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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 -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기획연재 | 등록일 : 2021-07-30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시작됐다. 하긴 대한민국의 사계절 가운데 과연 정치를 화두로 삼지 않는 때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말마따나 클 대(大)자 대선이 아닌가. 차기 정치권력의 향방을 가르는 대통령 선거가 반년 남짓 앞으로 다가왔고, 각 언론사는 이 대목을 앞두고 후보 검증팀을 꾸린다 뭐다 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오랜 경험과 깊은 안목을 지닌 정치 전문기자의 냉철한 상황 진단이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 한데 막상 그런 정치 기자를 떠올려 보려 하니 손가락 몇 개 이상 꼽히지 않는다. 현장에서 뛰는 각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라고 해야 청와대와 여당, 야당을 출입처로 삼아 주요 정치인들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개중에는 간혹 연륜 있는 기자들이 쓰는 정치 기사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별다른 취재 없이 쓰는 이른바 ‘뇌피셜(근거 없는 생각)’ 기사, 즉 모든 세상을 내려다보듯 써 갈기는 기사다. 이렇게 한국 언론 현실에서는 정치 현장을 누비는 ‘백발의 기자’가 다분히 상상 속의 동물 같은 것이기는 하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를 제외하면 말이다.

 

만들어진 겸손이 아닌 진심

 

“실제 근태 관리도 정치부 부장이 해요. 기사도 정치부장이 대개 의뢰를 하고요. 지금은 제가 정당팀 안에 여당반으로 소속돼 있고요. (…) 3주에 한 번씩 칼럼도 씁니다. 그게 되게 중요한 임무죠. 그다음에, 디지털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정치 막전막후>라고 해서, 좀 길게 쓰는, 일종의 정치를 주제로 한 읽을거리죠.”

 

그가 쓰는 <정치 막전막후>는 나 역시 독자로서 즐겨 찾는 기사다. 오랜 기간 정치 현장을 관찰해온 전문기자로서의 내공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디지털 저널리즘의 장점을 십분 살릴 수 있는 형식이어서 무척이나 반갑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출처 - 필자 제공>

 

 

“언론 수용자들이 각 언론사의 프리즘을 통해서 주는 뉴스를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당신들 ‘주장’이 뭔데? (그런 궁금증이 있으면) 차라리 사설이나 칼럼을 봐요. 그 다음에 ‘뉴스’는? 당신들이 이렇게 편집해서 준 것 말고 그 원본이 뭐야? (하면서) 날것 그대로를 보고 싶어 해요. (…) 그래서 통째로 인용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누가 뭐라고 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한 얘기 그냥 그대로 긁어다가. (웃음) 분량 제한이 없으니까. ‘이 사람은 이렇게 얘기했다’ 그래 놓고 (그것에 더해) 제 주장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은 옛날에 이런 얘기 했었고, 이건 문제가 있고, 또 이건 일리가 있고’ 이런 식으로 분석을 했죠. 그걸 독자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바로 이 대목에 많은 함의가 녹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한국 저널리즘, 특히 정치 저널리즘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실과 의견의 혼재이다. 정치인이 의도적으로 발화한 (종종 사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을 사실이랍시고 옮겨 그의 ‘스피커’가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또 반대로 기자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치적 사실을 취사선택하거나 심지어 창조해내는 일마저 있다.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는 정치 기사에서 사실과 (기자 개인의) 의견이 바람직하게 섞이고 분리될 수 있는 한 예를 보여준다. 둘째, 한국 언론 상황에서 ‘디지털 저널리즘’은 이른바 ‘어뷰징(abusing)’의 다른 이름이다. ‘이슈 대응팀’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달고 각 언론사가 운영하는 디지털 부서 혹은 자회사는 온라인 포털에서 더 많은 클릭을 성공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조직에 불과하다. 최근의 ‘삽화 사태’로 대표되듯, 새로운 저널리즘 가치는커녕 오히려 저널리즘의 기초를 허물어 그 벽돌을 내다 파는 데 혈안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이런 조건에서,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수많은 원본 자료를 제공하며 현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 소박하지만 자못 흥미롭되 꽤나 번거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그가 노장 기자로서의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인 걸까?

