨보게 된 거죠. 그렇게 응원을 끌어내는 방식(이 핵심이라고 봐요).”
시인을, 그리고 같이 변화하는 세상을 꿈꾸며
박기묵 기자와의 대화 속에서는 줄곧 혁신자와 적응자 사이의 긴장이 느껴졌다. 끊임없는 학습과 독자와의 새로운 소통으로 양질의 디지털 저널리즘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적인 모습이었다가, 현실의 한계를 만들어내는 구조와 그에 적응해 살아남고자 하는 조직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현실의 기자들이 행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관습을 납득해 보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가, 다시 또 그 안에서도 개인의 의지와 선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열고자 하는 모습이 중첩돼 나타났다.
“인터넷을 통해 본 좀 오래된 글귀 중에, ‘내가 기자 초년생이었을 때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그러지 못했고, 10년 차였을 때는 우리나라를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그러지 못했고, 20년 차에서는 그래도 우리 회사를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가정조차 지키지 못했다’라는 게 있었어요. (…) 저도 기자가 되고자 했을 때는 제가 쓴 기사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제가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불합리, 불공정 이런 걸 바꿀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언론이라고 생각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 그걸 알게 되면서, 저 역시도 이제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나는 정말 이 일을 재밌게 해보는 거. 누구의 시선으로부터도, 책임감에서도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다른 하나는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걸 더 빨리 찾아 나서는 거. (웃음)”
이런 현실 자각의 시간을 지난 이후로도 두 갈래 길 위에서 고민했던 것 같다. 어차피 기자로서 세상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면, 그냥 이 일이 좋으니, 그를 통해 해보고 싶은 걸 남 눈치 안 보고 하거나, 재빨리 이 일을 접거나. 하지만 그는 여기서 또 한 가지의 조건, 즉 그런 선택조차도 쉽사리 하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적 제약을 무의식적으로(?) 토로했다. ‘만약 제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자녀가 없다면’이라는 조건문의 형태로 말이다. 그렇다. 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생활인이다. 그리고 성실한 생활인은 당연히도 ‘제 멋대로’ 그리고 ‘제멋대로’ 살 순 없다. 그런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과 현실의 제약 속에서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얼까 물었다.
“웃기지만, 제 원래 꿈은 시인입니다. (…) 그냥 시가 좋아서, 그냥 술 마시고 시 쓰는 그런 풍류 시인, 그게 최종 목표기는 해요.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내 시집을 하나 내는 거. 하지만, 그전에는, 이 길대로 계속해보고 싶어요. 이 실무를 하면서 동시에 제가 가진 이 실무지식을 학문과 최대한 연결시킬 수 있는, 그리고 학생들에게 (…) 지금 바뀌어 가고 있는 이 저널리즘을 이야기해주면서, 이들이 다시 현장에 투입돼서 같이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소망입니다.”
혁신자였다가, 적응자였다가, 소박한 생활인이었던 그가, 이제 ‘같이 변화하는’ 교육과 훈련에 대해서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게 미래의 저널리즘을 향한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짐을 벗어 던지고 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내고 싶은 시집에 대한 꿈 덕분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