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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사만평 <장도리>의 작가 박순찬 화백이 2021년 5월 24일 자 만평을 끝으로 연재를 마치고 퇴사했다. 1995년에 시작했으니 무려 26년을 이어온 만평이다. 누군가 또 다른 탁월한 만평가가 등장해서 그의 뒤를 이을 수도 있겠지만 다수 독자에 회자되는 일간신문 만평 작가로서는 사실상 마지막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도리>가 사라진 경향신문 지면.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특별한 속사정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습니다. 어차피 언론사들은 바뀌고 있고, 기존의 종이신문에 만화를 그리는 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고. 만화는 종이에 연재하는 것보다는, 지금은, 인터넷에 연재하는 게 훨씬 더 독자들한테 더 쉽게 다가가는 방법인데, 굳이 옛날 방식으로 제가 만화를 그릴 필요도 없다는 거. 그게 가장 큰 이유인 거죠,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그거죠.”
그러고 보니, 경향신문 ‘지면’이라는 표현을 관습적으로 썼지만, <장도리>를 사랑하던 독자들의 대부분이 종이신문을 통해 <장도리>를 보진 않는다. 최근까지도 <장도리> 애독자들은 그가 만평을 공개하면 곧바로 ‘내일 자 장도리’라는 제목을 달아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퍼 나르곤 했다. 경향신문을 종이로 구독하거나 열독하는 방식으로 <장도리>를 접하는 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 글 속에 삽입된 디지털 이미지로, 혹은 남들이 올려준 하이퍼링크를 타고 <장도리>를 보며 무릎을 쳤다.
“지금도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를 사람들이 신문을 통해서 안 보고 다른 방식을 통해서 보는데 그게 좀 웃긴 거예요. 그럴 거면 굳이 왜 신문에 연재하느냐 이거죠. 어차피 신문으로 보는 게 아닌데. 괜히 중간에 뭘 거쳐야 하고 이런 게 좀 불편해 보이기도 하고. 종이신문에 게재되는 날은 그다음 날인데 그 전날에 독자들이 돌려보는 그런 것도 좀 이상하잖아요. 뭔가 맞지가 않아요. 상식적으로. 이건 뭔가 잘못된 게 있다는 거잖아요.”
그는 ‘웃긴다’, ‘불편하다’, ‘이상하다’라는 표현을 연속으로 썼다. 나도 그에 공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정작 그는 웃지는 않았다. 물론 나의 웃음도 쓴웃음이었긴 했다. 내용과 형식, 혹은 겉으로 공표된 것과 실제로 행해지는 바 사이의 불일치. 아마도 그는 그것을 부조리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물론 종이책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종이신문 역시 하나의 매체 형식으로서 완전히 무가치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이책과는 달리 이제는 종이신문을 통해 신문의 내용을 접하는 독자들이 거의 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내일 자 장도리’가 ‘오늘의 온라인’을 통해 퍼지는 웃지 못할 행태가 일상화됐다. 박순찬 화백도 나도 “뭔가 어긋나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 입장에 있는 기자들은 여전히 기사를 쓴다. 그런데 그는 왜 만평 연재를 중단하고 아예 퇴사까지 한 것일까?
“(지면 편집을 담당하시는 분들이) 제가 휴가를 가면 되게 힘들어하더라고요. 제 만평을 위해 떼어 둔 지면을 메워야 하는데 그 빈 지면만큼의 분량을 가진 글을 어디서 하여간 구해서 메워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다 하더라고요. 굳이 그 지면을 다른 글로 메우지 않으려면 편집을 싹 바꿔야 하는데 그건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라서. (…) 솔직히 그런 것도 불편하고…. 뭔가가 안 맞는 거예요.”