 

“하나하나 다 확인해가면서, 틀리면 안 되니까. 그런데 그것도 일종의 ‘서비스’죠. 그렇게 해서 실어주니까 보는 사람이 좀 편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제가 나름대로 개발한 영역이에요. 그냥 정치부 기자로서 신문에 기사만 써가지고는 안 되더라고요. ‘밥값’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회사에서 월급 받는 ‘기간제 근로자’로서 월급 값을 하려면 (웃음) 뭔가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실제로 동영상을 갖다 붙이고 싶은데, 그건 제가 따로 좀 배워야 되겠더라고요. (…) 문자 텍스트하고 영상하고 같이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디지털의 특성상. 욕심은 있는데 아직 못하고 있죠.”

 

그는 이걸 ‘밥값’이라고 했다. 유력 신문사에서 편집국장까지 거친 관록 있는 노장 기자에게서 듣게 되리라 예상했던 종류의 말은 아니다.

 

“태도의 문제인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자꾸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고. (웃음) 근데 저는 갈수록 좀 자신이 없어져요. 지금까지 제가 쓴 칼럼이, 이게 맞는 얘긴지도 잘 모르겠고. (웃음)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고, 정치부 기자 몇십 년 한 저보다 훨씬 감각도 좋고 많이 아는 분들도 많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 이런 정보의 바다에서 모든 사람이 다 표류하면서 헤매고 있는데, ‘아, 저기요. 저기. 뭔가 반짝반짝하는 거 보니, 저쪽이 남쪽인 것 같아요’라고, 약간의 안내를 해주는 그런 가이드? 누가 내 말을 들어주면 고마운 그런 정도. 거기에 제 역할이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거죠.”

 

이 또한 언론계에 오래 머물렀던, 그것도 청와대와 여의도 주변에서 30년 이상 ‘정칫밥’을 먹은 이의 입에서 나오리라 상상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설핏 스쳐본 그의 눈은 잠시 아련해졌다. 만들어진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뜻이다.

 

‘기자 정신’을 간직한 정치 전문기자

 

“기자는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에요. 스스로 뉴스메이커가 아니라 뉴스메이커의 주변을 맴도는 주변인이라는 한계도 있죠. 이런 직업 속성에 따르는 소외감을 극복하기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기자를 하다가 도중에 다른 분야로 진출하거나 언론사 내부에서 관리직 간부로 승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엄밀히 말해서 언론사 관리직 간부는 언론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자는 ‘쓰는 놈’이에요. 따라서 뭔가를 쓰지 않는 사람은 기자가 아닌 거죠.”

 

앞서 그는 자신을 ‘기간제 근로자’로 지칭했다. 그는 2019년에 정년퇴직을 하고 회사 측의 제안에 따라 2년짜리 기간제 근로 계약을 체결했다. 임금은 다소 깎였지만 하는 일은 기존과 같다. 편집국장을 마치고 2011년부터 해온 정치부 선임기자. 사실 그는 편집국장을 하기 전에도 선임기자를 했다. 말하자면 두 번의 ‘백의종군’ 경험이 있었던 셈이다.

 

“한겨레가 2005년에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그때 기자들이 많이 나갔어요. 한겨레가 해직 기자들이 만든 신문사인데, 여기서 사람을 자른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회사에서 나가라 소리는 못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 나이 든 선배들이 참 착한 사람들이에요. 자진해서 몇십 명이 나가셨어요. 참 가슴 아픈 장면이었죠. 그때 제가 정치부장이었는데, 다른 부장급들 한 열 명 정도를 다 모아서 선동을 했어요. ‘우리가 회사를 나가기에는 아직 나이가 안 되는 것 같은데, 회사가 어려우니 우리가 현장으로 가자. 근데 부장하다가 혼자 현장으로 가면, 되게 무능해서 밀려난 것처럼 되지만, 우리가 열 명이 작당해서 한꺼번에 가면, 회사 사정에 의해서 가는 걸로 좀 면피가 되지 않겠냐’ 했더니 좋은 아이디어라며 다 같이 받아들여 준 거죠. (…) 엊그제까지 차장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이 부장이 되고 제가 그 밑에 기자로 들어간 거죠. 그렇게 시작된 게 한겨레의 선임기자 제도. 그렇게 보통 부국장이나 논설위원 갈 나이에 4년을 현장에 가서 선임기자를 하고, 2009년에 편집국장으로 지명돼서 2년을 하다가, 편집국장을 마치고 2011년부터 다시 선임기자를 한 거죠.”

 

아직 한국적 연공서열 구조가 상당 부분 잔존해 있는 언론계에서는, 연배로는 간부급이지만 관리 보직을 맡지 않은 기자는 보통 논설위원이나 대기자로 발령내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선임기자와 대기자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 건지 물었다.

 

“대기자는 편집국 바깥의 편집인 직할로 작게나마 별도의 사무실을 주고 2~3주에 한 번씩 한 면을 할당하는 식이에요. 선임기자는 전부 편집국 안의 부장 아래에 있는 현장 기자들입니다. 대기자하고 선임기자는 이론은 비슷해도 한겨레의 경우엔 좀 역할이 다르죠.”

 

한겨레라는 조직이 가진 유연성 덕분에 그렇게 연공서열 구조를 깨는 직무 배치가 가능했다고 성한용 선임기자는 설명했다. 이미 2005년의 특수한 상황에서 시도돼 어느 정도 하나의 새로운 조직 문화로 안착한 사례인 듯하긴 했지만, 그래도 편집국장까지 지낸 선배를 현장 기자로 부리는(?) 게 우리 언론계의 습성상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처음에 선임기자로 갈 때 열 명이 작당을 해서 갔는데도,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시선이 ‘회사에서 물먹었지 저거?’ (웃음) 취재원들도 그랬고요. 그때는 굉장히 낯설었나 봐요. 국회의원들도 ‘왜 갑자기 현장으로 나오느냐’면서 약간 타박도 하고. 당직자가 저를 놀리면서 ‘아이고, 어르신 오셨어요?’라고 장난치고. (…) 편집국장을 하고 나서도 다시 현장으로 가는 건 또 더 어렵더라고요. 부장을 하고 나서 선임기자로 가는 것도 약간 후배들이 불편해하는데, 편집국장 하고 나서 또 현장으로 간다 그러면 주책이라고 할까 봐 굉장히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받아줬어요.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배는 제가 부하로 데리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며 (그 후배 부장이) 흔쾌히 받아주는데 그 말이 굉장히 고맙더라고요.”

 

이런 과감한 형태의 개인적, 조직적 시도를 통해 말년에도 현장을 뛰는 기자를 우리 역시 한두 명이라도 더 갖게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특히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언론이 자신의 정파성으로 인해 정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분석의 냉정함을 잃게 되는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쓰는 놈’으로서의 기자 정신을 간직한 정치 전문기자의 존재를 강력히 요구한다.

 

“정치 기사는 편향성에 매우 빠지기 쉬운 영역입니다. 따라서 기자가 끊임없이 편파성을 갖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하죠. 물론 ‘절대적 불편부당함’은 거짓말이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중요하죠. 정치부 기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러다 보면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빠질 위험성이 굉장히 커요. 이건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어떻게 정치부 기자로서 자기 객관화를 할 것인가 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하고 분리를 해서, 취재를 폭넓게 하여 가급적이면 진실에 가까운 분석과 전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쪽이 있는데 그걸 덮고 분석과 전망을 해야 하니 참 미칠 노릇이죠. (웃음) 때문에 언론사 안에서도 정파성이 강한 기자는 정치부, 특히 선거를 담당하는 정당팀에 배치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성한용 선임기자는 ‘불가근불가원’의 정석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설픈 객관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칫 교과서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 과정을 거친 결과로 도달한 교과서적인 언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그는 탁월한 신학자 자크 엘륄(Jacques Ellul)이 말한 바 있는, 맹목적 경전도 말뿐인 신앙도 아닌, ‘의심을 거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였다.

 

정치부 기자는 정치인 아닌 주변인

 

“정치부 기자들은 자기가 정치인이 된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심지어 정치인들 회의하는 데 들어가서 같이 회의를 해. (웃음) ‘당신들 그렇게 하면 큰일 난다. 이렇게 해야 한다’면서 막 코치도 하고요. 저는 한겨레 정치부 기자들에게 절대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해요. 거기 초선 국회의원들도 다 프로들이고, 우리는 옆에서 취재해서 글 쓰는 기자일 뿐이다. 우리는 기껏해야 평론가 정도 되는 거고,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일 뿐이다. 그 사람들이 물어볼 거다. 그래도 대답하지 마라.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럴 때도 말조심해야 하는 거다. 기자를 떠보는 거다. 항상 거리를 유지해가면서 취재를 해야 한다.”