이렇게 불편함을, 말하자면 일종의 ‘시대 부적응’을 상징하는 종이신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필요한 이유가 있을 테다. 하지만 굳이 그걸 들춰내서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은 안다, 그것이 어떤 신념에 의한 것이거나, (예컨대 종이신문이 아니면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수요자를 위한 배려처럼 어떤 숭고한 대의명분에 따른 게 아니라는 것을. 고용, 노동 형태, 광고 수주 방식 등 (사실상 시쳇말로 ‘코스프레’에 가까운) 종이신문 발행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래의 조직 구조와 운영상의 이유 때문이다. 그는 요즘 “젊은 기자들도 많이 나간다”고 했다. “진짜 기자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 기자들”에게 갈수록 여건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라진 신문만화의 역할
“종이신문 중심의 환경에서 큰 역할을 했던 조직 구조가 점점 좀 무의미해지는 경향이 있잖아요. 근데 그 조직은 그대로 있으니까, 기자들은 온라인 발행을 위해 맡겨진 새로운 일을 해야 하지, 또 (종이신문 발행을 위해) 기존에 해오던 일도 해야 하지. 그러다 보니까 불만이 생기고, 불만이 생기다 보면 뭔가 많이 왜곡되고. (…) 구독자를 늘려서 거기서 수익을 얻는다는 게 어려워지고, 그러니까 더 광고에 의존해야 하고. (…) 제가 하는 일 자체는 그런 것으로부터 영향이 적긴 한데도, 여러 가지가 잘 굴러가지 않는 걸 보니까, 그렇게 보기가 싫더라고요. (…) 하여간 여러 가지 다 보기 싫어서 나온 측면이 있어요. 다른 할 일도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일하는 조건 자체는 딱히 나쁠 것은 없는 듯했다. ‘매일매일 시간에 쫓겨 마감하기 힘들어서’라든가 이를테면 ‘들이는 노력에 비해 보상이 적어서’ 등과 같이, 흔히 예상할 법한 궂은 이유로 인해 그가 일간지 유명 시사만평가로서의 자리를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시간 운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직무였고, 특별히 그에게 압력을 행사하거나 내용상의 제약을 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보기 싫어진’ 그 ‘여러 가지’에는 필경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과거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마치 그렇지 않은 척해야만 하는 그곳의 다양한 사정이 포함돼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거나,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어린아이처럼 <장도리>를 접었다.
“이 만화라는 게 그렇거든요. ‘내가 뭐 하고 싶다’ 해서 그리는 게 아니라, ‘요구’가 있어야지 그리는 거거든요. 여태까지는 신문만화도 그런 요구가 있었던 거예요. 그 요구가 가장 컸던 게 군사정권 시절이죠. 그땐 기사로 뭐가 안 나오니까. (그 안 나오던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만화를 사람들이 많이 봤던 거죠. 말 그대로 요구가 많았던 거죠. 근데 (이제는 기사가 말할 수 없는 게 많은 것도 아니고) 지금 유튜브나 이런 것처럼 더 노골적으로 할 수 있는 매체가 있으니까, 과거의 만화처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그런 효과는 없어요. 정치 풍자나 이런 것들은 이제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해요. 대표적으로 ‘합성’이라든가. 신문만화가 하던 역할은 사라졌어요. 신문을 통한 만화라는 독점도 없고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냉정한 자기진단인 셈인데,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문의 영향력이, 나아가 신문을 통한 시사만평의 영향력이 사라진 것을, 나 역시 은근히 기술, 시장, 독자 탓으로 돌리고 있던 것은 아닌가. 한편으로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과거의 매체 형식, 기술, 생산방식 등에 대해 지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아름다움’을 너무 쉽게 폄하하는 듯한 세태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말이다. 신문만평 또한 ‘시대의 산물’로서 당대의 어떤 ‘요구’에 부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면, 그것이 쇠락하고 있는 건 그에 대한 요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진단이다.
“이제 만화만의, 만화만이 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지금 많은 만화가가 그걸 못 찾고 있어요. (사람들이) 잘 안 봐요. 사실 솔직히, 저도 잘 안 봅니다. (웃음) 일단 재미가 없고, 재미있는 방식을 찾기도 힘들고. (…) 신문만화는 기본적으로 캐리커처에서 시작했거든요. 권위를 무너뜨리면서 독자들한테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건데. (…) 단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어떤 현상을 그냥 그림으로 나타내주거나 비틀기를 하거나 정치인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죠. (…) 실제 창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아직까지는 많은 시사만화 신문만화가 과거 형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죠.”

‘화백’이 아닌 ‘만화가’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지반을 옹호하게 마련이다. 특히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 방정식이 언제든 통할 거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현명한 이라면 내심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과거와 현재 지위를 방어하기 위해 새로 부상하는 것에 애써 눈감거나 심지어 그걸 공격하기조차 한다. 때문에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나이로든 지위로든 ‘가진 게 없는’ 이들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순찬 화백은 어딘가 좀 달랐다. 26년의 <장도리> 연재 이력만큼이나 지긋한 연배까지는 아니어서일까? 그의 ‘시작’이 궁금해졌다.
“저는 이과생이었어요. 학부에서 천문학을 전공했고, 건축을 부전공했죠. 학보사 만평을 그리거나 하진 않았고요. (…) 만화 동아리에 있었는데, 그때 유행했던 걸개그림을 그리는 데 참여하고 그랬죠. 최병수 씨라고 유명한 분이 있잖아요? 지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도 걸개그림이 전시돼 있는 분. 그 작업을 홍대 미대 학생들이랑 같이 했어요. (…) 저는 원래 지금으로 말하면 웹툰 같은 거, 당시로써는 잡지 연재를 하려고 했었어요. 전공이 이과라서 SF 만화를 그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하필 졸업할 때쯤 경향신문에서 만평 작가를 뽑길래 언론사 준비하고 있던 선배 소개로 응모를 해서 채용이 된 거죠. 우연치 않게. 원래 신문사에서 만화 그리는 사람들이 다 예상치 못했던 과정으로 시작한 경우가 되게 많아요.”
세상 많은 일이 그렇지만. 그 역시 ‘우연치 않게’ 시사만화가의 길로 흘러든 셈이었다. 요컨대 미술이나 인문사회과학 같은 연관 분야를 전공하다가, 학보사 만평을 그리다가, 미래의 꿈나무로 평가받으며 화려하게 언론사에 입사해서, 엄청난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성장해 마침내 유명 ‘화백’이 됐다거나 하는 그런 스토리를 기대한 이라면 내심 실망할 법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서 나는 요즘 말로 ‘쿨’하고 ‘시크’한 태도, 즉 허명에 연연하며 실제 이상으로 자신의 성취와 지위를 과장하는 이들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았다. 그는 굳이 ‘화백’으로 호칭(혹은 존칭?)되기보다 ‘만화가’라고 불리기를 바랐고, 시사 ‘만평’과 ‘만화’를 애써 구분 짓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시사만화는 그냥 만화예요. 굳이 나눌 필요도 없어요. 근데 자꾸 그걸 나누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고 싶어 하고. (…) 저는 만화가이고, 만화의 본연에 충실하려고 해요. 예컨대 시사IN에서 시사만화를 그리는 굽시니스트는 어떤 만화가로서의 자세가 돼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신문에 만화 그리는 사람들이 만화가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이 처음에는 ‘내가 뭔가를 그리겠다’고 생각하더라도 신문만화가들은 보통 직장에 소속돼 있거나 계약을 통해 오래 연재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다 보면 직장인화 돼버려요. (…) 네이버 웹툰 같은 경우엔 독자들이 그걸 얼마나 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치열하죠, 거기는. 원래 만화가는 치열해야 하는 건데. 그리고 독자의 반응이 굉장히 중요한 건데. 근데 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진짜, 웹툰 연재 만화가들처럼 그런 생각을 가져야 되는데, 신문 종사자들 가운데 적잖은 이들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독자 반응을 우습게 생각해요.”