 

앞서 그는, 기자들은 뉴스메이커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 숙명인 ‘주변인’이고, 그로 인한 소외감을 겪게 마련이라고 솔직하게 말한 바 있다. 자신의, 그리고 자기 직업의 약점과 어두운 면을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짓으로든, 허세로든,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서든) 일말의 진실감도 느껴지지 않는 도덕적 장광설을 풀기보다 그 유혹 앞에 실제로 던져져 깊은 고뇌와 성찰을 한 사람이다.

 

“경력직으로 뽑은 기자들과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어요. 제가 그랬죠. ‘한겨레가 월급도 많이 못 주는데 여기 와줘서 고맙다’고. (웃음) 그런데 기자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잘 왔다. (…)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위해, 특정 재벌을 위해 기사를 쓰는 그런 게 없는 진짜 몇 안 되는 언론사다. 뭐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돈이 혹시 많이 필요하면 이거 하지 마라. (웃음) 그런대로 세상을 내가 1센티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는 착각과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는 직업이고, 굉장히 재미는 있다. 그리고 젊을 때는 오히려 쉬운데, 나이가 들어가면 아마 소외감 같은 것 때문에 좀 힘들어질 거다. 그때가 되면 내 말이 기억날 거라고 조언을 해줬더니, 다행히 잘 받아들여 줘서 제가 오히려 고마웠죠. (웃음)”

 

고깝게 듣고자 하면 이것 역시 시쳇말로 ‘라떼는 말이야’ 식의 이야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걸 이른바 ‘늙은 꼰대’의 이야기로 치부하는 이들은 스스로 ‘젊은 꼰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장기간의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 그리고 의심을 거친 가치관은 마땅히 존중과 경청의 대상이 될 만하다. 모든 걸 ‘정치 기사’로 써버리는 한국 저널리즘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정치인이 된 전직 기자’와 ‘아직 정치인이 되지 못한 전·현직 기자’가 넘쳐나는 와중에 막상 제대로 된 정치 전문기자 하나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어느 분야의 기자든 경험이 많고 그 분야를 오래 취재한 기자가 기사를 잘 쓰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잘하는 기자가 있다면, 일을 잘해서 그 분야에 오래 있는 거라기보다는, 오래 있었기 때문에 잘하는 거라는 말이죠. (…) 정치 기자를 2~3년 하다가 다른 부로 간 기자들 중에 ‘내가 정치부 기자 해봐서 아는데, 정치인들 진짜 쓰레기다’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 많아요. (웃음) 진짜 한심하죠. 어떻게 2~3년 출입한 곳에 대해 다 알고 그렇게 단정해요? 물론 정치인들 책임이 크긴 한데, 저처럼 정치 분야를 취재하는 언론인들이 잘 못 했기 때문에 이런 반정치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봐요. 제가 교수님들하고 많이 싸우는데, 대학교수 중에 반정치주의자가 많거든요. (웃음) ‘국회의원, 저놈, 내 중학교 동창인데, 나보다 공부 못했던 놈인데, 저게 국민의 대표라고 폼 잡고 다녀?’ 그런 마음에 배가 아픈 거예요.”

 

만년 임무는 ‘반정치주의’와 싸우는 일

 

오랜 기간 정치를 취재해온 그는 “특정 정당 공천을 받아서 출마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정치 기사나 칼럼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칼럼을 쓰던 중견 기자가 정치에 진출하면 그동안 그가 썼던 좋은 칼럼도 모두 정파적인 것으로 매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힘주어 말한즉슨, 그리고 그가 이 연배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행보로 볼 때, 필경 그는 정치로 진출하거나 흔히 그렇듯 ‘논객’, ‘책사’ 혹은 심지어 ‘킹메이커’를 자처하며 권력자 주변을 맴도는 호가호위형 정치 낭인의 길로 빠질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만년(萬年) 정치 기자로서 만년(晩年)에 설정한 임무는 이렇게 ‘반정치주의’와 싸우는 일이다.