그는 자신을 만화가로 위치시켰다. 자신은 언론인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만화를 통해 언론 행위를 할 수는 있지만, 그런 걸 구별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언론인의 입장에서 약간의 변론을 펼쳤다, 그래도 좋게 봐주자면, ‘독자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다 언론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독자에 의존하지 않는 게 독립성이고 엘리트주의면 뭐해요. 광고 없으면 유지도 안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 같지는 않은데. (웃음) 제가 변화에 대해서 고민하는 게 어쩌면 신문사에서 그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 그 반발로 그러는 걸 수 있어요. (…) 옛날엔 화염병 던지는 것도 용인됐잖아요. 하지만 만약 지금 그러면 미친 사람 되는 거잖아요. (…) 결국은 이제 ‘기술’인 것 같습니다. 전쟁에도 기술이 필요한 거고 전략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전략 없이 무조건 돌진하다가는 죽는 거죠. (…) 언론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언론이 안 바뀌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그런 태도가, 예를 들면, 식당에 가 보면 차이가 나타난다고 봐요. 시대 변화, 시대의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도 겸손해요. 하지만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도 매너가 없어요. (웃음)”
사람들이 그려줬으면 하는 것 그릴 것
오랜 기간 연재했던 <장도리>를 접고 경향신문에서도 퇴사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의 모친은 “잘했다”고 답하셨단다. 아마도 아들이 매일같이 전투를 치러야 하는 언론 일선에 서 있었던 것을 내심 안타깝게 생각하셨던가 싶다고 그는 웃었다. 그는 출판사와의 계약 이후로도 오래 미뤄져 있던 단행본 출간을 위해 당분간은 전보다도 더 바쁠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뒤로는 무슨 구상을 하는 걸까?
“딱히 아주 새로운 무언가를 하려고 나온 건 아니에요. 장기 연재를 하면서 못하고 있던 미룬 숙제를 일단 마쳐야죠. 기본적으로는 만화작업을 할 거니까, 웹툰 연재도 생각하고 있고요. 지금은 시사, 풍자 장르의 만화를 그리는 젊은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따로 신문 연재를 한다거나 이런 걸 생각도 잘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냥 SNS나 블로그에 올리고, 성향도 (일반적인 신문만평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갈리는 만화를 올리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후원을 받는다든가 이런 식으로 활동을 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막연하게나마 나중에라도 적어도 (특정 매체나 플랫폼에 속하기보다는) 상당 부분 개인적인 방식으로 활동할 영역을 찾아보긴 할 거예요.”
단행본 작업, 그리고 웹툰, 또 가능하다면 특정 매체에 종속되지 않는 창작 활동. 그가 퇴사 이후에 그리는 미래는 대략 그런 쪽에 있는 듯했다. 오래 근무해 온 언론사를 퇴사하기로 한 중견 언론인들이 대개는 대기업이나 정치권 혹은 로펌이나 컨설팅회사 등의 ‘퇴로’를 잡아두는 모습을 봐왔던 것과는 달리, 그는 확실히 지금보다 오히려 더 만화가다운(?) 길에 대해 생각하며, 그렇게 뚜렷하지만은 않게, 자신만의 방향성은 확고하지만 그 실체는 미확정적인, 문자 그대로의 ‘미래(未來)’를 그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제 작업에 반응을 남겨주시는 독자들 가운데는 뭔가 지금 현실보다는 좀 더 나은 현실을 바라고 있고, 제가 보기에 좀 더 건전하고 바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뭔가 그런 독자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방향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원하고 그 사람들이 좀 그려줬으면 하는 것들을 제가 그리려고요.”
독자들의 요구가 있는 곳에 만화가 있다. 박순찬 화백과의 대담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과 그것을 원하는 독자가 서로 만나는 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맞는 그림 그리기와 그를 통한 소통을 꿈꾼다. 그가 걸어온 26년의 길을 함께 했던 애독자로서,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서도 종종 그와 함께할 수 있길 나 역시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