 

“반정치주의는 자본이나 관료 등 비선출 기득권 세력이,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정치 혐오증을 끊임없이 부추겨서 대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이데올로기에요. 옛날에는 군부가 반정치주의를 이용해 권력을 얻었지만, 지금은 자본이 반정치주의를 이용하고 있죠. 제대로 된 언론인이라면 이런 반정치주의에 맞서 정치의 순기능을 알리고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하도록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부, 관료, 학자 등이 정치 혐오를 조장해 반사이득을 얻어 역설적으로 ‘비정치적 정치권력’을 획득하거나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개혁에 저항하는 방식이야 익숙한 일이다. 그렇다면 자본은 어떻게 반정치주의를 활용한다는 이야기일까?

 

“대통령이나 국회, 이건 선출직이에요. 국민들이 가진 주권을 그쪽에 위임한 거죠. 그래서 대통령이나 국회가 권력을 가져야 돼요. 그런데 자본의 입장에선 이게 불편하잖아요. 대의제 정치권력이 자신들을 여러모로 불편하게 하니까요. 그래서 대통령이나 국회의 권력을 약화시켜야 하는데, 그렇다고 ‘민주주의는 나쁜 것’이라 할 수는 없고, ‘선거하면 안 된다’ 그럴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정치인들은 나쁜 놈들이고, 정치인은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이야기를 유포시키는 거죠. (…) 언론도 가장 큰 광고주인 재벌의 이런 요구를 충실히 받아서 그런 목소리를 앞장서서 내는 거죠. (…) 또 정치인을 욕하면 시청률 같은 것도 올라가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고 말이에요.”

 

듣고 보니 그렇다. 그의 말마따나, ‘기업은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라는 유명 재벌의 일갈을 신이 나서 받아 적었던 것도 언론이다. 겉보기에는 마치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혹은 반대로 그에 저항하는 척함으로써 자신에 우호적인 정치 세력을 추켜세우고) 정치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이는 ‘정파적 언론’임에도 습관처럼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자기 부정적 행태의 배경은 무얼까 생각해보면, 결국 이들에게 ‘정파성’은 더 큰 자본권력을 숭상하기 위한 부차적 수단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을 나누고 보니, 그가 “좋은 정치부 기자가 있어야 우리 정치가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던 이유가 좀 더 이해할만했다. 그는 정치로 가는 기자를 단호히 부정했지만, 그리고 기자는 영원한 ‘주변인’으로서의 소외감을 견뎌야 한다고 말했지만, 심리적 반작용 차원에서 생길 법도 한 ‘정치 혐오’와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요컨대 정치권력을 숭배할 필요도 없으나, 그렇다고 정치를 폄하할 이유도 없다는 것. 좋은 정치는 주권자를 잘 대리하는 정치이고, 좋은 정치 기자는 그런 정치를 촉진하는 기자이다. 그렇지 못한 현실에 질려 어설픈 정치 혐오에 빠지거나, 다른 이익을 위해 반정치주의를 이용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런 깊이 있는 식견을 가진 정치 전문기자를 지면에서 더 오래 보고 싶은데, 그의 이후 구상은 어떠한 걸까?

 

“한겨레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 많지만, 회사의 사정이란 게 있고 하니, 꼭 한겨레에 있지는 않더라도 저는 뭔가를 쓰는 일은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무언가를 쓸 수 없는 직업이 있죠. 이를테면 공영방송의 이사나 감사, 좋은 자리죠. 언론 관련 공공기관의 이사, 그런 거 하면 돈은 많이 받겠죠. 그런데 아무것도 못 쓸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프리랜서나, 아니면 아주 작은 언론사에 적을 두고라도, 그냥 지금처럼 뭔가를 쓰는 것을 조금 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조금 더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정치가 중요하다는 거 알고, 반정치주의 하면 안 된다는 각성도 있고, 불편부당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정치 분야의 언론인들이 조금 더 있어 줬으면 참 좋겠어요. 끝까지 정치 출마는 안 하는 조건으로.”

 

마지막 말을 들으며 성한용 선임기자와 내가 함께 공감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굳이 콕 짚어 말하지 않아도 여러 인물이 스쳐 지나갔고, 또 다른 의미에서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을 남긴 몇몇 걸출한 언론인들이 생각나서였다. 종종 보던 여느 때의 그 뒷모습처럼, 마치 승려들의 바랑 같은 등짐을 메고 다시 여의도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를 배웅했다. ‘쓰는 놈’으로서의 기자를 자처하는 그가, 이 정치의 계절을 지난 후로도 더 오랫동안, 우리에게 새로운 형식의 좋은 정치 기사를 더 많이 써주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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